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31일 토요일

장정일의 문학 2.0

http://hankookilbo.com/m/v/50b07531531449f29cf5133ce35ad138

비겁하게 인용으로 떡칠했지만, 내용을 압축하면 고은의 삶과 문학을 분리해서 보자는 말이다. 이 사람이 진보 논객이라는 게 정말 웃긴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주어진 문학, 이들이 믿어 왔던 문학을 사수하는 일이다. 김병익의 인터뷰와 뭐가 다른가? http://news.joins.com/article/22357457 문학을 지키면서, 동시에 문학의 진보를 말하는 게 가능할까?

얼굴 - 김건모


사랑과 우정사이 - 피노키오


2018년 3월 29일 목요일

죄인에게 돌을

위드유에 교묘하게 섞여 있는 악플 문화를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쁜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정당한가? 누가 그런 자격을 갖추었을까? 언제 그것을 합의했을까?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 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양심의 가책을 받아)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하고 말씀하셨다. - 요한 복음서 7장 53절~8장 11절(공동번역성서)
 다 자기만족인 것을... 부질없다.

2018년 3월 27일 화요일

마르셀 뒤샹+도스토예프스키=쿠르트 슈비터즈

마르셀 뒤샹의 반예술

도스토예프스키 <백치>에 나오는 간질병, 진리를 통찰하는 엑스터시
"도스토예프스키가 18세 되던 해, 1839년 그의 아버지는 실제로 영지 농노들의 원한을 사 살해를 당하는데, 한 도스토예프스키 전기 작가에 따르면, 당시 그는 맞아 죽었을 뿐만 아니라, 성기도 잘려 있었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로 농노들의 원한을 샀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최초의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의 첫 발작 시기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이견이 있지만, 어쩄거나 중요한 점은 그 후로 평생동안 이 병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의 많은 주인공들이 이 병을 나누어 가진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백치>>의 미시킨 공작도, <<악령>>의 키릴로프도, 마지막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부친 살해자 스멜댜코프도 다 간질병을 갖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 간질 발작은 우리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질병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간질 발작의 순간은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신의 세계를 넘볼 수 있는 경계 이월이 가능한 절대 황홀경의 순간이었고, 유한한 존재가 무한의 세계를 일순이나마 맛볼 수 있는 신비한 순간이었으며, 세계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의 순간이었다. 간질 발작이 일어나는 불꽃같은 찰나의 순간이 갖는 이러한 미학적, 철학적 의미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백치 천줄 읽기> 중에서

쿠르트 슈비터즈의 메르츠. 슈비터즈는 베를린 다다이스트의 정치적 성향을 배격했다. 다다이스트가 쓰레기를 쓰레기로 제시한 반면 슈비터즈는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
“나는 다다이즘 미술을 그 가장 고상한 형태에 있어서 메르츠와 비교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다다이즘은 오로지 반대를 위한 시도이나, 메르츠는 이 반대항들을 예술작품에서 일상의 요소들에 상대적인 가치들을 부여함을 통해 화해시킨다. 순수한 메르츠는 순 수한 예술이고 순수한 다다이즘은 비예술이다.”  Kurt Schwitters, “Banalität,” 1923, (in Kurt Schwitters, Das literarisches Werk, 1973-81, Bd. 5), p. 148.    

백남준은 <실험티비의 후주곡>에서 영원을 포착하는 2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는 "정점이나 불모의 영점에서 정지하는 것." 이는 의식의 비정상적 상태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의 경험이다. 의식의 이중성의 종합.

다음은 "독립적인 다수의 평행적인 움직임을 동시에 감지하는 것." 의식을 끊임 없이 지속하는 것. 사르트르적인 의미(인간의 의식은 언제나 대자적 자아)에서의 황홀. 의식의 통상적인 상태. 의식의 이중성(정신의 변증법적 진화)이 자유의 증거로서 보존된다. -> 12대의 실험티비를 동시에 감지하는 것은 신비주의자의 오랜 소원을 실현해줄지도 모른다는 것.

미투와 위드유

미투
1. 우리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미투의 광의의 목적은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3. 미투의 목적은 가해자 지목인의 사법적 처벌이 아니다.
4. 미투의 구체적인 목적은 가해자 지목인을 비사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5. 미투의 우선적인 방법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털어 놓는다.
6. 미투의 방법은 피해 사실 공론화 이후 사태의 추이에 따라서 결정될 수 있다.
7. 미투는 또 다른 미투를 요청한다.
8. 미투의 효과는 위드유다.
9. 미투는 오류가 발생할 수 없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위드유
1. 우리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위드유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하다는 것을 알리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미투와 목적을 함께 한다.
3. 위드유는 미투 폭로자의 말을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미투에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
4. 위드유의 효과는 가해자 지목의 사회적 매장이다.
5, 미투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증폭시키는 것은 위드유다.
6. 위드유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투가 아니다.
7. 위드유의 목적은 본보기를 만듦으로써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있다.
8. 공신력 있는 사람과 기관의 위드유는 즉시 최대치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9. 위드유는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duchamp, cage, music

http://torontodreamsproject.blogspot.kr/2015/03/marcel-duchamp-john-cage-play-musical.html

http://www.johncage.org/blog/cross_reunion.pdf

2018년 3월 26일 월요일

Liner notes to The Music of Marcel Duchamp by Petr Kotik

In the turbulent years from 1912 to 1915, Marcel Duchamp, one of the most important artists of this century, worked with musical ideas. He composed two works of music and a conceptual piece -- a note suggesting a musical happening. Of the two compositions, one is for three voices and the other combines a piece for a mechanical instrument with a description of the compositional system.

