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론계의 상황
전후 한국의 현대미술이 걸어온 궤적을 뒤돌아보면, 새로운 미술활동의 융기가 있을 때마다 이론과 평론의 돌출이 동행했음을 알 수 있다. 미술사적 가치평가를 떠나, 에너지의 응집과 발산의 차원에서만 보자면, 언제나 큰 폭발 뒤에는 인화성 이론과 평론이 자리하고 있었다. 새로운 미술의 도래에 반드시 새로운 평론과 이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국전 체제를 거부하고 나선 소위 ‘박서보 사단’의 유사-모더니스트 작가들에게는 오광수 등이 있었고, 실체가 불분명했던 유사-포스트모던 작가들에게는 서성록이 있었으며, 소위 ‘분단체제’와 유사-모던 아트의 위세에 반기를 들었던 민중미술에게는 김윤수와 성완경 등이 있었으며, 유사-모더니스트 미술가들과 민중미술가들의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1990년대의 새로운 미술에는 ‘전직 좌파’ 이영철과 이영준 등이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의 현대미술이 크고 작은 그룹들의 활동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종의 ‘패싸움’ 양상을 띠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허나,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양상은 이제 더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작가들의 그룹 활동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평론가와 이론가들의 그룹 활동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미술 계열의 평론가 조직이었던 ‘미술비평연구회’가 해체된 이후 ‘포럼 에이’ 등이 등장했지만 전대에 비견할 만한 그룹 활동은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평론가와 이론가들은, 학회 발표를 제외하면, 개별적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 부유하는 평론가와 이론가 들에겐 영 힘이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 실질적인 힘이 없는 이유는 비평적 정신을 지닌 개인으로서 미술의 앞날을 바라보는 비전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전의 결핍에 관해 개인의 자질을 탓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으니 잘못된 제도에 비평의 초점을 맞춰보자. 자, 오늘의 미술 평론에서 비전을 앗아간 제1의 원인은 무엇일까. 문제는 역시 ‘학회의 난립’에 있는 것이 아닐까.
1980년대 후반 민중미술이 제 힘의 최대치를 발휘하고 있던 무렵,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짝을 이루어 미술계의 세대교체를 꿈꾸던 ‘낭만적인 시절’ 또한 끝나가고 있었다. 따라서 평론가/이론가 들은 수많은 학회를 결성하고 새로운 ‘자가-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6년에 미술사연구회(The Association of Art History)와 미술사학연구회(The Korean Society of Art History)가 설립되었고, 1987년에는 한국미술사교육학회가 조직되었다. 1989년에 서양미술사학회(The Korean Association of Western Art History), (http://www.awah.or.kr)가 조직되었고, 1990년에는 한국현대미술사학회(Korean Association for History of Modern Art), (http://www. kahoma.or.kr)가 창립되었다. 1991년에는 한국미술학학회가 등장했고, 1993년에는 한국근대미술사학회(The Institute of Korean Modern Art Studies), (http://www.geundaemisulsa.com)가 등장했다. 1997년에는 현대미술학회(Society for the Science of Contemporary Art), (http://myhome.naver.com/modernarts/front.htm)가 조직되었으며, 가장 최근인 2003년에는 한국미술이론학회(The Korean Society of Art Theories)가 창립되었다. 이 가운데에는 내실 있는 운영을 지속해온 학회도 없지 않으나, 적잖은경우 계보와 학연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학회의 난립은 곧 힘없는 연구자들을 ‘이리저리 줄 세우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1990년대에 등장한 젊은 평론가와 이론가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관련 전공 대학원생들은 봄가을마다 열리는 수많은 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느라 바빴다. 그들에겐 작가들의 창작과 전시를 둘러볼 여력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젊은 평론가와 이론가, 그리고 대학원생 들은 작품의 생산과 소통의 메커니즘과는 거리가 먼 ‘학술계’의 방만한 조직을 떠받드는 도제적 일원이 되고 말았다.
일부의 학술적 평론활동을 제외하면, 대개의 평론은 미술잡지들의 기획이나 일부 전시기관들의 의뢰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강의와 학회 출석에 바쁜 평론가들은 작가와 잡지사 편집부, 혹은 해당 전시기관의 학예실의 ‘낙점’을 받아 글을 쓰는 것이 다반사고, 최악의 경우 작가의 전시와 작업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전시평문을 쓰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평문이 신랄한 경우, 그에 흥분한 작가들이 평문의 게재를 거부하기도 하고, 또 잡지사와 전시기관이 작가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여 평문이 사장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이제 전시비평은 거의 작가의 홍보활동에 포섭되고 만 것일까? 평론가는 작가와 미술관, 그리고 상업화랑 아래에 복무하는 서비스 계급으로 몰락한 것일까? 일찍이 이러한 저널리즘 비평의 무기력함을 개탄한 로절린드 크로스(Rosalind Krauss)는 「옥토버」지를 통해 “미술을 사후 승인함으로써 ‘아트 딜러들의 배나 불리는 비평’을 넘어서는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미술을 이끌고 변화시키는 비평”을 추구했고, 오늘날 그 결과는 정격적인 미술사 연구와는 대별되는 ‘철학적 비평’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쩌면 현재 한국의 평론계에 결여된 것은 로절린드 크로스나 데이브 히키(Dave Hickey)류의 철학적(혹은 문학적) 비평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한국 미술계엔 평론가와 이론가, 미술사학자가 넘쳐나지만 기이하게도 학회지를 제외하면 평론 저널이 하나도 없다. 물론 ‘철학적 비평’만 아쉬운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서른 곳 이상의 전시를 둘러보는 제리 살츠(Jerry Saltz)와 그의 성실하고 힘 있는 칼럼과 같은, 소위 ‘발로 뛰는’ 평론가와 전문적인 미술 칼럼의 부재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2. 미술잡지를 통한 평론의 전개
평론계의 부진 덕분에 미술잡지들의 기획은 2004년의 평론활동을 주도하다시피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대안미술공간에 대한 특집들이었다.
「월간미술」 2월호는 ‘미술공장으로서의 대안공간’이라는 특집을 통해 대안미술공간의 지난 5년을 회고하고 평가했는데, 이 특집은 각 대안미술공간들의 미묘한 입장 차이들이 드러나 더욱 흥미로운 기획이 되었다. 백지숙(당시 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 수석큐레이터)은 기고문 <동시대 한국 대안공간의 좌표>에서 “대안공간이라는 이름을 표방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문화적 권력의 브랜드로 너무 쉽게 독해되는 상황에서 초창기 대안공간들은 자기 정체를 밝히라는 유, 무언의 압박과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또한 뒤이어 생겨난 여러 공간은 단지 기금을 쉽게 ‘따먹기’ 위해서 대안공간의 외피를 빌려왔다는 누명을 벗기 위해 당분간 적지 않은 소모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세간의 비판에 시달려온 포럼 에이/대안공간 풀의 창립 멤버로서의 정신적 피로감을 드러냈고, 결어에서는 “대안이라는 용어 자체는 어떤 실체를 기준으로 한 본질주의적인 정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맥락과 동시대적 관계에 의거하여 계속해서 변화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럼으로써 대안이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거머쥘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용어의 한계이자 가능성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포럼 에이/대안공간 풀이 명백한 ‘민중미술의 적통’ 노릇을 해온 것을 돌이켜 보자면, 그리고 대안공간 풀이 적잖은 지원비를 받고 있음에도 너무나 자주 대관전을 열어왔다는 점을 상기해보자면, 그의 탄식은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분명, ‘대안공간’이란 내일의 권력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인큐베이터다.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놓더라도 ‘대안공간’은 권력적 위계 속에서 독해된다. 그것은 ‘대안’이라는 두 글자를 붙인 모든 것들의 운명이다. 따라서 특집에 등장한 독립 큐레이터 안미희의 글-<과거의 비주류가 현재의 주류로>는 권력을 쟁취하는 기반으로 기능한 미국의 대안공간들의 사례를 다뤄 백지숙의 글과 대조를 이뤘다. 독립 큐레이터 이지윤의 글-<신진작가? 큐레이터의 플랫폼 기능>은 유럽의 대안공간의 다양한 운영실태를 언급했고, 대안공간 루프를 운영 중인 서진석의 글-<범아시아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신 미술운동>은 시카고 유학 동문들의 거점으로 시작된 대안공간 루프의 최신 모토인 ‘범아시아 네트워크’를 홍보했다. 반면 「미술세계」 7월호는 특집 ‘대안 필요한 대안공간’을 통해 보다 신랄한 비평 기능을 수행했는데, 이는 마치 「월간미술」 2월호의 특집에 대한 화답처럼 보였다. 대안공간에 대한 다면적인 설문조사의 결과도 흥미로웠지만, 대안공간 풀이 처한 문제에 초점을 맞춘 김영진 기자의 글-<대안공간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또한 글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흥미로웠다.
대안공간을 둘러싼 논쟁에 이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월간미술」 9월호의 특집 ‘집중조명, 박이소의 삶과 예술’이었다. 일단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지면을 통해 고인에 대한 추모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허나 특집 지면 가운데 어디에도 고인의 활동 연보는 보이지 않았다. 작가를 추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연보 작성을 망각한 것이다. 평론가 이영철의 글 <한국 현대미술계에 던지고 간 그 무엇>이 박이소의 작업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그것이 회고의 기초인 ‘연보의 작성’을 대신할 수는 없었으며, 박이소를 다소 신화화하는 경향마저 보여주었다. 반면 정헌이의 글 <호모 아이덴트로푸스의 여행>은 진솔한 증언에 가까운 회고담이어서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특집은 이외에도 동료 작가 안규철과 민영순, 후배 작가 함양아, 큐레이터 김선정 등의 회고를 담았고, 고인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다.
대형 국제행사들이 몸싸움을 벌인 한 해였지만 시간과 공간의 틈새에서 나름의 주목을 받은 전시들도 평단의 반응을 이끌었다. 우선 연초에는 삼성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 2003>(2003.12.19~2004.2.29, 호암갤러리)에 대한 리뷰가 주목받았다. 쌈지스페이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거친 작가가 다수 포함된 이 전시는 「월간미술」 1월호에서 쌈지스페이스의 김홍희 관장의 글 <복합적 스펙트럼의 앤솔러지형 전시>를 통해 호의적으로 리뷰되었다. 반면 「아트인컬처」 2월호에 게재된 미술평론가 심상용의 글 <신예 발굴 신드롬과 ‘태도 지상주의’>는 같은 전시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담고 있었다. 다소 두서없이 젊은 세대에 대한 불쾌감과 김홍희의 리뷰에 대한 반감을 뒤섞은 이 리뷰는 도리어 과거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전>이 누렸던 ‘신예 등용문’으로서의 힘과 권위가 이제는 삼성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전의 차지가 되었음을 재차 확인시켜주고 말았다. 이에 못지않게 비평적 관심을 끈 것이 이영철이 기획한 <당신은 나의 태양전>(10.15~12.5, 토탈미술관)이었다. 이 문제적인 한국현대미술 회고전은 「월간미술」 12월호에 게재된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이정우의 글 <전후 한국미술은 어떻게 동시대성을 획득했는가?>를 통해 리뷰되었고, 「아트 인 컬처」 11월호의 라운드테이블에서도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미술잡지들은 연재물을 통해 평론에 기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중견 작가들의 작가론을 연재하는 「월간미술」의 ‘3545 아티스트’ 코너다. 사진평론가 진동선의 <사진작가 오형근-반영과 애매함의 결합>(5월호), 미술 평론가 강수미의 <홍성민-사실과 픽션의 불순한 현실>, 이정우의 <설치작가 김홍석ㆍ김소라-사이비 발명가의 사회적 네트워크 느와르> 등이 실렸다. 「아트인컬처」는 「월간미술」에 비해 연재기사의 기획력에서 크게 뒤지지만, 좋은 특집기사들이 없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인 것은 ‘글로벌 시대의 큐레이터들’이라는 특집에 실린 미술평론가 정도련의 글 <상실의 시대는 계속될 것인가?-정신적 위기에 처한 미국의 큐레이팅>이었다. 그는 작가와 비평가들을 가로지르는 뜨거운 화두가 실종된 작금의 현실을 문제 삼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분석했다.
이외에도 「월간미술」의 <스페셜 리포트 1.-국제 아트페어의 허와 실> <스페셜 피쳐-한국 미술대학의 현황> <특집 : 유쾌한 아트로 변신한 일상의 오브제> 등도 미술인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지은, 김승호, 신지영, 김윤경, 안인기, 정용도, 김백균의 약식 논문을 모은 「아트인컬처」의 특집 ‘젊은 이론가 7인의 미술 읽기’ 또한 큰 관심을 모았다.
3. 미술이론과 미술사 연구의 학회발표 논문들
학회 가운데는 서양미술사학회(회장: 윤난지(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서양미술사학회의 제35회 춘계학술발표회(3.27, 영남대학교 인문관 강당)에서는 조수정(고려대학교 강사)의 「카파도키아 지역 비잔틴 교회의 성녀상 연구」, 송미숙(성신여자대학교 교수)의 「드가의 제스추어」, 정영목(서울대학교 교수)의 「피카소와 한국전쟁: 전쟁과 평화를 중심으로」가 발표되었다. 제9회 심포지엄(이화여자대학교 SK 텔레콤관 컨벤션 홀, 4월 24일)에서는 조은정(서울대학교 강사)의 「‘이상도시(Ideal City)’: 우르비노 궁전에 재현된 15세기 이탈리아 전제군주의 꿈」, 전경희(이화여자대학교 강사)의 「신인상주의 풍경화에 나타난 유토피아적 공간」, 김영나(서울대학교 교수)의 「유토피아의 신기루: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사회주의 도시와 모뉴먼트」, 전영백(홍익대학교)의 「영국의 도시 공간과 현대 미술: 2차대전 이후의 런던」, 이지은(명지대학교 교수)의 「사이버 공간의 정치학: 미술, 권력, 그리고 젠더」 등의 발표가 있었다. 제36회 추계학술발표회(홍익대학교 정보통신센터 국제회의실, 9월 11일)에서는 이화진(이화여자대학교 석사)의 「C. D. 프리드리히의 풍경화에 나타난 공간 구성 연구」, 윤선애(프랑크푸르트 대학 박사과정 수료)의 「칼 필립 포어: 역사화가로서의 예술사적 평가」, 강태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미술사의 추억」, 김승호(홍익대학교 강사)의 「인간과 자연: 안젤름 키퍼의 작품을 중심으로」 등이 발표되었다. 현대미술사분과가 주관한 제3차 분과학술심포지엄-‘현대 미술과 잔혹성’(10.16, 서울대학교 83동)에서는 이영준(계원조형예술대학교 교수)의 「잔혹성과 차이-이라크 전쟁 사진의 미장센」, 김수현(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의 「도플갱어(doppleganger) 이미지의 자기 증식성」 등의 발표가 있었다.
