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30일 화요일
[스크랩] 김종길, 박용숙
샤머니즘 미학론의 선구자
- 박용숙 선생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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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미술세계 2018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부고 기사를 겸해서 쓴 글이다.
길벗들이 최근 박용숙 선생님 천부경을 공부 중인데, 함께하지 못하고, 마음만 동동 거린다.
2017년에 선생님을 인터뷰했다. 그 당시에 천부경을 쓰고 있다 했다. 떠나시고 벌써 8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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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박용숙 선생께서 지난 (2018년) 11월 3일 별세했다. 11월 4일자로 언론이 타전한 부고기사는 대부분 “소설가․미술평론가 박용숙 전 동덕여대 교수 별세”를 제목으로 달았고, 간략했다. 그가 살아 온 삶과 그가 성취한 학문적 세계를 생각하면 거의 무관심 수준이 아닐까 한다.
1935년에 났으니 올해 여든 셋인 그는 최근까지도 집필활동을 지속해 온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다. 문학 미술 역사 철학 신화 고전에 이르기까지 그의 학문적 관심은 방대했고, 그것을 비단실로 꿰는 글쓰기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독서는 동서 문명사를 관통하면서, 샤머니즘과 기독교 불교 유고 등을 통섭시키는 카오스모제(chaosmose)의 저술로 이어졌다.
『신화체계로 본 한국미술론』(일지사, 1975)과 『한국고대미술문화사론-샤아머니즘 연구』(일지사, 1976)는 그 첫 결과물이었다. 『한국고대미술문화사론』은 절판되지 않고 79년, 88년, 92년에도 중판이 이어졌으며, 일본의 제일서방(第一書房)에서 『샤머니즘으로 본 한국고대미술문화 사론シヤーマニズムよりみた朝鮮古代文化論』(1985)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신화체계로 본 한국미술론』이후 50여년의 집요한 연구를 거쳐 그는 올해 『천부경 81자 바라밀 : 천부경에 숨겨진 천문학의 비밀』(소동, 2018)을 펴냈다. 이 책은 그가 오랫동안 궁구하고 사유한 동아시아 시원문명과 미학적 코드였다. 2010년 그는 소동 출판사에서 『샤먼제국: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이 숨긴 역사』를 펴냈는데 이 책이 그의 마지막 3부작의 첫 권이었다. 5년 후, 같은 출판사에서『샤먼문명: 별과 우주를 사랑한 지동설의 시대』를 펴냈고, 그것이 두 번째였다. 샤먼제국에서 샤먼문명, 그리고 천부경으로 이어지는 책들은 샤머니즘에 기초한 ‘박용숙 미학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누구이며, 무엇이 그를 그토록 샤머니즘에 천착하도록 이끌었을까? 또 그가 밝히고자 한 동아시아 미학의 시원적 구조는 무엇일까? 이 글은 박용숙 선생을 추모하며, 그의 비평세계가 우리 미술계에서 재조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첫 단추를 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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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워크숍 기획
그는 함경남도 함주(咸州)에 났고, 6.25전쟁이 터지자 1.4 후퇴 때 남한으로 건너왔다. 중앙대 국문학과와 연세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덕여대 교수로 2004년에 퇴직했다. 1959년 『자유문학』에 「부록」, 「이름 없는 훈장」이 추천되어 소설가로 데뷔했고, 1970년대 초부터 현실의식이 담긴 작풍(作風)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경 아즈바이」「목수 아바이」「목수 아바이」, 「어금니 한 개」 등의 단편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문학보다는 미술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에 당선된 뒤 그는 월간 『다리』에 「식민지 시대의 미학 비판」(1972)을 발표했고, 1973년부터 75년까지 월간 『공간』의 편집장을 지내면서 1974년 2월 『공간』에 「민족적 리얼리즘은 가능한가」를 싣기도 했다. 그의 평론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예고하는 매우 귀중한 평론이다.
1970년대 후반, 그는 동덕미술관 관장이 되었고 ‘현대미술 워크숍’을 기획했다. 특히 1981년에 기획한 <현대미술 워크숍 기획전>과 강연회, 세미나는 우리 현대미술사의 큰 사건으로 기록된다. 기획전은 동덕미술관에서 개최되었는데, <S.T.>, <서울 ’80>, <현실과 발언> 등 3개 그룹이 초대했다. 전시는 <S.T.>, <서울 ’80>이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현실과 발언>은 7월 2일부터 8일까지였다. 강연과 세미나는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7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고 주제는 “그룹의 발표양식과 그 이념”이었다.
그는 전시 서문에서 “<S.T.>는 <A.G.>가 해데된 이래 줄곧 70년대의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으며, <서울 ’80>은 80년대에 들어와 새로 출발한 그룹이다. <S.T.>가 전위적인 문제의식에 있어서 비교적 포괄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면 <서울 ’80>은 보다 더 단위적인 것으로 첨예화 된 성격을 보여준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70년대와 80년대의 성격의 차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현실과 발언>은 장을 달리할 만큼 그 성격이 특수하다. 그들의 목소리는 어두운 방 속의 모기소리가 아니라 들판에서 울부짖는 사자의 목소리이고자 한다. <S.T.>와 <서울 ’80>이 미니멀의 미학을 대표한다면 <현실과 발언>은 맥시멀의 미학을 지향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고 적었다.
그는 기획전과 워크숍으로 세 개의 그룹을 새끼줄로 꼬았다. 세 그룹의 색깔은 ‘성격의 차이’만큼이나 달랐고, 그 다름과 차이는 70년대와 80년대를 가늠하는 ‘가늠자’와 다르지 않았다. 미니멀과 맥시멀이 회오리로 휘돌아 갈 때, 한국현대미술은 용솟음치듯 치솟았다. 1980년대 민중미술은 그렇게 포문을 열었다. 시대를 꿰뚫었던 그의 이러한 기획은 지속되지 못했으나, 이후 그는 출판기획을 통해 그의 사슴뿔 사유의 씨알들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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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체계, 혹은 원형에 대한 추구
1975년, 그의 나이 마흔에 발표한 『신화체계로 본 한국미술론』(일지사, 1975)은 그의 샤머니즘 미학론의 구조를 살필 수 있는 초기 저작이다. 책의 내용은 “1. 신화의 전개”, “2. 종교와 미술”, “3. 회화”, “4. 조각”, “5. 신기(神器)”로 되어있는데, 1부가 흥미롭다. 그는 한국미술론의 첫 머리를 ‘신화의 전개’로 채웠다. ‘전개’라고 썼으나 그것은 구성인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열 네 개의 구성인자는 1)象과 形, 2)조선이란 달, 3)해님(天皇), 달님(地皇), 4)환인(桓因), 5)환웅(桓雄), 6)별님(人皇), 7)화랑도(花郞徒), 8)가운데 한울(中朝와 中天), 9)단군, 10)북두칠성(中華), 11)해님, 달님, 별님(三皇五帝), 12)玄妙之道와 三韓設, 13)惡(疫)神과 洪水(chaos), 14)천당과 지옥 등이다. 그는 왜 이것들에 주목했을까?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은 물론 신화의 연구가 아니라 미술에 관한 연구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대로 전통미술은 신화체계에 대한 정당한 지식이 없이는 이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전통미술의 연구가 양식연구에서 머무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 즉 신화적 장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이어서 그는 1976년 일지사에서 『한국고대미술문화사론-샤아머니즘 연구』를 펴낸다.
머리말에서 “이 책의 중요한 관심사는 음양오행의 원리가 어떻게 종교나 정치에 적용되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다행히 필자는 음양오행의 비밀을 담고 있는 천부경을 알게 되었고, 그로 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샤어머니즘의 체계에 접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 앞의 문장을 보면, “이미 이전에 『신화체계로 본 한국미술론』에서 샤아머니즘이 곧 음양오행설에 입각한 신정정치였다고 썼으며, 그러한 정치적인 이념이 산수화나 사군자화에 표상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고 했다.
열 네 개의 구성인자는 결국 우리 미술을 해제하는 중요한 코드였던 셈이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회화의 방법과 구도』, (집문당, 1980)와 『한국의 시원사상』(문예출판사, 1985), 『한국미술의 기원-미술사의 근본 문제』(예경산업사, 1990)으로 이어진다. 그가 ‘시원’과 ‘근본’을 따지는 것은 ‘자생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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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미술의 기원』에서 “엄밀하게 말해서 자생력이란 문화적인 창조자가 처음 그가 만든 기틀 속에 놓았던 여러 사물들에 부여한 본래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그 최초의 이름 속에는 그 사물의 의미와 기능이 함축되어 있으며, 신화는 그 이름을 능률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전승하려는 의지 때문에 언제나 알몸처럼 단순해지려 한다. 삶의 모습이 복잡해질수록 상대적으로 신화는 더욱 알몸[原型]으로 존재하려는 위상에 있게 되고, 그럴수록 그 본래의 이름들은 문화라고 불리는 여러 갈래의 지층 속으로 묻혀버리게 됨으로써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초의 이름, 단순해 진 알몸, 그는 원형으로서의 알몸을 추궁해야만 지금, 여기의 우리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민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우리 미술의 근본이 ‘채색화’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는 이미 『한국미술의 기원』제1장 제1절 주제를 “채식화가 회화의 원줄기이다”라고 적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하나의 원형으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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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의 미학론
샤머니즘에 대한 그의 연구는 일흔이 넘어서 완성되었다. 첫 책 『샤먼제국: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이 숨긴 역사』(2010)과, 두 번째 책 『샤먼문명: 별과 우주를 사랑한 지동설의 시대』(2015), 그리고 세 번째 책 『천부경 81자 바라밀 : 천부경에 숨겨진 천문학의 비밀』(2018)은 그가 그토록 완성하고 싶었던 샤머니즘 미학론의 별자리아도 같다. 우리는 이 별자리의 우주적 세계를 통해서 인류가 상실한 시원문화의 상징체계와 미학의 뿌리에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가 쉼 없이 파고 들어간 그 세계는 실증사학으로는 그릴 수 없는 신화계이자 상상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파편적으로 이뤄진 다양한 학제적 연구의 성과들을 잇고 덧대고 붙여가면서 상상계를 현실의 언어로 직조하기 시작했다. 일흔이 넘어서야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그 구조의 알고리즘이 어떤 흔적을 복원하고 붙잡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비단실로 꿰는 일은 지식의 그물코가 천 개 만 개로 이어져야만 가능하다.