Although Marcel Duchamp's musical oeuvre is sparse, these pieces represent a radical departure from anything done up until that time. Duchamp anticipated with his music something that then became apparent in the visual arts, especially in the Dada Movement: the arts are here for all to create, not just for skilled professionals. Duchamp's lack of musical training could have only enhanced his exploration in compositions. His pieces are completely independent of the prevailing musical scene around 1913.

The pieces by Marcel Duchamp are all different. Two of them have been composed with chance operations, but in each case the method is different. The third piece is just a short note on a small, stray piece of paper. It is not possible to precisely date these pieces, but it is almost certain that they were all written in 1913.

Erratum Musical is written for three voices, included in the Green Box, which Duchamp published in 1934. It is undated, but has always been ascribed as having been written in Rouen in 1913. It was probably written during one of Duchamp's visits to his family, as his parents and sisters lived there. Duchamp wrote the piece for his two sisters and himself--each part is inscribed with a name: Yvonne, Magdelaine, Marcel. The three voices are written out separately, and there is no indication by the author, whether they should be performed separately or together as a trio.

In composing this piece, Duchamp the made three sets of 25 cards, one for each voice, with a single note per card. Each set of cards was mixed in a hat; he then drew out the cards from the hat one at a time and wrote down the series of notes indicated by the order in which they were drawn.

The second piece, La Mariée mise à nu par ses célibataires même. Erratum Musical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Erratum Musical) belongs to the series of notes and projects that Duchamp started to collect in 1912 and which led to the Large Glass. It was neither published nor exhibited during Duchamp's life. There are many notes and projects, each dealing with a different task. They are difficult material to work with, as there are no comments or explanations by Duchamp to assist with interpretation. Like many of them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Erratum Musical is unfinished and leaves many questions unanswered. Even so, it provides enough information for a successful realization.

There are two parts to the manuscript. One part contains the piece for a mechanical instrument. The piece is unfinished and is written using numbers instead of notes, but Duchamp very clearly explains the meaning of those numbers, which makes it very easy to transcribe them into notes. He also indicates the instrument(s) on which it should be performed: "player piano, mechanical organs or other new instruments for which the virtuoso intermediary is suppressed." the second part contains a description of the compositional system. Duchamp's title for the system is: An apparatus automatically recording fragmented musical periods.

The apparatus composing the piece is comprised of three parts: a funnel, several open-end cars, and a set of numbered balls. Each number on a ball represents a note (pitch) -- Duchamp suggested 85 notes according to the standard range of a piano of that time; today, almost all pianos have 88 notes. The balls fall through the funnel into the cars passing underneath at various speeds. When the funnel is empty, a musical period is completed.

The third piece Sculpture Musicale (Musical Sculpture) is is note on a small piece of paper, which Duchamp also included in the Green Box. According to Arturo Schwarz, the piece was written sometime during 1912 - 1920 /21, although 1913 is the most probable year. The Musical Sculpture is similar to the Fluxus pieces of the early 1960s. These works combine objects with performance, audio with visual, known and unknown factors, and elements explained and unexplained. A realization of such a piece can result in an event / happening, rather than a performance.

Of Duchamp's three works of music, only two can be performed using the existing manuscripts: the Erratum Musical for three voices and the Musical Sculpture.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Erratum Musical requires completion. During March-October 1974 I made a complete realization of the work. I transcribed the mechanical instrument piece into a notated score and realized it for a player piano. In 1976, a pianola music roll was produced at Q.R.S. Music Rolls in Buffalo, N.Y. This pianola roll can be used on any mechanical keyboard instrument (player piano, mechanical organ, etc.) which is made to the standard of the Chicago International Convention of 1912.

I have also followed the compositional system in realizing a score for a group of instruments by reconstructing "the apparatus"-- a funnel, seven cars, and six sets of balls. Duchamp wrote the piece in numbers, explaining their meaning and suggesting the instrumentation. The piece has eight divisions (I-VIII) which Duchamp calls periods -- "When the vase (funnel) is empty: the period of 85 notes (as many as) cars is inscribed..." Except periods No. I, V and VI all have 85 numbers (notes). Period No. 1 has not been recorded at all--the piece actually starts with period No. II. Periods No. V and VI have fewer than 85 notes (numbers): also the same numbers can be repeated in both wagons (No. V in J+K and No. VI in L+M). Whatever explanation one would use for this occurrence is not important--it can only be a guess. Naturally, one has to respect the piece as written by its author. Besides the pianola piece, I used the compositional system to create an altogether new composition. I decided on an ensemble piece, using those instruments which were most easily available in the S.E.M. Ensemble at the time. I reconstructed the "apparatus"-- a funnel, seven open top cars, and several sets of balls. For the ensemble piece, I needed more than one set of balls. I used one set each for alto flute, trombone, glockenspiel and marimbaphone and two sets for celesta (two hands -- hence two sets). Each set had as many numbered balls as there were notes in the range of the particular instrument (each number representing one note -- from the lowest to the highest one).

Having a system that will produce all the notes of the piece and having the instrumentation, I had to decide how to place the notes in the score. It was clear that I had to find a formula for structuring the notes in the score rather than writing them down mechanically one after the other. Duchamp never mentioned anything about rhythm, and he did not use any rhythm in the two pieces he wrote out (the Erratum Musical and the instrument version of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Erratum Musical). I came up with a method in which Duchamp's system actually generated the structuring of notes into the score. In other words, the system itself created the structure of special relationships between notes.

The placing of notes (numbers) in the score was determined by the way in which the balls came through the funnel and were taken out of the cars. The composition progressed from one step to the next, as each ball appeared, identified with a particular set (instrument). Each set of numbers was distinguished by a different color. For example: if I found 3 balls of the same set, the piece progressed three steps ahead. If I found 3 balls each from different sets, the notes (numbers) were written vertically, underneath one another, creating a chord.