상반기에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 후보에 선정된 현대미술사학회(회장: 김정희(서울대학교 교수)도 예년보다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제28회 춘계학술발표회(5.22,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신관)에서는 박미연(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연구원)의 「게리 힐(Gary Hill)의 비디오아트에 나타난 상호텍스트성」, 조주연(서울대학교 강사)의 「형식주의와 그린버그」 등의 발표가 있었고, 제29회 추계학술발표회(계원조형예술대학교 본관, 9월 18일)에서는 이은이(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의 「앤디 워홀(Andy Warhol) 회화의 표면성에 관한 이론적 논의; 1960년대 <죽음과 재난> 중심으로」, 양은희(경기대학교 강사)의 「온 카와라의 유목민적 방랑과 미국 개념미술의 형성과 와해, 1964~1969」 등이 발표되었다. 제5회 학술심포지엄-‘공공 포럼으로서의 미술’(10.2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는 양현미(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연구원)의 「공공미술의 제도적 기반; ‘미술을 위한 퍼센트 제도(percent for art scheme)’를 중심으로」, 전용석(작가)의 「도시 담론의 변화와 공공미술의 가능성: 플라잉시티의 청계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김윤경(CUNY Graduate Center 박사과정)의 「공공미술, 또 하나의 접근법: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 사례를 중심으로」가 발표되었다.
한국근대미술사학회(회장: 이중희 계명대학교 교수)도 꾸준한 활동을 벌였다. 춘계학술발표회(4.24, 서울대학교 공예관)에서는 이주원(홍익대학교 석사)의 「동아시아 근대 조소의 전개-인물상을 중심으로」, 김현숙(홍익대학교 석사)의 「동아시아 관전의 지방색-조선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김철효(삼성미술관 연구원)의 「근대기 한국 ‘자수’ 미술 개념의 변천」, 박계리(한국미술연구소 연구원)의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와 이충무공 동상」이 발표되었다. 추계학술대회(10.8, 대구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는 최열(가나아트 연구실장)의 「한국 근대미술 기점 제론」, 이중희의 「조선 후기 풍속화-근대성의 맹아」, 박동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원)의 「심전 안중식 회화의 근대성과 작품 진위 문제」, 박세훈(국토연구원 연구원)의 「동원된 근대: 일제 시기 경성을 통해 본 식민지 근대성」 등이 발표되었다.
신생 학회인 한국미술이론학회(회장: 정영목 서울대학교 교수)도 새로운 활동을 이어나갔다. 춘계전국학술대회-‘현대미술의 반성과 전망’(6.5, 국민대학교 예술대학)에서는 박영택(경기대학교 교수)의 「회화의 위기, 회화의 대안-동시대 회화 관련 기획전을 중심으로」, 최태만(국민대학교 교수)의 「과연 비엔날레는 세계화의 전도사인가?」, 심상용(동덕여자대학교 교수)의 「국내 서양미술사, 서양미술비평 연구의 문제들에 관한 연구」, 김은영(홍익대학교 겸임교수)의 「미술관의 해석과 소통의 모색」, 안인기(서울대학교 강사)의 「미술 저널리즘과 비판 의무」가 발표되었고, 추계학술발표회(경기대학교 서울캠퍼스, 10월 16일)에서는 조은정(서울대학교 강사)의 「미술가와 역사」, 이지은(명지대학교 교수)의 「라우셴버그와 게임하기: Playing Rebus」, 장동광(독립 큐레이터)의 「현대미술에 있어서 ‘복제’의 개념과 전시규범의 문제-<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탄생 100주년 특별전>을 중심으로 본 공립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고찰」이 발표되었다.
현대미술학회는 서울대조형연구소, 광주비엔날레재단,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함께 ‘동서양미술문화비교국제심포지엄-시각예술에서의 동양성’을 열었다. 다소 방만한 기획이었음에도 특기할 만한 논문들이 적지 않았다. 김정희(서울대학교 교수)의 「한국현대미술 속의 ‘한국성’ 형성요인의 다면성」, 우훙(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의 「‘수묵’의 재적용: 현대중국미술의 물질성에 대하여」, 정형민(서울대학교 교수)의 「한국미술에서의 동양성 개념의 출현과 변형」, 그리고 요시미 순야(동경대학교 교수)의 「욕망과 폭력으로서의 ‘미국’: 전후 냉전시대 일본과 아시아의 미국화」는 완성도 높은 연구로서의 가치를 넘어, 앞으로 지속적으로 학술적으로 다뤄질 가치가 있는 주요한 논쟁 지점들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러 학회 가운데 단연 활발한 모습을 보인 서양미술사학회의 경우, 예년에 비해 현대시기를 다룬 논문의 수가 늘었고, 연구방식 면에서도 상당히 다채로워졌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다른 학회와 성격이 중복되는 바가 없지 않아, 앞으로 분과별 활동의 강화를 통한 차별화의 시도가 필요해 보였다. 한편 현대미술사학회는 김정희 신임회장의 리더십 아래 한층 강화된 역량을 보였다. 현대미술을 다루는 학회의 특성상, 앞으로 국내외의 현대미술계에 대한 영향력의 차원에서 의미 있는 진일보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어쩌면 이러한 작가들과 학술계 사이의 인터페이싱에 대한 고민은 한국미술이론학회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창작 영역에 대한 적극적인 독해와 개입을 차별점으로 들고 나선 학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미술이론학회가 선보인 발표들은 기존 학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점은 수년 내에 풀어야 할 큰 과제이지만,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 등이 선행되지 않는 한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딜레마에 봉착한 것은 근대미술사학회인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미술계에서 근대미술은 가장 중요한 학술적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그 열기는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발판 삼아 새로운 연구의 방향을 제시할 때가 아닐까 한다. 2004년 한 해 동안의 학회활동들을 전반적으로 바라보면, 한 가지 기이한 점이 있다. 예전과 달리 현대미술을 다룬 논문의 수가 늘고 있음에도 한국의 현대미술이나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현대미술을 다룬 논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학술계가 이러한 편향에 사로잡힌 가운데, 이미 아시아 현대미술에서까지 연구의 주도권은 알렉산드라 먼로(Alexandra Monroe), 줄리아 앤드류스(Julia Andrews), 존 클락(John Clark)과 같은 서구의 연구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러한 편향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4. 대형 행사를 중심으로 한 비평의 흐름
2004년은 한국의 주요 비엔날레인 「제2회 부산비엔날레」(5.22~10.31, 부산시립미술관), 「2004 제5회 광주비엔날레」(9.10~11.13, 중외공원 문화예술벨트/ 광주지하철/5.18 자유공원), 그리고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12.15~2005.2.20, 서울시립미술관)가 한꺼번에 열리고, 또 유명한 미술관 디렉터들과 미술가들, 그리고 큐레이터들을 망라한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10.2~8, ICOM, LEEUM 외)가 열린 해였기 때문에, 이들 대형 행사를 중심으로 많은 평론활동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 국제적 행사들은 비평적 쟁점들을 형성하는 데에 실패하거나, 아니면 비평적 쟁점을 회피함으로써 비판의 한가운데에 처하기는 하되 논쟁의 중심에 서지는 못하는 아이러니한 풍경을 연출했다.
‘틈(隙, Chasm)’을 주제로 내세운 「부산비엔날레」(전시 총감독: 최태만)가 마련한 학술행사는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조형예술대학원장인 행크 슬라거(Henk Slager)의 주도와 데 아펠에서 수학한 신예 큐레이터 최빛나와 작가 양혜규 등의 활약에 힘입어 전례 없이 매우 실용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아쉽게도 많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진행형의 심포지엄’을 제목으로 내건 부산의 학술 프로그램-「학술 프로그램: 현실에 대한 새로운 비평을 향해」(8.10~19, 큐레토리얼 워크숍/8.20, 심포지엄-패널토론1/8.21, 심포지엄-패널토론2)(http://www.busanbiennale.org/theory)는, 후 한루(Hou Hanru), 하세가와 유코(Yuko Hasegawa), 우테 메타 바우어(Uta Meta Bauer) 등 무게감 있는 큐레이터들이 참여했음에도, 개방적인 분위기의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비권위적 성격은 광주가 보여준 예의 ‘학술적’ 분위기와는 아주 대조되는 것이었고, 부산비엔날레가 2003년에 마련했던 「2004 부산비엔날레를 위한 국제미술학세미나」(2003.4.28~30, 부산광역시청 12층 국제대회의실)의 형식화된 탈식민주의의 성격과도 아주 뚜렷이 대별되는 것이었다. 「2004 …… 국제미술학세미나」가 낡은 탈식민주의의 문제의식을 통해 1990년대의 ‘정치적 올바름’을 반복하는 데에 그쳤다면, 「학술 프로그램……」은 유효한 질문들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2004 …… 국제미술학세미나」에 초대된 인도의 독립 큐레이터인 란지트 호스코테(Ranjit Hoskote)의 발표-<주권과 돈키호테적 성격: 유토피아 저편에서의 탈식민성 되찾기>는 진정성을 상실한 탈식민주의연구가 도달한 어떤 문제적 지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학술 프로그램……」에 초대된 노르웨이 오슬로의 현대미술진흥센터의 디렉터인 우테 메타 바우어의 ‘공동체 기반 미술’에 대한 발표나, 칼 아츠 갤러리의 디렉터인 주은지의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부당한 평가에 대한 문제제기 등은 분명히 보다 주목받을 가치가 있는 분명한 ‘당대적 비평’이었다.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A Grain of Dust, A Drop of Water)’을 주제로 삼은 「광주비엔날레」(전시 총감독: 이용우)는 전시에서도 주제보다는 ‘참여관객(The Viewer Participants)’이라는 기이한 개념의 실현에 주력하더니, 응당 마련되었어야 할 학술행사 또한 ‘참여관객 토론회’라는 기묘한 행사로 대체해버렸다. 필경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가 「2003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제기한 주제 ‘꿈과 갈등-관객의 독재’를 염두에 두었을 이 주제는 이용우 총감독의 발표 「관객의 주체적 문화생산참여」에서부터 일종의 ‘문화 사기’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허나, ‘관객이 주체적으로 문화생산에 참여한다’는 모순된 언설은 ‘참여 정부’에 아부하기로 작정한 「광주비엔날레」가 더 많은 중앙정부의 예산을 따내는 데엔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어쩌면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이라는 알쏭달쏭한 주제는 그러한 ‘문화 사기’를 은폐하는 ‘최소한의 예의’였을지도 모르겠다.
‘게임’을 주제로 내건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전시 총감독: 윤진섭)는 전시를 얌전하게 만든 것처럼,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국제심포지엄」 또한 얌전하게 치렀다. 미디어 아트 평론가인 필립 코도네(Philippe Codognet)와 총감독인 윤진섭의 발표에 이어 도쿄에 위치한 미디어아트센터인 ICC(Inter Communication Center)의 객원 큐레이터-마수야마 히로시(Masuyama Hiroshi)와 작가 료타 쿠와쿠보(Ryota Kuwakubo)의 발표가 있었지만, 국제 심포지엄이라기보다는 워크숍에서 볼 수 있는 ‘최신 미디어 아트의 경향’의 프리젠테이션이나, ‘작가와의 대화’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즉 지나치게 안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의 책임자들은 야심 없는 안전 운영보다는 야심 찬 실패를 추구하는 것이 비엔날레의 몫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4년 한 해의 모든 일정을 주도하다시피 한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는 기대와 달리 하등의 비평적 흐름을 만들지 못했고, 폐막과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한국의 박물관 관계자들은, 적잖은 예산을 들여 소중한 행사를 개최하면서도 의미 있는 논제를 이끌어내고 논의를 주도하는 ‘의제 설정자’ 노릇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다. 김병모(ICOM 한국위원회 위원장) 공동위원장과 이건무(국립중앙박물관 관장) 공동위원장, 그리고 김종규(한국박물관협회 회장) 공동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는 유럽과 미주 국가들이 독점해오던 대회를, ICOM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국가에서 유치한 쾌거이자, 아시아 회원국들에게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주장했지만, 그 ‘희망’과 ‘자신감’이 비전의 제시를 통해서만 획득 가능하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따라서 이 행사에서 적절한 논점을 찾아내지 못한 국내의 언론들은 일체의 심층취재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의 책임은 1차적으로 행사 책임자들에게 있겠지만, 명예대회장을 맡은 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 또한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영부인으로서 문화예술의 진작을 주도하고, 언론의 관심을 유도했어야 할 그였지만, 그의 모습에서 문화예술에 힘을 실어주는 비전이나 식견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대다수의 한국민들은 태국의 마하 차크리 시리돈(HRH Princess Maha Chakri Siridorn) 공주가 어너러리 호스트로 초청된 의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하 차크리 시리돈 공주는 태국뿐만 아니라 범아시아의 문화계를 이끌어갈 인물로 주목받는 차세대 지도자이지만, 국내 언론 가운데 어느 곳도 그와 인터뷰하지 않았다. 결국 이 행사는 또 하나의 국제적인 행사를 주최해냈다는 개발도상국형 자긍심을 전면에 드러낸 채 한국의 초라한 문화적 역량을 재확인시켜준 셈이고, 배후에서 행사를 주도하다시피 한 삼성미술관과 삼성문화재단만 실속을 챙긴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들 대형 행사를 둘러싼 논쟁의 주도권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평론가들과 온라인의 네트워커들에게 돌아갔다. 광주비엔날레는 신랄한 비판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예를 들어, 유진상은 「아트인컬처」 10월호에 기고한 <사라져버린 국제적 야심>에서 “…… 4회 전시는 전시의 운영 미숙에도 불구하고 입장의 분명함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아마도 그 반대의 경우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비판했고, 같은 지면에 <제3세계의 지방 도시에서 벌어진 미학적 파산>을 기고한 이정우는 “‘참여관객’이라는 전대미문의 단어는 아무런 의의와 기능을 가지지 못하는 무능한 방관자들을 지칭할 뿐 …… 비로소 문화 협잡꾼으로 전락한 큐레이터의 당대적 위상에 대해서 논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라고 힐난했다. 물론 부산비엔날레에 대한 비판도 적잖았다. 「아트인컬처」 10월호가 마련한 라운드테이블에서 양정무(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교수)는 “우리가 왜 엄청난 재정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틈’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비엔날레를 왜 가는 것일까요? 동시대 최전선에 놓인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 때문이 아닐까요?”라고 문제를 제기한 뒤 “부산비엔날레가 주최측의 바람대로 하나의 문화적 축제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지역성이 비엔날레에 들어오지 못할 이유도 없고요. 문제는 그것이 부산비엔날레의 정체성으로 고착되는 데 있어요. 해외 미술 사례를 살펴보아도, 미술이 지역성을 강조해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반면,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를 둘러싼 논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직 여성정치문화연구소(사)의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에 대한 반대운동이 약간의 눈길을 끌었을 뿐이다(여성정치문화연구소(사)가 주축이 된 ‘여성문화예술제준비위원회’는 <서울세계박물관대회 계획 철회해야>라는 성명을 통해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를 “귀족들의 돈잔치, 평민들의 빚잔치”라고 규정하고, “서울세계박물관대회 주최측을 ‘man about town(사교계에 드나드는 건달)’이라고 비웃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하면서 ‘2004 여성문화예술제’ 기간 중에 ‘서울세계박물관대회’ 개최 반대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한다”고 비아냥거리며 적극적인 보이코트 운동을 결의했지만, 실제적인 실천은 전개되지 않아 그저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5. 인력과 지성의 적절한 활용을 위해
전술했다시피, 2004년 한 해 동안 잡지 등을 통해 여전히 많은 글이 인쇄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중심이 없이 점멸하는 크고 작은 행사들은 역량을 축적하고 그 힘을 미술계에 행사하기보다는 제 스스로를 위해 일정을 반복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렇게 한국미술평론계의 인력과 지성이 적절히 활용되지 못하는 가운데, 불만에 찬 미술인들은 온라인에서 불건전한 비평문화를 쌓아나갔다. 날이 갈수록 역설과 비난으로 점철되어가는 온라인의 미술 관련 게시판들과 미술계와 단절된 채 자가 증식의 길을 걷고 있는 학술계의 모습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 같아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없지 않았다. 평론가들의 블로그가 등장한 것이 그것이다. 이정우, 반이정, 강수미 등의 블로그는 저널 비평 활동과 함께 지면에서 드러내지 못한 사유의 편린들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평론문화의 가능성을 엿보였다. 하지만 ‘정신의 온라인 상태’라고 주장되는 블로깅은 평론가들에게 긍정적인 비평의 미디어로 기능하는 동시에, 자기 홍보와 사담에 묻혀 본분을 망각하는 역작용을 행하고 있기도 하므로 그 앞날은 두고 볼 일이라 하겠다.
