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9일 화요일

행복의 이미지

 




"오늘처럼 비가 오면 외출하기 어려워요. 그냥 걸어도 도시는 불안전한데 비가 오면 미끄럽기까지 하니까요.

저희의 작은 시도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삶을 상상해보고 시도해보는 일 같습니다:)"

라움콘의 프로젝트 발표회 홍보 이미지다. 조심스럽게 선택된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약자성의 표현, 그리고 행복의 이미지: 최소한 지하철 장애인투쟁과 같은 "정상인"에게 손속의 정을 기대할 수 있다. 뭐 다 알겠는데 짜증난다. 너희들은 왜 당당하지 못해? 같은.

짜증이 나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부족함 없이 행복을 이미 선취한 것처럼 보이는 존재에 대한 불편함: 저건 거짓일 거야, 진짜 행복할리가 없잖아 같은. 

애휴 내가 디져야지..

2023년 8월 25일 금요일

Sven Lutticken, Organizational Aesthetics, in October 183 Winter 2023

서론부
-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1996년 드아펠 전시에서 작가가 개인 컴퓨터를 소지하지 않고 있다고 했는데, 1990년대 중반이면 안 가지고 있는 게 드물었음. <-- 관계미학을 물리적 네트웤으로 몰아가는
- 글로벌 텔레커뮤니케이션 인프라로 인해 비행기타고 축하해주로 가고 그런 아티스틱한 네트워크가 가능해짐. 
- 니콜라 부리오는 일군의 networked practice를 관계미학이라 불렀고 티라바니자가 인포멀한 사회적 모임을 무대화하는 것이 한 예였음 -> 영미권 비평에서 적대를 생략한 필-쏘-굳-존에 대해 비판
- 2004년 클리어 비숍이 경계와 구별이 없다고 관계미술을 비판하는데 무페와 라클라우를 따라서 경계가 있어야 적대도 생산된다고 보았음
- 비숍이 부리오를 비판하는 건 형식주의자. 근데 부리오 스스로 그건 비밀도 아니고 사과할 일도 아니었음
- 탐 홀럿(Tom Holert)이 보기에, 부리오의 냉담함과 개념적 해결의 결여에 대한 비판 이후에도 흥미로운 것은 "집단성, 협동하기, 참여를 동시대미술에서 '형식'으로 특징화하려고 했던 시도"
-  그래서 부리요가 제공하지 않았던 형식비평이 요구된다 -> 뤼티켄은 일종의 개념적 전환을 하자고 함 -> 물리적인 모임이나 장소를 매우 특별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organizational and technological structures 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함 *
* 부리오는 충분히 그렇게 한 거 같은데...

결론부
- physical assemblism의 강력한 요소는 계속 있어왔으나 코로나 이후 줌으로 옮겨감 - 도쿠멘타 majelises
- 루앙루파는 "자유시장경제와 제도 정치에 조건화되지 않은 디지털 플랫폼"의 필요성을 특기했고, Gudskul의 Temujalar Digital Platform임--자원을 멤버들과 나눠가지는 플랫폼
- 이런 노력 너머에, 블록체인 기반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DAO)에 대한 관심도 있음 -> 네트워크를 조직하자는 논의가 진행될 수록 DAO의 수용은 회의주의와 대면하게 됨. 인간 본성과 사회가 그들의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techno-libertarian 아이디어에 대한 회의주의
- 새로운 테크놀로지 도구는 오늘날 실천을 틀짓거나 방해하는, 모순을 exacerbate함
- 이런 모순이 오늘날 예술적 미디엄을 제정함--그런 미디엄은 이제 막 탐구되기 시작했음
- 재앙을 가속하는 일은 매우 긴급하면서도 가망없는 부적절한 노력을 하는 일임

2023년 8월 22일 화요일

스테레오타입

광열이랑 이야기하다가 부산은 잘 안 가고 싫단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부산은 못 배운 티를 너무 낸단다. 못 배우고 당당하고 말 안 통하고. 지역혐오이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스테레오타입이란 게 있다. 코리안 스테레오타입, 유대인 스테레오타입, 일본인 스테레오타입. 아마 부산 스테레오타입도 있겠지. 보통 지식인에게는 이런 종류의 일반화를 비판하는 게 누워서 떡먹는 것보다도 쉽다.

분명히 광열이 말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이것은 없는 것일까? 인식이 아니라 존재로 전환해서 보면 분명히 스테레오타입은 입에 담고 있는 꼭 그만큼 스테레오타입 그 자체로 존재한다. 존재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다. 

2023년 8월 18일 금요일

꽃 공포증

옛날부터 꽃그림 전시를 잘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꽃 공포증이 주제면 좋겠다. 증상을 모조리 섹션으로 만들어서

토크와 토크

talk에는 torque가 있어야 한다는 시답잖은 소리..

