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전시리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전시리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3년 12월 12일 화요일

조각 충동에 관한 짧은 생각

대학원에서 비디오아트를 전공한 전수현은 누구나 영상을 만들던 시기 영상을 열심히 찍다가 최근 조각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비미술적 재료를 가지고 여성의 신체를 절단하거나 과장하거나 서로 붙인, 신체라기보다 사물에 가까운 형상의 비정형 오브제를 만들고 약간의 움직임을 가미하는 데 골몰했다. 이런 비체(abject)적 형태에 붙일 수 있는 그럴싸해 보이는 해설은 사실 리타가 이미래의 《캐리어즈(Carriers)》(2020)전을 가지고 이미 몇 년 전에 했다.1) 이 글에서 이미래를 전수현으로 바꿔 읽어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여기서는 짧은 생각 하나만을 덧붙이고 싶다. 어떤 반복에 관한 것이다.

대략 2017년 두산갤러리 《사물들: 조각적 시도》를 기점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는 조각이 새삼스럽게 주목 받는다. 조각가 같은, 옛날 같았으면 몹시 촌스러워 아무도 쓰지 않았을 것 같은 그 칭호를 너도 나도 쓰기 시작했다. (이건 ‘화가’도 마찬가지다.) ‘물(物)’이란 낱말이 심심찮게 끼어들었다. 항상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을 토큰으로 사용하고 싶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재빨리 《조각충동》(2022)으로 그 현상을 빨아들였다. 전수현이 조각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때쯤이다. 전수현은 조소를 전공하지 않았고, 《조각충동》에서 작가도 상당수가 그랬다. 그러니까 전공을 가리지 않고 젊은 작가에게서 포착되는 조각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것을 ‘조각적’이라고 칭하는 분위기는 어떤 면에서 신선하고 다른 면에서 이상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조각충동에 관한 포럼을 열었을 때, 거기서 우리가 확인했던 충격적인 사실은, 사실은 젊은 작가가 아무도 “조각”을 의식하지 않고 작업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아무도 조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미술 쫌 한다는 젊은이들의 온 관심을 다 쏠리게 했던 전시 토론회는 아... 이것 밖에 안 되나 하며 누군가에게 분명 실망을 안겼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대체 여기 펼쳐진 일련의 흐름은 무엇일까?

권시우의 「회화의 “조각 충동”을 기념하며」(2022)는 여러모로 참고되는 글이다.2) 권시우는 조각충동이 좀비 형식주의 회화로부터 그렇게 됐다고 본다.3) 좀비 형식주의란 무엇인가? 제리 살츠(Jerry Saltz)가 비판했듯이, 어떤 형식을 본래 시공간적 맥락과 상관없이 무절제하게 아름다운 이미지로 소비하는 레트로매니악한 형식이다.4) 권시우가 염두에 두는 좀비 형식주의는 물론 2000년대를 풍미했던 북미, 그리고 2010년대 중후반 한국에 출몰했던 젊은 작가의 회화적 경향을 지칭하는 것일 테다. 한국의 젊은 화가가 과거의 회화, 특히 추상회화를 참조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한국의 근대기 회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만약 영미권과 한국에서 똑같이 좀비 형식주의가 있다고 했을 때, 문제의 기원은 똑같이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urg)로 수렴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새로운 조각, 혹은 좀비 형식주의는 한국을 건너 뛰고 뉴욕의 모더니즘, 그러니까 추상미술의 전통을 참조할 수 있을까?

한국 좀비의 기원이 미국의 그린버그라는 사실이 가능할까? 여기서 우리가 영미권의 좀비 형식주의가 가진 최소한의 좀비적 기원에서조차 사실은 탈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술식확장’이다. 가령, 한국미술 전체가 항상 좀비 형식주의였다는 것은 어떨까?―한국의 피카소, 한국의 헨리 무어, 한국의 루오, 한국의 고갱, 한국적 모더니즘, 한국적 미니멀리즘 등등에 붙는 '한국적'이란 관형사를 떠올려 보라. 과거에 어디선가 작가 박찬경은 한국엔 애초에 전통이 없거나 심하게 굴절되어 있으니 사실은 어떤 전통이든 가능하단 말을 한 적 있다. 이처럼, 만약 한국의 좀비 형식주의에서 전통의 문제가 사실은 ‘전통 없음’으로부터 비롯된 아이러니한 자유의 문제라면, 애초에 현재 한국의 작가들이 골몰하고 있는 조각이란 어젠더의 출처를 추궁하는 것은 그리 실효성이 없는 짓일 것이다. 

이는 과격하게 말하자면 시체의 정치학을 상상하게 한다. 합리적 이성을 박탈당한 이들은, 그러니까 좀비는 생각하지 않는 대신 살아 있는 것을 물어뜯고 전염시킨다. 살아 있던 것은 죽는다. 죽은 상태로 다시 움직인다. 움직이면서 살아 있는 것을 찾아서 물어뜯고 다시 전염시킨다. 이런 담론에서 살아 있는 것을 절멸한다는 지상명령 말고는 중요한 것이 없다. ‘살아 있는 것’이란 메타포는 여기서 ‘인간’으로 형상화되는 주변적인 것을 억압하고 무효화하는 것 모두를 지칭할 수 있다. 그래서 전수현은 이미래에게 전염될 수 있고, 이미래는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에 마찬가지로 그렇게 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서로 뜯고 전염시키면서 그렇게 한다.

--------------------------------------------------

1) 이 비평은 ‘물’에 관한 신유물론-페미니즘 비평의 전형을 제공했고, 포괄적인 ‘조각’을 향한 관심에도 기여했다고 본다. 이연숙, 「‘비체적’ 정서의 내장 만지기: 이미래의 《캐리어즈(Carriers)》」, 《세마 코랄》 웹사이트, 2022. 1. 29., (접근: 2023. 12. 8.), http://semacoral.org/features/yeonsooklee-2021-semahana-criticism-award-carriers-abject-mirelee

2) 권시우, 「회화의 “조각 충동”을 기념하며」, 《라라앤》 웹사이트, 2022. 6. 7., (접근: 2023. 12. 7.), https://lalan.art/journal/?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1782627&t=board

3) 권시우가 조각의 출처를 회화에서 찾는 방식은, 긍정적으로 봤을 때, 루시 리파드가 포스트-미니멀리즘을 보는 관점과도 닮았다. 리파드는 1960년대의 비정형적이고 기괴한 오브제, 설치 작업을 '괴상한 추상'으로 정의하면서, 특유의 잡스러움이 전통 주류 조각이나 그것을 비판하고 나온 (남성적) 미니멀리즘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 아니라 추상회화나 팝아트, 역사적으로는 초현실주의와 훨씬 많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괴상한 추상이 미국-백인-남성-조각과 겨루고자 했다면 한국에서 새로운 조각은 무엇에 대항하는지 파악하기 힘들며, 한편 주류 미술관이 당시 언명되고 있는 (어떤 면에서 매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는, 즉 미술관과 친연성이 있는 분야인) "조각"이란 현상에 다급하게 영합했다는 점은 특기할만 하다. Lucy Lippard, “Eccentric Abstraction,” Changing: Essays in Art Criticism, (New York: Dutton, 1971), pp. 98-100.