The resulting score is ready to be performed, although markings for tempo, dynamics, etc. are missing. All these decisions can be made by the musicians themselves. How long to sustain each note, whether the piece should be performed "orderly" -- all parts to be coordinated vertically and horizontally -- or "freely" -- every performer performing independently, without respect to the other parts, all these aspects are determined by the performers.

In the process of composing the piece, I intentionally avoided implementing my own musical ideas. Indeed, it was a realization rather than a composition. The composition itself was determined by Duchamp in his description of the system and his examples of music scoring. One could say that such composition will result only in a formal, completely dry piece, not something one associates with a "creative work of art." this objection may be correct, but so what? I have attempted to work as closely as possible to Duchamp's ideas and the spirit of his work during the period around 1913, as he remarked to James Johnson Sweeney in an interview in 1946: "that was the period when I changed completely from splashing paint on the canvas to an absolutely precise coordinate drawing, with no relation to arty handiwork... I wanted to go back to a completely dry drawing, a dry conception of art. I was beginning to appreciate the value of the exactness, of precision and the importance of chance. The result was that my work was no longer popular with amateurs..."





The Music of Marcel Duchamp 

  1. Erratum Musical (for three voices) (8:06)
    S.E.M. Ensemble
  2. Sculpture Musicale (Mesostic by John Cage) (4:06)
    John Cage, voice
  3. La Mariée mise à nu par ses Célibataires, même (10:42)
    Pianola version by Petr Kotik
  4. Sculpture Musicale (5:22)
    Musicboxes version by Petr Kotik
  5. La Mariée mise à nu par ses Célibataires, même (23:02)
    Realization for alto flute, trumpet, trombone, celesta, and marimbaphone by Petr Kotik. S.E.M. Ensemble


    From the CD Music of Marcel Duchamp, Edition Block + Paula Cooper Gallery, 1991 

Sculpture musicale

http://youtu.be/pcHnL7aS64Y

I typed out the transcript to the Interview as I wanted to read and understand what John Cage was expressing about Silence. I find it easier to understand when I have written something, than I do when I only hear it.

(The noise of traffic in the background, JC sits with his cat in his apartment that looks down on to Sixth Avenue)

"When I hear what we call music, it seems to me that someone is talking, and talking about his feelings or ideas about relationships. But when I hear the sound of traffic here on sixth avenue for instance, I don’t have the feeling that anyone is talking, I have the feeling that sound is acting, and I love the activity of sound, what it does is, it gets louder and quieter, it gets higher and lower, it gets longer and shorter, it does all those things ...... I’m completely satisfied with that, I don’t need sound to talk to me.

We don’t see much difference between time and space; we don’t know where one begins and the other stops. Most of the arts we think of as being in time, and most of the arts we think of as being in space. Marcel Duchamp began thinking of music as being not a time art, but a space art. Sculpture Musicale – different sounds coming from different places and lasting, producing a sculpture which is Sonaris and which remains.

People expect listening to be more than listening, and sometimes they speak of inner listening, or the meaning of sound. When I talk about music, I’m talking about sound that doesn’t mean anything, that it is not inner, but is just outer, people say you mean it’s just sounds, thinking for something to just be a sound is to be useless. Whereas I love sounds, just as they are. And I have no need for them to be anything more than what they are, I don’t need them to be psychological, I don’t want a sound to pretend that it’s a bucket, or a president, or that it’s in love with another sound…..laughs….I just want it to be a sound.

I’m not so stupid either, there was a German Philosopher Emanuel Kant, he said there were two things that don’t have to mean anything …that is don’t have to mean anything in order to give us very deep pleasure. (Talks to cat and laughs).

The sound experience that I prefer to all others is the experience of silence. The silence almost all over the world now, is traffic. If you listen to Mozart or Beethovenyou hear that it’s always the same. But if you listen to traffic, you see that it is always different." John Cage (1912 - 1992)


http://www.squidsear.com/cgi-bin/news/newsView.cgi?newsID=776

http://www.tate.org.uk/context-comment/articles/art-noise

https://soundcloud.com/john-harvey-studium/sculpture-musical-19132014

http://johncage.org/pp/John-Cage-Work-Detail.cfm?work_ID=168

"musical sculpture. Sounds lasting and leaving from different places and forming a sounding sculpture that lasts."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도널드 저드, 특정한 오브젝트 번역 전반부

최근 몇 년 간 뉴욕에서 최고의 작업의 반 이상은 그림도 조각도 아니다. 최고의 작업은 대체적으로 가깝든 멀든 서로 관련이 있다. 그 작업은 다양하며, 그 작업 안에 있는 많은 것도 다양한데, 그건 페인팅과 조각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공통점도 있다. 

이 새로운 삼차원 작업은 운동이나 학파, 스타일을 구성하지 않는다. 이 공통의 측면은 운동을 규정하기엔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무나 공통적이다. 유사함보다는 차이가 몹시 더 크다. 유사함은 작업으로부터 선택되는 것이다; 유사함은 운동의 우선원리나 경계짓는 규칙이 아니다. 3차원성은 페인팅이나 조각이 그렇게 보였던 것처럼 단순히 컨테이너와 가까운 존재인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페인팅과 조각은 덜 중성적이고, 덜 컨테이너적이고, 더욱 규정적이며, 부정할 수 없으며 피할수도 없다. 페인팅과 조각은 정당한 규정적 퀄리티를 생산하면서 모든 것을 제한하는 특정한 형태다. 새로운 작업의 모티베이션의 대다수는 이런 형태를 깔끔하게 지운다. 삼차원의 사용은 명백하게 대안적이다. 그건 어떤 것에도 열려있다. 이러한 것을 사용하는 많은 이유/이성(reasons)는 페인팅과 조각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네거티브한데, 왜냐면 페인팅과 조각 둘 모두를 지적하는 것은 공통된 소스이고, 네거티브한 이성reasons은 그것에 가장 가까운 공유물이기 때문이다. ... 포지티브한 이성은 더욱 부분적이다. 그림과 조각의 불충분함을 리스트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둘이 친근하며 그것들의 성분과 질이 더욱 쉽게 안착됐기 때문이다. 