한국의 미술사 연구/이론/평론의 흐름에서 드러나는 인력과 지성의 소모는 심대하다. 이러한 소모전을 극복하기 위해 주요 학회의 수장들은 물론, 각종 국제행사들의 주체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의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한국의 평론계엔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당장, 올 한 해 동안 발표된 모든 평론과 논문들의 아카이빙은 누가 어떻게 어디에 할 것인가? 과연 그 많은 논문들은 두루 읽히고, 자주 인용되고 있는 것일까? 역량의 집중을 통한 합리적 시스템의 구축이 아쉽다.(학회의 개편 외에도 독립연구자들의 연구활동지원 프로그램이나, 우수논문시상제도 등을 논의해 볼만하다) 잊지 말자, 한국미술평론계의 인력과 지성은 낡은 제도를 위한 소모품이 아니다. 건강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지 못하는 학회와 평론계엔 새로운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젊은 지성인들의 발길이 끊기면, 남은 것은 황폐한 미래뿐이다.
◈ 筆者 : 이정우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2013년 9월 25일 수요일
2013년 9월 18일 수요일
87 Texts Every Critical Theorist Needs to Read
http://critical-theory.com/87-critical-theorist-books/
2013년 9월 17일 화요일
세계지성대담
2013년 9월 15일 일요일
2013년 9월 6일 금요일
"압축성장 속에서 압축될 수 없었던 나머지들"
The Way of Man-Guitars, but no Weeping
Installation View of Heart of Men at KIMUSA
<Heart of Men>
"남자는 실업자나 노숙자처럼 정밀한 사회적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남자는 처음부터 사회적 정체이기 보다는
하나의 문화적 정체, 나아가 하나의 ‘내러티브’ 이기 때문이다.
그는 못될 경우 ‘잘 차려 입을수록 궁색해 보이는 남자’이며,
잘된 경우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남자의 길’로 떠난 전설의
쌍기타’(배영환)이다. 그는 실존하기 보다는, 하나의 소문으로써,
이미지로서 떠돈다. 꽃무늬 남방, 백구두, 가짜 자개장, 신파
노래의 가사는 어떤 이야기들, 압축성장 속에서 압축될 수 없었던 나머지들이다."
않는다. 왜냐하면 이 남자는 처음부터 사회적 정체이기 보다는
하나의 문화적 정체, 나아가 하나의 ‘내러티브’ 이기 때문이다.
그는 못될 경우 ‘잘 차려 입을수록 궁색해 보이는 남자’이며,
잘된 경우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남자의 길’로 떠난 전설의
쌍기타’(배영환)이다. 그는 실존하기 보다는, 하나의 소문으로써,
이미지로서 떠돈다. 꽃무늬 남방, 백구두, 가짜 자개장, 신파
노래의 가사는 어떤 이야기들, 압축성장 속에서 압축될 수 없었던 나머지들이다."
- 박찬경, 대안공간 풀 디렉터
"They are not recognizable by precise
social statistics on the jobless or the homeless because
they have been, from the beginning, an aesthetic identity.
In the worst scenario, they are ‘men that look badly off in
nice clothes’ and at best, they are ‘legendary figures that
chose their ‘way of genuine men’ though they married out of love.’"
social statistics on the jobless or the homeless because
they have been, from the beginning, an aesthetic identity.
In the worst scenario, they are ‘men that look badly off in
nice clothes’ and at best, they are ‘legendary figures that
chose their ‘way of genuine men’ though they married out of love.’"
- The Way of Men,’ Prologue of the Exhibition of Pool the Alternative Space
An excerpt of the text written by Park Chan Kyong
An excerpt of the text written by Park Chan Kyong
FAST BREAK
전시명: FAST BREAK
장소: PKM GALLERY, Beijing
기간: 4월13일- 6월30일
참여작가: 고승욱, 공성훈, 김범, 김보민, 김상길, 노재운, 박진영, 박찬경, 배영환, 송상희, 윤정미, 조해준, 플라잉시타, 함진
속공의 한계 Limitation of Fast Break
박찬경 (작가)
최근 십 년간 한국미술을 일정한 작도법에 의해 지도 그리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거나, 그 동기를 잃어버린 듯 하다. 그것은 우선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인식론적인 지형이 예전처럼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세계’의 이념적 정치적 지평과 만나면서도 구별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분단체제라는 놀라운 역사와 현실에서 비롯된다. 정치의 소제목으로서의 ‘분단’이 아니라, 한반도의 정신병리학을 포섭하는 하나의 실질적 힘이자 문학적인 비유로서 ‘분단’이라고 말할 때 말이다.
외국 사람의 시선에서 ‘분단’이라고 하면, 의례 세계적 차원에서 동서 냉전의 지역적 부산물로 간단히 정리될지 모르겠지만, 지역 주민이 외부의 시선이나 인지로부터 고립되는 것이야말로 분단사회의 폐쇄적 특성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황은 매우 다르게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도 내게는 윤정미 사진의 핑크와 블루가 남북한의 색채상징으로 읽힐 정도이다. 분단은 소위 ‘군사적 모더니티’라 불릴 수 있는 사회,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서부터 가족관계, 동서갈등과 종교적 편향에 이르기까지 사회전체를 강력한 힘의 장 속에 밀어 넣었다. 한국 현대 미술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서구현대미술로부터 역사를 제거한다든가, 추상표현주의의 수입을 한국전쟁의 상처와 억지로 연결했다. 또 강력한 대학권력을 통해 이단적 사고를 차단하고, 무엇보다도 형식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안전하게 결합하는 것을, 나는 분단체제로 인한 사회전반의 ‘휨’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아마도 여기 소개되는 작가들은 이러한 시대에서 반쯤 빠져 나온 첫 세대일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記述)을 여전히 80년대에 사로잡힌 40대 초반 남자 작가의 입버릇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실제로 갤러리들이 밀집해있는 서울 인사동이나 사간동의 식당에 앉아서 외국에서 온 큐레이터를 만나는 동안, 서울의 주변풍경은 내가 하는 말의 설득력을 차례로 빼앗아 가버린다. 금융자본과 고급상품 숍들이 밀집해있는 서울 강남의 카페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미 긴장감이라고는 없는 관광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DMZ 투어를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한국에서 분단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가끔씩 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를 사용해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영화관 말고는 거의 없다. 같은 시간 동안, 자유에 관한 복잡한 정의들과 무관하게, 한국에서 개인과 이익집단이 누리는 자유는 최근 20년 동안 마치 한풀이를 하듯이 터져 나왔다고 할만하다. 이것은 단지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극적인 반전이다.
현실감을 박탈하는 정신의 떠돎이랄까, 의미의 부유(浮游)랄까 하는 현상으로 인해, 실제 현실에 대한 심각한 감각이나 개입이 일상에서 부여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흩어져 버렸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새로운 현실자체가 작가들에게는 또 다른 충격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DMZ가 관광지가 되어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는 것 자체가 낯설다. 이는 기묘한 이중적 상황이다. 왜냐하면, 박진영의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군사적 긴장과 그로 인한 사회전체의 양분과 같은 ‘과거’의 일이,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20년 동안 과거의 흔적을 하루가 다르게 걷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걷어내자 과거와의 단절로 인한 그것의 회귀는 더 갑작스럽게 나타나고 우리를 얼떨떨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유리한 상황에 있는 야권의 두 후보는 70년대 개발주의와 인적으로든 이미지로든 연결되어있다. 정치와 함께 종교계와 언론계에서는 냉전시대의 흑백논리가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것 같아 보인다. 북한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아, 그렇지, 북한이 있었지’ 라고 되뇌는 식이다. 박진영이 휴전선 부근에서 차라리 하늘이나 별로 눈을 돌리듯이 말이다.
과거로부터의 지나친 단절감이라는 면에서, 2007년 현재는 80년대와 아주 다르다고 생각되는 동시에, 80년대 초의 상황과 유사한 점도 있다. 김보민의 그림이, 전통과 현대의 충돌이라는 80년대 초의 도상적 관심을 다시 등장시키는 것이나, 나 자신을 포함해 조해준, 배영환, 송상희, 노재운 등이 ‘기억의 정치’를 활용하는 것 등도 이 동떨어진 두 시대가 공히 겪었고 겪고 있는 단절감을 표현한다. 그러나 80년대의 그 이전에 대한 단절감, 또는 과거에 대한 망각은 대부분 억압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 현재의 망각은 대체로 ‘자유’라고 칭해지는 것에 의한 것이다. 문민정부이래 유명해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TV의 과거사 ‘진실폭로’ 프로그램은 억압과 검열로부터의 자유를 이미 제목 자체로 표현하지만, 이제는 수 백 개의 케이블 채널과 인터넷 정보더미 사이에 쉽게 묻혀버릴 자유를 뜻한다. 신학철, 박불똥 등 80년대 초의 민중미술이 기억의 직접적인 억압에 저항하는 몽타주를 사용했다면, '패스트 브레이크Fast Break' 전에 소개되는 상당수의 미술은 다다이스트적 몽타주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훨씬 산만해진 기억회로를 뚫고 나가야 했다.
물론 그 방식은 작가마다 다양하다. 조해준이 아버지와의 협업을 통해, 고전적인 방식으로 개인적 기억을 회복하는 것으로 대응한다면, 노재운은 디지털 세계에서 해체된 정보 파편들을 단지 유보적이고 불확실한 상태로 결합시킨다. 조해준이 아버지를 통해 기억해내려고 하는 과거사의 세부를 촘촘히 묘사하면서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저항한다면, 노재운은 오히려 집단적 기억상실증을 묘사하면서 과거의 ‘아득한 존재감’을 화면의 뒤쪽으로부터 서서히 나타낸다. 조해준은 그림을 사용하지만 오히려 사진적인 세부를 추구하고, 노재운은 사진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림의 추상성에 더 가깝다. 어쨌거나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기억을 되살리는 노력이 길게 잡아야 불과 50-60년에 걸친 짧은 시간이라는 점이다.
빨리 돌아가는 사회일수록 향수는 강한 법이다. 북한 ‘속도전’의 거울인 남한의 압축성장은 말 그대로, 짧은 시간을 노동의 강도를 극대화함으로써 늘려 살아온 과정이기 때문에, 그 심리적 시간은 사실상 훨씬 길다. 따라서 물리적으로는 최근의 사건이라고 해도, 그것이 쉽게 잊혀질 수 있는 만큼, 향수도 강렬해지는 역설이 생겨난다. 이것은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압축될 수 없었던 것, 비인간적 시간의 배후에서 늘 합류할 수 없었던 욕망, 주체, 내러티브 등이 스프링처럼 어느 순간에 튀어나오는 것과도 같다. 배영환의 작업이 향수적 코드를 사용하면서도, 대중문화의 클리쉐를 적극 인정(recognize)하고 과장함으로써 오히려 뒤집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나 역시도 윤이상의 엘리트 현대음악을 북한 민족주의의 거의 저승에나 있을법한 신파성과 연결하면서 비슷한 시도를 했다. 송상희가 외국의 성노동자가 지은 시에다가 ‘달맞이꽃’이라는 센티멘탈한 제목을 붙인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이것은 타르코프스키의 롱테이크와는 달리, 질척거리고 섹시하며 다소 변태적인 ‘압축 향수’이다.