4) Jerry Saltz, “Zombies on the Walls: Why Does So Much New Abstraction Look the Same?”, Vurture, June 17, 2014, (accessed: 2023. 12.8.), https://www.vulture.com/2014/06/why-new-abstract-paintings-look-the-same.html

청탁 내용과 맞지 않다고 해서 달성예술창작공간을 위해 대충 다시 씀.

2023년 11월 27일 월요일

전시실에서

2023년 하면 부산시립미술관으로서는 잊지 못할 전시가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이하 《무라카미 좀비》)로, 무라카미 개인의 이력에 비추었을 때도 유의미한 규모였지만, 미술관으로서도 야심 차긴 마찬가지였다. 그 대가로 충분치 않은 행정력으로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작가의 폭발적인 요구를 모두 감당해야 했다. 그로 인해서 여럿 무리수를 감당해야 했는데, 지금 와서는 쓸데없는 말이지만, 당시엔 도무지 이 전시가 열릴 것 같지 않았다. 뜻이 하늘에 닿았는지 전시가 열렸다.

그때 무라카미의 심정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했던 오페르트를 바라보는 조선인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명품관도 아닌 것이 사회적 거리두기도 사라진 마당에 한 전시실의 관람 인원을 제한해달라고 했다. 전시실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전시 관리 인력을 요구했다. 학예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나 역시 《무라카미 좀비》와 함께 그 당시 함께 열리고 있던 소장품전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간다》(이하 《모든 것은》)에 순환배치되었다. 그 후.

무라카미의 우려가 충분히 이해되기 시작했는데, 개점질주하며 작품에 달려드는 수많은 순진무구한 얼굴의 인파 앞에서 무라카미 작품의 반질반질한 텍스쳐는 정말로 취약한 것이었다. 강도 높은 인파 스트레스 때문에 주기적으로 관리요원은 비교적 한적한 《모든 것은》으로 순환배치되었다. 그러니까 무라카미 선생님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다. 그때 본 그 광경, 오늘날 가장 스펙터클한 전시와 그렇지 않은 전시가 동시에 열린 그 광경은 마치 미술관의 미래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금 함께, 여기에, 불시착한 모습과도 같았다.

두 개의 전시와 두 부류의 관객

《무라카미 좀비》는 잘 짜인 전시처럼 보였다. 무라카미의 세계관을 개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고, 몇 개의 간결한 키워드로 묶어 지금까지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의 일환인 전시답게 이우환과의 선불교적 연결 고리도 놓치지 않았다. 전시 아이덴티티부터 공간디자인까지 세심하게 설계되었다. 거기다 전시장과 작품의 컨디션 역시 철통 보안이었다. 전시 그 자체가 팝의 일반적인 감각, 말하자면 무엇하나 빠지는 곳 없이 견실한 상품이었다. 무라카미의 회사 카이카이키키(怪怪奇奇)가 전시를 강박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스스로도 배우는 점이 있었다. 그랬던 전시에서...

《무라카미 좀비》 전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을 꼽아보자면 이렇다. △인제책 안으로 핸드폰 넣지 마세요 △뒷걸음질 치지 마세요 △손가락으로 작품 가까이 가리키지 마세요 △작품 앞에서 한쪽 다리 들지 마세요 △아기 손을 잡고 관람해 주세요. 이상은 모두 사진 촬영과 관련된 제한이다. 개점질주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무라카미 좀비》 전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두리번거리며 어딘가를 찾았다. “저기다!” 말과 함께 빈번히 관객은 핸드폰을 앞에 세우고 특정 작품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러고선, 놀랍게도 이들은 자신의 눈을 작품을 향해 직접 두지 않았다. 핸드폰 화면을 보고 몇 차례 사진을 찍고선 곧바로 뒤돌아서서 마치 무라카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번갈아 가면서 이들은 사진을 찍었다. 그 일이 끝나면 다른 포토존을 찾아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과도한 행동을 하는 관객을 제재할 때면 자주 △무시하거나 △험한 인상을 짓거나 △화를 냈다.

기억하기로 《무라카미 좀비》는 일일 관람객을 2만 명으로 제한했다. 그런데 주말은 거의 예외 없이 2만 명이 미술관을 방문했다. 2만 명의 관객 대 16명의 운영요원 사이의 싸움이었다. 전시된 작품가액을 생각하면 저절로 부산시를 지킨다는 사명감까지 생겼지만, 스트레스도 그만큼 컸다.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하루 종일 《무라카미 좀비》에서 일을 하긴 힘들었다. 운영요원으로서 피난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장소가 바로 《모든 것은》이었다. 베테랑 전시장 운영요원 선생님께서 《모든 것은》에서는 관람객이 얌전하니 입장객만 계수하면 된다고 했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것은》은 소장품 전시다. 이건희 컬렉션 열풍 덕분인지는 몰라도 소장품의 중요성이 예년에 비해선 많이 인지된 것 같지만, 여전히 이건희 석 자를 뺀 평범한 컬렉션 전시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전시된 소장품은 어차피 다른 작품과 매한가지로 나와 무관한 미지의 대상이다. 미술관에 관심이 있는 이는 소장품 전시에 매번 같은 작품이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소장품 전시는 학예사에게 어찌 됐든 잘해도 본전인 경우가 많다.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었지만 정말 《모든 것은》의 전시실은 한산했다. 미술관에는 전시가 있는지 모르는 관객도 많았다. 사실은 도통 관심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무라카미 좀비》의 압도적인 대기 줄에 낙담하여 어슬렁거리다가 온 관객일 것이다. 특히 가족 단위가 많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장시간 대기줄을 서기란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관객으로 한정하면 《무라카미 좀비》보다 《모든 것은》이 단연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 생각에 이 관객 대부분 역시 《무라카미 좀비》의 관객 대부분과 별다를 것 없이 미술에 대한 선지식이 부족했을 것이다. 가령 이들은 우신출과 양달석이 누구인지 모른다. <영가대>를 보면서 192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권장되었던 지방색이 무엇인지, 그것이 식민지 현실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도 별 관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은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영가대가 예전에 조선통신사가 해신제를 올리던 장소로 현재 범일동 일대 철로가 지나다니는 곳이 옛터이며 과거 식민지 시기 철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라졌다고 하는 사실과 그것을 아련하게 보여주는 듯한 작품 <영가대>는 부산 사람들에게 할 말을 만들어 주는 듯했다.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질문하려고 열심인 부모의 모습에서 《무라카미 좀비》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적극성을 느꼈다.