페인팅과 조각에 대한 이견(objection)은 이전보다 더욱 견딜 수 없이 되어가고 있다. 그건 증명되고 있다. 페인팅과 조각의 무관심성은 그것을 반복하는 가운데 무관심하게 됐다, 그런 무관심성은 가장 나중에 진보된 버전을 발전시켰던 누군가에 의해 실행된 때의 그것이 아니다. 새로운 작업은 언제나 오래된 것에 이견을 포함하지만, 이런 이견은 정말로 새로운 것에 대해 유효하다. 그것들은 그것의 일부를 이룬다. 만약 보다 더 예전 작업이 일급이라면 그것은 이미 완료됐다. 새로운 불일치와 제한은 반동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발전되고 있는 작업에만 오직 관심이 있다. 분명하게도, 3차원 작업은 깔끔하게 성공한 페인팅과 조각이 아닐 것이다. 3차원 작업은 운동과 같지 않다; 어쨌거나 운동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선적인 역사는 얼마간 파탄났다. 새로운 작업은 순수한 힘 가운데 페인팅을 초과하지만, 힘만이 오직 고려 대상은 아니며, 힘과 표현이 몹시 커다랄 수도 없다. 여기는 힘이 아닌 다른 길이며, 여기서 예술의 일종 하나는 다른 예술보다 더하거나 덜하게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납작하고 사각진 표면은 포기하기에 너무나 편리하다. 어떤 것이 납작한 표면 위에서 행해질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재현의 재현은 좋은 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은 페인팅이나 조각이 아니며 거기 모두에 도전한다. 그것이 새로운 예술가에 의해 계정으로 취해져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페인팅과 조각을 바꿀 것이다.

페인팅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그것이 벽의 역방향의 납작함에 놓인 사각판이라는 것에 있다. 사각형은 모양(shape) 자체다; 그것은 분명하게 전일적 모양이다; 그것은 어떤 것이 위에 있고 안에 있는지에 관한 배열을 결정하고 제한한다. 1946년 이전 작업에서 사각형의 가장자리는 경계며, 그림의 끝이다. 컴포지션은 가장자리에 반응해야만 하며 사각형은 통일체화 되어야 하지만, 사각형의 모양은 강조되지 않았다; 파츠parts가 더욱 중요하며, 색과 형태(form)의 관계성이 파츠로부터 발생한다. 폴락과 로스코, 스틸, 뉴먼, 최근의 라인하르트와 놀란드의 페인팅에서, 사각형은 강조된다. 사각형 안의 성분은 넓고 단순하며 사각형을 향해 가까이 조응한다. 모양과 표면이 사각판 위와 안에서 그럴듯하게 발생할 수 있다. 보통의 감각에서 파츠가 될 수 없는 통일성(unity)에 비해, 파츠는 미약하고 몹시 부차적이다. 페인팅은 거의 실체(entity), 하나의 물체(thing)며, 실체와 레퍼런스 그룹의 합으로 규정 불가능하다. 그런 하나의 물체는 예의 페인팅을 압도한다. 그것은 사각형을 규정적 형태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것은 정당성을 가진 중성적 제한이 아니다. 형태(form)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어야만 한다. 사각판은 생을 부여 받는다. 단순성은 사각형을 강조하길 요구하며, 이는 그것 안에서 가능한 배열을 제한한다. 단일성(singleness)의 감각은 지속기간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직 시작이며 페인팅의 바깥에서 더 나은 미래를 가진다. 페인팅에서 그것의 발생은 이제 시작처럼 보이며, 거기서 새로운 형태는 종종 예의 스키마와 질료로부터 만들어진다.

판(plane)은 또한 강조되며 대부분의 경우 하나다. 그것은 분명히 다른 판, 즉 벽 앞의, 그것과 평행하게 놓인 1이나 2인치의 판이다. 두 판의 관계성은 특정적이다; 그것은 형태이다. 페인팅의 판 위에, 혹은 얼마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포개어져야만 한다.