이런 맥락 뒤집기라든가, 아이러니의 사용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한국미술은 오히려 ‘역사적 팝아트’(팝아트를 리차드 프린스나 신디 셔먼, 댄 그래험, 또 동시대 세계전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종들에까지 확장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이런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고승욱은 김밥을 만들어 여기다가 ‘밥아트’라는 민중주의적 각색을 했는데, ‘밥아트’의 진정한 아이러니는 밥의 역사에 섞여있는 여러 가지 마음고생을 이해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 같은 맥락에서 황세준은 최근 공성훈의 그림을 이렇게 분석했다. “작가는 혐오하기 위해 인공적인 것을 날 것으로 강조하고, 강조된 날 것의 인공성에 매혹 당한다. 그것이 공성훈의 작업이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 남한의 모습을 고발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그것에 매혹되는 실존을 통해 혐오하는 방식. 또는 내면 없는 고통의 조립을 통해 외면이 곧 내면임을 입증하는 방식” 이다.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은 그러나,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만도 아니다. 서울의 속도 체험은 잦은 변화로 인한 일상의 재미, 순간적으로 발산하는 에너지, 분단의 통일로의 반전, 한국이 곧 선진국이 되리라는 때로 건전할 수도 있는 희망 따위를 포함한다. 서유럽, 일본, 북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 짜릿한 변화의 즐거움. 이것은 아마도 윤정미와 함진의 플라스틱-유토피아에서 다소 연극적인 비평으로, 고승욱의 반-생산적(anti-productive)인 놀이에서 ‘발랄한 장자(壯子)’의 태도로 나타나는 바일 것이다. 플라잉시티는 이러한 긍정의 힘을 건축적 상상과 결합한다.
지금도 전철을 타고 서울 북쪽의 변두리에서 시내로 들어 가다 보면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지나치게 되는데, 이것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한 마을을 철거한 현장이다. 이러한 현장은 플라잉시티가 ‘예술적 영감’을 얻는 곳이다. 플라잉시티는 서울의 난개발 기억을 하나의 유희적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해방적 상상력의 소스로 전환시킨다. 사실 김상길의 사진에서 위생적 공간으로 나타나고 김범의 청사진 드로잉에 우울한 역상으로 나타나듯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모더니즘적 의지는 여전히 서구 민주주의와 기능주의 도시계획의 큰 줄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플라잉시티는 헬리오 오이티시카(Hélio Oiticica)나 상황주의자(Situationist)들의 구상과 유사하게, 오히려 난개발 체험로부터 제3세계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하는 쪽이다. 그것은 미셸 푸코가 설명하는 것처럼 일상과 내면에 스며드는 미시적 권력관계보다 훨씬 폭력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보다 훨씬 엉성한 사회가 갖는 여전히 독특한 개방성과 일상의 여유분들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특히 우주선도 만든다는 청계천의 ‘창조적 노동자’의 발명과 서울의 복잡한 골목을 누비는 어린이의 심리-지리적 상상은, 다시 한국적 고도성장의 에너지 원천을 변증법적으로 되먹임하여 설명해준다. 한국식 표현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몸으로 때우는’ 힘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시야에서 보게 되면, 김범의 드로잉은 우울한 자아의 투영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이 엉성한 사회, 효율적 구조를 강변하지만 실은 매우 비효율적인 낭비사회에 대한 노련하고 지혜로운 해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 김상길 사진 속의 매우 기능적인 건물들은, 너무 엉성하지 않은 척 하기에 뭔가 수상하고 결함을 지닌 것처럼 보이기에 이른다.
패스트 브레이크Fast Break란 흔히 스포츠, 특히 농구나 배구 경기에서 상대편이 방어 태세를 가다듬기 전에 재빨리 공격하여 득점을 노리는 속공速攻을 뜻한다. 이 제목은 먼저, 분위기를 일변하는 신선한 계기, 재충전의 기회, ‘예술적’ 팀워크를 연상시킨다. 나는 한국의 여자배구팀이나 핸드볼 팀이 키 큰 서양선수들을 상대해, 놀라운 팀웍을 구사하며 속공을 취할 때, 한국 근대화의 모든 것을 동시에 떠올리곤 했다. 그 엄청난 투지와 맹목적인 훈련 말이다. 그러나 속공은 다소 기회주의적이라고 할 만큼, 게임의 운치와 적진에 대한 예의를 떨어트린다. 한국의 프로 기사가 싸움바둑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최고수를 물리칠 때, 이러한 집요하고 놀라운 수읽기가 어쩐지 바둑의 아취를 빼앗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국사회가 공격적인 마케팅과 새로움의 찬양을 통해, 세계에서 전반적으로 예의를 떨어트리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류’의 중심 역할을 하는 한국의 TV연속극은, 일본에서는 향수를 자극할 것이고 중국과 동남아에서는 근미래의 일로 보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속공의 또 다른 형태인 일종의 시간차공격이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무역에 기초한 한국경제나, 서구문화 수용 정도도 크게 보면 이러한 시차의 유리한 면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옛날식으로 다소 촌스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우리가 술자리에서 나누는 직관적 얘기라고 해서, 격식을 갖춘 글에서 꼭 회피해야 할 필요는 없다. 동시대의 한국미술이 동아시아에서는 어떤 점에서 유리한가? 나는 그것이 중국이나 일본의 미술에서 찾기 어려운, 섬세한 반성적 힘에 있다고 느낀다. 중국과 일본의 미술에 과문하지만, 현대미술에 있어서만은 한국의 미술이 훨씬 덜 선정적으로 보이며, 비교적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마르크스주의든 유가(儒家)의 관습이든 설사 그것이 각각 반쪽만 남았다 할지라도, 급진적 사고와 수신(修身)문화, 미완된 근대주의 등의 복잡 다양한 흔적들이 분단과 압축성장, 식민화, 도시화의 단절된 시간경험 속에서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시간차 공격이 아니라, 동아시아 시공간의 보편성이 다시 문제가 된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란 문학비평가는, 포스트모더니스트 정치론이 득세한 것은, 과거의 정치적 문제들이 사라졌거나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들이 당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로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트라우마가 더 깊이 개인의 심리 속으로 숨어들어가거나, 아예 잊혀지게 될 시점에서 시장 지상주의와 새로운 형식주의가 나타날 가능성은 전반적으로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물신화된 비판과 ‘예술을 위하지 않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답답한 경계들도 해체된다. 이 전시에서 보이듯이, 오늘의 한국 작가들은 확실히 해석의 규범들로부터 상당히 해방되었으며, 관능을 윤리의 방에 가두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당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허감을 해결해야 하는 압박 또한 커진다. 이것은 결국 역사의 연속과 사람 사이의 연대에 대한 보편적인 꿈을 향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은 너무 장엄한 것인가? 여기 전시된 김범의 ‘무제’ (2002, 종이)에 서로 의지해 매달려 있는 사람 형상은, 쉽게 찢어질 수 있는 종이쪼가리지만 그래서 더 장엄해 보인다.
Limitation of Fast Break
Park Chan-kyong (Artist)
In the last few decades, mapping Korean contemporary art following a fixed topographical method has become either too difficult or it has lost its incentive. This condition can be assumed to stem from epistemological topography that is no longer as vivid as it used to be, and this is not only in the Korean society but it also exists at the level of international practice. Currently, the Korean and ‘international’ horizon of political ideology meets, yet it is still differentiated because of the astonishing history and reality of Korea’s divided constitution. Not ‘division’ as a sub-theme in politics, but ‘division’ as a literary metaphor that represents one of the essential strengths that alludes to the psychopathology of the Korean peninsula.
From a foreigner’s point of view at an international level, ‘division’ might be simply arranged as a regional by-product of the east-west cold war, but the situation may appear very different considering that the closed-off characteristics of a divided society actually comes from the isolation of a local resident from outer gaze or recognition. For example, even now, I still read the pink and blue colours in Yoon Jeong-mee’s photographs as the emblematic colours of the North and South Korea. The term division here is what can be called ‘military modernity’; from the songs that children sing to familial relationships, the east-west conflict, and religious prejudices are all extended and pushed together inside the space of a powerful loci. The circumstances are the same in Korean contemporary art. In other words, there is the removal of history in western contemporary art, or the obstinacy of connecting the revenues of abstract expression!ism with the wounds of Korean War. Furthermore, through the forceful university authority, heretical thoughts are barred. Above all, the safe synthesis of formalism and Orientalism is something I cannot reflect on independent of the ‘distortion’ in the whole society caused by a divided constitution. The artists introduced here probably have one foot in the group of first generation and one foot half way out of this era.
Many people would probably regard this kind of description as a habit of speech by a man in his early forties still stuck in the 80s. In actuality, while meeting and dining with a foreign curator in an area massed with galleries such as Insa-dong or Sagan-dong in Seoul, the environmental scenery of Seoul gradually robs away my words of persuasion. I cannot even begin to talk about cafes in Seoul’s Gangnam, an area densely populated with financial centres and up-scale boutiques. Unfortunately, a guided tour of the DMZ wouldn’t change this situation greatly either, as DMZ has now become a tensionless tourist site. Now, about the only place where division can be perceived is in theatres where the trauma of Korean War and division is used occasionally to make blockbuster movies. Nevertheless, this sensation of division hardly exists anymore. At the same time, regardless of the complicated definitions of freedom, it is fair to say that the freedom enjoyed by personal and interest groups in Korea for the last twenty years has been unleashed like an explosion as though they were venting in spite. This is not simply a result of radical changes but a form of dramatic reversion.
Even if the actual and serious perception of reality or intervention has been scattered to the point that it can no longer be held together in daily life due to the phenomenon of nomadic spirit that dispossesses reality or a suspended meaning, it is import!ant to point out that this new actuality is another shock for the artist. That is to say, DMZ becoming a tourist site and thereby no longer having a particular shock value itself is uncanny. This is an odd two-sided situation. As Area Park’s photos reveal, the bisection of the whole society in the ‘past’ due to military tension has not changed even today.
During the last twenty years, the traces of the past have been cleared away daily, creating the disconnection from the past, and this caused the process of recurrence to the past to be even more abrupt, thus provoking a sense of bewilderment. For instance, the two candidates of the political parties not currently in power but in favour for the next presidential election are inextricably linked to the 70s’ developmental policy either through human relations or images. Along with politics, religious circles and the press seems to only reinforce the black and white logic of the cold war era. With every publication of a news article related to North Korea, people seem to repeatedly exclaim ‘Ah, yes, North Korea exists!” This is a similar circumstance to Area Park turning his eyes away and focusing rather on the sky and the stars while in the vicinity of the border.
From the standpoint that there is an excessive sense of alienation from the past, it can be observed that the present in 2007 is very different from that of the 80s, yet there are also conditions today that are reminiscent of the early 80s. To re-focus on the iconographic interests of early 80s in the collision of the traditional and the contemporary in Kim Bo-min’s works, or the application of ‘politics of memory’ used by artists such as Jo Hae-jun, Bae Young-whan, Song Sang-hee, Rho Jae-oon and myself, expresses the sense of alienation equally experienced by the two distant generations. However, the sense of alienation about the years leading to the 80s – in the 80s, or the oblivion of the past is mostly due to repression. On the reverse, the present stupor is based on what is generally labeled ‘freedom’. TV documentaries such as Ijeneun malhal su itda (We can say it now) or JInsilpongno (Truth Exposure) that have become popular under the civilian government readily denotes the freedom from suppression and censorship through its titles, but now, this freedom is easily buried amongst several hundred cable channels and the heap of information on the Internet. If artists such as Shin Hak-chul and Park Bul-dong have used montage to create resistance against direct suppression of memory in early 80s Minjoong Art, a great number of artists exhibited in FAST BREAK had to burrow its way through an even narrower and a more discursive memory path which would not be sufficiently illustrated via the limited methodology of a Dadaist montage.
Certainly, the working processes vary among artists. Jo Hae-jun collaborates with his father to uncover personal memories in a classical manner, while Rho Jae-oon combines disbanded fragments of information from the digital world to re-present them in a deferred and uncertain state. Jo Hae-jun resists collective amnesia by vividly describing the details of the past affairs he tries to recollect through his father. On the other hand, Rho Jae-oon portrays collective amnesia and exposes ‘remote existence’ of the past emerging from the other side of the screen. Jo Hae-jun uses manual drawings but in pursuit of photographic details whereas Rho Jae-oon uses many photographic images reminiscent of painterly abstraction. In any case, it is remarkable that this hefty memory recovery process is only to redeem a short period of approximately fifty to sixty years.
Faster a society accelerates; stronger the nostalgia sentimentalizes. The mirror image of the North Korean sokdojeon (speed war; method of working for maximum quantity or highest quality in a given limited time) is the Korean compressed growth. As stated, compressed growth is the process of expanding by maximizing the intensity of labour in a short time. Therefore, the psychological time lapsed in during this period is actually much longer. As such, even if it is a current affair in a physical sense, it can be just as easily forgotten and thus it causes the paradox of a stronger nostalgia. It seems desires, subjects and narratives that were unable to be compressed and could not crisscross with each other in the background of the inhuman period finally bounced out like a spring at certain unexpected moments. In light of this context, Bae Young-hwan’s work utilizes nostalgic codes, but at the same time, positively recognizes and exaggerates the cliche of popular culture thereby turning it upside down. Likewise, I connected elite contemporary music composed by Yoon Isang to the incredibly crude sensibility of sinpa drama(1) of the North Korean democracy. Also, the use of a sentimental title such as ‘Evening Primrose’ for poems written by sex workers in Song Sang-hee’s work is instilled in a similar narrative. Unlike Tarkovsky’s long-take shots, it is a muddy, sexy and more or less a perverse form of ‘compressed nostalgia.’
This kind of narrative turn over and the use of irony indicates the close proximity of current Korean art to ‘historical Pop Art’ (it would be possible to use such terminology if Pop Art can cover an expanded scope including Richard Prince, Cindy Sherman, Dan Graham, and other various figures who have emerged during the period, all over the world). Koh Seung-wook made gim-bab (Korean roll made with fillings such as eggs, pickled radish, meat and vegetables and wrapped in dried seaweed) and adopted the term ‘Bab Art (rice art)’ in a populist sense. However, the real irony of Bab Art is created upon understanding the adversity of history entwined with the history of bab(2). In the same vein, Hwang Se-joon recently analyzed Kong Sung-hun’s paintings as such: “The artist emphasizes the raw in the artificial to create an aversion, and then became fascinated and captivated by the artificiality of the accentuated rawness. That is the method of reviving ‘history’ in Kong Sung-hun’s work. He does not denounce nor explain the appearance of South Korea that has started to become particularly spoilt since late 20th century. Rather, his work shows disgust through fascination to that reality, and proves the appearance is in fact the internal through the assembly of hollow pain.”