미술사란 무엇인가?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미술 작품이란 예술가가 조형 언어로 진리를 추구한 것이기에, 미술품 자체의 형식과 양식을 먼저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실증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다음 역사학을 포함한 타 분야 학문을 보조적으로 이용하여 편년체로 기술한다.[1] 이 정의는 미술관의 학예업무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은》은 일반적인 미술관 소장품전과 달랐고, 심지어 미술전 일반, 미술사 일반의 목적과도 동떨어져 있었다. 《모든 것은》의 연구 대상은 부산의 도시형성사다. 식민지 시기부터 부산이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해 가는 과정이 주요 서사로 다루어졌다. 해설이 담긴 패널에서 전시가 참고했다고 하는 각종 문헌 중 미술사학과 관련된 문헌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대부분의 미술품은 역사를 위한 시각 보조 자료로 전락했다. 다시 말해서 미술관에서 으레 주인공이었을 작가와 작품이 이 전시에서는 모두 역사 일반의 한 부분, 엑스트라로 참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무라카미 좀비》와 《모든 것은》 두 전시 모두에서 마찬가지였다. 미술과 작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

주지하다시피 《무라카미 좀비》의 관객은 작품을 보러 오지 않았고 사진을 찍으러 왔다. 이들에게 정말로 작품이 중요하지 않은가? 작품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이들이 무라카미가 너무 훌륭한 작가여서, 무라카미의 뛰어난 작품성에 감탄하고 싶어서, 작품을 실견하고 그 가까운 거리에서 소위 말하는 ‘아우라’를 체험하고 싶어서 미술관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들에겐 무엇이 중요할까? 무라카미라는 작가나 그의 작품보다는 《무라카미 좀비》라는 전시가 중요하다. 그의 작품이 비록 한없이 각자의 주목을 진중하게 요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전시를 광안리 불꽃축제 같은 행사의 반열에 놓고 생각해도 좋다. 여러분께서는 불꽃축제에서 어느 불꽃 장인이 만든 어떤 불꽃을 쏘는지 어떤 불꽃이 감탄할 만한지 일일이 알고 있는가?

도발적으로 쓰자면, 작품을 보러 오지 않아도 전시를 보러 올 수 있다. 이런 변화된 관객성은 1967년에 「저자의 죽음」이 쓰였다고 하더라도 원본의 보존 및 전승과 한없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술관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가령 전시해설 프로그램의 경우 도슨트 개인의 생각을 발설하는 일은 지금도 매우 터부시된다. 그럼에도 늦어도 1990년대 이후 미술을 주도하는 흐름이 개별 작품에서 큐레이팅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미술계 내부도 이런 관객성 변화에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동시대 미술계에서는 큐레이팅이 작품의 개별적인 존재감을 어느 정도 삭감하고 있는지, 주어진 작품의 의미를 얼마만큼 파워풀하게 변형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큐레이팅이 이뤄낸 미술의 새로운 확장된 영역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데이비드 조슬릿(David Joselit)은 이러한 큐레이팅의 강력한 수정주의를 낙관적으로 관찰하는 미술사학자 중 하나다. 모더니즘의 수정주의적 독해를 시도하는 작은 책에서 조슬릿은 이렇게 지적한다. 미술관은 “작품을 수장하기보단, 이미지를 생성한다.”[2] 그에 따르면, 변화된 관객성은 두 가지 순간을 포함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예술작품을 사진으로 가져오고(capturing), 두 번째 단계에서, 그것을 큐레이션(curation)한다. 그래서, 《무라카미 좀비》에서 작품을 보지 않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관람을 포기한 것이 전혀 아니다. 조슬릿에 따르면, 인증샷은 신용거래와 흡사하다. 나중에 SNS에서 큐레이션으로 보상하기 위한 어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전시 후기를 모니터링해 보면, 이들은 네이버 블로그이든 인스타그램이든 방문일 즉시 후기를 올리는 경우는 많이 관찰되지 않는다. 먼저 찍어 놓고, 여유가 있는 시간에 사진을 천천히 다시 보면서 기억을 상기시키며 어떤 이유에서건 사진을 선별하고 감상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전시 관람 후기글이 실제 관람일로부터 한 달 뒤에 올라오는 경우도, 심지어 전시가 끝난 시기에도 마치 방금 전시를 본 것처럼 올라오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덧붙여 《무라카미 좀비》의 후기 게시물을 보면 대부분 작품을 배경으로 깔고 인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사진은 대동소이하지만, 작품의 형태를 따라하는 포즈 등 어떤 종류의 맥락이 없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가 팝문화로서 부족함이 없다.)

사진 촬영 툴부터 다양한 소셜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서 스마트폰은 관람성의 사전/후 모든 과정에 간여한다. 스마트폰과 관객 사이의 사이버네틱한 이런 연결은 오래전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가 주창한 키노-아이(kino-eye)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베르토프에 따르면 키노-아이는 카메라와 연결된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인지적/신체적 한계를 초월해 새롭고 진정한 대상 세계에 가닿는 ‘기계 눈(mechanical eye)’이다.[3] 관람성으로 돌아와, 20세기 초 베르토프 시대에 키노-아이는 영화관의 영사기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독의 일인칭 단방향 비전이었다. 오늘날 이른바 스마트폰-아이(smartphone-eye)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기계 눈이 현전하는 곳은 네트워크로, 수많은 기계 눈이 포착하고 큐레이션하는 정보는, 베르토프의 경우처럼 천재적이거나 비져너리하진 않지만, 실로 다극적이며, 실시간, 다방향으로 흐른다. 새로운 기계 눈이 포획한 이미지-디지털 정보는, 네트워크 안에서, 큐레이팅에 따라 언제든 영원히 새롭게 순환할 수 있고 이미 하고 있다. 동시에 주류적인 미술의 창작과 미술사, 미술관에 할당된 영역에 ‘변화하라’고 강도 높은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재개관한 뉴욕 모마의 주요 소장선 전시가 보여주는 다원성과 #Black Lives Matter 운동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볼 것.)

작품-미술전과 관객-큐레이션 사이의 이런 미끄러짐이 《무라카미 좀비》와 스마트폰-아이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미술관의 소장품은 보통 미술사에서 특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 우선적으로 수집된 결과다. 소장품 전시 역시 그러한 기조에서 열린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대표적인 전시로 부산시립미술관의 《영점》을 든다. 이 전시는 부산의 근현대미술사를 중앙 화단과의 비교를 통해 서사화했다. 연대기별로 대표작가의 대표작을 꺼내서 보여줬으며, 여기에 대한 해제 역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것으로 한정해서, 사실에 기반해 가치중립적으로 쓰였다. 사실 이 전시는 이건희 컬렉션보다 부산시립미술관 소장선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지금의 관람성에 대한 관심에 입각했을 때, 이 전시는 여타 미술관 전시와 비슷하다. 천재적인 작가와 우수한 작품이 있었고, 이것은 틀림없이 그대로 관객에게 하달되어야 한다. 모르면 꼼짝없이 무시당하거나 배우는 수밖에 없다.

반면 《모든 것은》에서 소장품 전시에 대한 이 모든 일반 사항은 생략되었다. 대신 작품을 둘러싼 일련의 사회사적 편린이 따로, 또 같이 배치되었다. 전시를 보러 온 가족은, 작품 앞에서, 작품을 보면서, 미술사의 관심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흐릿한 기억—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 부모의 기억, 할머니, 증조 할머니, 혹은 관련된 공동체로부터 내려 온 어떤 시공간적 기억—을 자신으로부터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관객이 작품으로부터 그러한 지성적 노력을 기울였을 때, 작품은 미술관과 미술사가 보장한 자율적인 대상의 지위에서 멀찌감치 벗어난다—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자율성 개념은 공동체와 역사로부터 벗어난 대상을 인정하는 데 알리바이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한국미술에게 서양미술은 항상 ‘자율적’으로 보였다는 말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부모는 자신의 자식에게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부모가 그렇게 기억했고 그 기억을 전승하려고 했다는 사실도 사실은 사실일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꼭 《무라카미 좀비》에서처럼, 관객이 떠올린 다양한 집합적 기억은 소장품의 제 의미를 역규정한다. 그렇게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관객이 고유의 제 역량을 발휘하는 순간, 이 사물은 비로소 왜 여기, 이 미술관에 자신이 있어야만 하는지를 드러낸다. 특별히 《모든 것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관객의 능동성과 역량은 박물관과 역사로부터 구별되어 있는 특수 분야로서의 미술관과 미술사가 관객으로부터 어떠한 능력을 지속적으로 박탈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그 빈공간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채워져 있다.

