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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5일 화요일

조지현

이카이노 거리에서 오물 수거 리어카를 끌고가는 청소부의 모습. 60~70년대엔 히라노가와에 떠다니는 오물을 오사카 시당국이 제대로 수거하지 않아 동포들이 직접 청소부에 의뢰해 오물을 치우는 작업을 맡겨야했다고 전해진다. ⓒ안해룡 작가 제공   출처 : 허프포스트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이카이노 거리에서 오물 수거 리어카를 끌고가는 청소부의 모습. 60~70년대엔 히라노가와에 떠다니는 오물을 오사카 시당국이 제대로 수거하지 않아 동포들이 직접 청소부에 의뢰해 오물을 치우는 작업을 맡겨야했다고 전해진다. ⓒ안해룡 작가 제공   출처 : 허프포스트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오구리 코헤이 감독에 관해 찾아보다 그가 재일한국인이고 그에 관한 영화를 많이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진흙강>이란 작품이 유명하다는데, 1950년대 일본에서 생활을 전전하는 조선인에 대한 영화라고 했다. 예전에 일본사진사를 공부하면서 일제시대 초현실주의 사진가 중 강 기슭에 움막짓고 사는 재일조선인을 찍은 사진가가 있었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귀찮다. 대신 조지현이란 한국 사진가를 발견해 간단히 메모해 놓는다.

2017년 2월 23일 목요일

Yoakim Koester, Sandra of the Tuliphouse or...

http://matthewbuckingham.net/sandra.htm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33

(at) 쌍계사

(at) 쌍계사 (c) 최윤

2015년 1월 26일 월요일

마여사 젊었을 때.

요새 듣고 있는 80s 마돈나. 나에겐 늙어서 사고치고 다니는 이미지가 강하지만...사진을 좀 찾아보니 젊었을 땐 마녀 할망구 느낌보단 귀염상이셨는듯..



2013년 9월 5일 목요일

<해 안에 서있는 천사> 윌리엄 터너



Artist: William Turner
Completion Date: 1846
Style: Romanticism
Genre: religious painting
Technique: oil
Material: canvas
Dimensions: 79 x 79 cm
Gallery: Tate Gallery, London, UK
Tags: allegories-and-symbols


린다 윌리엄스는 남성 성기에 봉사하고 있는 여성의 얼굴을 성기와 함께 클로즈업 한 포르노그라피의 스틸 사진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관찰자적 시점에 대해 설명한다. 그가 말하길, 이 사진에서 성기의 주인은 바로 '시선'인데, 이 시선은 사진기의 시선이며, 카메라맨의 시선이다. 그리고 이 시선은 페니스에 도착되어있다. (곧 카메라맨의 페니스와 화면의 페니스가 동일시 된다.)

이런 "소통의 황홀경"은 균일하게 중심화한 시각(그러니까 카메라 옵스큐라로 상징되는)의 해체이자, "탈물질화하고 탈육체화된 관찰자 자신의 신체를 성애적인 자기 현존의 즉각성 속으로 던져놓는 일이 된다" 크래리도 "비전이 관찰자의 몸의 경험적 즉각성에 위치되었을 때,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죽음에 종속된다."고 밝혔다. 여기서 죽음은 (내가 생각하기에) 근대적 시각성과 신체의 죽음이다.

이것을 정헌이 교수는 "근대적 휴먼이 몸과 정신 사이에서 리비도를 억압하면서 주체로서 성립되었다면 포스트휴먼은 카메라 옵스큐라와 포르노그라피 사이에서 황홀경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실제 대상이나 사물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이지만 육체적이며, 실제의 육체적 효과를 생산한다. 나는 이 새로운 육체, 새로운 촉각적 VR의 세계의 본질적 특징은 그 '자위'적 성격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정헌이, '포르노그래피와 형이상학, p.299)

"벤야민의 말처럼 폭풍의 힘이 하도 거세어서 날개를 접을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미래로 거세게 떠밀려가는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 점이 나의 센티멘털리티의 원인이었을 터이지만, 어쨌든 날개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정헌이,p.302)

가상적인데 육체적이란 말에서 그래엄 핸콕의 "수퍼내추럴"에서 나온 내부섬광 이야기가 잠깐 떠올랐다. 트랜스 상태에서 본다는 내부섬광, 그 내부섬광의 고수만이 볼 수 있는 신의 세계. 굿은 매우 포르노그라픽적인 (자위적인) 상황이고 인간에 신이 들어와 탈인간화 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