This painful process however, is not necessarily entirely painful. The experience of Seoul’s high speed includes: everyday amusement from incessant change, an instantaneous radiation of energy, wish for the unification of the division, and to some extent a healthy hope that Korea will soon be a rich country. The tingling delight brought on by this kind of change is something unique to Korea, not obtainable in Western Europe, Japan, or North America. This circumstance is featured in the rather dramatic critique of plastic-utopia highlighted by Yoon Jeong-mee and Ham Jin and portrayed in the manner of ‘cheerful Chuang Tsu’ in Koh Seung-wook’s anti-productive play. flyingCity combines this sort of affirmative strength with architectural imagination.
Even now, upon entering the city from the outskirts of Seoul to the north in a subway, one passes by a colossal mound of rubbish. This is the site of village demolishment to build new apartments. At these sites, flyingCity gets their ‘artistic inspiration’. flyingCity uses the memory of Seoul’s haphazard urban development as a playground, transforming it into a source for liberating imagination. Depicted as hygienic spaces in Kim Sanggil’s photos and as melancholic inverse images in Kim Beom’s blue-print drawings, the dependence on modernism that dominate the Korean society still cannot free itself from the grand scheme of the western democracy and functionalism of urban planning. In the likeness of the conceptions by Hélio Oiticica or Situationists, flyingCity discovers the positive possibilities for the third world from the first-hand experience of reckless urban planning and deveopment. Although it can be more violent than the microscopic power relationship that permeates into the everyday or the mental state as Michael Foucault describes, these artists rediscover the unique openness and leisure in daily life that a yet-an-imperfect society allows. In particular, the invention of the ‘creative labourer’ of Cheonggyecheon (Stream) who claims to be capable of even crafting a spaceship, the mental-geographical imagination of children that weaves its way through the intricate alleyways in Seoul dialectically re-elucidates the source of energy of the Korean high-speed growth. This is the strength represented in the Korean expression! such as ‘to head at the bare ground’, or ‘to use one’s body as a tool’. In light of this perspective, Kim Beom’s drawings do not end at a reflection of the depressed self, but advances into a skillful and intelligent humour on this slovelny society – a society that quibbles for an efficient formation in its still inefficient and wasteful reality. Also, the seemingly very functional buildings in Kim Sanggil’s photographs try too hard not to appear faulty, thus ends up looking awkward and deficient.
‘Fast Break,’ a term originally referring to a strategic swift attack with the aim of scoring a point before the opponent is able to get in a defensive position in sports such as basketball or volleyball; is applied here to represent a moment to generate a fresh tone, an opportunity for recharge, and to create ‘artistic’ teamwork. I used to reminisce of all aspects of Korean modernization while watching Korean women’s volleyball or handball team compete against tall, western athletes and command an astonishing teamwork. This includes the amazing combative spirit and ruthless training. However, as the original term ‘fast break’ is about opportunity, it lowers the courteousness towards the enemy’s position and the games’ elegance. When Korean professional gisa (skilled baduk player) defeats the most competent players from China or Japan in competitive match of baduk (Korean checkers, known as ‘go’ for Japanese) in a belligerent manner, I am overcome with the thought that this obstinate and astonishing measured movements steal away from the artistry of baduk. Honestly, I believe that through aggressive marketing and the praise of the new, Korean society has contributed to lowered etiquette in the world as a whole.
Korean serial dramas that take on the central role of Hanryu (the Korean Wave), have enjoyed its success due to its ability to stimulate nostalgia in Japan and act as a foreshadower in China and South East Asia of their own close future. This is another form of fast break – a form of delayed spiking. Not only through dramas, but the Korean economy based on trade and the fast acceptance of Western culture, by large, seems to have placed an advantage on Korea based on time difference. If so, let me throw out a rather old-fashioned and rustic question. Just because it is told in an instinctive and straight-forward manner at happy hour, it doesn’t mean that it should be avoided in formal writing. In what ways do Korean contemporary art have advantage in East Asia? I believe it is from the delicate and powerful introspection in Korean art that is difficult to find in Chinese or Japanese art. Although I am not thouroghly knowledgeable in Japanese and Chinese art, as far as contemporary art is concerned, I believe that Korean art appears to be less sensational and it seems to have some sort of courtesy. Whether it is the practice of Marxism or Confucianism, and even if only halves of each remain, the diverse and complex traces of radical thoughts, moral training culture and incomplete modernization still live through the disjointed experience of time from the divided nation, compressed growth, colonization, and urbanization. Namely, it is not delayed spiking but the spatio-temporal universality in East Asia that becomes problematic again.
Terry Eagleton, a literary critic, said that the postmodernist political argument rose to its power not because the past political problems have disappeared or because they have been solved. Instead, he pointed out, it lies in the fact that these matters were difficult to handle immediately. At the point in time when trauma hides deeper into the individual psyche or becomes forgotten entirely, market for markets’ sake mentality and the possibility for an emergence of a new formalism is considered to be greater overall. Still, on the contrary, fetishistic criticism and stifling borders of ‘art made not for the sake of art’ are dismantled. As this exhibition proves, it is certain that current Korean artists have been freed from standardized interpretation, and their desire is no longer trapped in a room of ethics. But at the same time, the pressure grows as they realise the emptiness that comes from the inability to handle the ‘issues too difficult to be handled immediately’. Ultimately, this ends up just being a path towards a universal ubiquitous dream about the solidarity between succession of history and human relationships. Is this phrase too grandiose? Kim Beom’s ‘Untitled’ (2002, paper), exhibited here of human forms dependently suspended together are merely pieces of paper that can be easily torn, but that is essentially why it appears even more sublime.
(1) Sinpa is also called new school drama. It is a form of Korean drama that first appeared in the 20th century. Sinpa drama broke down traditions and rules of classical drama and became a popular form of play that used modern daily lifestyle as its subject. Sinpa drama is not practiced today but it is recorded as a historical movement. It currently plays a very minor or a historical role in performance such as drama, film, radio and comedy. Due to its foundation on democratic rights and nationalism, Sinpa drama never successfully evolved with the changes in society or with newer generations.
(2) Bab, or steamed rice, is a staple food for Koreans.
속공의 한계 Limitation of Fast Break
박찬경 (작가)
최근 십 년간 한국미술을 일정한 작도법에 의해 지도 그리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거나, 그 동기를 잃어버린 듯 하다. 그것은 우선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인식론적인 지형이 예전처럼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세계’의 이념적 정치적 지평과 만나면서도 구별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분단체제라는 놀라운 역사와 현실에서 비롯된다. 정치의 소제목으로서의 ‘분단’이 아니라, 한반도의 정신병리학을 포섭하는 하나의 실질적 힘이자 문학적인 비유로서 ‘분단’이라고 말할 때 말이다.
외국 사람의 시선에서 ‘분단’이라고 하면, 의례 세계적 차원에서 동서 냉전의 지역적 부산물로 간단히 정리될지 모르겠지만, 지역 주민이 외부의 시선이나 인지로부터 고립되는 것이야말로 분단사회의 폐쇄적 특성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황은 매우 다르게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도 내게는 윤정미 사진의 핑크와 블루가 남북한의 색채상징으로 읽힐 정도이다. 분단은 소위 ‘군사적 모더니티’라 불릴 수 있는 사회,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서부터 가족관계, 동서갈등과 종교적 편향에 이르기까지 사회전체를 강력한 힘의 장 속에 밀어 넣었다. 한국 현대 미술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서구현대미술로부터 역사를 제거한다든가, 추상표현주의의 수입을 한국전쟁의 상처와 억지로 연결했다. 또 강력한 대학권력을 통해 이단적 사고를 차단하고, 무엇보다도 형식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안전하게 결합하는 것을, 나는 분단체제로 인한 사회전반의 ‘휨’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아마도 여기 소개되는 작가들은 이러한 시대에서 반쯤 빠져 나온 첫 세대일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記述)을 여전히 80년대에 사로잡힌 40대 초반 남자 작가의 입버릇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실제로 갤러리들이 밀집해있는 서울 인사동이나 사간동의 식당에 앉아서 외국에서 온 큐레이터를 만나는 동안, 서울의 주변풍경은 내가 하는 말의 설득력을 차례로 빼앗아 가버린다. 금융자본과 고급상품 숍들이 밀집해있는 서울 강남의 카페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미 긴장감이라고는 없는 관광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DMZ 투어를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한국에서 분단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가끔씩 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를 사용해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영화관 말고는 거의 없다. 같은 시간 동안, 자유에 관한 복잡한 정의들과 무관하게, 한국에서 개인과 이익집단이 누리는 자유는 최근 20년 동안 마치 한풀이를 하듯이 터져 나왔다고 할만하다. 이것은 단지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극적인 반전이다.
현실감을 박탈하는 정신의 떠돎이랄까, 의미의 부유(浮游)랄까 하는 현상으로 인해, 실제 현실에 대한 심각한 감각이나 개입이 일상에서 부여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흩어져 버렸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새로운 현실자체가 작가들에게는 또 다른 충격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DMZ가 관광지가 되어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는 것 자체가 낯설다. 이는 기묘한 이중적 상황이다. 왜냐하면, 박진영의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군사적 긴장과 그로 인한 사회전체의 양분과 같은 ‘과거’의 일이,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20년 동안 과거의 흔적을 하루가 다르게 걷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걷어내자 과거와의 단절로 인한 그것의 회귀는 더 갑작스럽게 나타나고 우리를 얼떨떨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유리한 상황에 있는 야권의 두 후보는 70년대 개발주의와 인적으로든 이미지로든 연결되어있다. 정치와 함께 종교계와 언론계에서는 냉전시대의 흑백논리가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것 같아 보인다. 북한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아, 그렇지, 북한이 있었지’ 라고 되뇌는 식이다. 박진영이 휴전선 부근에서 차라리 하늘이나 별로 눈을 돌리듯이 말이다.
과거로부터의 지나친 단절감이라는 면에서, 2007년 현재는 80년대와 아주 다르다고 생각되는 동시에, 80년대 초의 상황과 유사한 점도 있다. 김보민의 그림이, 전통과 현대의 충돌이라는 80년대 초의 도상적 관심을 다시 등장시키는 것이나, 나 자신을 포함해 조해준, 배영환, 송상희, 노재운 등이 ‘기억의 정치’를 활용하는 것 등도 이 동떨어진 두 시대가 공히 겪었고 겪고 있는 단절감을 표현한다. 그러나 80년대의 그 이전에 대한 단절감, 또는 과거에 대한 망각은 대부분 억압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 현재의 망각은 대체로 ‘자유’라고 칭해지는 것에 의한 것이다. 문민정부이래 유명해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TV의 과거사 ‘진실폭로’ 프로그램은 억압과 검열로부터의 자유를 이미 제목 자체로 표현하지만, 이제는 수 백 개의 케이블 채널과 인터넷 정보더미 사이에 쉽게 묻혀버릴 자유를 뜻한다. 신학철, 박불똥 등 80년대 초의 민중미술이 기억의 직접적인 억압에 저항하는 몽타주를 사용했다면, '패스트 브레이크Fast Break' 전에 소개되는 상당수의 미술은 다다이스트적 몽타주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훨씬 산만해진 기억회로를 뚫고 나가야 했다.
물론 그 방식은 작가마다 다양하다. 조해준이 아버지와의 협업을 통해, 고전적인 방식으로 개인적 기억을 회복하는 것으로 대응한다면, 노재운은 디지털 세계에서 해체된 정보 파편들을 단지 유보적이고 불확실한 상태로 결합시킨다. 조해준이 아버지를 통해 기억해내려고 하는 과거사의 세부를 촘촘히 묘사하면서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저항한다면, 노재운은 오히려 집단적 기억상실증을 묘사하면서 과거의 ‘아득한 존재감’을 화면의 뒤쪽으로부터 서서히 나타낸다. 조해준은 그림을 사용하지만 오히려 사진적인 세부를 추구하고, 노재운은 사진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림의 추상성에 더 가깝다. 어쨌거나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기억을 되살리는 노력이 길게 잡아야 불과 50-60년에 걸친 짧은 시간이라는 점이다.
빨리 돌아가는 사회일수록 향수는 강한 법이다. 북한 ‘속도전’의 거울인 남한의 압축성장은 말 그대로, 짧은 시간을 노동의 강도를 극대화함으로써 늘려 살아온 과정이기 때문에, 그 심리적 시간은 사실상 훨씬 길다. 따라서 물리적으로는 최근의 사건이라고 해도, 그것이 쉽게 잊혀질 수 있는 만큼, 향수도 강렬해지는 역설이 생겨난다. 이것은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압축될 수 없었던 것, 비인간적 시간의 배후에서 늘 합류할 수 없었던 욕망, 주체, 내러티브 등이 스프링처럼 어느 순간에 튀어나오는 것과도 같다. 배영환의 작업이 향수적 코드를 사용하면서도, 대중문화의 클리쉐를 적극 인정(recognize)하고 과장함으로써 오히려 뒤집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나 역시도 윤이상의 엘리트 현대음악을 북한 민족주의의 거의 저승에나 있을법한 신파성과 연결하면서 비슷한 시도를 했다. 송상희가 외국의 성노동자가 지은 시에다가 ‘달맞이꽃’이라는 센티멘탈한 제목을 붙인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이것은 타르코프스키의 롱테이크와는 달리, 질척거리고 섹시하며 다소 변태적인 ‘압축 향수’이다.
이런 맥락 뒤집기라든가, 아이러니의 사용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한국미술은 오히려 ‘역사적 팝아트’(팝아트를 리차드 프린스나 신디 셔먼, 댄 그래험, 또 동시대 세계전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종들에까지 확장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이런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고승욱은 김밥을 만들어 여기다가 ‘밥아트’라는 민중주의적 각색을 했는데, ‘밥아트’의 진정한 아이러니는 밥의 역사에 섞여있는 여러 가지 마음고생을 이해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 같은 맥락에서 황세준은 최근 공성훈의 그림을 이렇게 분석했다. “작가는 혐오하기 위해 인공적인 것을 날 것으로 강조하고, 강조된 날 것의 인공성에 매혹 당한다. 그것이 공성훈의 작업이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 남한의 모습을 고발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그것에 매혹되는 실존을 통해 혐오하는 방식. 또는 내면 없는 고통의 조립을 통해 외면이 곧 내면임을 입증하는 방식” 이다.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은 그러나,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만도 아니다. 서울의 속도 체험은 잦은 변화로 인한 일상의 재미, 순간적으로 발산하는 에너지, 분단의 통일로의 반전, 한국이 곧 선진국이 되리라는 때로 건전할 수도 있는 희망 따위를 포함한다. 서유럽, 일본, 북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 짜릿한 변화의 즐거움. 이것은 아마도 윤정미와 함진의 플라스틱-유토피아에서 다소 연극적인 비평으로, 고승욱의 반-생산적(anti-productive)인 놀이에서 ‘발랄한 장자(壯子)’의 태도로 나타나는 바일 것이다. 플라잉시티는 이러한 긍정의 힘을 건축적 상상과 결합한다.