대부분 모든 페인팅은 어떤 점에서 공간적이다. 이브 클라인의 파랑 페인팅은 공간적이지 않은 유일한 사례이며, 거의 공간적이지 않은 사례는 스텔라의 작업 말고는 거의 없다. 곧추선 평판과 공간의 부재 모두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표면 위의 어떤 것이라도 그 뒤의 공간을 가진다. 같은 표면의 두 개의 색깔은 거의 언제나 다른 깊이 위에 놓인다. 심지어 색, 특히 유화에서, 모든 것이나 페인팅의 많은 부분을 덮는 그것은 대부분 언제나 납작하고 무한히 공간적이다. 그 공간은 그 모든 작업에서 얕으며, 그 작업에서 사각판은 강조된다. 로스코의 공간은 얕고, 부드러운 사각형은 그 판과 평행하지만, 그 공간은 거의 전통적으로 환영적이다. 라인하르트의 페인팅에서, 캔버스의 판으로부터 잠깐 물러나면, 납작한 판이 있으며 이것은 결국에 규정할 수 없는 깊이를 보여준다. 폴락의 물감은 분명하게 캔버스 위에 있고, 그 공간은 주로 표면 위의 어떤 흔적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그것이 몹시 설명적이거나 환영적이지는 않다. 놀랜드의 집중화된 띠(bands)는 폴락의 물감처럼 특별한 표면-위의-물감은 아니지만, 그 띠는 리터럴한 공간을 더욱 평면화한다. 놀랜드의 페인팅에서처럼 납작하고 반환영적으로, 그 띠는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한다. 심지어 원 하나라도 표면을 그렇게 왜곡할 것이고, 원 뒤에 작은 공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완결되고 변하지 않는 컬러필드나 마크필드를 제외하고, 사각형 안과 판 위 공간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어떤 다른 것 안과 위에 있는 어떤 것을, 둘러싸여있는 무엇을 제안하며, 이는 그것의 공간 안의 오브젝트나 형상을 제안한다. 그 가운데 이것은 비슷한 세계(similar world)의 더욱 분명한 실례가 된다--이것이 페인팅의 주요 목표다. 최근의 페인팅은 완전한 단일함(single)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몇몇 지배적인 영역이 있다. 로스코의 사각형이나 놀랜드의 원에서, 그들을 둘러싼 영역이 있다. 메인 형태와 가장 표현적인 파츠와 캔버스의 나머지, 판과 사각형 사이의 갭이 있다. 중심적인 형태는 여전히 더 넓고 규정 불가능한 문맥 안에서 발생한다. 그 페인팅의 단일성은 예의 작업의 일반적이고 유일무이한 퀄리티를 삭감시키지만 말이다. 필드는 또한 보통 제한적이지 않아서, 규정할 수 없이 더 넓은 무언가로부터 잘려진 섹션을 출현하게 한다.

유화 물감과 캔버스는 상업 페인트만큼, 그리고 질료의 색과 표면만큼 강하지 않다. 특히 그 질료가 3차원 속에서 사용된다면 말할 것도 없다. 기름과 캔버스는 친숙하며, 마치 사각판처럼, 어떤 퀄리티를 가지며 한계도 가진다. 퀄리티는 특히나 예술에 의해 규정된다.

새로운 작업은 분명히 페인팅보다 조각을 닮았지만, 페인팅과 더욱 가깝다. 대부분의 조각은 폴락과 로스코, 스틸, 뉴먼보다 이른 시기의 페인팅 같다. 조각에 관해 가장 새로운 것은 그것의 광활한 스케일이다. 그것의 질료는 어떤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강조된다. 그 이미저리는 얼마간 서로 다른 시각성의 유사함과, 얼마간의 모호한 레퍼런스, 즉 합성가능성(compatibility)을 향해 일반화된 모든 것을 포함한다. 파츠와 공간이 암시되며, 묘사되며, 이것은 얼마간 자연주의적(naturalistic)이다. 히긴스의 조각이 예이며, 이와 닮지 않았지만, 디 수비로(Di Suvero)의 것도 그렇게 될 수 있다. 히긴스의 조각은 주로 기계와 절단된 신체를 제시한다. 석고와 메탈의 컴비네이션은 더욱 특정하다. 디 수비로는 클라인이 그랬듯이, 움직임을 모사하면서, 마치 붓질처럼 철골을 사용한다. 물질적인 것은 제 자신의 움직임을 절대로 가지지 않는다. 철골은 꿰뚫으며, 철 조각은 제스처를 불러 일으킨다; 둘 모두 자연주의적이고 인간형태주의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공간이 조응한다.

대부분 조각은 파트와 파트로 만들어지며, 그 다음, 합성된다. 메인 파츠는 공히 도드라짐을 남긴다. 메인 파츠와 작은 파츠는 크든 작든 베리에이션의 컬렉션이다. 거기엔 투명도와 힘의 위계가, 그리고 메인 아이디어 하나 혹은 둘을 향한 근사치가 있다. 나무와 메탈은 그것이 단독이든 함께 쓰이든 보통의 질료다. 그리고 그 둘이 만약 함께 쓰인다면, 큰 컨트라스트 없이 그렇게 한다. 색은 거의 없다. 수수한 컨트라스트와 자연스러운 모노크롬은 일반적이고 파츠가 통일되는 데 일조한다.

[...]

Source: Thomas Kellein, Donald Judd: Early Work, 1955-1968, New York: D.A.P., 2002. Originally published in Arts Yearbook 8, 1965.

* 종합시험을 준비하면서 특정한 오브제 번역을 찾았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없다. 읽은 기억은 있는데 없다니..아마 마이클 프리드의 미술과 사물성에서 간접적으로 읽은 것 같다. 유명한 글인데 왜 없지 싶어서 글을 봤더니, 글 난삽해서 뭔가 번역하기가 쉽지 않더라. 그게 이유인듯 하다. 

2018년 3월 21일 수요일

옐로우 펜클럽

http://yellowpenclub.com

꽤나 정체성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 글쓰기 동인인 것 같다. 뭐랄까. 모두다 다음 주도권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서울의 젊은 미술 현상, 그리고 한국에 소개된(일정부분 교과 과정에 포함된) 미국 미술이론 동향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다른 지역이나 다른 세대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섭섭하진 않다. 그런  주류 지향적 마이크로스코프가 글에서 솔직하게 드러나는 게 밉지는 않아 보인다. 장점은 사유에 게으르지 않다는 것이다. 언젠간 좋은 글을 무지막지하게 써 내려 가겠지.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어 정독해야겠다. 논문이 끝나면 그 언젠가...

동시성의 상대성

https://ko.wikipedia.org/wiki/동시성의_상대성

아놔..

