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31일 수요일
David Joselit: Painting Alterity
동시대미술 큐레이터란
냉동피자(3)
2023년 5월 11일 목요일
냉동피자를 향하여(2)
어제 저녁을 피자로 떼웠다. 오트커 박사 레스토란테 모짜렐라 피자 한판을 민하와 함께 먹었다. 마음을 먹었던 대로 피자 바닥을 물로 적시고, 올리브 오일을 팬 바닥과 피자 상판에 뿌렸다. 물론 오븐을 충분히 예열했다. 해동을 시켜라고 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무해동으로 오븐 제일 낮은 랙을 사용해 8분정도를 구웠다.
결과는..도우가 훨씬 촉촉했다. 쫀득한지는 몰겠다만 부드럽긴 했다. 거기다 맨 아래쪽 얇은 층은 바삭한 느낌도 적당히 있었다. 한국제품에 비해 토마토 소스가 충분히 들어가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먹었던 냉동피자 중에선 가장 만족스러웠다. 민하도 동의했다. 하지만 일말의 쫀득함을 살리진 못했다.
야식으로 한 번 남아 있는 고메 토마토소스 피자 한 조각을 같은 방법으로 데워봤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좀 건빵 같은 식감이 있었다. 굽는 방법보다 도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기본 피지컬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극복하기가 힘들달까..ㅠ
오트커 제품 중 트레디지오날레란 제품이 있는데 도우가 좀 다른 것 같다. 시금치 피자를 주문했는데 후기를 보니 화덕 피자 같은 쫀득함이 있다고 했다.
트레디지오날레 제품이 오면 같은 방법으로 재시도해봐야겠다.
2023년 5월 9일 화요일
더 나은 냉동피자를 향하여(1)
세윤씨가 소개해준 네이버 동네쇼핑?을 둘러보다가 엉뚱하게 냉동피자 핫딜에 유혹당해 6판을 샀다. 천체 2만 얼마에 샀으니 한 판에 3천얼마. 되게 싸게 주고 샀다.
하지만 이번 구매가 충동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냉동피자를 맛있게 데우는 방법을 알아내고 싶었다. 피자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아니고, 사실 한 조각만 먹으면 물리는데 비해서 너무 과하다. 피자의 토핑이 아무리 화려해도 나에겐 그맛이 그맛이었다. 하지만 많이 기다려야 하고..먹고나면 쓰레기도 많이 남고.. 하지만 그럼에도 피자가 가끔씩 먹고싶다. 그래서 그냥 피자스러운 맛정도를 그때 해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싸고 바로 해 먹을 수 있는 냉동피자가 좋은 선택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냉동피자를 좀 데워먹다보니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먼저 토핑이 적다. 근데 토핑은 뭐 그냥저냥 별로 신경쓰지 않는 타입인데, 치즈를 그렇게 많이 끼얹어서 먹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적응했다. 다만 언젠가부터 도우가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냉동피자가 맛이 없는 이유는 토핑의 양이 적기 때문이 아니다. 도우가 맛이 없다.
냉동피자 도우가 건빵과 비슷한 맛이 난다. 무언가 경직되어서, 안에 공기층과 수분이 없이 퍼석하거나 아니면 딱딱하다. 피자도우는 겉바속쫀이 되어야 한다. 겉바속촉보다 더 힘든 경지인 거 같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1. 오븐을 최대한 데워라
2. 빵을 최대한 해동시켜라
3. 오븐의 가장 아랫쪽 랙을 쓰고 아래 열선만 켜라
4. 올리브오일을 붓으로 발라라
이정도를 가지고 오늘 실험을 해봤다. 빵을 해동시키는 건 무리다. 안녹는다. 오븐은 최대한 예열을 했다. 아래 열선만 가지고선 빨리 데워지지 않기 때문에 위아래 열선을 다 쓰고, 적정 온도에서 위의 열선을 껐다. 220도 정도에 도달했을 때 빠른 스피드로 피자를 집어 넣었다. 서서히 오븐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7-8분이 이상적이란 레딧의 의견을 따라서 체크했지만 개뿔. 치즈가 녹지도 않았다. 다시 윗 열선을 키고 4분정도를 더 두었다. 총 11분정도 데웠다. 아마 윗열선을 처음부터 사용했으면 7분정도에 다 녹았을 것 같다. 아무튼. 그러곤 시식.
확실히 그냥 아무생각없이 데웠을 때보단 나았다. 하지만 여전히 건빵 식감이 있었는데, 도우의 상층부(토핑과 가까운 면)는 대충 촉촉했으나 아래쪽으로 갈 수록 퍼석했다. 단면을 봤더니 절반으로 나눴을 때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위 50퍼센트는 여러 소스가 적셔져 있었으나 아래 50퍼센트는 건빵이었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닥쪽 빵부분에 물을 적시는 것일 것 같다. 하지만 그럴 경우 너무 말랑말랑 해질 가능성. 흐느적 거릴 가능성이 있다. 그걸 대비해서 오븐팬에 약간 기름층을 만들어두면 좋을 것 같긴 하다.