『샤먼제국』의 ‘저자의 글’은 “샤머니즘이라는 지도의 발견”을 주제로 작성되었다. 첫 문장은 “상상력이라는 이름의 배가 있다”고 시작한다. 그리고 뒤를 이어 “그 배의 속성은 그렇다. 이미 정해져 있는 물길을 따라 안전하게 다니는 배가 아닌 것이다. 방향타도 없지만 배는 무엇을 믿는지 험난한 파도가 넘실대는 망망대해를 헤집는다. 혹자는 말한다. 사학(史學)은 실증학문인데 어떻게 역사를 상상력에만 의존하는가. 하지만 서양사학의 거목인 랑케(1795~1886)는 『세계사의 이념』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의 바람직한 목표는 이데아를 지키는 일이며 이는 사실(학문)과 추리(예술)를 올바르게 결합하는 일이다.’ 그럴 것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승자가 패자의 주체를 지우는 음모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랑케가 말하는 추리는 곧 상상력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상상력’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고대사 항해에 나섰던 계기는 고고학자 김원룡 선생 때문이었다. 1972년을 시작으로 공주 무령왕릉, 경주의 98호 고분, 고령 가야 고분들이 연달아 발굴되기 시작했을 때, 김원룡 선생은 박용숙 선생을 현장에 데리고 다녔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한반도의 문화적 원형이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라시아 전체의 문화적 코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는 강릉 단오제로 첫 항해를 하면서 지도를 그리는데 그 발상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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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는 연중 태양광(陽氣)의 밀도가 가능 높은 시간대이고, 이는 샤머니즘 시대 태양신의 날이다. 무당들은 올림포스(대관령)로 올라가 신수(神樹)를 잘라 지상(祭場)에 세우고 그곳에서 제석풀이 굿을 한다. 제석은 제우스이고 ‘풀이’는 그리스 무녀들이 제우스 축제에서 부르는 디티람보스 찬가이다. 여러 날의 축제가 끝나면 제터에 세워졌던 신수는 불길에 활활 타오르고 무당들은 슬픈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 이때 바빌로니아에서는 씨의 제공자를 대표하여 아도니스가 말뚝에 묶이어 불에 탄다. 이것이 프레이저가 《황금가지》에서 그토록 지루하게 기록해 놓은 태양신의 축제가 아니고 무엇일까. 개안(開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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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문헌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펴낸 책이 1996년의 『지중해 문명과 단군조선』이다. 이것은 그가 그리기 시작한 샤머니즘 지도의 ‘소박한’ 밑그림이었다. 『샤먼제국』은 제1장 “태양신과 샤머니즘”을 시작으로 제19장 “샤머니즘의 몰락과 불교의 승리”까지 이어진다. 그는 불교가 유래하면서 샤머니즘이 몰락했다고 본다. 『샤먼제국』이 샤머니즘의 역사서라면 『샤먼문명』은 샤머니즘의 상징사전이다.
특히 그는 이 책에서 천문학과 샤머니즘을 하나의 상징계로 엮어낸다. 그리고 그 상징계의 샤먼문명이 고대 국가에서 어떻게 현실화 되었고 작동했는지를 살핀다.
그가 여는 글에서 “샤머니즘, 그 새 이력서”라고 했듯이 『샤먼문명』은 샤머니즘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상상력이다. 그의 상상계가 이뤄낸 문화구조학적, 문화인류학적 샤머니즘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는 저자의 글에서 “심지어 샤를 스테파노프 같은 학자는 석가모니도 샤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이 ‘신라 고대의 영험한 종교(新敎)가 동력을 잃으면서 거기에서 불교나 도교 같은 종교가 나왔다’고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최치원이 말한 영험한 종교란 다름 아닌 샤머니즘으로 그 말의 바닥에는 샤머니즘이 불교와 마찬가지로 고등종교라는 사실이 깔려 있다. 20세기 샤머니즘 연구의 대가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현대 문명의 간판스타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가 샤머니즘을 계승했다고 말한다. (…) 이 문명의 상층구조에는 샤먼 집단이 자리하고 있었음도 주목할 일이다. 그들은 사제이며 예언자였고 동시에 의사이자 마술사였으며 또한 점성술사들이었다.”고 적고 있다. 그의 주장은 샤머니즘이 불교나 기독교 문명의 원문명(原文明)이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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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일, 필자는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박용숙 선생을 만났다. 월간 『미술세계』에 「민중미술 연대기」를 연재하면서 꼭 만나야 할 평론가로 선생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74년에 구상한 ‘민족적 리얼리즘’은 무엇이고, 1981년의 ‘현대미술 워크숍’ 뒷이야기도 듣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샤머니즘 미학론을 그토록 집요하게 공부한 이유는 무엇인지도 여쭈었다. 선생을 만나러 가기 전에 『샤먼제국』과 『샤먼문명』을 사서 읽었고, 만나러 갈 때는 그 책을 들고 나가서 이것저것 짚어가며 여쭙기도 했다.
선생은 맑았고 또렷했으며, 미소년처럼 웃었다. 이야기 끝에 선생은 『천부경 81자 바라밀』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선생은 거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 1월 18일, 소동출판사에서 그 책이 출판되었고, 지난 달에 그가 바라보았던 자미궁의 한 별자리로 돌아갔다. 『천부경 81자 바라밀』에서 몇 개의 구절을 뽑았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문고리를 잡아야 한다. 그것이 문으로 들어가는 순서이다. 《천부경》의 문고리는 ‘무無’라는 글자이다. 이 글자의 숨은 뜻을 알아야 《천부경》의 시작인 ‘일시무시一始無始’라는 말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
“거의 모든 문헌에서 무無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 된다. 그러나 그냥 ‘없다’라고 풀면 ‘일시무시一始無始’의 뜻을 읽어낼 수 없다. 다른 《천부경》 연구자들의 풀이처럼 ‘일시무시一始無始’를 ‘없는 곳에서 하늘과 땅이 시작한다’는 뜻으로 읽으면 하나마나한 소리가 된다. 여기에서 무無는 다름 아닌 피라미드의 스핑크스로 보아야 한다. 노자는 ‘무無가 천지天地의 시작’이라고 했다.”
“1은 태양이고 2는 달이며 3은 새벽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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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숙 선생의 대표 저서와 번역서
『신화체계로 본 한국미술론』(일지사, 1975)
『한국화의 세계-교양인을 위한 신서』(일지사, 1975)
『한국고대미술문화사론-샤아머니즘 연구』(일지사, 1976)
『현대미술의 구조』(열화당, 1976)
『박수근, 그의 향토색 짙은 회화 세계와 독특한 마티에르 기법을 찾아서』(열화당, 1979)
『회화의 방법과 구도』(집문당, 1980)
『한국의 시원사상』(문예출판사, 1985)
『한국미술의 반성적 이해』(집문당, 1987)
『전통미술의 재발견』(일지사, 1988)
『한국미술의 기원-미술사의 근본 문제』(예경산업사, 1990)
『황금가지의 나라』(철학과현실사, 1993)
『수메르 신화에서 알타이 신화까지-지중해 분명과 단군조선』(집문당, 1996)
『한국미술사 이야기』(예경, 1999)
『한국 현대미술사 이야기』(예경, 2003)
『샤먼제국: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이 숨긴 역사』(소동, 2010)
『한국화 감상법: 현대 한국화의 전개와 이해』(대원사, 2010)
『샤먼문명: 별과 우주를 사랑한 지동설의 시대』(소동, 2015)
『별이 되고 별자리 되고(해달별 옛이야기2』(창비, 2018)
『천부경 81자 바라밀 : 천부경에 숨겨진 천문학의 비밀』(소동, 2018)
『예술이란 무엇인가』(문예출판사, 1984), 수진 K. 랭거 지음, 박용숙 옮김
『예술의 의미』(문예출판사, 2007), 허버트 리드 지음, 박용숙 옮김
2026년 6월 2일 화요일
Catherine G. Wagley, 전업 미술 비평가들이 사라져가는 시대, 은퇴 세대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2026년 5월 31일
이 세 사람은 가장 영향력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안정적인 고용 상태를 유지했던 이들이기도 하다—두 가지는 서로 깊이 연관된 사실이다. 나는 로버타 스미스가 2008년 프리즈 런던의 한 패널에서 미국에 한 매체에서 전업으로 미술을 비평하는 자리가 약 30개라고 추산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평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째였고, 그 수치가 암울하기는 해도 그런 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아직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수는 계속 줄었다. 데보라 솔로몬은 2013년에 전업 비평가 자리가 열 개 미만이라고 추산했으며,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해고와 구조조정에 힘입어) 곧 그 수가 영(零)이 될 수도 있다. 나이트, 스미스, 슈젤달이 상징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애도해왔기 때문에, 그들의 퇴장은—특히 나이트와 스미스의 경우—짤막한 뉴스 기사 몇 줄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분야가 정확히 무엇을 잃었는지 잠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비평가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우연히 이 일에 발을 들인다. 나는 예술가가 되려고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고, 작업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젊은 날의 착각으로 프리랜서 리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빠져들었다—특히 발행 부수 16만 부 이상의 무가지였던 초창기 『LA 위클리』(고인이 되었다)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독자들이 그냥 페이지를 넘기다가 미술 비평과 마주치게 되는 그 구조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보고, 나를 흥분시키는 것과 실망시키는 것을 함께 지면에 올리고, 그 느낌을 구체적이고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다른 이들과 나누는 일의 책임감과 도전이 좋았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아무도 문서화하지 않을 만큼 덧없는 퍼포먼스와 전시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나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언제나 프리랜서였고, 원고료가 너무 적어서 쉼 없이 써야 했다. 그 속도는 내 삶을 갉아먹었고, 2017년 『LA 위클리』가 새 소유주에 의해 폐간되었을 때, 문화적 비극이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안도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나는 지난 10년을 1960~70년대 로스앤젤레스 미술에 관한 책 작업에 쏟아왔다—이 도시에서 갤러리를 운영했던 다섯 명의 여성을 통해 그 시대를 조명하는 작업이다. 내 주인공들 중 두 명의 전시에 대해서만 상당한 문서가 남아 있어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아카이브가 특히 유용했다. 특히 1965년부터 1998년까지 그 신문의 미술 비평가로 일했던 윌리엄 윌슨의 글이 그랬다. 한 동료는 그가 주요 비평가가 아니었던 만큼 내가 그에게 너무 많은 비중을 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게 이 분야에서의 중요성은 솜씨보다 일관성의 문제다. 그는 거기 있었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보면서, 격변하는 미술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관점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함이 있었다. 한 공개 포럼에서 예술가 존 아우터브리지는 그가 브록맨 갤러리—유색인종 예술가들을 주로 조명했던 사우스 센트럴의 공간—를 한 번도 찾지 않은 것을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윌슨 씨, 당신이 브록맨 갤러리에 오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그쪽 동네에는 오지 않기 때문임을 솔직하게 말씀해주시겠어요? 당신이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당신이 와인을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고……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것이 20세기 신문 비평가의 가장 심각한 폐단이었다. 비평가의 커리어는 예술 공동체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 공동체는 하나의 관점에 갇혀 있었다.
