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6일 금요일

박찬경 <내 작업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메모>

1. 내 작업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메모

내 작업 중에 영화에 관련된 것은 ‘블랙박스; 냉전이미지의 기억’(1997), 세트(2000), 파워통로(2004) 세 가지 이다. 오늘 발표에서는 이 중에 ‘블랙박스,,,’를 생략하고, 나머지 두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작품을 보려고 한다. (여기 소개한 순서는 제작년도로는 역순이다.)

이 세 작업은 모두 분단과 냉전을 소재로 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분단이 어떤 ‘이미지’이고 어떤 이미지가 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파워 통로 Power Passage
2004
파워포인트, 비디오, 설치

이 작업은 거의 동시대에 벌어진 두개의 사건에 기초한 것이다. 하나는 1975년 미소 우주선 도킹 프로젝트(ASTP)이며, 다른 하나는 그 무렵에 발견된 ‘땅굴’이다. 같은 ‘냉전’ 이라고 해도 세계적 차원과 국지적 차원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나는 하늘과 땅에서 벌어진 두 사건을 중심으로,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이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이것은 탐정이 놀랍도록 부패한 진실을 찾아가는 ‘필름 느와르’의 플롯을 빌려온 것이다. 이 작업은 마치, 비밀수사관이 동료들 앞에서 수사경과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처럼 구성되어있다. 이 프리젠테이션에는, 정치권력-영화-음모론-대기업-세계사적 배경-좌파적 경구-과학기술정보 등이 뒤얽혀있다. 물론 그 내용은 심각한 것이고, 표현은 때로 ‘시적 詩的’으로 보이긴 하지만, 상식의 눈으로 볼 때 그 내용이나 형식이나 대체로 황당하다. 왜냐하면 역사의 진행과 내역 자체가 상투적인 예술적 상상들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황당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간략히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데탕트가 시작된 1972년 닉슨(Rechard M. Nixon)과 구소련의 코시긴(Aleksey Nikolayevich Kosygin)은 우주 랑데부 계획을 승인하였고, 이는 1975년에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ASTP; Apollo-Soyuz Test Project)라는 이름으로 성사되었다. 이것은 실제로는 미소 모두 군사-과학기술의 독점적 권력을 또한번 비축한다는 것 밖에는 특별히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지만, 하나의 상징이미지로서는 대단한 우주 스펙타클이다. 더구나 ASTP의 구상은 영화 ‘마룬드(Marooned)'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존 스터지(John Sturges)가 감독하고 그레고리 펙, 진 핵크만이 출연한 영화 ‘마룬드’는 소설에 기초해서 1969년에 만들어졌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U.S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필립 핸들러(Philip Handler)라는 사람은 1970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소련 우주사업 관련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자세히 묘사하며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다고 한다. 미국영화에서 미국인 우주인의 생명을 구한 소련 우주인이 영웅적으로 그려진 것은, 당시 소련 당국자들을 놀라게 했다.

  미소 사이의 우주 랑데부가 성사될 당시 한국에서는, 냉전의 주역들인 미-소, 미-중이 누렸던 데탕트 조차도 없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있었지만, 이는 새로운 대결을 위한 일시적인 명분이었을 뿐이었다. 제2땅굴은 ASTP가 성사된 바로 그 해, 정확히 넉 달 전에 발견되었다. 땅굴은 진정으로 음모론적이다. 당시 정부에서 만든 홍보 자료를 보면, 땅굴이 왜 북쪽에서 남쪽으로 판 것인가에 대한 다소 강박적인 해설이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땅굴은 어느 쪽에서 파건 어느 쪽에서든 이용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어떻게 서로 얽히고 섥히게 되나? ASTP의 핵심 도킹기술을 개발한 회사는 한반도에 배치된 무기들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삼성과 관계가 있다. 우주경쟁에 관한 미국영화들은 NASA의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친다. 한반도에서도 인공위성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은 미사일발사실험을 인공위성 실험이라고 주장한다. 앞으로 남북한 관계를 다루는 영화들이 남북한 우주선 랑데부를 다루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서울이 대규모 땅굴들 위에 있다고 주장해온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남굴사)’은, 땅굴을 증명하기 위해 파헤친 거대한 구덩이에서 베트남제 호미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기타 등등. 우리는 애써서 음모를 파헤치고, 그것이 거대한 음모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강박적으로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이미 공개된 사실 자체가 그러한 과장이나 강박을 충분히 능가하며, 이를 무색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이 작업의 다른 한 축은,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에 등장하는 세편의 미국영화를 대한뉴스의 땅굴장면, 또 신파가요의 대사와 섞어 편집한 비디오이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고 열심히 편집한 장면은 영화 ‘마룬드’에서 소련 우주비행사가 미국 우주비행사를 우주에서 놓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모리스 블랑쇼가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 시킨다. 이미지는, “ 부재의 증후가 아니라 모든 것이 결핍되어야 할 때도 존속하는 낯설고 과도한 존재의 흔적이다. 그것은 부재하는 무엇인가의 지표가 아니라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무엇인가의 주장이다.” 내게 이 이미지는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무엇인가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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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SETS
2000 , 2004(재제작)
160개의 35mm 사진 슬라이드 연속 상영
15분