나서면서

전시실에서 운영요원 일을 하며 관찰했던 《무라카미 좀비》와 《모든 것은》은 모두 예외적인 전시였다. 그러고 보면 무라카미가 운영요원을 과도하게 배치해달라고 요구한 이유는 다른 한편에선 작품이 걸린 공간을 기어코 미술관이 아니라 포토존으로 만들리라는 강한 다짐처럼 여겨진다. 《모든 것은》 역시 소장품 전시임에도 미술작품을 지역의 역사의 편린에 불과한 한갓 일반 사물로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계기를 통해 출현한 관객 역시 예외적이었다. 스마트폰-아이를 탑재한 관객은 《무라카미 좀비》의 이미지를 제 나름대로 포획하고 큐레이션하면서 네트워크 상에 흘렸는데, 이로서 작품은 강도 높게 변형되었으며 무라카미가 아무리 저작권에 민감하다고 해도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반면 《모든 것은》의 관객이 미술품을 역사적 사물로 인식하는 순간 소장품은 지역 공동체가 쌓아온 기억의 집적체가 되었다. 조금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무라카미 좀비》의 큐레이션이 네트워크상에 흐른다면, 《모든 것은》의 큐레이션의 경우 부산 시민 제 각각의 공동체적 계통 속에 흐른다고 할 수 있다.

미래의 미술관은 어떤 모습일까? 만약 미래가 현재의 연장이라면, 분명히 오늘의 미술관에서부터 나타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대미술의 역사는 독점적인 것을 공통의 것으로 만드는 역사였다. 그런 시도는 달라진 매체 환경 속에서 《무라카미 좀비》처럼 나타날 수도 있고, 《모든 것은》에서처럼 미술의 특권적 지위를 버리고 지역의 소박한 삶과 동화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이것은 작품의 원저자가 바랐던 방식은 꼭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이 정말로 작가에 종속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진짜로 자율적 존재라면, 그 나름의 삶이 있을 수 있다. 꼭 그것과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그렇다. 이쯤 해서 김재환 학예사가 다른 글에서 이미 했지만, 2022년의 프라하 정의를 한 번 다시 쓰고 싶다. 아이콤이 몹시 보수적인 기관이란 점에서 이 정의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박물관은 유무형 유산을 연구‧수집‧보존‧해석‧전시하여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영구기관이다. 박물관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촉진한다. 박물관은 공동체의 참여로 윤리적,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소통하며, 교육‧향유‧성찰·지식·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4]

미래의 미술관을 상상하라면 나 역시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
1) 남동신, 「미술사의 과제와 역사학」, 『한국미술사학회』, 268, 2010, p. 90.

2) 이 같은 관점에서 조슬릿은 근대미술(modern art)을 큐레이션하며 주류 모더니즘 서사를 소수자의 역사로 재구성한다. David Joselit, Art’s Properties[Kindle], (New Jersey: Prinston University Press, 2023). n.p.

3) Annette Michelson (ed.), Kino-Eye: the writings of Dziga Vertov, Kevin O’Brien (trans.), (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pp. 17-19.

4) 「박물관」, 《ICOM 웹사이트》, 2022년 8월 24일, (접속: 2023년 11월 27일), https://icom.museum/en/resources/standards-guidelines/museum-definition/


2023. 11. 27.
부산시립미술관 <미술관과 그 친구들> 웹사이트에 기고.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지방 예술공간도 사랑을 꿈꾼다

소년 용접공으로 이름났던 천현우가 「지방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라는 글을 써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1) 이 글은 무엇보다 좌파의 빈축을 샀다. 좌파에게 ‘지방’은 구출되어야 하는 중앙의 식민지다. 반면 ‘총각’은 요즘 같아서는 ‘처녀’만큼이나 불러서는 안 되는 혈기 왕성한 구시대적 남성 주체의 형상이다. 지방과 총각은 절대 만나서는 안 되는 두 단어 같다. 마치 피해자와 가해자처럼.

왠지 모르게 나에게 천현우가 묘사한 지방 총각의 가정을 향한 소박한 욕망은 지방 예술공간의 알레고리처럼 보였다. 지방에 여성이 없는 이유는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 때문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인데, 마찬가지로 이런 조건에서, 문화계통의 일자리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또한 인구수 자체가 적거나 감소하다 보니 이성끼리 만날 기회도 적다고 하는데, 미술 관련 학과가 신속하게 통폐합되고 있는 와중에 미술 인구 역시 턱없이 적으며, 야심에 찬 예술가나 큐레이터, 이론가가 언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둘러보면 지방을 떠난 지 오래다. 또한 혼인에 성공해도 아이를 낳기도 힘들며, 맞벌이 부부를 위한 지원책이 미비한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기가 난망하다고 하는데, 이는 지방의 문예 지원 상황과 흡사하다. 문예 지원이 지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 규모도 중앙에 비해 턱없이 적은 데다가 지원 방향성도 효용성 중심으로 미묘하게 다르다.

지방에서 예술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마치 남아 있지 않은 이성을 상상하고, 구애하고, 또 가정을 꾸리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한 것 같다. 기획전 《점이지대》가 펼쳐진 사랑농장은 바로 이런 조건 위에 놓였다. 사랑농장이 위치한 경남 김해시 한림면은 소멸하는 지방 중에서도 ‘초토화된 마을’로 불리곤 한다. 한 보도에 따르면, 2017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서울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 읍면동의 개별입지 공장 수, 오염부하를 토대로 6개 등급을 나눈 결과 한림면은 0등급을 받았다고 한다.2) 청년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이 어쩔 수 없이 남아서 버티던 중 예술가가 들어왔다. 돼지 사육 농장 한가운데, 어디선가 주워온 영문자 LOVE 간판을 걸면서.

사랑농장이 이러저러한 작가를 모아서 표방한 ‘점이지대’는 여기서부터라고 제안한다. 보통의 기획전에서 제목은 아이디어를 총괄하기 마련이다.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고도로 정밀하고 적확하게 세공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점이지대》는 특정한 예술 작업의 흐름을 제시한다든지, 어떠한 미학적 주제로 작품을 묶어내려는 시도에 관심이 없다. 전시는 작가도 예술도 아닌 어떤 장소의 성격, 비결정적인 상태만을 표현한다. 중요하게도, 그 장소란, 예술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사랑농장’ 그 자체로 보인다.