나이트, 스미스, 슈젤달—마지막 건실한 코호트에 속하는 이들—은 이 분야에 어떤 관점을 가져왔는가? 세 사람 모두 솜씨가 탁월하고, 수십 년에 걸쳐 자신의 목소리와 개성과 자리를 지켜온 '주요' 비평가들이었다. 스미스는 문장 단위에서,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유형의 비평가다. 그녀는 1970년대 후반 『아트포럼』에서 자신의 편집자였던 좌파 비평가 맥스 코즐로프가 자신을 형식주의자로 폄하했고 그 말이 맞았다고 인정한 바 있는데, 그녀는 자신이 쓰는 작품을 독자가 마음속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묘사적 정확성을 꾸준히 구사한다. 슈젤달은 덜 정확하되 더 감성적이었다. 그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고, 동시에 스미스보다 맥락화에 능해서 예술가가 자신의 환경 안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파악하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견해에 언제나 답답함을 느꼈고, 때로는 분노했다. 2022년, 그의 사망 불과 몇 달 전, 말기 진단을 받은 뒤 자신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는 빛나는 에세이를 발표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 슈젤달은 『더 뉴요커』에 휘트니 비엔날레 리뷰를 썼다. 그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도 있었다(괄호 안에 정착민 식민주의를 언급하는 대목!). 그러나 그는 전시에 참여한 기성 작가들에 대한 간략하고 긍정적인 개관에 이어 스스로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비엔날레의 대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작가들로 채워져 있다." 어떤 자기 비판도 수반되지 않은 이 언급은, 그들의 무명성이—자신의 시야 협착이 아니라—그가 그들을 알지 못하게 만든 원인인 것처럼 읽혔다. 그 "낯선" 작가들 중 하나가 테레사 학경 차였다. 그녀의 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왔고, 미술을 직업으로 삼아 주의를 기울이는 이라면 2022년 이전에 이미 그 작업을 접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슈젤달은 차의 작업을 "음미한" 뒤 벽의 레이블을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충격을 토로하는 것으로 그녀에 관한 성찰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남아 있다"고 그는 썼다—그녀의 작업에서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했는지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이것은 로버타 스미스가 2019년에 쓴 에세이 「미술계의 대전환, 흑인 창작자들이 만들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글에서 그녀는 같은 해 흑인 예술가들(마틴 퓨리어, 카라 워커)을 조명한 두 개의 미술관 개인전을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고 불렀다. 이어서 그녀는 "흑인 예술가들의 높아진 존재감" 덕분에 최근에야 진정으로 발견하게 된 많은 흑인 예술가들의 작품 수준에 경탄을 표했다. 2017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다나 슈츠의 에밋 틸 초상화가 포함된 것과, 이것이 슈츠가 흑인의 죽음을 볼거리로 만들었다는 항의와 비판으로 이어진 일도 언급해야 했다. 스미스는 슈츠에게 제기된 많은 비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백인의 무지와 특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명백히, 처음으로.
슈젤달도 스미스도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 되지만, 문제는 분명히 구조적인 것이다. 편집자들은 스미스의 인종에 관한 성찰을 게재하기가 너무 부끄러웠어야 했고, 뉴욕의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들의 선도적 비평가들이 70대 이상의 백인 두 명이어서는 안 됐다. 그들을 퇴장시켰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스미스의 공동 수석 비평가인 홀랜드 코터처럼 더 의식적으로 열린 자세를 유지해온 일부 백인 원로 비평가들도 있다. 신문사들은 플랫폼을 더 젊은 비평가들, 유색인종 비평가들과 공유했어야 했다. 이 분야에 필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 물론 이런 말을 처음 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사라져가는 공허 속에 대고 소리치고 있다. 미국 미술 거점 도시의 어느 주요 신문도 비백인 전업 미술 비평가를 둔 적이 없으며(『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워싱턴 포스트』 모두), 이제는 그런 일이 영영 없을 것 같다. 『워싱턴 포스트』는 필립 케니콧을 제외한 문화 비평가 거의 전원을 해고했다. 그리고 미술 저널리스트 캘빈 톰킨스가 올해 3월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그 부재를 한층 뚜렷이 부각시켰다. 그는 분명 최고였다—그 일을 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으니, 60년 넘게 예술가들을 프로파일하는 안정적인 자리를 지킨 채. (1962년에 장 팅겔리를 프로파일한 바로 그 백인 남성에게 2017년 휘트니 비엔날레 파장 이후 다나 슈츠를 프로파일하게 한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누가 여겼던 걸까?)
나이트는 특히 우리가 잃은 모든 것—좋은 것도 나쁜 것도—을 체현하는 것 같다. 내 관점에서 그의 기여는 동시대 비평가들보다 더 중요하지만, 나는 그와 가장 자주 논쟁했다—머릿속으로도, 지면에서도. 나이트는 2020년 퓰리처상을 LACMA 재설계에 대한 집요한 비판으로 수상했다. 그는 그 설계를 "기괴한" 콘크리트 벽이라며 싫어했고, 건축 렌더링을 "발기부전 TV 광고—알몸의 커플이 손을 잡고 각자의 욕조에 기대어 끝없는 바다나 원시림을 바라보며 영원한 젊음이라는 거짓 약속을 생각하는 그 광고들—"에 비유했다. 문장의 솜씨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언제나 미술에서 권력이 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자신이 권력과 맺는 관계를 이해해왔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플랫폼을 권력의 남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데 꾸준히 사용했다. 그의 비판이 겨냥한 핵심은 리노베이션을 추동한 현실과 동떨어진 책략들, 백과사전적 미술관의 중요한 소장품과 역할을(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싸워 얻어낸 것이다) 묵살하는 방식,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반복되는 오래된 패턴—이곳 미술 관람 공중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대신 미학과 아이디어를 도시에 강요하려는 방식—이었다.
『타임스』 마지막 칼럼에서 나이트는 "몇 년마다 '비평의 위기'에 관한 우려가 들끓는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 "그러나 그 소동은 초점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위기는 비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판계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치—비평 자체가 아니라, 억만장자 소유주를 둔 산업이 이 일을 체계적으로 평가절하하고 고용 다양성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의 무관함을 심화시키는 것이 문제인데, 그 대신 비평을 탓하는 것—는 우리의 무력감을 반영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이트는 경험을 통해 산업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2015년 워커 아트센터에서 열린 예술 저널리즘 컨퍼런스 '슈퍼스크립트'의 강연에서, 그는 1980년에 어떻게 첫 신문 자리를 얻었는지를 이야기했다. 당시 폐간된 『로스앤젤레스 헤럴드 이그재미너』의 편집자가 프리랜서 미술 비평가를 찾고 있다며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다. 77년 역사의 그 신문은 미술 비평가를 둔 적이 없었지만, 독자 설문조사 결과 예술 커버리지에 대한 수요가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이트는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가 로스앤젤레스 신문들 사이의 경쟁과 권력 역학에서 탄생했음을 이해했다. "전문 미술 비평가로서 나의 역할은……신문을 파는 것"이고 "웹사이트 트래픽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그는 2015년에 말했다. 이것은 냉소적인 명료함이지 굴복이 아니었다. 그는 1982년 『뉴욕 타임스』에서 비평가 자리를 제안받았다가, 악명 높은 동성애 혐오자였던 편집장 A.M. 로젠탈이 그가 게이임을 알게 된 뒤 제안을 철회했다.
나는 이미 『타임스』의 나이트와, 그가 대변했던 것이 그립다. 이 분야는 그가 가져왔던 것을 필요로 하고, 저널리즘 비평이 최선의 상태에서 약속하는 것—일관되고 주의 깊은 관찰과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비평은 미국에서 한 번도 그 잠재력에 근접하지 못했다. 우리는 결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모델의 잔해에 안주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 실패의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에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 돈과 제도적 투자 철회의 문제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덜 위계적이고 더 지속 가능한 분야를 구축하는 데 중요하다—그것은 느리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것이다. 나로서는, 지금까지 그 방법은 내 가치관을 공유하는 소규모 독립 출판물을 위해 글을 쓰고 거기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능한 것에 집중하게 해준다.
Harmon Siegel, Problems of Criticism VII: To Save Painting
예술은 결코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었다.¹ —Barbara Rose
1968년이었다. 바버라 로즈는 『아트포럼』 지면에서 같은 잡지의 동료들을 맹렬히 성토했다. 암살, 폭동, 전쟁이 나라를 찢어발기고 있던 그 시절, 이 필자들은 조각이 어떻게 바닥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를 두고 정력과 재능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 열의라면 "흑인 권력이나 도시 재개발, 반전 운동"을 논하는 데 쓰여야 마땅했다. 그러나 "예술 비평이라는 도덕적·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활동" 안에서라면, 그것은 불합리한 것을 넘어 역겨운 짓이었다.
오늘날 로즈가 비판했던 그 격렬함—당시 『아트포럼』의 선도적 목소리였던 로절린드 크라우스나 마이클 프리드 같은 비평가들의 그것, 그리고 그에 맞선 로즈 자신의 분노—을 접하는 일은 드물다. 비평이 중립적이 되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비평의 논쟁적 담론을 의도와 효과의 문제로 전위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평가들의 신념을(그들이 올바른 정치를 갖고 있는가?), 독자에 대한 효과를(그들이 독자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가?), 그리고 제도적 위치를(그들이 나쁜 행위자들과 공모하고 있는가?) 묻는다. 이러한 논쟁은 여전히 생생하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예술 자체가 삶과 죽음의 문제인지를 두고 논쟁하지 않는다—그렇지 않다고 전제할 뿐이다. 그 결과, 비평가들은 자신의 행위가 지닌 정치적 함의를 스스로 묻도록 촉구받지 않는다. 비평이란 그 자체로 도덕적 선인가?
