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1일 수요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답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멈춰야한다. 이 명제 앞에 누가 잘못했다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 다들 관전평이나 하고 있다. 글쎄올씨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온 힘을 모으지 않으면 다 개소리에 불과하다. 

일본 근대미술과 만박

일본은 만박을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의 지표라고 보고 만박 참여에 공을 들임

1. 만박 전
- 18세기 에도 시대에 자연물에 대한 연구 번성 : 
  = 왜? 한약재 중국 수입 탈의존으로 금은 해외 유출 방지
  = 빈민구제 등
- 전국에 채약사를 파견하여 조사, 희귀식물 재배 연구 -> 본초학 발달 -> 일반 자연물 연구 발달 -> 약품회, 물산회 등 이름의 박람회가 전국에서 활발하게 일어남
- 물류품즐(1763) : 최초의 박람회 보고서
- 박람회를 통해 실증적 자연과학 연구 열기 고조 -> 서양 미술의 사실적 묘사법 관심 증대<- 왜?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 묘사가 필요해 과학서 삽화를 수용 -> 자연과학 연구와 결부되어 서양화법 수용 -> 18세기 중엽 <에도 양풍화>

1853년 페리호 사건
1868년 메이지 유신

2. 만국박람회 참가: 메이지 이후 일본은 각종 박람회 다 참가 <- 첨단기술 추세 배우기 위해
- 국내 식산흥업 정책의 핵심은 미술공예품
-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 일본 첫 전시장 마련 : 공예품, 우키요에, 찻집 등 -> 이때부터 자포니즘 유행 시작
- 1873년 메이지 정부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 공식 참가
  = 참가 목적: 일본 소개, 신문물 학습
  = 성과 : 유럽의 일본 미술품 수입 요청 -> 정부출자 무역회사 기립공상회사 설립: 외국인의 취향에 부합하는 물건을 만들어서 수출
  = 미술이란 용어는 빈 만박 물품 구분을 위해 번역할 때 사용한 용어
  = 아직 미술품이 아닌 공예품으로만 인정
-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미술관에 일본 코너 설치
  = 화조산수화, 목조각을 공예품과 함께 전시하겠다고 신청
  = 하지만 아직까지 유럽은 미술품의 위상이 아닌 공예품으로 이해
- 1990년 파리 만박에서 상황 변화
  = 순수미술분야로 서양화 53점, 일본화 133점, 조소 71점 출품
  = 오카쿠라 텐신이 프랑스어로 전시해설서 편찬 -> 비로소 서양 미술 개념의 전시를 따름

이중희, 일본근현대미술사 요약

2023년 10월 4일 수요일

박자현과 제로투

 



예술지구p에서 워크숍 할 때 박자현 작가를 만났다. 원룸 생활을 하면서 누우면 꽉 차는 비좁은 느낌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각형의 틀 안에 여성의 몸을 꽉꽉 구겨서 넣었다. 구성상으로 최적화되었다는 느낌은 아니다. 무언가 억지스럽고 불완전해 보인다.

제로투 댄스라는 유행하는 춤을 광각으로 찍으면 정말 볼 게 없을 것이다. 이 춤은 오히려 핸드폰 화면에 최적화 되어 있다. 시선은 밖으로 새어나갈 틈 없이 화면 위에 계속 머문다. 멍 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 두 이미지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형상의 역능이 어떤 방식으로 머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자현의 몸이 왜 시선을 붙잡아두지 못하고 제로투가 시선을 붙잡아두는지는 꼭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의 몸이냐 아니냐의 차이만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은 리얼리즘이란 거대한 이름이 어떠할 때 대상의 역량을 본의 아니게 시들게 만들어버리는지에 대한 하나의 사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룸에 산다고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2023년 10월 2일 월요일

애프터썬(2022)

추석에 집에 있으면서 할 게 없어서 오랫만에 영화를 한 편. 예전에 띄엄띄엄 보긴 했는데 <애프터 썬>을 다시 봤다. 영화라면 거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넘겨가면서 보는데, 이 영화는 넘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넘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순간 쭉 끝까지 다 봤다. 아련한 느낌에 결국 눈물샘이 자극되었다. 마지막에 결국..ㅠ 소피는 왜그렇게 귀여운 짓을 하는 건지.

보통 영화를 보면 인물 하나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드물게 이 경우는 캘럼과 소피 둘 다에 이입되었다. 이유는 두 인물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또한 어린시절을 거쳐 어른시절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어른은 사실은 어린이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참고 산다. 

캘럼은 삶이 계속해서 안 풀렸던 것 같다. 뭐라고 딱 하나라고 딱 집을 것 없이 무언가 총체적인 문제였던 것 같다. 캘럼은 휴양지에서 태극권을 계속해서 연습한다. 숙소에 보면 태극권과 명상에 대한 책이 몇권 쌓여있다. 태극권은 음양의 기운을 순환시키는 몸짓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면서 삶을 회복하려고 했을 것이다.

캘럼은 '죽지 않음'을 택할정도로 타인을 향한 책임감이 그를 압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딸을 생각했으면 캘럼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타인과 자신 사이에서 크게 갈등하긴 했다. 극 종반부에서 캘럼이 서럽게 운 것은 그때문일 것이다.

타인과 자신 사이에서, 그게 비록 딸과의 관계일지라도 이기적인 선택을 한 아빠. 아마 한국의 부모라면, 최소한 내 세대에서 느끼는 부모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얼마나 죽고싶었던 순간이 많았을까?

캘럼은 가진 돈을 다 털어 딸과 터키에 왔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도 풍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탕진하고 간다는 그것이 그를 후련하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 세대라면 택도 없다. 차라리 무릎의 연골이 다 달아 없어질때까지 자신을 죽이고 자식을 아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가심비와 가성비의 차이.

소피는 가족의 빈곤에 대해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소피가 모르는 것은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사랑이다. 소피는 휴가지에서 여러 종류의 사랑을 관찰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빠와 자신 사이의 사랑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소피가 그러고 있는 반면, 캘럼은 점점 마음을 정리한다. 캘럼의 삶의 곤란이 경제적인 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극 중반에 여러 장면에서 나온다. 이 영화는 소피의 시선에서 캘럼을 보고 있기 때문에 캘럼 그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어른들만의 사정이기도 하고 캘럼만의 사정이기도 하다.

캘럼이 무엇에 의해 고통받았는지는 끝까지 잘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소피에게 그대로 전승된다. 소피는 커서도 그 고통 때문에 과거로 돌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비어있다. 부모를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해하려고 하면 할 수록 미궁에 빠진다. 나 역시 그렇다. 남는 것은 거대한 슬픔밖에 없다.

이야기가 별로 없는 영화다. 사실 이야기가 없을 수 밖에 없다. 서먹한 아빠와 딸 사이, 돈도 없어서 뭘 제대로 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나. 다이렉트 시네마는 아니지만 그런 비슷한 정서가 영화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