지금도 전철을 타고 서울 북쪽의 변두리에서 시내로 들어 가다 보면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지나치게 되는데, 이것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한 마을을 철거한 현장이다. 이러한 현장은 플라잉시티가 ‘예술적 영감’을 얻는 곳이다. 플라잉시티는 서울의 난개발 기억을 하나의 유희적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해방적 상상력의 소스로 전환시킨다. 사실 김상길의 사진에서 위생적 공간으로 나타나고 김범의 청사진 드로잉에 우울한 역상으로 나타나듯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모더니즘적 의지는 여전히 서구 민주주의와 기능주의 도시계획의 큰 줄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플라잉시티는 헬리오 오이티시카(Hélio Oiticica)나 상황주의자(Situationist)들의 구상과 유사하게, 오히려 난개발 체험로부터 제3세계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하는 쪽이다. 그것은 미셸 푸코가 설명하는 것처럼 일상과 내면에 스며드는 미시적 권력관계보다 훨씬 폭력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보다 훨씬 엉성한 사회가 갖는 여전히 독특한 개방성과 일상의 여유분들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특히 우주선도 만든다는 청계천의 ‘창조적 노동자’의 발명과 서울의 복잡한 골목을 누비는 어린이의 심리-지리적 상상은, 다시 한국적 고도성장의 에너지 원천을 변증법적으로 되먹임하여 설명해준다. 한국식 표현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몸으로 때우는’ 힘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시야에서 보게 되면, 김범의 드로잉은 우울한 자아의 투영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이 엉성한 사회, 효율적 구조를 강변하지만 실은 매우 비효율적인 낭비사회에 대한 노련하고 지혜로운 해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 김상길 사진 속의 매우 기능적인 건물들은, 너무 엉성하지 않은 척 하기에 뭔가 수상하고 결함을 지닌 것처럼 보이기에 이른다.
패스트 브레이크Fast Break란 흔히 스포츠, 특히 농구나 배구 경기에서 상대편이 방어 태세를 가다듬기 전에 재빨리 공격하여 득점을 노리는 속공速攻을 뜻한다. 이 제목은 먼저, 분위기를 일변하는 신선한 계기, 재충전의 기회, ‘예술적’ 팀워크를 연상시킨다. 나는 한국의 여자배구팀이나 핸드볼 팀이 키 큰 서양선수들을 상대해, 놀라운 팀웍을 구사하며 속공을 취할 때, 한국 근대화의 모든 것을 동시에 떠올리곤 했다. 그 엄청난 투지와 맹목적인 훈련 말이다. 그러나 속공은 다소 기회주의적이라고 할 만큼, 게임의 운치와 적진에 대한 예의를 떨어트린다. 한국의 프로 기사가 싸움바둑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최고수를 물리칠 때, 이러한 집요하고 놀라운 수읽기가 어쩐지 바둑의 아취를 빼앗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국사회가 공격적인 마케팅과 새로움의 찬양을 통해, 세계에서 전반적으로 예의를 떨어트리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류’의 중심 역할을 하는 한국의 TV연속극은, 일본에서는 향수를 자극할 것이고 중국과 동남아에서는 근미래의 일로 보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속공의 또 다른 형태인 일종의 시간차공격이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무역에 기초한 한국경제나, 서구문화 수용 정도도 크게 보면 이러한 시차의 유리한 면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옛날식으로 다소 촌스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우리가 술자리에서 나누는 직관적 얘기라고 해서, 격식을 갖춘 글에서 꼭 회피해야 할 필요는 없다. 동시대의 한국미술이 동아시아에서는 어떤 점에서 유리한가? 나는 그것이 중국이나 일본의 미술에서 찾기 어려운, 섬세한 반성적 힘에 있다고 느낀다. 중국과 일본의 미술에 과문하지만, 현대미술에 있어서만은 한국의 미술이 훨씬 덜 선정적으로 보이며, 비교적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마르크스주의든 유가(儒家)의 관습이든 설사 그것이 각각 반쪽만 남았다 할지라도, 급진적 사고와 수신(修身)문화, 미완된 근대주의 등의 복잡 다양한 흔적들이 분단과 압축성장, 식민화, 도시화의 단절된 시간경험 속에서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시간차 공격이 아니라, 동아시아 시공간의 보편성이 다시 문제가 된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란 문학비평가는, 포스트모더니스트 정치론이 득세한 것은, 과거의 정치적 문제들이 사라졌거나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들이 당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로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트라우마가 더 깊이 개인의 심리 속으로 숨어들어가거나, 아예 잊혀지게 될 시점에서 시장 지상주의와 새로운 형식주의가 나타날 가능성은 전반적으로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물신화된 비판과 ‘예술을 위하지 않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답답한 경계들도 해체된다. 이 전시에서 보이듯이, 오늘의 한국 작가들은 확실히 해석의 규범들로부터 상당히 해방되었으며, 관능을 윤리의 방에 가두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당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허감을 해결해야 하는 압박 또한 커진다. 이것은 결국 역사의 연속과 사람 사이의 연대에 대한 보편적인 꿈을 향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은 너무 장엄한 것인가? 여기 전시된 김범의 ‘무제’ (2002, 종이)에 서로 의지해 매달려 있는 사람 형상은, 쉽게 찢어질 수 있는 종이쪼가리지만 그래서 더 장엄해 보인다.
Limitation of Fast Break
Park Chan-kyong (Artist)
In the last few decades, mapping Korean contemporary art following a fixed topographical method has become either too difficult or it has lost its incentive. This condition can be assumed to stem from epistemological topography that is no longer as vivid as it used to be, and this is not only in the Korean society but it also exists at the level of international practice. Currently, the Korean and ‘international’ horizon of political ideology meets, yet it is still differentiated because of the astonishing history and reality of Korea’s divided constitution. Not ‘division’ as a sub-theme in politics, but ‘division’ as a literary metaphor that represents one of the essential strengths that alludes to the psychopathology of the Korean peninsula.
From a foreigner’s point of view at an international level, ‘division’ might be simply arranged as a regional by-product of the east-west cold war, but the situation may appear very different considering that the closed-off characteristics of a divided society actually comes from the isolation of a local resident from outer gaze or recognition. For example, even now, I still read the pink and blue colours in Yoon Jeong-mee’s photographs as the emblematic colours of the North and South Korea. The term division here is what can be called ‘military modernity’; from the songs that children sing to familial relationships, the east-west conflict, and religious prejudices are all extended and pushed together inside the space of a powerful loci. The circumstances are the same in Korean contemporary art. In other words, there is the removal of history in western contemporary art, or the obstinacy of connecting the revenues of abstract expression!ism with the wounds of Korean War. Furthermore, through the forceful university authority, heretical thoughts are barred. Above all, the safe synthesis of formalism and Orientalism is something I cannot reflect on independent of the ‘distortion’ in the whole society caused by a divided constitution. The artists introduced here probably have one foot in the group of first generation and one foot half way out of this era.
Many people would probably regard this kind of description as a habit of speech by a man in his early forties still stuck in the 80s. In actuality, while meeting and dining with a foreign curator in an area massed with galleries such as Insa-dong or Sagan-dong in Seoul, the environmental scenery of Seoul gradually robs away my words of persuasion. I cannot even begin to talk about cafes in Seoul’s Gangnam, an area densely populated with financial centres and up-scale boutiques. Unfortunately, a guided tour of the DMZ wouldn’t change this situation greatly either, as DMZ has now become a tensionless tourist site. Now, about the only place where division can be perceived is in theatres where the trauma of Korean War and division is used occasionally to make blockbuster movies. Nevertheless, this sensation of division hardly exists anymore. At the same time, regardless of the complicated definitions of freedom, it is fair to say that the freedom enjoyed by personal and interest groups in Korea for the last twenty years has been unleashed like an explosion as though they were venting in spite. This is not simply a result of radical changes but a form of dramatic reversion.
Even if the actual and serious perception of reality or intervention has been scattered to the point that it can no longer be held together in daily life due to the phenomenon of nomadic spirit that dispossesses reality or a suspended meaning, it is import!ant to point out that this new actuality is another shock for the artist. That is to say, DMZ becoming a tourist site and thereby no longer having a particular shock value itself is uncanny. This is an odd two-sided situation. As Area Park’s photos reveal, the bisection of the whole society in the ‘past’ due to military tension has not changed even today.
During the last twenty years, the traces of the past have been cleared away daily, creating the disconnection from the past, and this caused the process of recurrence to the past to be even more abrupt, thus provoking a sense of bewilderment. For instance, the two candidates of the political parties not currently in power but in favour for the next presidential election are inextricably linked to the 70s’ developmental policy either through human relations or images. Along with politics, religious circles and the press seems to only reinforce the black and white logic of the cold war era. With every publication of a news article related to North Korea, people seem to repeatedly exclaim ‘Ah, yes, North Korea exists!” This is a similar circumstance to Area Park turning his eyes away and focusing rather on the sky and the stars while in the vicinity of the border.
From the standpoint that there is an excessive sense of alienation from the past, it can be observed that the present in 2007 is very different from that of the 80s, yet there are also conditions today that are reminiscent of the early 80s. To re-focus on the iconographic interests of early 80s in the collision of the traditional and the contemporary in Kim Bo-min’s works, or the application of ‘politics of memory’ used by artists such as Jo Hae-jun, Bae Young-whan, Song Sang-hee, Rho Jae-oon and myself, expresses the sense of alienation equally experienced by the two distant generations. However, the sense of alienation about the years leading to the 80s – in the 80s, or the oblivion of the past is mostly due to repression. On the reverse, the present stupor is based on what is generally labeled ‘freedom’. TV documentaries such as Ijeneun malhal su itda (We can say it now) or JInsilpongno (Truth Exposure) that have become popular under the civilian government readily denotes the freedom from suppression and censorship through its titles, but now, this freedom is easily buried amongst several hundred cable channels and the heap of information on the Internet. If artists such as Shin Hak-chul and Park Bul-dong have used montage to create resistance against direct suppression of memory in early 80s Minjoong Art, a great number of artists exhibited in FAST BREAK had to burrow its way through an even narrower and a more discursive memory path which would not be sufficiently illustrated via the limited methodology of a Dadaist montage.
Certainly, the working processes vary among artists. Jo Hae-jun collaborates with his father to uncover personal memories in a classical manner, while Rho Jae-oon combines disbanded fragments of information from the digital world to re-present them in a deferred and uncertain state. Jo Hae-jun resists collective amnesia by vividly describing the details of the past affairs he tries to recollect through his father. On the other hand, Rho Jae-oon portrays collective amnesia and exposes ‘remote existence’ of the past emerging from the other side of the screen. Jo Hae-jun uses manual drawings but in pursuit of photographic details whereas Rho Jae-oon uses many photographic images reminiscent of painterly abstraction. In any case, it is remarkable that this hefty memory recovery process is only to redeem a short period of approximately fifty to sixty years.
Faster a society accelerates; stronger the nostalgia sentimentalizes. The mirror image of the North Korean sokdojeon (speed war; method of working for maximum quantity or highest quality in a given limited time) is the Korean compressed growth. As stated, compressed growth is the process of expanding by maximizing the intensity of labour in a short time. Therefore, the psychological time lapsed in during this period is actually much longer. As such, even if it is a current affair in a physical sense, it can be just as easily forgotten and thus it causes the paradox of a stronger nostalgia. It seems desires, subjects and narratives that were unable to be compressed and could not crisscross with each other in the background of the inhuman period finally bounced out like a spring at certain unexpected moments. In light of this context, Bae Young-hwan’s work utilizes nostalgic codes, but at the same time, positively recognizes and exaggerates the cliche of popular culture thereby turning it upside down. Likewise, I connected elite contemporary music composed by Yoon Isang to the incredibly crude sensibility of sinpa drama(1) of the North Korean democracy. Also, the use of a sentimental title such as ‘Evening Primrose’ for poems written by sex workers in Song Sang-hee’s work is instilled in a similar narrative. Unlike Tarkovsky’s long-take shots, it is a muddy, sexy and more or less a perverse form of ‘compressed nostalgia.’
This kind of narrative turn over and the use of irony indicates the close proximity of current Korean art to ‘historical Pop Art’ (it would be possible to use such terminology if Pop Art can cover an expanded scope including Richard Prince, Cindy Sherman, Dan Graham, and other various figures who have emerged during the period, all over the world). Koh Seung-wook made gim-bab (Korean roll made with fillings such as eggs, pickled radish, meat and vegetables and wrapped in dried seaweed) and adopted the term ‘Bab Art (rice art)’ in a populist sense. However, the real irony of Bab Art is created upon understanding the adversity of history entwined with the history of bab(2). In the same vein, Hwang Se-joon recently analyzed Kong Sung-hun’s paintings as such: “The artist emphasizes the raw in the artificial to create an aversion, and then became fascinated and captivated by the artificiality of the accentuated rawness. That is the method of reviving ‘history’ in Kong Sung-hun’s work. He does not denounce nor explain the appearance of South Korea that has started to become particularly spoilt since late 20th century. Rather, his work shows disgust through fascination to that reality, and proves the appearance is in fact the internal through the assembly of hollow pain.”
This painful process however, is not necessarily entirely painful. The experience of Seoul’s high speed includes: everyday amusement from incessant change, an instantaneous radiation of energy, wish for the unification of the division, and to some extent a healthy hope that Korea will soon be a rich country. The tingling delight brought on by this kind of change is something unique to Korea, not obtainable in Western Europe, Japan, or North America. This circumstance is featured in the rather dramatic critique of plastic-utopia highlighted by Yoon Jeong-mee and Ham Jin and portrayed in the manner of ‘cheerful Chuang Tsu’ in Koh Seung-wook’s anti-productive play. flyingCity combines this sort of affirmative strength with architectural imagination.