로즈의 글은 1967년부터 1971년 사이 『아트포럼』이 연재한 열 편짜리 "비평의 문제들" 시리즈의 네 번째였다. 이 시리즈에서 주요 비평가들은 사회적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두고 씨름했다. 시리즈는 1967년 9월, 원로 비평가 로버트 골드워터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그 당시 제자들이었던 프리드, 크라우스가 옹호하던 분석적 방법론—곧 로즈가 곧 비판하게 될 형식주의적 광신의 토대—에 온건하게 도전하는 글로 문을 열었다. 한 달 뒤, 그린버그는 자신의 퉁명스러운 반박을 시리즈 두 번째 글로 발표했다.² 그린버그는 골드워터가 프란츠 클라인의 추상표현주의를 "낙관적"이라 묘사한 대목을 인용하며 물었다. "내가 클라인을 낙관적이 아니라 비관적으로 느끼기로 한다면, 누가 내게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비평가들은 작품 자체의 검증 가능한 특성을 지목함으로써 입증할 수 있는 것만 논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크라우스가 나중에 말했듯이, "단단하고 반박 불가능한 사실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비평적 담론의 집"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³
그러나 1968년 무렵, 외부 세계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되면서 사실의 집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성난 젊은이들은 "보헤미안적 비순응주의"에 허덕이고 있었고(8부의 가브리엘 레이더만)⁴, 진보하는 기술은 우리를 "부족적 상태"로 퇴행시키고 있었으며(9부의 잭 번햄)⁵, 독립적 사고는 "소비 사회의 미디어 출력물"로 대체되고 있었다(10부의 크라우스)⁶. "비평의 문제들" 기고들은 점점 더 사회적 맥락을 언급하면서, 필자들은 미술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직업적 실천 자체를 해석하기 위해 바깥을 바라보았다. 댄 플래빈이 최근 같은 잡지에서 조롱했던 "거만하고 자만하며 시기상조적인 장황하고 교조적이며 수사적인 학문"을 계속 써낼 수는 없었다.⁷ 세상이 불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들은 내면도 들여다보아야 했다—자신의 작업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비평은," 로즈가 선언했다, "한때 자신이 거부했던 사회와 화해를 이루어낸, 로젠버그와 그린버그가 이끄는 환멸한 미국 좌파의 한 분파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⁸ 해럴드 로젠버그 덕분에 비평가들이 "행동(action)"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사회적 개입이 아니라 "액션 페인팅" 같은 제한된 예술적 제스처를 가리키게 되었고, 그리하여 "정치적 행위는 오직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한편 그린버그는 급진성을 내용에서 형식으로 전위시켰다. 로즈는 피카소의 1945년 작 〈납골당〉에 관한 그린버그의 『아트포럼』 글을 인용했다. 그 글은 회화의 형식적 대담함을 풍부하게 묘사하면서도, 그 주제가 죽음의 수용소라는 사실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⁹ 이렇게 해서 이 두 명의 전직 트로츠키주의자—"스탈린주의에 의해 트라우마를 입고" "풍요에 의해 순화된"—는 그녀의 세대에게 탈정치화된 비평 모델을 물려주었고, 그 필자들은 그 공백을 질풍노도의 소음으로 채우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진단을 내린 뒤에도 로즈는 아직 긍정적인 의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비평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열한 달 뒤, 1969년 1월호에서 그녀는 두 번째 "비평의 문제들" 글로 이에 응답했다. 미니멀리즘이 "토착 미국적" 충동—영웅적 이상을 민주주의 문화의 "압도적 진부함"과 화해시키려는 충동—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줌으로써 정치를 재도입하려 한 글이었다.¹⁰ 도널드 저드는 "이상적으로 평준화된 비계급적 민주 사회에서의 관계의 은유로서 동등한 성원들의 비위계적 배열"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그는 청중이 민주적 원리를 실행에 옮기도록 준비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 원리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예술의 혁명적 잠재력은 따라서 명시적 주제(저드는 아무런 주제도 갖지 않았다)에서도, 형식적 혁신의 역사 내부의 "급진적" 움직임(데이비드 스미스와의 저드의 관계)에서도 찾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또는 심리적 틀 안에서의 파괴적 기능"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드에 대한 로즈의 독해는 그 자체로 파괴적이었는가? 편집자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로즈에게 응답한 레온 골럽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 최소한 그는 그렇게 암시했다. 정의상, 비평을 필요로 하는 예술은 실제 행동을 고취하기에는 너무 난해한 것이라고 그는 썼다. 실제 위기의 시대에 명시적인 정치적 내용이 없는 예술 작품은 그저 귀족적 거리두기의 기념비에 불과하며, 추상 조각들은 "찡그린 괴물들"로 서 있을 뿐이었다.¹¹ 로즈는 첫 두 글에서 전직 트로츠키주의자들과 그 비정치적 후계자들을 겨냥했던 데서, 이제 비평이 본질적으로 반동적이라는 혐의로부터 비평을 방어해야 하는 두 번째 전선에서 싸우는 자신을 발견했다.
1969년 5월에 발표된 마지막 "비평의 문제들" 글에서 로즈는 비평이 실로 엘리트 문화의 목소리가 되어버렸다는 골럽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그것은 대중 매체의 부패적 영향에 의해 그러한 역할로 강요된 것이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예술과 비평의 반란적 가능성은 공적 조우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봉쇄되었다. 예를 들어 팝아트는 "미국 사회의 저열함에 대한 도덕적 혐오에서 비롯되었지만", 대중 매체에 의해 "아메리칸 드림의 거리낌 없는 찬미"로 묘사되었다.¹² 이 무장 해제에 반발하여 예술가들은 네오다다적 충격성에 의존했고—점점 빨라지는 뉴스 사이클의 커지는 식욕을 부채질하면서. 이 소용돌이 속에서, 현재의 조건 아래 정치적 변화를 상상할 수 없게 된 예술가들은, 로즈의 설명에 따르면, 비평을 포함한 기존 제도의 완전한 파괴 속에서 혁명적 리셋을 추구했다. 그들은 번햄이 시리즈 아홉 번째 글에서 말하게 될 "승인된 반란의 경계선" 안에 갇혀 있기를 거부했다.¹³ 이 새로운 테르미도르에서, 혁명을 설파했던 비평가들은 이제 그 혁명의 희생자가 될 처지였다. 체념한 로즈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비평의 고뇌는 진실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으면서도 완전한 의식을 유지해야 하는 필연성이다."
로즈의 세 차례 개입에는 아이러니한 호arc가 있다. 그녀는 프리드와 크라우스 같은 필자들이 비평의 역할을 과장한다고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비평의 순교에 관한 예레미야적 탄식으로 끝맺었다. 그러나 이 고조는, 맥스 코즐로프가 1967년 자신의 "비평의 문제들" 글로 가는 과정에서 걸었던 길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직관적이다. 2월에 코즐로프는 『더 네이션』지에서, 폭압적 정부가 곧 미국 예술가들을 그들의 목숨을 걸고 싸우도록 강요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12월에 그는 『아트포럼』에서 르네상스의 피렌체파 선과 베네치아파 색채 사이의 대결이 현대에 다시 펼쳐지는 양상을 성찰하고 있었다.¹⁴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고 정말로 믿었다면, 왜 이처럼 표면상 후퇴했는가? 사실 그는 난해한 주제를 활용하여, 비평이 스스로를 정치화하지 않고도 정치적일 수 있다는 미묘하지만 강력한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가 보는 것을 묘사하는 행위의 대인적 지향이 사회적 회복의 모델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당대 비평은, 그가 주장했다, 색채 경험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은유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문체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그린버그와 프리드를 겨냥했다. 그들은 오직 "객관성, 연역적 구조, 프레이밍 에지"만을 말하는 현대판 바사리들로서, 색채를 이차적 지위로 격하시켰다. 로즈가 그린버그를 비평의 탈정치화를 이유로 공격했다면, 코즐로프는 그의 형식주의가 곧 그의 정치학임을 보여주었다. 어떤 색채가 "어느 모서리에서 몇 인치" 떨어져 있는지를 계산할 때, 나는 세계에 관한 하나의 사실을 기록한다. 거기에는 불일치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그러한 비평을 "권위주의적"으로 만드는 것이다—코즐로프가 그린버그의 "비평의 문제들" 글에서 비평적 판단은 검증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하는 편집자 앞 편지에서 사용한 단어였다.¹⁵ 비평을 그러한 관찰들과 거기서 삼단논법적으로 도출되는 산물들로 제한함으로써, 형식주의는 이성이 사회적 접착제라는 암묵적 믿음을 표현했다. 우리가 오직 비인격적이고 검증 가능한 사실들만을 논한다면, 부족주의적 해체로부터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논리의 주문적(呪文的) 사용 자체가 일종의 신앙이었다. 비평가가 그림을 묘사할 때마다, 그들은 "다양하게 융합된 미적 데이터를 구조적이고 내적으로 일관된(모순 속에서도) 현상의 그림으로 도식화하고 분석하는 것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고 있었다.
색조와 음조의 미묘함을 묘사하려면, 코즐로프는 썼다, 부드럽고 유연하며 관능적인 어휘가 필요하다. "우유빛, 시럽 같은, 분필 같은, 모래 같은, 요란한", "불협화음의, 쨍그랑거리는, 기체 같은, 양털 같은" 같은 단어들—QED로 끝나는 논증을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피렌체적 감수성을 불쾌하게 만드는 단어들. 색채는 오직 "사람들이 비교하고 판단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의 감각을 넌지시 암시할 수 있을 뿐인 생리적 영역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그 색조를 당신에게 보여줄 수 없다. 나는 당신 안에서 같은 감각을 불러일으키려 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어떤 색채를 "시럽 같다"고 부를 때, 나는 당신이 내 의미를 상상할 수 있도록 "미적 경험 안에서의 공감들"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그런 묘사에 집중하는 비평은 거부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인적 초대를 내밀며, 동의를 강제하지 않고 심리사회적 차이를 가로질러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비권위주의적 시도로서, 감각 공동체를 형성하는 우리의 능력을 시험한다.
"시험이란 끝나지 않는가?" 크라우스는 1971년 "비평의 문제들" 마지막 글에서 비평적 논증이 "경험에 의해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형식주의적 요구를 자신이 더 이상 수용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의 이 질문을 인용했다.¹⁶ 자신의 새로운 관점을 예시하기 위해 그녀는 장-뤼크 고다르의 〈남성·여성〉(15가지 정확한 사실들)(1966)을 불러왔다. 베트남전 반대 좌파 저항을 다룬 이 영화는 허구적 소비자 여론 인터뷰 형식으로 서술된다. 이 형식은 우리가 사실들을 그것들이 보고되는 형식으로부터 분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시장조사 여론조사라는 형식이 전달하는 정보를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성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책임 있는 영화 요약도 가능하지 않다.