‘세트’에서는 북한의 조선영화촬영소 서울거리, 남한의 서울종합촬영소, 남한 군부대안의 시가전 훈련장 사진들이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간 순서로 배열되어있다.  여기서 시간 순서란 이 세트들이 건설된 시간이 아니라, 이 세트들이 모방하여 나타낸 시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북한 조선영화촬영소는 1930년대에서 50년대, 남한의 서울종합촬영소는 70-80년대, 군부대 세트는 90년대의 모습이다. 이들은 모두 특정한 시대의 서울이나 판문점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구성한 시대 순 배열 역시 허구이다. 나는 여기서 미디어, 영화 등이 역사를 허구적으로 구성한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나는  그 보다 오히려 더 단순하고 기초적인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다. 영화는 그 자신의 독자적인 실체를 창조하며, 허구를 전달하기위한 일련의 물리적 장치들 - 때로는 특정한 장소에 벽돌과 시멘트 등으로 이루어진- 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왜 이러한 단순한 사실이 중요할까? 사실 로드첸코, 브레히트, 고다르 이래 ‘장치를 드러낸다’는 이러한 입장이 갖는 특별한 새로움은 없다. 환영의 장치들을 드러냄으로서 환영의 미혹에 거리를 유지하려는 다양한 미학적 구상이 이미 좀 지겨우리만큼 계속 되어왔다. 개념적 영화들에서 그 극단적인 형식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모간 피셔(Morgan Fisher)의 필름이 기억난다. 사실 나는 98년 무렵에야,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의 단편 영화들과 장 보드리(Jean Baudry)의 영화이론을 접했다.
  다른 한편, 90년대 이래 국내 문화의 상황에서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50년대에 시작한 것이겠지만, 한국에서 본격적인 미국식 대중문화는 90년대 이래 본격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 영화와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가 문화지형을 주도하게 된 것(또는 그렇다고 널리 인지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또 그럴수록 미디어에 대한 성찰이나 비평이 절실했지만, 미디어 비평은 대개 정보조작, 사실왜곡이나 정치적 편향 비판에 국한되었다. 그만큼 사진, 비디오, 영화에 대한 예술계의 관심은, 거의 최근 까지도 직관적인 단편들 이외에 별다른 것이 없었다. 
  1997년 ‘블랙박스: 냉전이미지의 기억’ 이라는 작업을 하면서, 나는 분단국가와 미디어, 미디어와 집단기억의 관계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해보려고 했다. 이것은 사진이 부가된 ‘글쓰기’에 더 가까운 작업이었다. 반면, ‘세트’에서는 단순한 사실정보의 나열 이외에 아무런 글쓰기나 내러티브 구성을 시도하지 않았다.
  ‘세트’를 구상하게 된 계기였던 ‘미디어시티_서울 2000’이라는 전시의 제목 자체가,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전시는 서울시가 주최한 대규모의 비엔날레로, ‘미디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와 같은 시기에 ‘쉬리’나  ‘JSA공동경비구역’이 분단을 소재로 수백만의 관객을 동원한 것은, 예술과 미디어의 지형에서 당시의 변화를 압축해 설명해준다. 예술에서도 미디어를 미래의 약속인양 추켜세우는 분위기였고, 이제는 일상용어가 된,  ‘대박’이라는 도박용어가 영화로 인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오직 사진 찍혀지기 위해 존재하는 영화세트장들과, 군부대안의 시가지 시뮬레이션이야말로  ‘미디어시티’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세트들은 물론 미디어를 위한 것이며, 그 자신도 미디어라는 의미에서 ‘미디어시티’ 그 자체지만, 이 미디어시티는 ‘미디어시티’라는 화려한 말답지 않게, 무인도시처럼 적막하며 실제적(factual)이다. 나는 ‘미디어아트’라는 멋진 말도 ‘대박 영화’란 집단욕망도, 분단국가의 정치문화적 공허함을 채우지도 달래주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반대로, 이 단순한 사실화(寫實畵)들은 극적인 상상의 덧없음을 일깨워 줄 수 있으며, “시뮬레이션 사회에서 실제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충격이야말로, 실제의 존재를 암시한다”는 생각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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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냉전이미지의 기억
1997
사진 및 글

다음의 글은, 1997년  ‘블랙박스; 냉전이미지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첫 개인전 당시 썼던 글의 일부이다. 전체 글은 텔레비전, 영화, 포스터, 사진, 전쟁기념관 등에 대한 준-논문적인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에 영화에 관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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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영화