Even now, upon entering the city from the outskirts of Seoul to the north in a subway, one passes by a colossal mound of rubbish. This is the site of village demolishment to build new apartments. At these sites, flyingCity gets their ‘artistic inspiration’. flyingCity uses the memory of Seoul’s haphazard urban development as a playground, transforming it into a source for liberating imagination. Depicted as hygienic spaces in Kim Sanggil’s photos and as melancholic inverse images in Kim Beom’s blue-print drawings, the dependence on modernism that dominate the Korean society still cannot free itself from the grand scheme of the western democracy and functionalism of urban planning. In the likeness of the conceptions by Hélio Oiticica or Situationists, flyingCity discovers the positive possibilities for the third world from the first-hand experience of reckless urban planning and deveopment. Although it can be more violent than the microscopic power relationship that permeates into the everyday or the mental state as Michael Foucault describes, these artists rediscover the unique openness and leisure in daily life that a yet-an-imperfect society allows. In particular, the invention of the ‘creative labourer’ of Cheonggyecheon (Stream) who claims to be capable of even crafting a spaceship, the mental-geographical imagination of children that weaves its way through the intricate alleyways in Seoul dialectically re-elucidates the source of energy of the Korean high-speed growth. This is the strength represented in the Korean expression! such as ‘to head at the bare ground’, or ‘to use one’s body as a tool’. In light of this perspective, Kim Beom’s drawings do not end at a reflection of the depressed self, but advances into a skillful and intelligent humour on this slovelny society – a society that quibbles for an efficient formation in its still inefficient and wasteful reality. Also, the seemingly very functional buildings in Kim Sanggil’s photographs try too hard not to appear faulty, thus ends up looking awkward and deficient.
‘Fast Break,’ a term originally referring to a strategic swift attack with the aim of scoring a point before the opponent is able to get in a defensive position in sports such as basketball or volleyball; is applied here to represent a moment to generate a fresh tone, an opportunity for recharge, and to create ‘artistic’ teamwork. I used to reminisce of all aspects of Korean modernization while watching Korean women’s volleyball or handball team compete against tall, western athletes and command an astonishing teamwork. This includes the amazing combative spirit and ruthless training. However, as the original term ‘fast break’ is about opportunity, it lowers the courteousness towards the enemy’s position and the games’ elegance. When Korean professional gisa (skilled baduk player) defeats the most competent players from China or Japan in competitive match of baduk (Korean checkers, known as ‘go’ for Japanese) in a belligerent manner, I am overcome with the thought that this obstinate and astonishing measured movements steal away from the artistry of baduk. Honestly, I believe that through aggressive marketing and the praise of the new, Korean society has contributed to lowered etiquette in the world as a whole.
Korean serial dramas that take on the central role of Hanryu (the Korean Wave), have enjoyed its success due to its ability to stimulate nostalgia in Japan and act as a foreshadower in China and South East Asia of their own close future. This is another form of fast break – a form of delayed spiking. Not only through dramas, but the Korean economy based on trade and the fast acceptance of Western culture, by large, seems to have placed an advantage on Korea based on time difference. If so, let me throw out a rather old-fashioned and rustic question. Just because it is told in an instinctive and straight-forward manner at happy hour, it doesn’t mean that it should be avoided in formal writing. In what ways do Korean contemporary art have advantage in East Asia? I believe it is from the delicate and powerful introspection in Korean art that is difficult to find in Chinese or Japanese art. Although I am not thouroghly knowledgeable in Japanese and Chinese art, as far as contemporary art is concerned, I believe that Korean art appears to be less sensational and it seems to have some sort of courtesy. Whether it is the practice of Marxism or Confucianism, and even if only halves of each remain, the diverse and complex traces of radical thoughts, moral training culture and incomplete modernization still live through the disjointed experience of time from the divided nation, compressed growth, colonization, and urbanization. Namely, it is not delayed spiking but the spatio-temporal universality in East Asia that becomes problematic again.
Terry Eagleton, a literary critic, said that the postmodernist political argument rose to its power not because the past political problems have disappeared or because they have been solved. Instead, he pointed out, it lies in the fact that these matters were difficult to handle immediately. At the point in time when trauma hides deeper into the individual psyche or becomes forgotten entirely, market for markets’ sake mentality and the possibility for an emergence of a new formalism is considered to be greater overall. Still, on the contrary, fetishistic criticism and stifling borders of ‘art made not for the sake of art’ are dismantled. As this exhibition proves, it is certain that current Korean artists have been freed from standardized interpretation, and their desire is no longer trapped in a room of ethics. But at the same time, the pressure grows as they realise the emptiness that comes from the inability to handle the ‘issues too difficult to be handled immediately’. Ultimately, this ends up just being a path towards a universal ubiquitous dream about the solidarity between succession of history and human relationships. Is this phrase too grandiose? Kim Beom’s ‘Untitled’ (2002, paper), exhibited here of human forms dependently suspended together are merely pieces of paper that can be easily torn, but that is essentially why it appears even more sublime.
(1) Sinpa is also called new school drama. It is a form of Korean drama that first appeared in the 20th century. Sinpa drama broke down traditions and rules of classical drama and became a popular form of play that used modern daily lifestyle as its subject. Sinpa drama is not practiced today but it is recorded as a historical movement. It currently plays a very minor or a historical role in performance such as drama, film, radio and comedy. Due to its foundation on democratic rights and nationalism, Sinpa drama never successfully evolved with the changes in society or with newer generations.
(2) Bab, or steamed rice, is a staple food for Koreans.
박찬경 <내 작업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메모>
1. 내 작업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메모
내 작업 중에 영화에 관련된 것은 ‘블랙박스; 냉전이미지의 기억’(1997), 세트(2000), 파워통로(2004) 세 가지 이다. 오늘 발표에서는 이 중에 ‘블랙박스,,,’를 생략하고, 나머지 두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작품을 보려고 한다. (여기 소개한 순서는 제작년도로는 역순이다.)
이 세 작업은 모두 분단과 냉전을 소재로 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분단이 어떤 ‘이미지’이고 어떤 이미지가 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파워 통로 Power Passage
2004
파워포인트, 비디오, 설치
이 작업은 거의 동시대에 벌어진 두개의 사건에 기초한 것이다. 하나는 1975년 미소 우주선 도킹 프로젝트(ASTP)이며, 다른 하나는 그 무렵에 발견된 ‘땅굴’이다. 같은 ‘냉전’ 이라고 해도 세계적 차원과 국지적 차원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나는 하늘과 땅에서 벌어진 두 사건을 중심으로,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이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이것은 탐정이 놀랍도록 부패한 진실을 찾아가는 ‘필름 느와르’의 플롯을 빌려온 것이다. 이 작업은 마치, 비밀수사관이 동료들 앞에서 수사경과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처럼 구성되어있다. 이 프리젠테이션에는, 정치권력-영화-음모론-대기업-세계사적 배경-좌파적 경구-과학기술정보 등이 뒤얽혀있다. 물론 그 내용은 심각한 것이고, 표현은 때로 ‘시적 詩的’으로 보이긴 하지만, 상식의 눈으로 볼 때 그 내용이나 형식이나 대체로 황당하다. 왜냐하면 역사의 진행과 내역 자체가 상투적인 예술적 상상들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황당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간략히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데탕트가 시작된 1972년 닉슨(Rechard M. Nixon)과 구소련의 코시긴(Aleksey Nikolayevich Kosygin)은 우주 랑데부 계획을 승인하였고, 이는 1975년에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ASTP; Apollo-Soyuz Test Project)라는 이름으로 성사되었다. 이것은 실제로는 미소 모두 군사-과학기술의 독점적 권력을 또한번 비축한다는 것 밖에는 특별히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지만, 하나의 상징이미지로서는 대단한 우주 스펙타클이다. 더구나 ASTP의 구상은 영화 ‘마룬드(Marooned)'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존 스터지(John Sturges)가 감독하고 그레고리 펙, 진 핵크만이 출연한 영화 ‘마룬드’는 소설에 기초해서 1969년에 만들어졌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U.S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필립 핸들러(Philip Handler)라는 사람은 1970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소련 우주사업 관련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자세히 묘사하며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다고 한다. 미국영화에서 미국인 우주인의 생명을 구한 소련 우주인이 영웅적으로 그려진 것은, 당시 소련 당국자들을 놀라게 했다.
미소 사이의 우주 랑데부가 성사될 당시 한국에서는, 냉전의 주역들인 미-소, 미-중이 누렸던 데탕트 조차도 없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있었지만, 이는 새로운 대결을 위한 일시적인 명분이었을 뿐이었다. 제2땅굴은 ASTP가 성사된 바로 그 해, 정확히 넉 달 전에 발견되었다. 땅굴은 진정으로 음모론적이다. 당시 정부에서 만든 홍보 자료를 보면, 땅굴이 왜 북쪽에서 남쪽으로 판 것인가에 대한 다소 강박적인 해설이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땅굴은 어느 쪽에서 파건 어느 쪽에서든 이용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어떻게 서로 얽히고 섥히게 되나? ASTP의 핵심 도킹기술을 개발한 회사는 한반도에 배치된 무기들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삼성과 관계가 있다. 우주경쟁에 관한 미국영화들은 NASA의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친다. 한반도에서도 인공위성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은 미사일발사실험을 인공위성 실험이라고 주장한다. 앞으로 남북한 관계를 다루는 영화들이 남북한 우주선 랑데부를 다루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서울이 대규모 땅굴들 위에 있다고 주장해온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남굴사)’은, 땅굴을 증명하기 위해 파헤친 거대한 구덩이에서 베트남제 호미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기타 등등. 우리는 애써서 음모를 파헤치고, 그것이 거대한 음모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강박적으로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이미 공개된 사실 자체가 그러한 과장이나 강박을 충분히 능가하며, 이를 무색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이 작업의 다른 한 축은,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에 등장하는 세편의 미국영화를 대한뉴스의 땅굴장면, 또 신파가요의 대사와 섞어 편집한 비디오이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고 열심히 편집한 장면은 영화 ‘마룬드’에서 소련 우주비행사가 미국 우주비행사를 우주에서 놓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모리스 블랑쇼가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 시킨다. 이미지는, “ 부재의 증후가 아니라 모든 것이 결핍되어야 할 때도 존속하는 낯설고 과도한 존재의 흔적이다. 그것은 부재하는 무엇인가의 지표가 아니라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무엇인가의 주장이다.” 내게 이 이미지는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무엇인가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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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SETS
2000 , 2004(재제작)
160개의 35mm 사진 슬라이드 연속 상영
15분
‘세트’에서는 북한의 조선영화촬영소 서울거리, 남한의 서울종합촬영소, 남한 군부대안의 시가전 훈련장 사진들이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간 순서로 배열되어있다. 여기서 시간 순서란 이 세트들이 건설된 시간이 아니라, 이 세트들이 모방하여 나타낸 시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북한 조선영화촬영소는 1930년대에서 50년대, 남한의 서울종합촬영소는 70-80년대, 군부대 세트는 90년대의 모습이다. 이들은 모두 특정한 시대의 서울이나 판문점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구성한 시대 순 배열 역시 허구이다. 나는 여기서 미디어, 영화 등이 역사를 허구적으로 구성한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나는 그 보다 오히려 더 단순하고 기초적인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다. 영화는 그 자신의 독자적인 실체를 창조하며, 허구를 전달하기위한 일련의 물리적 장치들 - 때로는 특정한 장소에 벽돌과 시멘트 등으로 이루어진- 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왜 이러한 단순한 사실이 중요할까? 사실 로드첸코, 브레히트, 고다르 이래 ‘장치를 드러낸다’는 이러한 입장이 갖는 특별한 새로움은 없다. 환영의 장치들을 드러냄으로서 환영의 미혹에 거리를 유지하려는 다양한 미학적 구상이 이미 좀 지겨우리만큼 계속 되어왔다. 개념적 영화들에서 그 극단적인 형식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모간 피셔(Morgan Fisher)의 필름이 기억난다. 사실 나는 98년 무렵에야,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의 단편 영화들과 장 보드리(Jean Baudry)의 영화이론을 접했다.
다른 한편, 90년대 이래 국내 문화의 상황에서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50년대에 시작한 것이겠지만, 한국에서 본격적인 미국식 대중문화는 90년대 이래 본격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 영화와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가 문화지형을 주도하게 된 것(또는 그렇다고 널리 인지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또 그럴수록 미디어에 대한 성찰이나 비평이 절실했지만, 미디어 비평은 대개 정보조작, 사실왜곡이나 정치적 편향 비판에 국한되었다. 그만큼 사진, 비디오, 영화에 대한 예술계의 관심은, 거의 최근 까지도 직관적인 단편들 이외에 별다른 것이 없었다.
1997년 ‘블랙박스: 냉전이미지의 기억’ 이라는 작업을 하면서, 나는 분단국가와 미디어, 미디어와 집단기억의 관계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해보려고 했다. 이것은 사진이 부가된 ‘글쓰기’에 더 가까운 작업이었다. 반면, ‘세트’에서는 단순한 사실정보의 나열 이외에 아무런 글쓰기나 내러티브 구성을 시도하지 않았다.
‘세트’를 구상하게 된 계기였던 ‘미디어시티_서울 2000’이라는 전시의 제목 자체가,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전시는 서울시가 주최한 대규모의 비엔날레로, ‘미디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와 같은 시기에 ‘쉬리’나 ‘JSA공동경비구역’이 분단을 소재로 수백만의 관객을 동원한 것은, 예술과 미디어의 지형에서 당시의 변화를 압축해 설명해준다. 예술에서도 미디어를 미래의 약속인양 추켜세우는 분위기였고, 이제는 일상용어가 된, ‘대박’이라는 도박용어가 영화로 인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오직 사진 찍혀지기 위해 존재하는 영화세트장들과, 군부대안의 시가지 시뮬레이션이야말로 ‘미디어시티’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세트들은 물론 미디어를 위한 것이며, 그 자신도 미디어라는 의미에서 ‘미디어시티’ 그 자체지만, 이 미디어시티는 ‘미디어시티’라는 화려한 말답지 않게, 무인도시처럼 적막하며 실제적(factual)이다. 나는 ‘미디어아트’라는 멋진 말도 ‘대박 영화’란 집단욕망도, 분단국가의 정치문화적 공허함을 채우지도 달래주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반대로, 이 단순한 사실화(寫實畵)들은 극적인 상상의 덧없음을 일깨워 줄 수 있으며, “시뮬레이션 사회에서 실제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충격이야말로, 실제의 존재를 암시한다”는 생각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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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냉전이미지의 기억
1997
사진 및 글
다음의 글은, 1997년 ‘블랙박스; 냉전이미지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첫 개인전 당시 썼던 글의 일부이다. 전체 글은 텔레비전, 영화, 포스터, 사진, 전쟁기념관 등에 대한 준-논문적인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에 영화에 관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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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영화
철학자 : ... 그런데 자네(극작가)들이 자네 관객들을 이미 파블로프의 개처럼 병들게 해놓았단 말일세.