크라우스의 입장을 허무주의로 오해하기 쉽다. 마치 공적 사실들이 사적 대안들을 갖고 있어서 세계는 공유될 수 없고, 우리 각자는 "우리 각자에게 유일하고 오직 우리 자신만이 접근할 수 있는 심리적 현실" 안에 갇혀 있다는 것처럼. 그러나 로버트 모리스의 거울 큐브들이 필자들에게 제기하는 도전을 그녀가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이 오브제들을 포괄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비평가들은 안정된 시각적 사실들의 목록을 낭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실들에는 큐브의 거울 표면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반영도 필연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비평가가 자신이 묘사하는 것 안에 가상적으로 통합된다는 사실이 그 오브제를 심리적 투영으로 환원시키지는 않는다. 큐브는 실제로 거기 있으며, 결정적인 의미에서 나에게와 당신에게 동일한 오브제다. 비록 우리 각자가 자신의 모습이 그 형태 안으로 통합되는 것을 보더라도.
나는 이것이 비평에 관한 아름다운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작품에 충실하면서도, 비평 자체의 것을 포함하여, 우리 자신의 체현된·제도적 조건들을 자기 성찰적으로 설명할 것을 요청한다. 그것은 비평을 공론장을 공론장으로 유지하고, 사적 심리적 고립의 개별 세포들로 용해되는 것을 막는 작지만 긴요한 행위로 묘사한다.
오늘날 "비평의 문제들" 시리즈를 읽으면서, 나는 그 필자들이 느꼈던 감각—세계는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는 것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는 대부분 나쁜 방향이며, 그것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그냥 계속 나아갈 수는 없다는—을 알아본다. 차이는, 내가 보기에, 그 필자들이 그토록 힘겹게 확립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을 우리가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비평가와 독자가 소통하고, 경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로즈가 예술에 대한 대중 매체의 처리에서 발견한 것을, 코즐로프가 색채의 특수성 안에서 찾은 것을, 크라우스가 모리스의 거울 큐브 표면에서 목격한 것을, 골드워터가 그린버그와의 서신에서 선언한 것을 잊고 있다. 형식적 사실들이 가치 중립적인 순간은 결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면 결코 묘사하지 않기 때문이다.¹⁷ 비평가들에게는 정치적이 될지 도덕화할지를 선택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우리와 함께 세계를 공유하러 오라고 청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도덕적 입장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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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먼 시겔은 보스턴 정신분석학회 및 연구소의 제휴 학자이며 『모네와 함께 그림 그리기』(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 2024)의 저자다.
주석
Barbara Rose, "Problems of Criticism IV: The Politics of Art, Part I," Artforum 6, no. 6 (February 1968): 31–32.
Clement Greenberg, "Problems of Criticism II: Complaints of an Art Critic," Artforum 6, no. 2 (October 1967).
Rosalind Krauss, "Problems of Criticism X: Pictorial Space and the Question of Documentary," Artforum 10, no. 3 (November 1971).
Gabriel Laderman, "Problems of Criticism VIII: Notes from the Underground," Artforum 9, no. 1 (September 1970).
Jack Burnham, "Problems of Criticism IX: Art and Technology," Artforum 9, no. 5 (January 1971).
Krauss, "Problems of Criticism X."
Dan Flavin, "Some Other Comments," Artforum 6, no. 4 (December 1967).
Rose, "Problems of Criticism IV."
Greenberg, "Picasso Since 1945," Artforum 5, no. 2 (October 1966) 참조.
Rose, "Problems of Criticism V: The Politics of Art, Part II," Artforum 7, no. 5 (January 1969).
Leon Golub, "Letters," Artforum 7, no. 7 (March 1969).
Rose, "Problems of Criticism VI: The Politics of Art, Part III," Artforum 7, no. 9 (May 1969).
Burnham, "Problems of Criticism IX."
Max Kozloff, "A Collage of Indignation," The Nation (February 20, 1967): 251; Kozloff, "Problems of Criticism III: Venetian Art and Florentine Criticism," Artforum 6, no. 4 (December 1967).
Kozloff, "Letters," Artforum 6, no. 3 (November 1967).
Ludwig Wittgenstein, On Certainty, trans. G. E. M. Anscombe (Blackwell, 1969), §164. Krauss, "Problems of Criticism X."
"순진한 묘사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구조와 조직을 투사하는 분석으로부터 거의 분리될 수 없다……" Robert Goldwater, "Letters," Artforum 6, no. 4 (December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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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칭신 우
Chinghsin Wu received her Ph.D. in Art History from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specializing in Asian and modern art with an emphasis on transnational and cross-cultural perspectives. She is the author of Parallel Modernism: Koga Harue and Avant-Garde Art in Modern Japa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9) and Truth through Immersion: A Biography of Painter Tsai Yun-yan [Ronghui Zhizhen Tsai Yun-yan] (Taipei: Yishujia Chubanshe, 2018).
Her other publications include “Colors of Empire: Watercolor in Meiji Japan,” in The Visual Culture of Meiji Japan (Routledge, 2022); “Institutionalizing Impressionism: Kuroda Seiki and Plein-Air Painting in Japan,” in Mapping Impressionisms (Routledge, 2021); “André Lhote and Japanese Modern Art,” in André Lhote and His International Students (Innsbruck University Press, 2019); “Reality Within and Without: Surrealism in Japan and China in the Early 1930s,” in Review of Japanese Culture and Society (December 2014); “Transcending the Boundaries of the ‘isms’: Pursuing Modernity through the Machine in Japanese Avant-Garde Art,” in Rethinking Japanese Modernism (Leiden: Brill, 2012); “Icons, Power, and Artistic Practice in Colonial Taiwan: Tsai Yun-yan’s Buddha Hall and Boys’ Day,” in Southeast Review of Asian Studies 33 (2011); and “Reflecting and Refracting Modernity: Images of the Modern Girl in 1920s and 1930s Japan,” in Japon Pluriel 8 (2011).
Wu has worked at the National Palace Museum in Taiwan, producing a “digital museum” project which used digitization technologies to create an interactive virtual exhibition on Buddhist iconography and philosophy entitled Convergence of Radiance—Tibeto-Chinese Buddhist Scripture Illustrations (2003). She has also worked as a Curatorial Research Associate at the Museum of Fine Arts, Boston, where she helped curate a traveling exhibition, Japanese Masterpieces (2011), which sent approximately one hundred Japanese artworks to Japan. In addition, she has written essays and entries for exhibition catalogues, including Surrealism Beyond Borders (Metropolitan Museum of Art and Tate Modern, 2021) and Modern Art at Official Exhibitions: Tokyo, Seoul, Taipei, Changchun (Fukuoka Asian Art Museum, 2014). Before her current position at Rutgers, Camden, she was the Phillips Collection Postdoctoral Fellow for 2015-2016, and has previously taught at Tufts University, Brown University, Brandeis University,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and else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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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의 시대: 21세기 안전 패러다임의 계보와 전망 / 김홍중
무해의 시대
무해한 사람! 직관적으로 그 존재를 어렴풋이 느껴 오기는 했지만, 명확히 표현할 수 없던 어떤 심리풍경을, 이 평범한 단어는 조명탄처럼 비추어 준다. 사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끈끈하게 엉겨붙는 사람들을 견디지 못한다. 점착성을 띠는 눈빛, 달라붙는 태도, 사적 영역 안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들의 ‘가해(加害)’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례를 친절로 착각하며 경계선을 침범하는 자들에게 불쾌를 넘어 혐오를 느끼기도 한다. 권력이 동반된 유해는 도덕적 문제인 동시에 법적 문제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 속에서, 구조화된 유해성을 행사하는 강자들에 대한 고발과 ‘탄핵’이 가차없이 수행되어 온 것은 그 때문이다. 사회적 삶은 ‘이웃에게 무해하라’라는 새로운 인륜적 명령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피해에 대한 공감, 가해에 대한 분노, 그리고 무해에 대한 의지가 일상적 삶을 지배하고 있다.
무해의 의미론은 사회적인 것의 영역을 넘어 자연이나 환경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우리 시대의 자연은 사회와 분리된 채 자족적으로 존재하는 무구한 장소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은 이제 서로에게 유해한 존재로 뒤엉킨 채, 각자의 내부에 스며들어 있다. 인간이 폐기한 유해 물질은 복잡한 순환 과정을 거쳐, 모공과 호흡기를 통해 혈관에 흐르다 장기에 축적된다. 스테이시 앨러이모(Stacy Alaimo)가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이라 부르는 이 얽힘은 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질병들, 혹은 늙어 가면서 언젠가 한 번은 대면하게 되는 문제들(암, 아토피, 면역계 질환, 화학물질복합과민증, 새집증후군 등)을 통해 체감하는, 공통의 리얼리티이다.
* ‘생태 친화적인 삶(eco-friendly)’이나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제로-웨이스트(zero-waste)’한 생활이 ‘무해하다’는 형용사로 대체되기도 한다. 2020년에 출판된 두 권의 책의 제목이 그런 의미를 띠고 있다. 허유정 지음,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뜻밖, 2000. 그리고 신지혜 지음,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 보틀프레스, 2000.
** 스테이시 앨러이모 지음, 윤준·김종갑 옮김, 『말, 살, 흙Bodily Natures』, 그린비, 2018.
출처: 게티이미지21세기 정치가 근본적으로 생명정치(biopolitics)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명정치는 인간과 환경이 서로 만나는 다중 인터페이스에 대한 통치 능력에 집중된다. 생명을 보호한다는 것은 신체에 가해지는 환경의 유해성을 통치하는 것이며, 이는 (환경이 인간에 가하는 유해성의 원인인) 인간이 환경에 가하는 유해성을 통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는 주권자들의 신체 주위에 법적·의료적·사회적 면역계, 즉 전방위적 안전망을 구축·운영해야 한다. 생명 보장에 실패한 권력은, 우리가 대통령 탄핵 촛불에서 목도한 것처럼, 주권의 운동에 의해 축출된다.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가시화하고 증폭한 것이 코로나19이다. 팬데믹 속에서 타인은 이웃이나 시민이기 이전에 잠재적 감염원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은 서로 만나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적 사회관을 근저에서 뒤흔든다. 전통적으로 사회는 구성원들의 면대면 상호작용(대화, 투쟁, 교섭, 유희, 축제, 시위, 예배) 속에서 창발하는 상징적 질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2020년 새로운 사회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행위자들이 지나치게 사회적이지 않을 때, 서로에게 무해해지는 지점까지 물러나야 할 때 비로소 성립 가능한 무언가가 되었다. 비말(飛沫)을 교환하지 않을 때, 악수하지 않을 때, ‘무해하라’는 명령을 모두가 수행할 때, 거리와 경기장과 학교와 교회와 술집이 텅 비었을 때 사회가 작동할 수 있다. 방역 국가는 신체와 신체 사이에 무해 공간을 확장하는 생명권력으로 기능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구축해 간다.