다음 번엔 이런 조건에서 실험을 해볼 생각이다.
2023년 5월 8일 월요일
스테판 그리말디, 기념관은 왜 필요한가?
메모리얼과 히스토리얼을 구별해야 한다. 1차 대전 이후는 메모리얼이 지어지지 않았고 기념 조상 같은 것이 많이 지어졌음. 당사자는 밖에 나오길 두려워했음. PTSD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 2차대전 이후 메모리얼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세워졌음. 기억해야하는 당위성, 명분이 있었음. 하지만 이는 역사를 한방향으로만 이해한 결과였음.
정의는 시대가 바뀜에 따라 새롭게 이해될 수 있는 것임. 누군가는 피해자이기도하고 가해자이기도 함. 기억보다 더 중요한 건 공통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위에 기념관이 있어야 함. 기억으로부터 역사를 분리해내야 함. 사회는 사회의 역사를 '발전'시켜야 한다. 과거의 역사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역사를 위해서.
+ 이 글은 공공미술이 생략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 줌.
2023년 5월 4일 목요일
미술관, 현재주의, 인클로저
이 주제로 하나비평상에 지원하면 정말 웃기겠네.
2023년 5월 2일 화요일
바나나남 at 리움
바나나남 사건은 독창성을 따른다기보다 참조성을 따랐음. 원본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킨다고 보기도 힘듦. 이런 것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그러기엔 곤란한 점이 있음.
먼저 이 학생은 예술가가 아니다. 다음으로, 이 학생에게 예술계란 맥락이 없다. 두 개는 이어져 있다. 예술가만 퍼포먼스를 할 수 있냐고? 그런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하느냐 아니냐는 현대미술에서 생각보다 중요하다. 현대미술은 뒤샹 이후 맥락을 뒤트는 것으로부터 파격적으로 변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인지는 맥락 안에서 그 정체성을 가지고 노는 단초가 됨. 바로 카텔란처럼..
아무튼 이 학생은 아직 학생이고 예술가의 정체성보다 스스로가 더 내세우는 건 '서울대'와 '미학과'다. 내게 이 단어는 예술계에 보내는 시그널처럼 보이지 않는다. 비예술계, 서울대와 미학과가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이라는 게 합당해 보인다.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서울대와 미학과는 내가 이런 행위에 관심을 두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 보증수표가 되기는 함..) 어마어마한 미디어 노출을 감당하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의 서울대생'이 아무 생각 없이 관종짓을 즐기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감행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상정하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무언가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 그걸 위해서 어떤 예술 비스무레하게 보이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럼 예술 아니면 이 학생은 뭘 했냐? 내가 보기엔 틱톡에서 볼 수 있는 무슨무슨 챌린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챌린지는 무언가 오리지널한 걸 창조하는 그런 게 아니다. 이미 있는 유행하는 걸 나도 한 번 해본다는 애교섞인 도전이다. 그런 동참 행위를 통해 유행의 커뮤니티에 나도 속하게 된다. 그 기대 효과는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이다. 포퓰레이션은 소박하겐 즐거움의 소재가 되고, 좀 더 야심차겐 다른 목적을 위한 어떤 종류의 지렛대로 활용된다. 무슨무슨 챌린지는 대중이 유행하는 컨텐츠를 수용하는 하나의 일반화된 방식이다. 그렇다면 바나나남이 한 것은 창작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감상이다. -> 창작의 영역인 예술가나 퍼포먼스로 보기에 적당하지 않음
커뮤니티
애초에 이 작업은 글로벌 예술계란 커뮤니티에서 작동한다. 카텔란은 워홀의 블링블링 실크스크린 바나나를 참조해 썩게 만들었으며, 바나나가 썩기 전에 먹어치운 데이비드 다투나 역시 뒤집기를 한 번 더 뒤집은 것과 같다. 모두 예술계 안의 맥락 뒤집기 씨름 한판이다.
그럼 바나나남은 국제예술사회의 커뮤니티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 챌린지를 감행했을까? 그건 모순이다. 만약 국제예술사회의 커뮤니티에 참가하기 위해선 창작이란 통행료가 필요한데, 이 친구가 한 건 챌린지이기 떄문에.
사실 리움 미술관의 카텔란 전시는 글로벌 예술계에서 카텔란 작업이 작동하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봤듯이, 미술관 방문과 유명 미술 작품 감상은 예술계에서 보는 중요성의 맥락과 거리가 있다. 여기서 미술관은 미술품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핫한 장소, 사진찍기 좋은 장소다. 남들이 다 가는 곳에 나도 가는 것이고 남들이 다 같이 찍는 그 장소에 가서 나도 찍는다.
바나나남이 달랐던 건 글로벌 예술계에서 일반화된 밈이지만 한국에 아직 도입되지 못한 것을 제일 먼저 한 것이다. 말하자면 해외 유행하는 걸 한국에 제일 먼저 도입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