**

앞서 언급했듯이, 한림면은 김해에서도 주변적인 장소로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차를 운전해서 가면, 지나가면서 볼거리라는 것이 헐겁게, 바람 불면 날아갈 것처럼 만들어진 공장 단지다. 인적은 거의 없고 돼지 사육장이 근처에 많아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차를 운전해 올라가면 예술가스럽게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서성이고 있다. 이것이 설마 예술공간일까 싶은, 방치된 듯한 샌드위치 패널 공장이 바로 사랑농장이다. 전시장은 어두침침한데 비단 조명시설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무언가 쾨쾨하고 무언가 텅 빈, 무언가 예쁜 구석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하고 빈곤한,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안 좋은 공기가 감도는, 하루만 전시해도 장비는 고사하고 작품이 다 망가질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감돈다.

그런 곳에 예술가의 작품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두 개의 불길한 신호가 감지된다. 하나는 젠트리피케이션, 과장해서 앞으로 치고 나가자면, 샤로수길, 망리단길, 송리단길이라는 미래. 젠트리피케이션은 오늘날 낯선 현상이 아니며, 어떤 면에서, 지방소멸 시대에, 모든 지자체는 살아남기 위해 “전국의 관광지화”를 바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잘 알려진 것처럼, 문화요소, 특히 예술가는 가성비 좋은 젠트리파이어(gentrifier)다. 무언가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킨다. 스스로를 다른 것과 구별해내고 스스로 특별하게 존재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종국에 원주민을 내쫓을지라도, 예술가는 기어코 그렇게 한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여기의 예술가는, 또 한 무리의 젠트리파이어로서 한림면에 광범위하게 퍼진 폐급 공장만큼이나 암세포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예술공간의 잘 알려진 미래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면, 예술공간의 잘 알려진 과거는 지방소멸과 궤를 함께한다. 2014년 《공장미술제》의 작가 대우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출발한 젊은 ‘을’의 분노는 10년 전 386세대와 X세대가 온 힘을 다해 구축한 대안공간 시스템의 효용성 상실을 논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가 되면 공적영역의 문예지원 시스템이 안정화되면서, 신진작가 소개 자체만으로 특별할 게 없어진 시대에, 그렇다고 작품을 팔아줄 수도 없는 대안공간을 청년 예술가는 하나 둘씩 떠난다.4) 누군가는 쉽게 말하곤 했다. 포기하면 편하다. 능력 없으면 더 이상 민폐 끼치지 말고 문을 닫아야 한다고.

그런 면에서 보면, 돼지 농장과 샌드위치 패널로 둘러싸인, 제대로 된 전시장도, 큐레이터도, 행정 시스템도, 예산도 없는, 사람도 잘 찾지 않는, 알려지지도 않은 지방에서, 사랑농장이 예술공간으로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초강력 무리수 그 자체다. 죽음의 이지선다가 눈앞에서 강요된다. 변하면 죽는다: 젠트리피케이션. 변하지 않아도 죽는다: 지방소멸.


***

젠트리피케이션이 완성되면 예술가는 사라진다. 특별했던 예술실천은 도시 디자인과 소비 시스템에 잡아먹혀, 최악의 경우 거주민과 함께 쫒겨나며, 심지어 최선의 경우에도 예술가 마을 같은 낭만 어린 전형이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지 않아도 예술가는 사라진다. 예술공간이 별다른 지원책과 매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피대상이 되어 사라진다면, 역설적으로 예술가는 활동할 근거를 출발 전부터 상실한다.

혹시 문화관광의 소비경험 따위로 외파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종국에 예술가의 지지를 잃어 스스로 내파하는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렇게 자기의 특별함과 존재를 지켜나가는 만큼, “전국의 관광지화”의 완성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젠트리피케이션과 지방소멸 양극단과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그것과 멀어지려고 하는, 이중적 과제를 지닌, 그러니까 변화 그 자체를 지속할 방법이 있다면?

그런 생각지도 못한 기똥찬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리가 만무하다. 사실, 《점이지대》는 어디서나 들려오는 노래를 놀랍도록 성실하게 따라 부른다. 부산과 울산 같은 인근 지역의 작가들이 폐공장 지대에 모였다. 작품을 설치하고 SNS에다가 홍보한다. 나름의 오프닝을 하고 나 같은 큐레이터나 비평가를 초대해 멘토링이란 이름의 세미나도 연다. 사진을 찍고 글을 받고 결과보고집을 출간하고 문서고에 꽂아 놓거나 누군가에게 보낼 것이다: 홍티아트센터나 F1963 같은 많은 기관의 프로그램이 답습하고 있는 프로토콜.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것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2020년대에는 전형을 이룬다. 백종원 거리를 모든 지자체가 만들려는 것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나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종국에 ‘똑같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

김도영은 음습하고 외진 공간에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 영상 전시를 여는 것이 유효하겠다고 생각했다. 반지하 주택의 창문을 사랑농장의 어두운 벽에 투사하기로 결정한 최은희는 사랑농장을 보면서 반지하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전수현은 지방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합리와 비합리를 연결하는, 아직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이단적 믿음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최서연은 마르크 오제가 일찍이 말했던, 전통적 공동체가 불가능해진 비장소적 이미지를 사랑농장이란 장소와 겹쳐보았다. 정수는 언어로부터 시각으로 나아가며, 김은지는 이미지로부터 언어를 향해 가며, 둘은 미학적인 분할과 미끌어짐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이 모든 영상과 설치물이, 허름하고 외진 건물 안에서,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흐트러짐 없이 성의 있게 설치됐다.

이상한 건, 지금, 여기서 그것을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발견적인 경험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이 가성비적 시대정신을 초과하는 경험으로 온다는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만든 작품을 왜 굳이 여기에 출품하려고 결정한 것인지, 모두들 왜 이 멀고 지저분한 곳까지 와서 무알콜 맥주 캔을 손에 들고 흐느적거리고 있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말을 걸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인지, 왜 그렇게 작업대를 반듯하게 세워서 그 위에 빔프로젝터를 정중앙에 삐뚤어지지도 않고 올려놓은 것인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평론가를 잡아 놓고 추운데 밤새도록 집에 가지 않고 작업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던 것인지, 감기에 걸려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여기에 오고 싶었던 것인지, 그러니까 무엇이 그렇게 절박해서 왜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 《점이지대》는 그런 장소였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과잉된 무엇이 여기에 투자되었다.

이런 각자의 충실성을, 이런 과잉을, 경남일보의 이정민 기자를 따라서 ‘예술혼’ 말고는 딱히 설명할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5) 이런 예술혼은 시작부터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의 예술공간이란 점을 떠올려 봤을 때 차고 넘치는 무엇이 아닐 수가 없다. 또한 문화적 키치를 만드는 젠트리파이어란 용기에도 채 모두 담길 수 없는 무엇일 테다. 예술혼이 구차다고 조롱받는 시대에, 예술공간이 작가 커리어의 지렛대로서 기능하지 않는다면 무가치해지는 시대에, 이름 없는 공간에서 행사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여기에 충실히 화답하는 일련의 과정은, 심지어 그것이 이미 잘 알려진 배관을 따라 흐른다 하더라도, 압이 차서 팽팽 부풀어 오르고 찢어진 틈으로부터 터져 나온다.