- 베르톨트 브레히트, 놋쇠사기
그리고 강박증 환자가 우리의 정신생활의 안전판에 있는 약점, 즉 우리의 기억은 믿을만하지 않다는 약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이용해서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도 있게된다.
- 지그문트 프로이드, 쥐인간
미국인 존 카펜터John Carpenter의 영화 ‘괴물’The Thing에서 서스펜스의 절정은, 인물들 서로의 서로에 대한 의심과 그들에 대한 관객의 의심이 최고조로 달할 때와 같은 순간이다. 외계 괴물이 인간을 복제하여 그것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자, 그 중에서 사람인 것이 상대적으로 확실하다고 믿어지는 국립과학조사단의 헬기 조정사는 사람들(혹은 괴물들)을 모두 묶어 줄줄이 의자에 앉혀 놓는다. 포박당한 그들로부터 한 명씩 채혈하여 하나씩 하나씩 이름표를 붙인다. 그리고는 화염에 달군 전선으로 이 “타자들”의 피에 충격을 가한다.
극의 논리에 따르면, 혈액이 신체와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괴물이라면 피에 가해진 열에 감응하여 세포복제를 하게 되기 때문에 그 정체를 드러낼 것이요, 인간이라면 아무 반응이 없는 이치로 신원이 조회되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괴물로 판명될 것인가 보다는 의혹으로 미정된 순간의 구렁 속으로 깊이 빨려든다. 만약 누가 괴물이고 누가 인간인가 하는 실험 결과만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내 감정은 그렇게 심하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씬scene에서의 독특한 매혹은 상황의 구조적으로 유다른 모순에 있다.
그것은 의심하고 있는 내용의 불확실성이, 그들이 서로 의심하고 있다는 상황의 확실성과 기묘하고 가파른 긴장을 이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구성원 상호간의 의심이 최고조로 달해 있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그 의심의 내용은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일종의 유언비어일 뿐이다. 그들의 신경이 모두 외부로 솟구쳐 있어서 마치 그들의 내면은 무언가에 송두리째 빼앗겨 있는 것 같다. 그렇게해서 순수한 의혹의 상태, 성원들 사이의 의혹의 상대적인 관계만이 남게 된다. 문제는 서로에 대한 서로의 의심,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유명한 말로 바꾸어 말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의심’이다.
의심은 언제나 상대의 정체를 그 상대가 스스로 주장하는 방식대로 보기를 기피하는 부정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내가 너를 의심한다는 사실 자체를 숨겨야 할 필요가 생긴다. 주체들의 상호적인 의심 속에서, 주체는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숨겨야만 의심받지 않으리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영화 ‘괴물’의 전체를 통해 강조되는 의심하는 대상처럼, 정확히 말해서 너의 의심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나의 너에 대한 의심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의심을 의심한다. 따라서 의심관계의 강렬함은, 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표명될 수 없다는 점만이 서로에게 투명하다는 것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1950년대 이래의 ‘복제성 괴물’ 영화들은 미소 냉전이 설계한 사회심리 속에서 만들어졌다. 괴물과 사람이 혐의에서 정체로 막 전화되려는 이 숨막히는 장면은,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강렬한 알레고리가 아닐 수 없다. 결코 자수하지 않는 분열증식성 외계 생물은, 일종의 과학적 혈액실험과 전기고문이 혼성된 방법을 통해 정체가 밝혀지고, 격리되고, 전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연구의 대상이 된다. 괴물도 괴물이지만, 말 그대로 연좌(連坐)된 사람들 역시 적어도 최후의 판결 이전 까지는 괴물과 같이 묶여 있어야만 했다. 심지어 그들 스스로도 인간인지 괴물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 중 누가 괴물이었는지 몰랐다고 주장해보았자 그것은 불고지의 혐의를 강화할 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문제를 거꾸로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냉전이 사회적 의심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을지라도, 이토록 의심이 강하게 지탱되어오고 지배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용되어 온 데는, 우리에게 의심 욕망이 깊숙이 배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chcock의 ‘토파즈’나 '너무 많이 아는 사나이’와 같은 영화에 매료되는 관객처럼, 그러나 그렇게 흥미진진하지는 못하게 말이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대체'(displacement)되는 장면들의 연속이므로, 그것은 인물들 사이와 인물들과 관객 사이에서 맺어지는 사실상 무한한 의혹의 순열을 유희하고, 의혹의 상태를 다양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발전시키는 방법에 알맞은 매체일 것이다. 복제성 괴물영화 모두에서, 플롯이란 영화의 시간 속에서 망각과 기억이라는 공들로 곡예 하는 기억의 기술이다. 50년대 또 다른 고전 ‘신체 강탈자의 침략(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의 인물들이 화면 밖의 시공간 어디선가에서 괴물로 변하듯이, 우리가 그들을 못 보는 사이에, 즉 우리가 눈앞에서 전개되는 다른 사건이나 인물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이에 그 밖의 것들은 비밀스럽게건 아니건, 복제나 전염, 설득이나 매수, 사랑이나 죄의식 때문에 변한다. 놀라운 것은 영화 쪽이기 보다는 오히려 관객 쪽이다. 극중 인물이 화면의 프레임 밖으로 일단 나갔다가 단 몇 분 안에 프레임 안으로 다시 돌아와도 우리는 그 인물을 이미 전의 그 인물이 아닌 것으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다녀온 아내를 아내가 아니라고 믿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것은 영화에서의 연속적인 대체가 한편으로는 몰입된 감정의 축적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동안 망각해야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영화의 감정몰입이 다른 매체보다 강한만큼 능숙하게, 화면 안의 시공간이 영화 화면 밖의 시공간을 시청각적으로 조정, 통제, 때로는 검열함으로써 마치 까꿍놀이를 하듯 관객은 다음 장면에 경악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이제 냉전시대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기를 희망하는 우리들이 마치 지독한 공상과학 공포영화를 보고 막 빠져 나오려는 관객들과 어떤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냉전질서 속에서 상호의심이 그토록 강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간단한 서사기술에 잘 속는, 혹은 속고 싶은 마음처럼, 우리 안의 의심 욕망이 깊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과격하게도 감정이입적 연극을 조건반사 실험에 비유하면서, 관객이 줄거리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의심을 찬양함’이라는 시에서 이런 말을 한다. 그가 보기에는 대개 의심이 많은 사람이 진짜로 의심해야할 것을 철썩같이 믿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절대로 의심할 줄 모르는 생각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소화능력은 놀라웁고, 그들의 판단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사실을 믿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믿는다. 필요한 경우에는
사실이 그들을 믿어야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들의 참을성은
한계가 없다. 논쟁을 할 때 그들은 첩자의 귀로 듣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의심을 찬양함
2. ‘비행 Flying’ 에 대한 메모
비행 Flying
2005
13분, 비디오
배경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약 500만 여명이 사망하였다. 이는 베트남전쟁 희생자의 네 배가 넘는 숫자이다. 북한은 미국의 폭격에 의해 전국이 초토화되었다. 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전쟁의 기억 때문이다.
2000년 6월, 분단 50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그에 따라, 전후 처음으로 남북 직항로가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과 남한 대표단은 두 대의 비행기로 서울에서 평양까지 직항로로 비행하였다.
모호성
나는 한국의 여러 방송국에 요청하여, 당시 방영되지 않은 촬영분(footage)을 포함한 소스 영상을 편집할 수 있었다. 편집된 비디오의 전체 길이는 약 10분이며, 실제 비행시간은 약 1시간이다.
비디오를 보는 동안 지난 50년은 짧게, 그러나 상영되는 10분은 길게 느껴질 것이다. 10분은 미술관 작품으로는 너무 길다. 1시간은 관객을 포기한 시간이며, 50년은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래도 비디오는 지루하다.
북한의 이미지는 마치 저승과 같이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민족적 동질성’을 자극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협이기도 하고 동족이기도 한 남북관계의 이중성, 통일에 대한 불안과 희망 사이의 ‘창조적 모호성’을 나타낸다.
음악
이 비디오에 사용된 음악은 1977년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더블 콘체르토>의 앞부분이다. 이 민족주의적 현대음악은 북한의 국가주의 키치와 만나 또 다른 모호성을 낳는다.
이 곡은, 견우와 직녀 설화에 바탕을 두었다. 설화에 따르면, 왕의 벌을 받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는, 이를 불쌍히 여긴 새들이 다리를 놓아주어 1년에 한번 만날 수 있다.
윤이상은 이 설화를 남북관계에 비유했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은 통일을 상징한다. 그러나 남북 사이의 거리 또한 은하처럼 멀다. 윤이상은 아마도 다리를 놓은 무한수의 새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윤이상은 분단된 고국에 돌아오지 않고 통일된 독일에 묻혔다.
명확성
‘창조적 모호성’이란, 2005년 북핵문제에 관한 6자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가 거론한 말로,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는 협정에 대한 외교적 관용어로 명확한 의미를 지닌다.
북한인민에게 비행기는 창조적이지도 모호하지도 않다. 북한 인민에게 비행기는 아직도 즉각적으로 폭격을 연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 시민 대다수에게 비행기는 이제 B-29가 아니라, 여행을 의미한다.
2013년 9월 5일 목요일
<해 안에 서있는 천사> 윌리엄 터너
Artist: William Turner
Completion Date: 1846
Style: Romanticism
Genre: religious painting
Technique: oil
Material: canvas
Dimensions: 79 x 79 cm
Gallery: Tate Gallery, London, UK
Tags: allegories-and-symbols
린다 윌리엄스는 남성 성기에 봉사하고 있는 여성의 얼굴을 성기와 함께 클로즈업 한 포르노그라피의 스틸 사진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관찰자적 시점에 대해 설명한다. 그가 말하길, 이 사진에서 성기의 주인은 바로 '시선'인데, 이 시선은 사진기의 시선이며, 카메라맨의 시선이다. 그리고 이 시선은 페니스에 도착되어있다. (곧 카메라맨의 페니스와 화면의 페니스가 동일시 된다.)
이런 "소통의 황홀경"은 균일하게 중심화한 시각(그러니까 카메라 옵스큐라로 상징되는)의 해체이자, "탈물질화하고 탈육체화된 관찰자 자신의 신체를 성애적인 자기 현존의 즉각성 속으로 던져놓는 일이 된다" 크래리도 "비전이 관찰자의 몸의 경험적 즉각성에 위치되었을 때,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죽음에 종속된다."고 밝혔다. 여기서 죽음은 (내가 생각하기에) 근대적 시각성과 신체의 죽음이다.
이것을 정헌이 교수는 "근대적 휴먼이 몸과 정신 사이에서 리비도를 억압하면서 주체로서 성립되었다면 포스트휴먼은 카메라 옵스큐라와 포르노그라피 사이에서 황홀경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실제 대상이나 사물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이지만 육체적이며, 실제의 육체적 효과를 생산한다. 나는 이 새로운 육체, 새로운 촉각적 VR의 세계의 본질적 특징은 그 '자위'적 성격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정헌이, '포르노그래피와 형이상학, p.299)
"벤야민의 말처럼 폭풍의 힘이 하도 거세어서 날개를 접을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미래로 거세게 떠밀려가는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 점이 나의 센티멘털리티의 원인이었을 터이지만, 어쨌든 날개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정헌이,p.302)
가상적인데 육체적이란 말에서 그래엄 핸콕의 "수퍼내추럴"에서 나온 내부섬광 이야기가 잠깐 떠올랐다. 트랜스 상태에서 본다는 내부섬광, 그 내부섬광의 고수만이 볼 수 있는 신의 세계. 굿은 매우 포르노그라픽적인 (자위적인) 상황이고 인간에 신이 들어와 탈인간화 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9월 2일 월요일
2013년 9월 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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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초 [下焦] 한국전통지식포탈 건강/의학 > 한의학배꼽아래의 간신(肝腎)이 위치하는 부위.
녀러(-녀러) 지식iN 오픈국어 경상도에서 ~놈의를 뜻하는 단어. 흔히 이~,저~,그~ 혹은 그 외에 단어의 뒤에 붙어서 쓰인다.
밭다3[발음 : 받따]활용 : 밭아, 밭으니 형용사1 .시간이나 공간이 다붙어 몹시 가깝다.천장이 밭다앉은 자리가 너무 밭다.약속 날짜를 너무 밭게 잡았다.2 .길이가 매우 짧다.밭은 다리목이 밭은 사람바지가 밭아서 발목이 다 보인다.3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심하거나 먹는 양이 적다.1 .[북한어] 생각이나 지식 따위가 깊지 못하고 짧거나 얕다.닭에 대한 과학 기술 지식이 밭아 애로를 느끼던 그는…. 출처 : 조선말 대사전(1992)2 .[북한어] 맺고 있는 관계가 매우 가깝다.밭은 친척.
암구다 [동사] 교미를 붙이다.
녀러(-녀러) 지식iN 오픈국어 경상도에서 ~놈의를 뜻하는 단어. 흔히 이~,저~,그~ 혹은 그 외에 단어의 뒤에 붙어서 쓰인다.
밭다3[발음 : 받따]활용 : 밭아, 밭으니 형용사1 .시간이나 공간이 다붙어 몹시 가깝다.천장이 밭다앉은 자리가 너무 밭다.약속 날짜를 너무 밭게 잡았다.2 .길이가 매우 짧다.밭은 다리목이 밭은 사람바지가 밭아서 발목이 다 보인다.3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심하거나 먹는 양이 적다.1 .[북한어] 생각이나 지식 따위가 깊지 못하고 짧거나 얕다.닭에 대한 과학 기술 지식이 밭아 애로를 느끼던 그는…. 출처 : 조선말 대사전(1992)2 .[북한어] 맺고 있는 관계가 매우 가깝다.밭은 친척.
암구다 [동사] 교미를 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