최정우, 바그너 '효과'에서 바그너 '사건'으로!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8064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악플 문화

성추행 가해자 지목 외대 교수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언론과 여론은 피해자를 또 다른 가해자로 만들지 말라고 난리다. 피해자가 그 사람을 죽였나? 말은 똑바로 하자. 그런 피해자 담론이야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다. 구별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구별될 필요가 있다. 피해자가 여론전을 펼치기로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가해자 지목을 죽인 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여론이다. 즉, 가해자 지목을 죽인 자는 피해자의 섣부른 폭로 같은 것이 아니라 죽일 놈이니 죽여주세요 하고 광장에 사람을 메단 언론과, 제 마음에 안 드는 자에게 너도 나도 하나씩 돌을 던지는 악플 문화다. 차라리 내가 죽였소 하고 정정당당히 나서라. 피해자 뒤에 숨어서 제 행동을 감추는 일은 너무 비겁하다.

2018년 3월 17일 토요일

미러링

미투는 리벤지 포르노를 유포해 여성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의 반동 같은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미러링의 일종.

2018년 3월 16일 금요일

정봉주2

피해자는 안타깝지만서도, 프레시안-정봉주 공방은 어그로와 개그의 소재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다. 오마이뉴스와 한겨레도 마찬가지로 두둔하고 있으므로, 바야흐로 희대의 패거리 병신극이 진행중이다. 피해자가 사라지고 있다. 그나저나 민국파, 미권스, 안젤라, 정봉주, 나꼼수, 무슨 스님의 백팔염주... 뭐 나오는 단어들이 다 왜 이리 저렴한 느낌일까...ㅋㅋㅋㅋ 

2018년 3월 13일 화요일

정봉주. 이런저런.

페이스북에 올리려다가 차마 못 올리고 여기에다 기록한다. 어짜피 무쓸모란 생각 때문에... 여튼. 

정봉주라는 인간 때문에 며칠간 오락가락했다. 그것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시간을 허비했다. 아마 폭로자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난다. 진실을 한갓 게임으로 몰고 간 언론에게 말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이런 자조 섞인 생각이 든다. 예술이 해야 할 일을 뉴스가 대신 하고 있구나. (한편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얼마나 마비되어 있으면 뉴스가 이러고 있을까?) 개인적으론 예술적 지식이 뉴스의 그것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공정하게 말하자면 적어도 예술과 뉴스는 동등한 가치의,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진 지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뉴스 자체가 예술이 될 필요는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일방향적인 지식 체계가 사회를 압도하는 건 끔찍하다.

미투혁명이 문화혁명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 또한 폭로자가 직접 쓴 글과 직접 나온 인터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확신하게 됐다. 내가 문학은 잘 모르지만서도, 그리고 그걸 꼭 "문학"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그들의 글과 말은 고은 같은 사람의 시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문학처럼 느껴졌다. 이런 문학적 성질이 전달하는 것은 단순한 팩트가 아니다. 팩트와 별개로 어떤 진실이 그 자체로 나타난다. 그건 김지은씨의 말 "내 몸이 기억한다" 같은 종류의 존재론적 증명 같은 것이다.

하지만 뉴스가 사이비 문학화하고 있다는 건 다른 문제다. 그들은 당사자가 아닌, 말하자면 자처한 대리인이다. 미술 용어로 번역하자면 재현의 자리, 실재의 이미지, 불충분한 그림자다. 포스트모더니스트는 그것의 성격을 역이용해서 "-1" 하길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이 불러온 결과는 오늘날의 탈진실적 혼란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패러다임적 관심사는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기구가, 혹은 언론이 제대로 그 진실을 대변했다면, 왜 미투가 피해자 스스로의 입에서부터 나왔겠나? 왜 "내 몸"을 들먹이면서까지 피해자 스스로가 나서야 했을까? 당사자라는 말은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당사자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가 기초할만한 진실 따위가 있기나 할까? 같은 윤리적 합의가 있는 것이다. 언론은 때때로 그것을 망각하고 마치 그들 자신이 당사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다 아닌 것 같으면 당사자와 자신을 분리시킨다. 프레시안의 보도가 딱 그랬다. 나의 당사자성에 대해 말하자면 며칠동안 이 보도 때문에 빡쳤다가 아닌가 하고 당황했다가 다시 더 빡치고... 그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곤 모든 것이 허망해졌다. 나는 어디다 대고 분노했던 것일까? 아마 언론이 투사한 이미지일 것이다. 이런 몇 겹의 이미지가 중첩되면 그것을 뚫고 존재 자체로 들어가기가 참으로 묘연해진다. 과연 당사자성은 그런 것인가? 혹은 반대로 언론이 당사자성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조금 보수적인 차원에서 네거티브 피드백이란 관점을 미투에 적용하자면, 우리, 중간자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묵살되지 않고 사법 절차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데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피해자에게 동일시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2차 가해는 중간자들이 행하는 것이고, 그 대상은 피해자 가해자 둘 다에게 향한다. 조금만 덜하고 더해도 더 없어도 될 피해 사실이 생성된다. 만약 그 균형을 기가막히게 잘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동조하라.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없다. 차라리 경찰과 여가부와 정부와 국회에게 더욱 치열한 압박을 가하고 그걸 통해 원래 당연히 그래야됐을 절차적인 문제를 이제라도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당사자성 및 관심interests과 더욱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

한편 조금 더 급진적인 차원, 그러니까 포지티브 피드백이란 관점에서 물론 뉴스라는 미디어는 선전선동에 효과적이다. 그것을 이용할 필요도 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응징 대상은 좀 가렸으면 좋겠다. 왜냐면 지금의 미투는 너무나 날카로운 날을 가진 반면 한편 약하기 때문에 남용하다간 순식간에 무뎌질 것이다. 특수한 사례를 본보기 삼아 마치 보편인 것처럼 날리면 사이다는 될지 모르겠지만 진짜 보편은 이를 통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편적인 것을 한꺼번에 날릴 수도 없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보편성을 담지한 특수성을 날리기 위해서 신중히 노력해야 한다. 그 보편적 특수성이 이건희에 해당할까 정봉주에 해당할까? 만약 이건희도 정봉주도 나쁘다. 그게 성폭력 사건에서 뭐가 중요한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미투는 철저하게 효과의 운동이고 그렇다면 더욱 효과적인 차원을 찾아가는 것도 당연하다. 정봉주를 날리는 것은 내가 보기에 포켓레볼루션에 만족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봉주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 과도한 처벌 때문에, 그것의 진보적인 효과보다 더 강력한 반동적 효과가 미투를 그렇게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고. 정봉주로서 미투는 끝장나게 될 거라고.

