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5일 금요일

Sven Lutticken, Organizational Aesthetics, in October 183 Winter 2023

서론부
-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1996년 드아펠 전시에서 작가가 개인 컴퓨터를 소지하지 않고 있다고 했는데, 1990년대 중반이면 안 가지고 있는 게 드물었음. <-- 관계미학을 물리적 네트웤으로 몰아가는
- 글로벌 텔레커뮤니케이션 인프라로 인해 비행기타고 축하해주로 가고 그런 아티스틱한 네트워크가 가능해짐. 
- 니콜라 부리오는 일군의 networked practice를 관계미학이라 불렀고 티라바니자가 인포멀한 사회적 모임을 무대화하는 것이 한 예였음 -> 영미권 비평에서 적대를 생략한 필-쏘-굳-존에 대해 비판
- 2004년 클리어 비숍이 경계와 구별이 없다고 관계미술을 비판하는데 무페와 라클라우를 따라서 경계가 있어야 적대도 생산된다고 보았음
- 비숍이 부리오를 비판하는 건 형식주의자. 근데 부리오 스스로 그건 비밀도 아니고 사과할 일도 아니었음
- 탐 홀럿(Tom Holert)이 보기에, 부리오의 냉담함과 개념적 해결의 결여에 대한 비판 이후에도 흥미로운 것은 "집단성, 협동하기, 참여를 동시대미술에서 '형식'으로 특징화하려고 했던 시도"
-  그래서 부리요가 제공하지 않았던 형식비평이 요구된다 -> 뤼티켄은 일종의 개념적 전환을 하자고 함 -> 물리적인 모임이나 장소를 매우 특별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organizational and technological structures 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함 *
* 부리오는 충분히 그렇게 한 거 같은데...

결론부
- physical assemblism의 강력한 요소는 계속 있어왔으나 코로나 이후 줌으로 옮겨감 - 도쿠멘타 majelises
- 루앙루파는 "자유시장경제와 제도 정치에 조건화되지 않은 디지털 플랫폼"의 필요성을 특기했고, Gudskul의 Temujalar Digital Platform임--자원을 멤버들과 나눠가지는 플랫폼
- 이런 노력 너머에, 블록체인 기반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DAO)에 대한 관심도 있음 -> 네트워크를 조직하자는 논의가 진행될 수록 DAO의 수용은 회의주의와 대면하게 됨. 인간 본성과 사회가 그들의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techno-libertarian 아이디어에 대한 회의주의
- 새로운 테크놀로지 도구는 오늘날 실천을 틀짓거나 방해하는, 모순을 exacerbate함
- 이런 모순이 오늘날 예술적 미디엄을 제정함--그런 미디엄은 이제 막 탐구되기 시작했음
- 재앙을 가속하는 일은 매우 긴급하면서도 가망없는 부적절한 노력을 하는 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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