철학자 : ... 그런데 자네(극작가)들이 자네 관객들을 이미 파블로프의 개처럼 병들게 해놓았단 말일세.
- 베르톨트 브레히트, 놋쇠사기

그리고 강박증 환자가 우리의 정신생활의 안전판에 있는 약점, 즉 우리의 기억은 믿을만하지 않다는 약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이용해서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도 있게된다.
- 지그문트 프로이드, 쥐인간

미국인 존 카펜터John Carpenter의 영화 ‘괴물’The Thing에서 서스펜스의 절정은, 인물들 서로의 서로에 대한 의심과 그들에 대한 관객의 의심이 최고조로 달할 때와 같은 순간이다. 외계 괴물이 인간을 복제하여 그것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자, 그 중에서 사람인 것이 상대적으로 확실하다고 믿어지는 국립과학조사단의 헬기 조정사는 사람들(혹은 괴물들)을 모두 묶어 줄줄이 의자에 앉혀 놓는다. 포박당한 그들로부터 한 명씩 채혈하여 하나씩 하나씩 이름표를 붙인다. 그리고는 화염에 달군 전선으로 이 “타자들”의 피에 충격을 가한다.
  극의 논리에 따르면, 혈액이 신체와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괴물이라면 피에 가해진 열에 감응하여 세포복제를 하게 되기 때문에 그 정체를 드러낼 것이요, 인간이라면 아무 반응이 없는 이치로 신원이 조회되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괴물로 판명될 것인가 보다는 의혹으로 미정된 순간의 구렁 속으로 깊이 빨려든다. 만약 누가 괴물이고 누가 인간인가 하는 실험 결과만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내 감정은 그렇게 심하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씬scene에서의 독특한 매혹은 상황의 구조적으로 유다른 모순에 있다.
  그것은 의심하고 있는 내용의 불확실성이, 그들이 서로 의심하고 있다는 상황의 확실성과 기묘하고 가파른 긴장을 이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구성원 상호간의 의심이 최고조로 달해 있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그 의심의 내용은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일종의 유언비어일 뿐이다. 그들의 신경이 모두 외부로 솟구쳐 있어서 마치 그들의 내면은 무언가에 송두리째 빼앗겨 있는 것 같다. 그렇게해서 순수한 의혹의 상태, 성원들 사이의 의혹의 상대적인 관계만이 남게 된다. 문제는 서로에 대한 서로의 의심,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유명한 말로 바꾸어 말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의심’이다.