욕망의 소용돌이
무해를 중심으로 펼쳐져 가는 이 담론/실천의 복잡한 얽힘은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정치적 파괴력을 갖는 욕망의 소용돌이로 작용해 왔다.* 무해를 향한 욕망은 사회를 휘몰아 가며 예상치 못한 현실을 창출했다. 낡은 질서를 허물고, 적대의 경계선을 재구성했고, 유해한 자(것)들을 공격하는 새로운 전투적 주체들을 탄생시켰다.
* 한국 사회를 움직여 간 또 다른 욕망의 키워드가 ‘공정’이다. 안전의 욕망과 공정의 욕망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며, 차이를 드러내며 전개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면 관계상 이 글에서는 다루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한다. 차후의 기회를 기약해 본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에 의하면, 욕망은 결핍을 향해 끝없이 미끄러져 가는 기호학적 운동(자크 라캉)이 아니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부정성의 구멍과도 무관하다. 욕망은 생명력이다. 실재를 만들고 파괴하고 변형시키는 힘의 흐름, 생동하는 활력이다. 그것은 기계처럼 작동하며 요소들을 연결하여 영토를 만든다. ‘전염병, 유행, 바람’과 비슷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욕망은 인식론적 판단에 선행하는 존재론적 운동이다. 욕망은 비판되지도 교정되지도 계몽되지도 않는다. 가령, 무해를 향한 욕망이 규범적으로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 진실인가 거짓인가라는 질문은 초점이 어긋나 있다. 중요한 것은 욕망이 발휘하는 미시정치적 생산력이다. 강도 높은 욕망은 진실, 도덕, 미학의 규범 그 자체를 찢고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체험하고 있듯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 인식론적 도구, 개념적 장치들이 크게 변화했다. 문학이나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평가도 질적 변화를 겪고 있다. 주체성도 마찬가지다. 매체와 관계망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심리-사회적 에너지가 휘몰아 간 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인간들이 웅성거리며 생성되는 것을 본다. 과거와 다른 (노동자, 청년, 학생, 여성, 엄마, 노인의) 목소리와 얼굴, 과거와 다른 내용의 요구, 청원, 비난, 질타, 열광 그리고 과거와 다른 스타일의 노래, 소설, 춤, 언어가 나타난다. 이들이 운동을 이끌고 소비를 주도하고 여론을 형성하며, 삶의 감각을 (재)창조해 나간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 집회,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2014년 세월호 참사, 각종 의료 사고들(‘신해철 사고’), 군대 내 사고(‘윤일병 사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구의역 스크린 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 2017년 이후의 미투 운동, 2018년 버닝썬 사건, 2018년 태안 화력 발전소 사건(‘김용균 사건’), 2019년 n번방 사건, 리벤지포르노 유출 사건, 스쿨 존 교통사고(‘민식이 사건’), 2020년 입양아 학대 사건(‘정인이 사건’), 그리고 어린이집 영아 폭행, 사망 사건들…….
이 일련의 이슈들을 통해 형성된 안전을 향한 욕망은 일상에 흩어진 잠재적 위해들이 효과적으로 통제된 ‘무해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다. 쇠고기에 함유되어 있을지 모르는 프리온, 아이들 방에 뿜어지는 독성 물질, 학생들을 태운 여객선의 위험,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는 폭력, 비정규직이 겪는 산업재해,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이 위해의 시스템이 차단, 관리, 조절된 안전한 사회에 대한 꿈이다. 흔히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이래 사회철학에서 안전은 개체의 자기 보존에 대한 자유주의적 가치의 하나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를 이끈 저 욕망의 소용돌이는 ‘나’의 안전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을 주장해 왔다. 이때 ‘우리’는 대개 강렬한 당사자주의를 동반하고 있었으며(‘우리’의 처지에 있지 않은 자들, ‘우리’의 고통을 모르는 자들이 ‘우리’를 표상할 수 없다는 것), 선명한 적대의 선(線)을 끌고 나타나, ‘우리’ 아닌 것과의 경계를 명확히 노출시켰다. ‘우리’는 남성과 대립하는 여성으로, 386세대와 대립하는 밀레니얼세대로, 정규직과 대립하는 비정규직으로, 정상과 대립하는 퀴어(queer)로 나타났다. ‘우리’ 중 누군가의 죽음은 광범위한 애도를 낳았고, 죽음을 야기한 유해의 구조에 책임을 묻는 분노 어린 집합 행위가 발생하였다. 이것은 반복적 파동으로 물결치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사회 공간에 풀어 놓았다.
왜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왜 가난한 청년들이 부유한 부모를 만난 자들보다 더 많은 사고를 겪어야 하는가? 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살해되어야 하는가? 왜 택배 노동자의, 콜센터 직원들의, 요양원 수용자의 호흡기는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사회적 평등을 ‘안전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신체가 몰래 촬영되어 불법 사이트에 공개될 것을 걱정하지 않을 자유,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지 않고 연애를 할 수 있는 자유, 혹은 라돈에 의한 저선량 피폭을 걱정하지 않고 침대에 누울 수 있는 자유가 아닌가? 왜 안전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동시에 자유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안전으로서의 자유’ 혹은 ‘자유로서의 안전’이라는 매우 독특한 관념에 도달했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대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위험, 불안, 공포를 함께 겪는 자들의 연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안전이 결핍된 존재자들의 새로운 연대, ‘무해의 연대’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울리히 벡
근대성의 중심 가치를 재조립하는 괴력을 발휘하는 것이 이처럼 (해방이 아니라) 안전에 대한 욕망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읽어낸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울리히 벡(Ulrich Beck)이다. 2008년 봄 미국산 쇠고기 촛불 집회가 시작되기 직전에 그는 한국을 방문하는데, 약 20년 전인 1986년에 처음 개진된 그의 ‘위험사회’ 개념은 이 시기에 이르러 일국을 넘어서는 ‘글로벌 위험사회’ 개념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벡은 산업사회에서 위험사회로의 전환을 단순한 사회변동이나 문화변동이 아닌 문명의 근본적 ‘탈바꿈(metamorphosis)’으로 규정한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하듯 그 동일성을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격변이 21세기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정적 계기를 이루는 사건이 예컨대 체르노빌 참사였다. 문제는 재화goods가 아니라 위험(bads)이다. 방사능 물질처럼 위험은 지각되지 않고, 인간적 경계를 초월하여 흐르며, 복잡한 인과관계를 통해 작용한다. 벡이 말하는 ‘리스크’는 이처럼 전대미문의 파국이 야기한 ‘인간학적 충격’과 공명하며 근대성에 대한 서구의 자기반성을 주도하는 개념으로 작용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위험사회는 체르노빌과 같은 재난이 언제든 다시 도래할 수 있다는 집합적 불안을 동력으로 재구성되는 일종의 포스트-재난 사회라 말할 수 있다. 3월 31일 서울대에서 행한 강연에서, 그는 20세기를 지도해 온 유럽발 비판이론 전통이 이 새로운 문명의 논리를 해명하는 데 적합성을 상실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진단을 내린다.
“세계시민사회의 거주자들에게 인류학적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더이상 베케트의 형이상학적인 집 없는 상태, 자리를 비운 고도(Godot)도 아니고, 푸코의 악몽적 전망도 아니며, 막스 베버를 겁에 질리게 한 합리성의 소리 없는 독재도 아니다. (…) 오늘날 사람들의 우려는 근대성에 대한 인류학적 확신이, 흐르는 모래 위에 지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예감으로부터 온다. 사스와 BSE(광우병)는 단지 시작일 뿐이고 기후 파국은 곧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물질적 의존과 도덕적 책임의 구조가 부서지고, 세계위험사회의 민감한 기능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공황에 빠진 공포가 될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모든 것은 물구나무선다. 베버, 아도르노, 푸코에게 섬뜩한 전망이었던 것(관리되는 세계의 완벽한 감시의 합리성)이 현재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약속이 된다.”*
* 울리히 벡·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지음, 한상진·심영희 엮음, 『위험에 처한 세계와 가족의 미래』, 새물결, 2010, 46쪽.
벡에 의하면, 위험사회의 시민들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예견한 자본주의적 ‘철창(iron cage)’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가 비판한 ‘도구적 합리성’을 폄하하지 않는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분석한 ‘파놉티콘’과 규율 권력에 공포심을 갖지도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관리되는 세계의 완벽한 합리성”을 기대한다. 유럽의 대표적 비판 지성들이 디스토피아로 형상화해 온 (안전을 지켜주는) 통제된 감시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 민중이 꿈꾸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벡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위험사회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지성의 목록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문화비평이나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정치철학도 포함시킬 수 있다.
예컨대 위험사회의 시민들은, 지젝이 냉소적으로 언급하듯이, 타자와의 건강한 관계를 맺을 능력을 상실한 ‘후기 자본주의의 나르시시즘적 주체’들이 아니다. 안전을 향한 욕망은 (신경증이나 환상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과학 지식에 기초하며, 다수의 재난을 겪어 내면서 대중들이 고통스럽게 생산해 낸 사회적 공통 감각이다. 욕망의 진실이 오직 전문가에 의해서만 포착될 수 있다는 정신분석학적 믿음을 고수하는 한, 지젝이 대표하는 문화비평은 위험사회의 동학을 해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근대 생명정치의 기원을 절멸 수용소에서 발견하면서 그 불길한 이면(생명정치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타자의 제거를 정당화하는 죽음의 정치라는 것)을 날카롭게 폭로하는 아감벤의 정치철학 역시, 우리 시대 안전을 향한 욕망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얼마나 탄력적인 차이와 변이를 드러내며 전개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가령, 생명정치가 작동하는 모든 곳이 곧바로 절멸 수용소가 되는 것이 아니며, 생명정치에 포섭된 대상들이 모두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으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다. 글로벌 위험사회의 시민들은 (생명) 권력과 (안전) 욕망 사이에, 민주적 요구와 감시 장치의 필요성 사이에 넓은 교섭 공간을 확보하고 복잡한 협상을 수행한다. 예컨대, 더 많은 CCTV를 설치하여 일상의 범죄를 예방해 주기를 청원하되, 데이터를 불법으로 사용하거나 전유하려는 국가나 자본에 저항한다.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는 현실 속에서 민주적 생명정치의 다양한 가능성이 실험되고 있다. 이를 일의적으로 수용소 파시즘 모델이라 비판하는 것은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벡은 암시한다. 비판되어야 하는 것은 대중의 안전 욕망이 아니라, 특권적 발화 위치와 초월적 시각에서 이 욕망을 허위의식으로 꾸짖는 계몽적 비판 이성의 한계일 수도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전망
2010년대 한국 사회의 안전 패러다임은 봉쇄된 자아의 순수성에 대한 환상, 완벽한 면역 체계에 대한 비현실적 열망, 비자기(非自己)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과도한 ‘안전주의’로 폄하되기 힘들다. 무해를 향한 욕망은 민民이 겪은 여러 재난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미투 운동은 그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그 핵심에 존재하는 것은 삶을 근본적으로 취약한 것precarious으로 느끼게 하는 여러 형태의 위험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유사한 위험을 공유하는 타자들과의 연대감이다.