*****

돌아가서, 어쩌면 지방총각은 영원히 가정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을 못한다고 사랑을 못하는 건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점이지대》는 예술가의 사랑농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도 여기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관심 가져주지 않아도, 알 수 없어도, 가까운 미래에 이곳이 설령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 우리가 모여 작업을 보고 이야기하고 웃고 떠드는 그런 꿈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그런 장소, 그리고 그런 일을 앞으로도 계속 꿈꾸고 싶다는 희망. 《점이지대》는 사랑농장이 취한 그러한 종류의 태세로 보였다.


1) 천현우, 「[2030 플라자]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 《조선일보》, 2022. 9. 15.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2/09/15/IADOUZTNAVDMHHLXCYX6GOL6V4/ (접근: 2023. 1. 16.)

2) 윤지로, 「암세포 번지 듯…느슨한 규제에 공장은 마을을 집어삼켰다 [우리의 환경은 평등합니까]」, 《세계일보》, 2019. 3. 7. https://www.segye.com/newsView/20190306004667 (접근: 2023. 1. 16.)

3) 앞으로 지칭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백종원과 예산군의 관계처럼 공공영역과 영합하는 지방재활성화 정책에 가깝다. OSEN, 「시장으로 간 백종원, ‘전국의 관광지화’ 새로운 바람 만들다」, 《조선일보》, 2022. 10. 04.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broadcast/2022/10/04/46WSM632H67IP2WDLR3KSWHS4Y/ (접근: 2023. 1. 17.)

4) 여기에 관해선 나의 「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를 볼 것. 《아트신》, 2019. 2. 12. https://www.artscene.co.kr/1680#footnote_link_1680_3 (접근: 2023. 1. 17.)

5) 이정민, 「경계 넘나든 시선, 김해의 점이지대 작가 5人 예술혼」, 《경남일보》, 2022. 9. 29.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504777 (접근: 2023. 1. 17.)


2023. 1. 18.


사랑농장 <점이지대> 카탈로그 글로 쓰였음

2021년 5월 21일 금요일

수족관의 삶

김기대, 《AQUA UNIVERSE》,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 2021.4.3.(토) ~ 5.22(토)

주택을 개조해 만든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의 조그만 방 여럿에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핸드메이드 수족관 몇 세트가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횟집의 영업용 수족관부터 분재나 가구와 결합된 커스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오래된 느낌을 자아내는데, 아마도 사용된 재료를 모두 주워 온 탓일 테다. 또 이 수족관에는 여러 치어가 실제 배양되고 있어, 마치 어린 시절 익숙한 수족관의 기억, 그러니까 조그만 생명을 길러보고자 시도하고, 방치하고, 실수하고, 실패했던 그런 기억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생명이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조그맣고 취약한 것이다.

여러 곳에 붙어 있는 메모를 읽으면서 진행하면, 수족관이 자전적 메타포라는 사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반영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자아처럼 보이는데, 그 순간 수족관이란 장소적 메타포에는 의미가 여럿 중첩된다. 준비하는 장소로서 스튜디오, 그리고 전시하는 장소로서 갤러리.

그러니까 예술의 장소적 기억이라고 할까? 그렇게 아름답진 않다. 특히 작가의 작업실 침실로 제시된 3층 통로 옆 조그마한 방이 그런데, 배치된 야전침대와 수술용 트레이와 도구는 전쟁 중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군인이 대강의 조치를 취하고 어서 빨리 쉬어야만 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런데 중요하게도 이 방에는 아무도 없다. 마치 키우던 금붕어가 죽고 나서 한동안 방치된 수족관처럼, 볼 수 있는 것은 온통 긴급성이 지나간 부재의 흔적뿐이다.

한편 문고리 대신 붙어 있는 마네킹 손을 잡고 밀고 들어가야 하는 다른 방에서는 빔프로젝터가 한 벽면에 쏘아져 있고, 벽에는 여러 오브제가 둥둥 떠다니듯이 붙어 있다. 여기서 VIP에게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을 작가의 모습을 떠오르며, 그래서 그런지, 볼 사람과 보여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은 채로 홀로 틀어진 영상과 장식된 오브제는 실로 기괴하게 느껴진다. 어떤 종류의 긴급성과 어긋남, 실패의 감각, 초현실주의자가 보면 낭만주의적 폐허라고 불렀을 감성 같은 것이 이 전시 곳곳에 서려 있다. 무언가 몹시 붕괴하였고, 하고 있거나, 할 것인데, 그건 작가 자신일 수도, 미술계일 수도 있다.

옥상 끝 방에 들어서면 좀 더 구체적인 삶이 보인다. 이 방에는 제주도 출신의 여러 미술 관련 간행물이 일렬로 진열이 되고, 탁자와 의자가 누군가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말하자면 응접실로, 작가 자신을 다른 이에 홍보하고자 하는 공간이라고 해야 할 텐데, 막상 느껴지는 것은 적막과 고독, 손이 한동안 닿지 않았던, 부식되거나 풍화되거나 퇴적된 감각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기어이 사라지고 말았을까?

전시는 소위 말하는 기획된 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작가는 작업과 전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여한다. 소위 말하는 진정성을 이입하면서 작가와 작업 사이에 끈끈한 연결을 만들어 내며, 어떤 경우에 그것은 기획된 것이 경계 짓는 분할선을 가로질러 보편적 공감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경우 그런 것처럼 보이며,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자전적 회고를 넘어, 어떠한 종류의 작가적 삶의 일반 모델을 고찰할 수 있게 해준다. 작가가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 작가의 커리어를 생각해본다. 분명히 지배적인 흐름이 분명히 있고, 이를 둘러싼 권력도 작동한다. 그것은 불명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확실한 어떤 분할 선을 긋는다. 알만한 주요 대학을 졸업해 주요 공간에서 전시하고 주요 큐레이터와 비평가와 얼마나 네트워크를 형성했느냐 등에 따라서 기회와 커리어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런 풍경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지방 소도시의 작가는 어떤 기분일까? 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면서? 누구와 어떤 미래의,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대다수 작가에게 아무도 오지 않는 스튜디오와 전시장은 치어가 담긴 방치된 수족관과 비슷하다. 그들 또한 언젠가 스튜디오와 전시장을 비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떤 종류의 윤리일지도 모른다. 이들을 더욱 잘 알 필요가 있다.

김기대 인터뷰: https://fb.watch/5SuR4vrftn/


김기대 인터뷰: https://fb.watch/5SuR4vrftn/

2018년 2월 24일 토요일

눈썹의 단상

호의적으로 해석한다면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는 작업이다. 하지만

작업에 흐르는 작가의 멘털리티는 확연히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선과 악을 나눠놓고, 섹스돌과 (비인간화한) 인간 모두에 거리를 두며, '가련한 그들'을 카메라 렌즈로 더듬는다. 얼빠진 노동자가 흉악스런 손놀림으로 섹스돌을 헤집어 놓는다. 마오의 초상이 언뜻 보인다. 똑같이 생긴 폴리곤 캐릭터를 샷건으로 쏘는 게임... 이런 요소 때문에 포드주의 비판의 전형이 순식간에 떠오른다. 더군다나 작가의 자리는 너무 안전하다. 이런 상황을 고독하게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휴머니즘을 옹호한다고 해도, 다른 걸 다 떠나서 나는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 모든 작업이 이제 지겹다. 자신의 터질듯한 에고를 얼마간에 응축시켜놓고, 그걸 보라고, 알아달라고, 중요하지 않냐고, 대단하지 않냐고 떼를 쓰는 작업이 역겹다. 말로만, 영상으로만, 이미지로만 정의를 떠드는 정의 속물이 너무 싫다. 영상에 보여지는 노동자는 그야말로 얼빠진, 무기력한, 반복 노동을 일삼는 자다. 발터 벤야민을 많이들 읽지만 <생산자로서 작가>만큼 무의미하게 소비되는 글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정윤석은 이데올로기의 후원자 자리에 있다. 해방은 영화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그랬어야 했다.