2023년 8월 15일 화요일

며칠 간 본 무협만화

1.  신마경천기

2. 묵향 디 오리진, 다크 레이디

3. 천애검협

4. 단두

5. 앵무살수

- 최고의 신공은 항상 자연의 기를 빨아드리는 것, 음양오행의 순환이 잘 되는 경지로 묘사됨. (본인 내공 불필요)

2023년 8월 8일 화요일

머스크 대 저커버그

추성훈과 아오키 신야의 이종격투기 경기가 떠오른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면서 그렇게 죽일 듯 하다가, 싸우고 난 다음 거짓말같이 서로 쇼였다, 모든 건 흥행을 위해서,, 젠틀하게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승자와 패자 모두 훈훈하게 마무리.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로 흐를 거 같음. 두 사업가가 쇼의 주인공으로 나서길 자처했다는 사실은 지금 시대의 리더쉽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고 하겠음: 더 모어 관종 더 모어 베터 그러고보면 신세계 정용진이 SNS에 중독된 것처럼 발언하는 이유도 알만하지 않음? ㅎㅎ

2023년 8월 7일 월요일

알지 않으려는 의지

주말에 형주형과 석우형을 만났다. 양평에서 부산까지 내려왔다. 어컴퍼니 대표를 소개해주면서 어떤 일이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은 생각보다 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딴에나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이틀동안 내상을 크게 입었는데, 사실 내가 굳이 그럴 것도 아닌데 그런 것에 스스로도 놀랍다. 이들의 분석보다 내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2023년 8월 5일 토요일

어뷰징 문화

아웃백 런치세트 주문하는 법
꿀팁
가성비
시스템 어뷰징
타임라인 도배
악성민원

2023년 8월 4일 금요일

히로시 테시가하라, 모래의 여자, (1964)

마케타 마케타 마케타 그러는데 망했다로 들리네 ㅎ


감상. 모래를 잘 찍으려고 노력했다..? 듄을 한 번 더 보고싶네

2023년 8월 3일 목요일

심은진, 영화의 외화면과 외부의 사유, (2010)

2. 외화면과 공간

1) 앙드레 바쟁: 감춤
- <회화와 영화>(1951)에서 영화 프레임의 특성을 외화면으로 설명
- 회화 프레임: 이미지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을 분리시킴->그림 안쪽으로만 시선을 끌어당김. 그림이 보여주는 것 외에 없음. 확장 가능성 없는 창문. 구심적
- 영화 프레임: 영화 프레임은 현실의 일부만 보여주고 대다수를 감추는 것처럼 보여지기에 오히려 현실의 확장처럼 느껴짐. 창문이지만 무한히 확장될 가능성이 있는 창문. 원심적. -> 하지만 프레임의 움직임보다는 정지 프레임을 기본에 놓고 시간이 아닌 공간적 관점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들뢰즈 등으로부터 비판

2) 노엘 버치: 상상의 공간
- <영화의 실천>(1969)
- 바쟁의 논의를 심화
- 외화면은 6개의 공간: (1) 네 개의 가장자리 (5) 카메라 뒤 (6) 화면이미지(배경)의 뒷공간
- 외화면이 만들어지는 방식 (1) 인물의 입장과 퇴장 (2) 인물이 프레임 밖을 바라보는 시선 (3) 신체 일부가 프레임밖에 있는 경우
= 외화면의 지각: (1) 예언적이면서 상상적인 방식으로 (2) 사후적이면서 구체적인 방식으로

3) 자크 오몽: 탈 프레이밍
- 프레임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
- 프레임의 기능: (1) 프레임-사물 (2) 프레임-경계 (3) 프레임-창문
- 프레임-사물: 물리적인 틀, 액자 eg. 영화의 경우 어둠
- 프레임-경계: 이미지와 물질 사이의 경계
- 프레임-창문: 상상적인 것, 허구적인 것
= 바쟁과 비슷하나, 회화와 영화 사이의 구별을 없애고 프레임으로 통합
= 영화이미지는 움직인다는 측면에서 절단과 가장자리의 효과가 보다 잘 나타나기 때문에 탈프레임화와 관계됨

3. 외화면과 시간: 들뢰즈
- <시간 이미지> <운동 이미지>
- 들뢰즈에게 외화면의 본질은 시간과 관계됨(앞의 논의는 모두 시간/공간을 동등한 차원으로 간주하지만 들뢰즈는 영화적 공간이 시간으로 수렴함)

= 들뢰즈의 모든 철학은 물질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추상화된 사유를 근본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별로임 (철학이 모두 그런가?)
= 요즘 포스트시네마에서 외화면을 얘기 안 하는 건 들뢰즈가 외화면을 공간에서 시간으로 수렴시켜버렸기 때문인 거 같음
= 바쟁의 논의가 '공간적'으론 더 흥미로워 보임 - 바쟁의 글 찾아볼 것

2023년 8월 2일 수요일

고은, 이중섭 평전

고은의 책을 읽으니 전인권의 이중섭 비평은 고은이 쓴 평전의 해설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