무해를 향한 욕망은 헐벗음과 헐벗음을 연결하며 흘러간다.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범주를 범람하며 장애와 연결된다. 장애에 대한 이해와 권리투쟁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의 힘은, 동물이 처해 있는 비참에서 유사한 고통을 보게 한다. 이는 자연을 소유와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정당화했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친화성을 갖는다. 비인간 생명체, 그리고 사이보그로 대표되는 인간-너머(more-than-human)의 주체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이런 방식으로 깨어나 활성화된다. 여러 형태의 고통, 위해, 문제 사이에 횡단적 연결망들이 형성되어, 새로운 지식과 실천이 구성되고 있다.* 여기 한국 사회의 안전 패러다임이 진화해 갈 한 방향이 예고되어 있다.
* 참고로 다음과 같은 책들을 읽어보면 좋겠다. 한승태 지음, 『고기로 태어나서』, 시대의 창, 2018; 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 유리 옮김, 『짐을 끄는 짐승들』, 오월의 봄, 2020; 김초엽·김원영 지음, 『사이보그가 되다』, 사계절, 2021.
말하자면, 2010년대의 안전 욕망이 ‘내(우리)가 겪는 유해’의 고발과 항의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앞으로 그것은 ‘내(우리)가 가하는 유해’에 대한 윤리적 성찰, 일종의 ‘생태적 전환’의 형태로 그 반경을 넓혀 가지 않을까?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지구적 수준의 생태 위기의 심각성을 절실하게 인지하게 되었고, 인간 활동이 비인간 생명에 가하는 가해를 더 예리하게 지각하게 되었다. 피해 호소의 언어적 능력을 갖지 못한 생명체들이 피해자의 얼굴로 나타나고 있다. 무해를 향한 욕망이 강해질수록, 인간이 환경에 가하는 유해에 대한 윤리적 인식은 그만큼 더 선명해져 간다. 무해의 감각에 눈뜬 자는 자신의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 다른 존재의 삶이 삭감되어야 한다는 이 사태를 윤리적으로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비거니즘(veganism)은 살기 위해 먹어야 했던 동물의 ‘살’의 의미를 고민한 자들의 결단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에 의하면, 내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타자의 ‘있음’에 대한 제한을 함축한다. 내가 있는 자리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었던 자리의 점유이다. 심지어, 가장 원초적인 수준에서 말하자면, 내 현존을 위해서 나는 다른 생명의 살을 먹어야 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양심의 최초의 빛은 인간이 자신의 이웃으로 가는 길 위에서 번쩍인다. 고독한 개인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양분, 공기, 햇빛을 빼앗아 그 생명을 짓누르고 부수는 모든 것에 대해 아랑곳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본성과 존재가 원래 그러한 것이라고 정당화하는 어떤 나무, 성장하는 나무와 같은 것이 아닌가? 빼앗는 자, 그것이 개인이다. 양심이라는 것은 (정신의 최초의 불꽃도 마찬가지이지만) 자신의 옆에 쌓여 가는 시체들을 발견하는 것, 내가 무언가를 죽이면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경악에서 오는 것이다.”* 윤리는 존재론의 악몽이다. 계속 생존하려는 자연적 욕망, 즉 코나투스(conatus)에 폭력적 정지(停止)를 가하면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이것이 윤리의 최종 질문이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지음, 『곤란의 자유Difficile liberté』(국내 미출간), Paris, Albin Michel, 1976, p. 144-145.
홀로코스트에서 가족과 형제를 잃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자체의 정당성을 평생 괴롭게 물어온 레비나스의 저 삼엄한 윤리학은 20세기의 유럽 사유가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어두운 질문 중의 하나이다. 질문을 야기한 상황이 어둡고, 질문 앞에서 우리의 대답이 궁색하다는 사실이 어둡다. 그러나 그런 어두운 질문의 담금질을 통해서 비로소 환대와 공존, 혹은 용서의 철학이 나타날 수 있었다. 레비나스의 윤리는 인간의 세계만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21세기에 그가 말하는 이웃은 인간 너머로 확장되고 있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그를 죽일 수 없다면, 우리는 이제 그 얼굴의 목록에 철창에 갇힌 개들, 미치거나 장애를 갖고 도살을 기다리는 돼지들, 살처분되기 위해 구덩이에 던져진 닭들도 포함시켜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비인간의 얼굴들, 도처에서 ‘우리도 살고 싶다, 죽이지 말라’고 외치는 이 얼굴들도 이제 외면할 수 없다. 고통의 자리는 역동적으로 분열되어 간다. 거기에는 절대적 경계도 없고, 특권적 위치도 없다. 더 괴로워하는 존재는 언제나 어딘가에 있으며, 반드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무해의 시대는 고통이 회피되는 시대가 아니라, 이제껏 인정되지 못했던 새로운 고통을 기왕의 것들과 연결하는, 강인하고 질긴 망(網)이 엮어지는 그런 시대다.
함께 읽기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문학동네, 2018.
'무해’라는 단어를 한 시대를 읽는 키워드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 단편집이다.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깊은 울림이 있다.
<위험사회>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새물결, 2006.
울리히 벡을 세계적인 사회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문제작.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 문명의 전환을 ‘위험risk’이라는 독창적 개념으로 진단하였다.
김홍중
본지 편집위원. 사회학자. 사회이론과 문화사회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가르친다. 최근 관심은 물성(物性), 인성(人性), 생명, 영성(靈性)의 얽힘과 배치이다. 지은 책으로 『은둔기계』, 『마음의 사회학』과 『사회학적 파상력』이 있다.
2021년 6월 24일 목요일
신지승 페북에서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
몇일 동안 무기력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생전 처음 본 사람이 찾아왔다
소주를 마시면서 내 영화 한편을 안주로 삼았다
영화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 마을영화란게 이런 드라마가 있는 영화인지 몰랐어요
영화의 중간 정도에서
- 이건 키에로스타미를 뛰어 넘는다 "라는 혼자소리를 듣고
키에르스타미를 아는 사람이네 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얼굴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사람 좋은 호의와 예의치례로 여겼다
-음악 감독이 있어야 하겠다
그 소리에 빈틈을 잘 보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제 다시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다 이루었네요
-이 작품은 음악이나 편집 이런 건 전혀 문제가 안되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과연 이 사람의 정체는 뭔가 ?
사실 그 사람이 어느정도 영화를 알고 있는가 궁금 했다
그는 화가이면서 작가였고 대학 시절 학교앞 작은시네마뗴끄에서 안 본 영화가 없는 영화광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내 속에 감동이 몰려 왔다
-이건 그 모든 걸 뛰어넘는다
그의 영화에 대한 찬사는 이제 묵직하고 냉정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작가나 감독의 시선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
나는 시나리오를 만들지 않고 끊임없이 즉흥의 구성을 해 나간다
그리고 이야기의돌탑을 쌓는다 .이 영화는 나의 창작 방식을 올곧이 반영한
즉흥과 우연의 영화였다
-평범한 이들은 감당 하지 못하고 봐도 무엇을 봤는지 모를 것이다
사실 만든 나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등에 엎혀가는 노인의 얼굴을 보고 뭔가를 끄집어낸다
-이 영화는 랑시에르에게나 부산의 안00에게 보내 평을 맡겨야 하겠다 . 아마 세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두서없음도 엿보인다
사실 며칠동안 무력함 속에서 지냈다
감독전을 준비하기로 했지만 금세 포기했다
누가 올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급히 다른 감독전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예기치 않은 손님을 만난 것이다
11년전에 만든 이작품을 보고 남긴 그의 단호하고 분명한 작품의 평가는 지난 시절 이 작품에 남긴 다른 이들의 글을 아침에 찾아보았다
생활연기를 구현! (편지의 이정국 감독)
삶의 비의성을 드러낸 작품 ,해석 이전의 세계를 다룬 영화 (이산하 시인)
예술의 정수 ,삶의 교향악 ,발견과 기다림의 미학,신화적 이면서도 생활적인 영화 (국민대 김윤진 교수,댄스서울프로젝트 총감독)
한국적인 감성을 가장 잘드러낸 내가 본 유일한 한국영화답다 ( 파비안 ,독일 영화평론가 )
지금 이 시기 신지승은 가장 중요하다 신지승은 그는 새로운 발견이다. 한국영화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중요한 미덕을 신지승은 제시한다.
(정재형 중대영화과교수 )
애초부터 기록미디어로서 탄생한 카메라를 삶과 가장 자연스럽게 밀착시키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김지하 오프앤프리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마을영화는 에어컨-선풍기-부채- 그늘이라는 생태적 귀환을 영화적 방향으로 설정하고있다
(경인여대 김태경 교수 )
기존 영화와는 달리 메세지를 의도적으로 주지 않는다는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김찬연전문번역작가)
백남준이 했던 이동극장의 동네음악을 가능하게 한 예술혼이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하는 마을영화제와 공명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백용성 )
신지승감독전을 준비해 나갈 불씨 하나를 안긴 밤이었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 궁금증이 더 해갔다 .