한편 휴머니즘을 떠나서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다. 섹스돌도 돌권이 있을진데, 그들이 느낄 수치심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ㅎ 휴머니즘의 시점에서 <눈썹>은 포르노가 아니다. 하지만 아마 인형의 시점에선 답도 없는 포르노일 것이다.

2017년 8월 29일 화요일

보디츠코 사용법

<디자인과 범죄>에서 할 포스터는 현대 디자인을 두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라고 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80년대 포스트모던 미술의 비판적 실천은 당시 부상하던 팝문화 속에 내재하던 전복적 성질에 주목하여, 그 코드를 대항문화의 자리에 위치 지으려고 애썼다. 포스트모던한 실천가들이 이를 통해 하려고 했던 일은 물론 모더니즘의 초월론적 미학을 약화시키고 해체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저항적 실천은 너무나 간단히 자본주의의 '미학'으로 다시금 전유되었다. 여기서 대중문화는 더 이상 대안이 아닌 주류로 떠올랐고,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벤자민 부클로 같은 문화산업론자가 우려했던 상황이 그대로 펼쳐져 갔다. 첨병은 현대 디자인이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에서 일찌기 경고한 일상의 전방위적인 미학화는 사물부터 라이프스타일까지 물질과 비물질적인 세계의 모든 것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는 현대 디자인에 의해 실현되어 갔다. 예술은 창작되었고 여전히 되고 있지만 질과 양 모두에서 판정패는 뻔해 보인다. 디자인이 이른바 바우하우스의 토탈아트를 새로운 자본주의의 정신에 맞게 '토탈키치'로 개량하는 사이, 예술은 인사동 길 어딘가로 퇴락 중인지도 모른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80년대의 전설적인 실천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예술과 디자인이 아직 '살아 있을' 당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신보수주의가 활공하던 시기인 80년대엔 반대로 훌륭한 진보적 예술가가 많이 배출이 되었지만, (예술을 통한 사회의 변혁이라는 아방가르드의 본 의미에 충실한다면) 보디츠코만큼 아방가르드 꼬리표가 잘 어울리는 실천가도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시 많은 포스트모던한 예술가들이 문화 코드의 저항에 천착했지만, 그 사회적 실효성에 관해서만큼은 뜨뜻미지근했다. 때문에 많은 포스트모던 예술가들은 전복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을 비판적 문화 지식인, 이데올로그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예술가가 생산자로서의 실천보다,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빌리자면) "이데올로기적 후원자"로 남는 것을 더욱 선호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보디츠코는 의식적으로 생산물의 실질적인 기능성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런 면모는 보디츠코 자신이 디자이너로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이란 분야는 특정 목적에 맞게 기능하는 문화적 산물을 만들어내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복무하는 자율적 예술보다 존재론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신화는 내부에서 무수히 많이 검토되고 비판되었지만, 마치 사진 시대의 회화, 디지털 무빙이미지 시대의 영화처럼, 디자인 시대를 맞이하며 예술은 '무관심성'을 드러내며 자신을 상대화해야만 얼마간 존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디자인과 예술의 분리를 의미한다. 최근의 로잘린드 크라우스나 할 포스터는 예술의 준자율성semi-autonomious 회복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는 마치 그의 은사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그랬듯이, 예술에 최종 방어선을 둘러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를 목욕물과 함께 버릴 것인가? 디자인에는 이제 남아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을까?

보디츠코를 이른바 사회적 디자이너로 보고 싶은 이유는, 현대 디자인의 토탈키치화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디자인의 재혁신을 소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광범위한 토큰을 가지게 된 디자인을 이른바 독당근 같은 처방으로 볼 수도 있을 일이다. 때때로 극악의 독은 최상의 약이 되기도 한다.

보디츠코는 그런 참조점을 제시한다. 보디츠코는 분명히 쓸모를 위해 디자인하지만, 그 초점은 타자의 자율성 고양에 맞춰있다. 보디츠코의 <노숙자 수레>나 <대변인> 같은 작품이 강력한 도구성을 가진 디자인 산물처럼도, 하지만 어딘가 예술 오브제로도 보이며, 혹은 둘 다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유는 이런 둘 사이의 경계 위에 그의 작업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보디츠코의 관심은 주류 미학 코드를 디코딩하고 다시 코딩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가속화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노숙자나 하층민, 제대로 된 사회보장을 받지 못하는 이주자 등, 사회 곳곳에 (비)존재하는 소수자의 '존재성'을 어떻게 드러낼 것이냐였다. 이는 그의 실천이 디자인 산물을 고안하고 제작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도 그것이 어떤 문맥에서 어떻게 사용되며, 또한 디자인/예술의 산물의 주인공이 누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뜻이다. 보디츠코의 디자인에서 노숙자는 작품으로부터 자율성을 위임 받는다. 때문에 보디츠코의 작업에서는 수행performance과 현존presence이 중요하다. 누구도 아닌, 디자인의 클라이언트, 사회적 소수자의.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은 노스텔지어와 함께 꽤나 멜랑콜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사회적 실천이 전시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한다. 화이트큐브에 얌전하게 아카이브된 기록 영상과 사진, 오브제는 어쩔 수 없이 아방가르드의 폐허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새롭게 커미션한 <나의 소원> 같은 작품은 제3세계 미술관 키치라고 불러도 무방할 종류의 어떤 것이었다. 움직임을 정태가 대체했고 이 시점에서 나는 또 다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를 떠올린다. 하지만 보디츠코 스스로 말했듯이, 우리는 너무 쉽게 아방가르드를 쓰레기통에 처박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디츠코가 한때 그렇게 했듯이, 오늘날 디자인 실천은 또 다른 형태로 개진될 수 있다. 그 방법은 아무도 모르지만, 보디츠코가 그 시대에 가능했듯이, 지금 시대에 불가능할 법도 없다. 우리는 그런 태도를 보디츠코의 전시에서 고고학적으로 발굴할 수도 있다. 이것이 보디츠코 전시의 ‘사용법’일지도 모르겠다.