나는 미투의 본질 따위를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에서 사실 후자에 가깝다. 미투는 분명히 오염될 위기에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것이 꼭 부정적인 의미에서만은 아니다. 설사 부정적인 계기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긍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고종석 선생이 말한 "영구혁명"을 지속해 나가야 사회가 조금이라도 바뀔 것이다. 그렇다는 건 프레시안의 사례에서 미투는 뭔가 배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8년 3월 12일 월요일

이중의 반성?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13059
미투운동의 흐름, 즉 남성적 자리의 원죄성을 인정하는 그런 흐름을 따르자면, 나는 남성인 죄와 동시에 한국인인 죄, (상대적) 유산자인 죄 등등을 저질렀다. 가혹하게 느껴지지만 이주여성에겐 사실 그걸로도 불충분할 것이다. 나는 이주여성에게 죄인이 맞다. 그들의 처지를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고통을 알려고 하거나 분담하지 않고 그런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안전하게 살아오고 있다.

피폭로인 시점

성폭력 관련 피폭로인이 자신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 대응은 먼저 폭로자보다 미디어로 먼저 향해야 하는 것이 맞다. 왜냐면 자신의 사회적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은 그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무고하더라도, 사실은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해당된다. 법적으로 먼저 따지고 나서 나중에 언론에 밝히겠다고 말하는 건 선후관계가 틀려도 너무 틀렸다. 폭로자 A씨의 말이 거짓말이다가 아니라 언론사 A의 기사는 날조되었다가 되어야 한다. 같은 의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층위가 다르다. 전자의 법정 다툼 대상은 폭로자이지만 후자의 대상은 언론사이기 떄문이다. 정봉주의 대응은 그야말로 매뉴얼 같다. 폭로자를 문제삼기보다 프레시안을 물고 늘어졌다. 여기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타격을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게 완충한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 2차 가해라는 부담에서 보다 멀어진다.

정봉주에 대해선 거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미디어에 대한 이해는 정치인에게 근래 볼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그가 대응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무죄를 입증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23일 24일의 범주적 틀 안에서 정봉주는 기사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 그 외의 날에 대해 그가 해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어쩌면 미디어만을 겨냥해서 언론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Re)presentation = ?

재현은 언제나 뒤늦게 온다. 그것은 후위에 선 지식인의 태도와 닮았다. 모든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그것이 어떻고 저떻다 그제서야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무 것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어난 일에 덧붙은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

엇나간 재현, 소위 알레고리적 태도는 포스트모더니스트에게 일반적인 것이었다. 일어난 일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다르게 해석하면 이미 일어난 일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론이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타임머신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이 타임머신만 탄다면, 어떤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꽤나 순진하면서도 오만한 생각이었다. 제 머릿속 안에서 일어나는 망상 혁명일 수도 있다는 걸...

모더니스트는 재현에 저항했다. 하지만 불충분했다. 그들이 한 것이란 단지 형상에 저항했을뿐, 더욱 충실하게 제 마음을 재현하려 했다. 그들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감추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천재라는 관념이 탄생한다. 예술의 섭리=제 자신 자체인 인간이 요청되어야만 재현하지 않는다가 성립한다. 물론 그건 웃긴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미술의 장치에서 재현을 그만두면 무엇이 남을까? 극단적인 견지에선 작품 자체가 탄생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관객뿐이다. 오직 관객만이 암묵지에서 뚜렷하게 현전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3월 9일 금요일

조민기 자살

충격적이다. 이걸로 확실해진 것은 성폭력 가해자-남근주의와 미투운동가 사이는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미투운동이 혁명이라면 그건 현대적 버전의 유혈혁명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회가 아직까지 야만의 시대라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2018년 3월 8일 목요일

서동진과 권명아

간밤에 서동진 선생이 글을 올렸다. "미투 운동은 견제되어야 한다." 상당히 마르크시즘적 원론이었고 어느정도 통쾌함이 있었다. 내 생각의 60퍼센트 이상은 아마 서동진의 글을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글을 퍼나르는, 내가 평소에 혐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미술계 남근을 보고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글의 의도와는 다른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글쓴이의 잘못일까? 아니면 퍼나르는 인간들의 잘못일까? 둘 다의 잘못일까? 어쨌거나 이런 상황과 문맥은 뭐가 뒤틀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권명아 선생의 페북 포스팅을 봤다. 서동진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문맥상 대상이 서동진임은 분명해 보였다.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길, 말을 아끼시기를." 이 말은 서동진의 언급이 반동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서동진에게 미투 운동이 인권을 무너뜨리는 반동일 수 있듯이 권명아에게 서동진의 마르크시즘은 현재의 운동성을 반감시키는 반동일 수 있다. 바꿔말하면 이런 것이다. 권명아에게 미투는 인간이기 위해서 발언하는 것이라면 서동진에게 미투는 인간임을 무시/포기하는 것이다. 인간임을 지키려는 남성과 인간임을 주장하는 비인간 여성.