의심은 언제나 상대의 정체를 그 상대가 스스로 주장하는 방식대로 보기를 기피하는 부정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내가 너를 의심한다는 사실 자체를 숨겨야 할 필요가 생긴다. 주체들의 상호적인 의심 속에서, 주체는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숨겨야만 의심받지 않으리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영화 ‘괴물’의 전체를 통해 강조되는 의심하는 대상처럼, 정확히 말해서 너의 의심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나의 너에 대한 의심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의심을 의심한다. 따라서 의심관계의 강렬함은, 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표명될 수 없다는 점만이 서로에게 투명하다는 것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1950년대 이래의 ‘복제성 괴물’ 영화들은 미소 냉전이 설계한 사회심리 속에서 만들어졌다. 괴물과 사람이 혐의에서 정체로 막 전화되려는 이 숨막히는 장면은,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강렬한 알레고리가 아닐 수 없다. 결코 자수하지 않는 분열증식성 외계 생물은, 일종의 과학적 혈액실험과 전기고문이 혼성된 방법을 통해 정체가 밝혀지고, 격리되고, 전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연구의 대상이 된다. 괴물도 괴물이지만, 말 그대로 연좌(連坐)된 사람들 역시 적어도 최후의 판결 이전 까지는 괴물과 같이 묶여 있어야만 했다. 심지어 그들 스스로도 인간인지 괴물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 중 누가 괴물이었는지 몰랐다고 주장해보았자 그것은 불고지의 혐의를 강화할 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문제를 거꾸로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냉전이 사회적 의심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을지라도, 이토록 의심이 강하게 지탱되어오고 지배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용되어 온 데는, 우리에게 의심 욕망이 깊숙이 배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chcock의 ‘토파즈’나 '너무 많이 아는 사나이’와 같은 영화에 매료되는 관객처럼, 그러나 그렇게 흥미진진하지는 못하게 말이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대체'(displacement)되는 장면들의 연속이므로, 그것은 인물들 사이와 인물들과 관객 사이에서 맺어지는 사실상 무한한 의혹의 순열을 유희하고, 의혹의 상태를 다양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발전시키는 방법에 알맞은 매체일 것이다. 복제성 괴물영화 모두에서, 플롯이란 영화의 시간 속에서 망각과 기억이라는 공들로 곡예 하는 기억의 기술이다. 50년대 또 다른 고전 ‘신체 강탈자의 침략(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의 인물들이 화면 밖의 시공간 어디선가에서 괴물로 변하듯이, 우리가 그들을 못 보는 사이에, 즉 우리가 눈앞에서 전개되는 다른 사건이나 인물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이에 그 밖의 것들은 비밀스럽게건 아니건, 복제나 전염, 설득이나 매수, 사랑이나 죄의식 때문에 변한다. 놀라운 것은 영화 쪽이기 보다는 오히려 관객 쪽이다. 극중 인물이 화면의 프레임 밖으로 일단 나갔다가 단 몇 분 안에 프레임 안으로 다시 돌아와도 우리는 그 인물을 이미 전의 그 인물이 아닌 것으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다녀온 아내를 아내가 아니라고 믿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것은 영화에서의 연속적인 대체가 한편으로는 몰입된 감정의 축적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동안 망각해야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영화의 감정몰입이 다른 매체보다 강한만큼 능숙하게, 화면 안의 시공간이 영화 화면 밖의 시공간을 시청각적으로 조정, 통제, 때로는 검열함으로써 마치 까꿍놀이를 하듯 관객은 다음 장면에 경악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이제 냉전시대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기를 희망하는 우리들이 마치 지독한 공상과학 공포영화를 보고 막 빠져 나오려는 관객들과 어떤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냉전질서 속에서 상호의심이 그토록 강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간단한 서사기술에 잘 속는, 혹은 속고 싶은 마음처럼, 우리 안의 의심 욕망이 깊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과격하게도 감정이입적 연극을 조건반사 실험에 비유하면서, 관객이 줄거리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의심을 찬양함’이라는 시에서 이런 말을 한다. 그가 보기에는 대개 의심이 많은 사람이 진짜로 의심해야할 것을 철썩같이 믿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절대로 의심할 줄 모르는 생각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소화능력은 놀라웁고, 그들의 판단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사실을 믿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믿는다. 필요한 경우에는
사실이 그들을 믿어야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들의 참을성은
한계가 없다. 논쟁을 할 때 그들은 첩자의 귀로 듣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의심을 찬양함


2. ‘비행 Flying’ 에 대한 메모

비행 Flying
2005
13분, 비디오

배경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약 500만 여명이 사망하였다. 이는 베트남전쟁 희생자의 네 배가 넘는 숫자이다. 북한은 미국의 폭격에 의해 전국이 초토화되었다. 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전쟁의 기억 때문이다.

2000년 6월, 분단 50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그에 따라, 전후 처음으로 남북 직항로가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과 남한 대표단은 두 대의 비행기로 서울에서 평양까지 직항로로 비행하였다.

모호성

나는 한국의 여러 방송국에 요청하여, 당시 방영되지 않은 촬영분(footage)을 포함한 소스 영상을 편집할 수 있었다. 편집된 비디오의 전체 길이는 약 10분이며, 실제 비행시간은 약 1시간이다.

비디오를 보는 동안 지난 50년은 짧게, 그러나 상영되는 10분은 길게 느껴질 것이다. 10분은 미술관 작품으로는 너무 길다. 1시간은 관객을 포기한 시간이며, 50년은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래도 비디오는 지루하다.

북한의 이미지는 마치 저승과 같이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민족적 동질성’을 자극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협이기도 하고 동족이기도 한 남북관계의 이중성, 통일에 대한 불안과 희망 사이의 ‘창조적 모호성’을 나타낸다.

음악

이 비디오에 사용된 음악은 1977년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더블 콘체르토>의 앞부분이다. 이 민족주의적 현대음악은 북한의 국가주의 키치와 만나 또 다른 모호성을 낳는다.

이 곡은, 견우와 직녀 설화에 바탕을 두었다. 설화에 따르면, 왕의 벌을 받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는, 이를 불쌍히 여긴 새들이 다리를 놓아주어 1년에 한번 만날 수 있다.

윤이상은 이 설화를 남북관계에 비유했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은 통일을 상징한다. 그러나 남북 사이의 거리 또한 은하처럼 멀다. 윤이상은 아마도 다리를 놓은 무한수의 새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윤이상은 분단된 고국에 돌아오지 않고 통일된 독일에 묻혔다.


명확성 

‘창조적 모호성’이란, 2005년 북핵문제에 관한 6자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가 거론한 말로,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는 협정에 대한 외교적 관용어로 명확한 의미를 지닌다.

북한인민에게 비행기는 창조적이지도 모호하지도 않다. 북한 인민에게 비행기는 아직도 즉각적으로 폭격을 연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 시민 대다수에게 비행기는 이제 B-29가 아니라, 여행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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