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꿈은 빨리 중고차라도 하나 사서 와이프랑 주말에 오붓하게 놀러다니는 거다. 그게 이뤄질까..?
2021년 4월 26일 월요일
단상
4월이 거의 다 지나고 있다. 공허하다.
공부도 일도 하고 있고 그럭저럭 살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 스스로는 전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돈 벌고 대충 수업 떼우며 최소한의 삶만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이상한 일이다.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는 느낌을 가져본지 오래다. 그런 일을 하기도 싫다. 물론 무언가를 한다면 열심히는 할 거고 성과도 낼 것이다. 그런데 그뿐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많이 지겹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처럼 호기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나이도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미술계에선 나이가 많아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점점 그런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호의적인 동감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어린애들 장난처럼 보인다. 조로한 건지. 큐레이터 실격이 아닌가.
2021년 4월 20일 화요일
오세훈 사과 발표에 관해
오세훈이 전임 시장의 성추행 범죄에 관해 사과에 나섰다. SNS 게시물을 성인지감수성이 높다는 젊은 세대가 공유하고 나섰다.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걸 사람들이 몰라서 쓰레기를 만드는 게 아니다. 이 쓰레기가 장기적인 생존에 불이익을 줄 것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무한한 쓰레기를 만든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같은 의미로 성폭력이라는 게 나쁜지 몰라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게 아니고, 또 오세훈 같은 사과의 말을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접대를 받았을 거라고 쉬이 추측할 수 있는 오세훈이 그런 속시원한 말을 한다는 것, 마치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그런 종류의 주장이 맞는 말 같은가? 물론 맞는 말이다. 박원순보다 오세훈이 더 문제가 많을 거라는 의심만 빼고.
니가 보는 게 바로 니가 보는 것이다라는 미니멀리즘 현상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미니멀리즘은 경험을 미술에 중심에 놓았을진 몰라도 경험 이외의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보는 것만 본다는 소리다. 하지만 니가 못 본 것은 니가 못본 거다라는 생각도 해봤으면 좋겠다.
2021년 4월 13일 화요일
뉴딜-공공미술 사업 비판
의식의 흐름에 따라서...
요즘 뉴딜과 관련해서 다시 공공미술에 대한 비판이 입에 오르내린다. 호방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과거의 모습을 본다. 나는...글쎄. 이제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뉴딜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구실을 공공의 이익에서 찾는 게 핵심이다. 이건 철저하게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대부분의 미술인과 상극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자족적인 미술은 뉴딜 사업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미술을 퉁쳐서 공공미술이라고 치자. 어떤 공공미술이 공공의 이익이 되는지는 굉장히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다. 미술자체가 그렇기도 하다. 아무튼 그러므로 공공미술 사업에서 자신있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돈의 효과가 가는지다. 많은 공공미술 사업은 그런 관점에서 설계된다.
여기서 예술인의 불만. 공공미술의 퀄리티의 문제다. 뉴딜의 핵심이 양적 완화라면 공공미술의 평가에 와서는 그것과 배치되는 문제가 나타난다. 공공미술에는 질적 통제가 필요하다, 라는.
이런 평가를 누가하느냐. 크게 전문가와 일반인이 있다. 전문가들은 미술계 이너서클. 작품같지도 않은 작품을 돈을 써서 지원한다. 프로젝트가 구리다 그런 거다. 하지만 여기서 일반인의 불만은 제대로 인용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도 불만은 있겠지만 전혀 다른 방향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질적인 문제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첫번째로 이것이 우리에게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할 것이다. 이런 반응이 전문가의 비판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공공미술에서 '공공'이 잘못됐다는. 하지만 사실 말을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두 번째는, 공공'미술'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전문가는 답을 하지 않는다. 왜?
미술이 공공적이지 않느냐, 아니면 공공이 미술을 필요하느냐. 이 두 가지중 미술계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전자이지만, 후자는 전자의 문제의식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미술계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집단인지 후자의 생략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