이것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그 복잡성에 비해서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이 둘은 모두 당사자 자신이 아닌 이데올로기의 후원자이며 무언가를 생산하는 위치에서 사실은 멀다. 그들은 언제나 변화보다 느리게 반응할 것이며 그때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이에 그 사태는 이미 사라져 없을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나는 미투 운동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생성하는 미투로서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그것은 권명아나 서동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나는 그걸 어찌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이것을 이끌어 가는 사람을 존경한다. 단, 파시즘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는 미투를 좀 더 생산적으로 생성하기 위해서 서동진의 우려는 (부정이 아닌) 긍정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혁명은 그럴 때 마르크시즘으로부터 시작해 페미니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으로부터 시작해 마르크시즘으로 가는 길을 택할지도 모르겠다.

2018년 3월 5일 월요일

속물적 페미니즘

http://www.hankookilbo.com/m/v/0fc875dc8b5b4541956f82248199504d

"-페미니즘이 왜 중요한가. 
김=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죠. 여성 인력들이 결혼과 출산으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될까 두려워한다면 아이를 가지려 하겠어요? 이렇게 계속 인구가 줄면 국가의 중요한 자원인 청년 자원도 줄겠죠. 그럼 당장의 경제 활력은 물론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에요. 그러니까 이걸 해결하려면 양성 평등이 전제돼야 합니다. 여자들이 일자리를 갖기 쉬워야 하고, 일을 하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 낳아 키우는 게 당연한 일이 돼야 해요."

페북에서 박권일이 이 말을 두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보는 인간이 어떻게 페미니스트냐고. 외려 나는 왜 이 문제가 여성에게 중요하지 않은지, 나아가 사회에 중요하지 않은지 궁금하다. 냉정하게 말해서 여성의 다양한 정체성 중 한 측면은 출산기계가 맞다. 표현이 과도하지만 이것만큼 그 의미를 잘 표현해주는 말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출산기계로서의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국가나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하다면 그것에 관해 지원/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것을 주장하고 국가와 여성이 협상하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과정이고 진보다. 엄마로서의 여성이나 직장인으로서의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 여성의 인권을 이해하는 것과 배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성 인권을 실현화하는 사회적 과정이라고 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박권일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김이란 사람이 이야기하는 유물론적 토대보다 사상검증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단순히 너의 진정성은 부족해서 내가 보기에 불편하다고 투정하는 오만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 느끼는 쾌감이 상당하신가보다.ㅎ 우리나라 지식인은 가만히 보면 조금만 속물적인 것이 문제다. 그 애매한 위치가 오히려 진보를 가로막는다는 생각은 그들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생산자로서의 비평가

비평가는 뭘 하는 인간일까? 보통은 칼과 저울을 들고 작품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생산자를 지향하는 룸펜 혹은 아나키스트이겠지만, 공정하게 말하자면 나 또한 대부분 이런 포지션에서 작품을 보아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위치란 벤야민이 말하듯이 계급과 계급 사이일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자리다. 안민욱이 내가 남에 대해선 쉽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을 돌이켜보면 이런 오만한 나의 위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생산의 입장에서 비평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비평가가 하늘이 아니라 땅 위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진보적 생산자라면 분명히 당대 생산구조 속에서 내가 어떤 기능을 하고 있고 어떻게 그런 기능이 수행되고 있으며 그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생산자로서의 저자에서 나오는 저자-부르주아-전문가-엔지니어의 모델이다. 내 식대로 이해하자면, 혁명을 위한 비평가의 기능성 중 가장 효율 좋은 것은 일종의 스파잉이다. 부르주아의 생산도구에 기생할 수밖에 없지만 이내 그것을 배신한다. 이 스파이는 부르주아의 생산도구를 프롤레탈리아트의 혁명 도구를 향해 진보하게 하는 기술공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르주아적 전문가는 최상의 엔지니어가 된다. 

진보적 생산자로서의 비평가가 해야할 일은 그래서 프롤레탈리아트-작가와의 정신적 연대 같은 것이 아니다. 프롤레탈리아트와 동질화하려는 노력도, 어찌보면 부르주아와 거리를 두려는 노력도 무의미하다. 저자의 자리가 그런 자리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부르주아의 생산도구를 혁명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도구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내부 진영에서의 구조적 투쟁이자 부르주아 외부 진영에서의 구조적 투쟁이다. 이로서 비평가는 이데올로기 후원자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때의 비평은 어쩌면, 아직은 이름 없는 기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벤야민이 주는 통찰은 간단하다. 글쓰기는 비평의 이름을 벗어 던지고 당대 생산관계를 뒤바꾸는 혁명을 위한 도구가 될 필요가 있다. 안민욱은 확대해서 말하자면 비평가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욕망을 무의식중에 내비쳤다. 그리고 오늘의 비평가는 일정부분 그런 식으로 주류 생산관계 속에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나는 그런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들과 거리를 두고 불가능한 자리에 서서 작가를 나무랐다. 하지만 벤야민에 비추어보자면 나는 결과적으로 그런식으로 비평의 권능을 재확인했거나, 혹은 어딘가에 있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 후원자가 되었다. 물론 그들이 잘한 건 아니지만 나 또한 이런 방식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것일까. 그 혁명적 도구성을 획득하기 위해 비평은 어떤 기술을 발전시켜야 할까. 이건 글쓰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에 어렵다. 

2018년 3월 4일 일요일

한나 아렌트

왓차플레이에서 감상했다. 다른 것보다 책으로만 본 지식인의 육신이 세계 안에서 움직이는 광경이랄까? 이런 걸 보는 건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비록 영화이지만. 거기서 아렌트는 밥도 먹고 연애도 하고 까이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하고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그냥 사람이더라. 그리곤 우리나라에서 칼럼을 쓰고 비평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 또한 아렌트만큼 존경할만한 분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