나에게 이 영화의 또 다른 시선 하나가 보태어졌다
알고보니 작년 오늘 온라인으로 개봉?한 작품이었다
내 영화를 아무나에게 보여줄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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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1일 일요일
2021년 3월 3일 수요일
서양사 연표(스크랩)
서양사 연표
고대 그리스
B.C 1100-800 그리스역사의 암흑 시대
B.C 800 그리스 도시 국가의 시작
B.C 800 뤼코르고스
B.C 750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B.C 650-500 그리스 참주 시대
B.C 640-560 솔론
B.C 594 아테네에서 솔론의 개혁
B.C 582-507 피타고라스
B.C 560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
B.C 524-459 테미스토클레스
B.C 496-406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오이디푸스>>
B.C 499-450 페르시아 전쟁
B.C 499-493 이오니아 반란
B.C 490 마라톤 전투
B.C 480 테르모퓔라이 전투
B.C 480 살라미스 해전
B.C 480-420 헤로도토스 <<역사>>
B.C 479-404 델로스 동맹
B.C 471-400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B.C 470-399 소크라테스
B.C 461-429 아테네 민주정의 완성
B.C 460-377 히포크라테스
B.C 460-362 데모크리토스
B.C 427-347 플라톤 <<국가>>
B.C 431-404 펠로폰네소스 전쟁
B.C 384-322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B.C 336-323 마케도니아의 그리스 정복
B.C 336-323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로마의 역사
B.C 750-265 초기 로마
B.C 750-500 초기 로마
B.C 509-287 로마 공화정의 대두
B.C 509-264 로마의 이탈리아 정복
B.C 264-134 공화정의 전성기
B.C 264-241 로마 제국주의의 시작과 제1차 포에니 전쟁
B.C 218-201 제2차 포에니 전쟁
B.C 200-133 헬레니즘 세계 동방 / 서방에서의 전쟁과 제국주의
B.C 149-146 제3차 포에니 전쟁
B.C 133-30 공화정 후기
B.C 133-121 그라쿠스 형제와 농지개혁을 둘러싼 투쟁
B.C 106-43 키케로
B.C 88-78 마리우스와 술라 : 내전과 반동
B.C 60-44 카이사르의 등장, 승리와 몰락
B.C 58 <<갈리아전기 / 내전기>> / 율리우스 카이사르 B.C 100-44
B.C 29- A.D 181 초기 로마 제국
B.C 29- A.D 14 아우구스투스의 원수정
B.C 8 <<아이네이아스>> / B.C 70-19 베르길리우스
A,D 35-67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
A.D 41-68 클라우디우스, 네로, 그리고 율우스-클라우디우스가의 종말
A.D 69-96 원수정의 위기와 플라비우스 가 황제들 치하에서의 회복
A.D 96-180 오현제
A.D 121-18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80-565 로마 제국의 변형과 해체
180-235 세베루스가 황제 치하에서의 위기와 일시적 회복
235-285 제3세기의 무정부 상태
284-305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전제정 치하에 이루어진 제국의 재편
305-337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리스도교
337-395 콘스탄티누스의 왕조부터 테오도시우스 대제까지
518-532 유스티누스와 유스티니아누스의 독재정 확립
395 로마제국 동·서 분열
401 <<고백록>> / 성 아우구스티누스 354-430
410 <<신국론>> / 성 아우구스티누스 354-430
410 서고트족의 로마 약탈
476 서로마 제국 멸망
중세의 역사
400-1000 중세 초기 / 게르만족의 정착(5∼7세기) / 게르만적 재편의 시도(8∼10세기)
486 프랑크왕국 건국
726-843 비잔틴 제국의 성상 파괴 운동
768-814 샤를마뉴 대체
800-850 카롤링 르네상스
870 메르센조약: 중세의 독일 (동프랑크 왕국) 과 프랑스 (서프랑크 왕국) 분리
880-911 바이킹의 유럽 침입 절정기
962 오토 대제, 황제로 즉위(신성로마제국 성립)
1000-1300 중세 중기(전성기) / 기독교 세계의 형성(11∼13세기)
1054 동서 교회의 분열
1095-1099 제 1차 십자군
1077 카노사의 굴욕: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 교황 그레고리오 7세
1140-1260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라틴어로 번역됨
1204 제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1215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1266 <<신학대전>> /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
1285-1349 윌리엄 오컴
1300-1500 중세 후기 / 기독교 세계의 위기(14∼15세기)
1308 <<신곡>> / 단테 1265-1321
1309-1377 아비뇽 유수: 교황 클레멘스 5세
1338-1453 백년전쟁
1347-1350 흑사병
1414-1417 콘스탄츠 공의회
1440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금속 활판 인쇄술 발명
1453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 멸망
1455-1485 잉글랜드 장미전쟁 발발
1485-1603 잉글랜드의 강력한 튜더 왕조
근대의 역사
1350-1550 르네상스/종교 개혁, 지리상의 발견
1473-1543 코페르니쿠스
1483-1546 마르틴 루터: 95개조 반박문
1487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인도 희망봉
1492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항해
1497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해
1509-1564 장 칼뱅
1513 <<군주론>> / 마키아벨리 1469-1527
1516 <<유토피아>> / 토마스모어 1478-1535
1545-1563 트리엔트 공의회
1560-1660 근대초 유럽의 위기
1580 <<수상록>> / 몽테뉴 1533-1592
1564-1642 갈릴레이
1571 레판토 해전
1598 낭트칙령, 프랑스 앙리 4세
1599 <<햄릿>> / 셰익스피어 1564-1616 영국
1604 <<오셀로>> / 셰익스피어 1564-1616 영국
1605 <<맥베스>> / 셰익스피어 1564-1616 영국
1605 <<리어왕>> / 셰익스피어 1564-1616 영국
1615 <<돈 키호테>> / 세르반테스 1547-1616 에스파냐
1628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 / 윌리엄 하비 1578-1657
1651 <<리바이어던>> / 토머스 홉스 1588-1679
1637 <<방법서설>> / 데카르트 1596-1650
1618-1648 30년 전쟁
1648 베스트팔렌 조약
1660-1789 구체제, 절대주의 시대,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
1670 <<팡세>> / 파스칼 1623-1662
1685-1750 바흐
1685-1759 헨델
1687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 뉴턴 1642-1727
1688 잉글랜드의 명예 혁명
1689 <<통치론>> / 존 로크 1632-1704 잉글랜드
1701-1714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
1739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 데이비드 흄 1711-1776 스코틀랜드
1744 <<새로운 학문>> 비코 1668-1744 이탈리아
1748 <<법의 정신>> / 몽테스키외 1689-1755 프랑스
1754 <<인간 불평등 기원론>> / 루소 1712-1778 스위스
1756-1763 7년 전쟁
1756-1791 모차르트
1759 <<캉디드>> / 볼테르 1694-1778 프랑스
1770-1850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1762 <<사회계약론>> / 루소 1712-1778 스위스
1763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
1770-1827 베토벤
177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749-1832 독일
1776 <<국부론>> / 애덤 스미스 1723-1790 스코틀랜드
1776-1783 미국의 독립 전쟁
1790-1850 낭만주의 운동
1781 <<순수이성비판>> / 칸트 1724-1804 독일
1789 프랑스 혁명
1791 <<파놉티콘>> / 벤담 1748-1832 영국
1793-1794 공포정치
1793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 콩도르세 1743-1794 프랑스
1804 나폴레옹 프랑스 황제 즉위
1807 정신현상학 / 헤겔 1770-1831 독일
1808 독일 국민에게 고함 / 피히테 1762-1814
1808 <<파우스트>> / 괴테 1749-1832 독일
1814-1815 빈 회의
1829 그리스의 독립
1832 <<전쟁론>> / 클라우제비츠 1780-1831 독일
1838-1848 영국 차티스트 운동
1844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 엥겔스 1820-1895 독일
1847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1818-1848 영국
1848 <<공산당 선언>> / 마르크스 1818-1883 독일
1856 <<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1821-1880 프랑스
1858-1866 이탈리아 통일
1859 <<종의 기원>> / 찰스 다윈 1809-1882 영국
1859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1806-1873 영국
1861-1865 미국의 남북전쟁
1862 <<레 미제라블>> / 빅토르 위고 1802-1885 프랑스
1865 <<전쟁과 평화>> / 톨스토이 1828-1910 러시아
1867 <<자본론>> / 마르크스 1818-1883 독일
1869 미국의 대륙 횡단 철도 건설
1849 <죽음에 이르는 병>> / 키에르케고르 1813-1855 덴마크
1870-1914 국제적 산업화 및 경쟁의 발전
1871 파리코뮌
1872 <<권리를 위한 투쟁>> 루돌프 폰 예링 1818-1892 독일
1875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1828-1910
1878 베를린 회담
1880 카라마조프의 형제 / 도스토옙스키 1821-1881 러시아
1882 드레퓌스 사건
1883-1945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1888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 엥겔스 1820-1895 독일
1889-1945 독일의 수상 히틀러
189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1854-1900 아일랜드
1898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 1840-1902 프랑스
1900 <<꿈의 해석>> / 프로이트 1856-1939
1902 <<무엇을 할 것인가>> / 레닌 1870-1924
1904-1905 러일전쟁
1905 러시아 혁명
1905 <<상대성 이론>> / 아인슈타인 1879-1955 독일
1912-1913 발칸 전쟁
191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프랑스
1914-1918 제1차 세계대전
1917 러시아 혁명
1919-1938 전간기
1919 독일 사회주의 혁명
1919 베르사유 조약
1919 <<직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1864-1920 독일
1926 <<채털리 부인의 연인>> D. H. 로렌스 1885-1930 영국
1929-1940 대공항
1930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헤르만 헤세 1877-1962 독일
1929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오스트리아
1929 <<옥중수고>> / 안토니오 그람시 1891-1937 이탈리아
1931 <<몽유병자들>> 헤르만 브로흐 1886-1951 오스트리아
1932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1894-1963 영국
1933-1940 미국의 뉴딜 정책
1935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1872-1970
1936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발터 벤야민 1892-1940 독일
1939-1945 제2차 세계대전
1943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1877-1962 독일
1944 <<거대한 전환>> / 칼 폴라니 1886-1964 오스트리아
1945 <<열린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1902-1994 오스트리아
1945 <<동물농장>> 조지 오웰 1903-1950 영국
1945
1947-1948 동유럽의 공산주의 정권 수립
1947 <<도구적 이성 비판>> / 호르크하이머 1895-1973 독일
1948 이스라엘의 성립
1948 제1차 중동전쟁
1949 <<1984>> 조지 오웰 1903-1950 영국
1950-1953 한국 전쟁
1953 스탈린의 죽음
1956 제2차 중동전쟁
1957 소련의 인공 위성 발사
1961 베를린 장벽
1963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솔제니친 1918-2008 러시아
1964-1975 베트남 전쟁
1967 제3차 중동전쟁
1967 <<백년 동안의 고독>> 마르케스 1927-현재 콜롬비아
1968 루터 킹 목사 암살
1969 미국의 유인 우주선 달 착륙
1973 제4차 중동전쟁
1979 이란 혁명
198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1929-현재 체코슬로바키아
1990 <<코스모폴리스>> 스티븐 툴민 1922-2009 영국
출처:
자크 르고프: 서양 중세 문명
윌리엄 맥닐: 세계의 역사 1
윌리엄 맥닐: 세계의 역사 2
E.M. 번즈: 서양 문명의 역사 - 상
E.M. 번즈: 서양 문명의 역사 -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