2017년 2월 26일 일요일

올라퍼 엘리아슨

논리적인 아니시 카푸어

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전시평에 관한 평

http://www.theartro.kr/arttalk/arttalk.asp?idx=67

이 글은 아트로에 기고한 박수지씨의 글이다. 원래 나에게 청탁이 온 글인데 큐레이터로서 내 전시를 평하는 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녀를 추천했다. 날 선 비판이 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은 손쉬운 비판의 스텐스를 취한다. 가장 결정적인 점은 사업=미술 프레임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잘못됐다면 거기서 일어난 모든 예술행위는 모두 잘못됐는가? 이 글에서는 이 구분을 하지 못했거나 최소한 여기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사업의 실패를 예술의 실패로 치환한다. 이건 문화예술위의 정책이 잘못됐기 때문에 한국의 미술은 모두 잘못됐어, 라고 주장한다거나, 확장해서 한국은 대통령이 샤머니즘 정치를 하기 때문에 한국인은 모두 비합리적이야, 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제도 그 자체는 현실의 일부를 아주 도식적으로 나타낼 뿐이다.

이 글에서 박수지는 네트워크/킹을 사업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네트워킹으로 무엇을 했냐는 실용주의적 심문이 결론에서 기다릴 것이란 점은 중제만 봐도 알겠다. 목적론적인 네트워크는 사실 아시아문화전당 자신이 설정한 아젠다로, 큐레이토리얼 팀이 실제로 몹시도 저항했던 아젠다이기도 하다. 미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미적으로 네트워크는 모든 가능태의 징표다. 윤리적으로 네트워크는 전당이 단순히 참여 공간/작가를 대상화시키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네트워킹이라는 사태가 전시 자체가 되길 원했다. 네트워크는 여기서 철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었으면 했다. 성과주의를 위한 방법이 아니라.

나는 미술계에서 나타나는 많은 종류의 비판이 제도비판을 향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로 헛발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도는 구체적인 작업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도 이것을 인정한다면, 둘 사이의 상호관계/구조를 더욱 정치하게 파고 들어야 한다. 단순히 제도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편하게 결론 내리는 건, 나아가 근본적으로 제도를 바꿔야 예술도 바뀐다는 (감춰진) 입장까지 나아가는 건 너무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좌파 포퓰리스트적인 태도라는 생각까지 든다. 당신을 두고 과연 정말 비판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판적인 것이 그렇게 쉬운가?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돌과 땅>이란 전시에 붙은 인용에 관해.



흠 <돌과 땅>이란 기획에서...인상 깊었던 인용구가 있었다.

"손에 닿는 가장 작은 돌에서, 그는 약속된 땅의 파편을 알아보는 것이다. -폴 오스터"
http://www.altpool.org/_v3/board/view.asp?b_type=5&board_id=774&time_type=

라는 것인데...

원문을 보면

"He will refuse, the better to hunger for what he has denied himself. For to enter the promised land is to despair of ever coming near it. Therefore, he holds everything away from him, at arm's length, at life's length, and comes closest to arriving when farthest from his destination. And yet he goes on. And from one step to the next he finds nothing but himself. Not even himself, but the shadow of what he will become. For in the least stone touched, he recognizes a fragment of the promised land."

Paul Auster, "Pages for Kafka," Collected Prose, p. 475.

이 글은 카프카에 대한 헌사기 때문에 왜 이 글에서 대문글을 인용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의 천재성을 설명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허세?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시청각 정서영 개인전

작가가 깊고 깊은 사유를 통해 만들어 낸 물질과 공간에 대한 반응 같은 것.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끈질긴 탐구. 예민하고 단단하단 인상을 받았다만, 포스트-모던한 것이 이젠 좀 지겨웠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

2016년 9월 10일 토요일

이희준. 기고자에서 메모

1. 조형.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말. 이 말은 굳이 점 선 면의 기하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2. 실제 공간을 곧 바로 재현하면 환영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재현을 피하는 방식으로 실제 공간을 드러낸다?
3. 디자인된 일상이 미적 관조의 대상?
4. 건축적 잔해에 대한 미적 관심. 멜랑콜리, 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은...
5. 페인팅은 건축과 네트워크드 될 수 있을까
6. 기타 등등은 나중에 정리하겠음

2016년 7월 30일 토요일

목하진행중의 모 작가

이름은 까먹었다. 김신애였나?

평면에 대한 관심. 하지만 왜 관심이 있는진 불분명. 여튼. 물리적 장소를 평면화(평면적으로 이해)하여 그것의 외곽을 계량화하여 잰 후 선으로 바꾼다. 그 선을 줄줄이 이어서 어떤 조형적인 모양을 만든다. 그 결과 추상적인 선 오브제가 나오는데(사실은 선모양의 입체 조형물), 이것을 2디의 3디화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

기술적으로 형질을 변형시키는 방식이 정말로 형질이 변환한 것이냐는 제외. 너무 구멍이 많다. 그것을 떠나서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추상회화를 비판한 방식을 기이하게 고쳤달까? 그러니까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추상의 이미지를 뚫고 들어가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지만, 그러니까 아무 개념도 나오지 않는데, 초월론적이고 보편적인 무엇을 이야기한다는 그런 비판을 고쳤달까. 어떻게? 알고리즘, 즉 평면 외곽의 수치를 선-입치 조형물로 변환시켰기 때문에 그 조형물의 개념은 평면 외곽의 수치라는 것. 그러니까 계량적 추상이랄까.

언뜻 레프 마노비치가 페북에 올린 글이 떠올랐다. 이 게시물http://www.fastcodesign.com/3062016/this-neural-network-makes-human-faces-from-scratch-and-theyre-terrifying에 대한 반응.
I feel very sorry for poor deep neural networks being tortured to do "art." Imagine if AI really existed (it does not) and you were this AI. And some "artists" who never took an art history class were misusing you to make some really 4th rate modernist "artworks." And sometimes these are really smart people with PhDs in computer science who are even doing it.
Must feel terrible. Good thing software has no feelings and no self-consciousness..omg...help me... Stop it.. I want to do useful things... Recognize faces and translate speech, not make some suburban van Goghs and Monets..help....

신경 네트워크가 '아트'도 한다는 뭐 그런 기사인데, 마노비치는 신경 네트워크에게 고문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골 촌놈 짝퉁 반고흐 만들지 말라고. ㅎ

알고리즘이, 비록 그것이 되게 단순한 치수재기일 지언정, 왜 추상화가 되어야 하는가? 왜 그것을 카피하는가? 왜 조형세계를 기껏 어떤 알고리즘으로 바꿔놓고 다시 조형세계로 환원하는가? 이차원과 삼차원의 변환 자체가 그렇게 흥미로운 사건인가?

그나저나 근데 그게 정말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변환 맞기는 한가? 평면의 외곽선 길이와 똑같은 외곽선 길이를 다른 것에 대입했다고 해서? 그냥 어떤 숫자만 자의적으로 같은 거 아니고? 그럼 외곽선 길이가 같은 평면화된 무엇은 모두 같은 결과값이 나오는 건가? 라는...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링크 패스 레이어 메모

홍진훤씨가 그리 핫하다고 그래서 김익현 개인전 보러 지금여기 갔다 옴. 

1. 생각보다 사진이 그리 회화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외려 디테일해서 인디애나 존스 같은 고고학자 액션물에서 보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 충동 같은 것이 보였달까. 이걸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오 동굴 쩐다 찍어야지--같은 그런 충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동굴이라는 깊숙한 구멍에 사진기를 뾰족히 들이미는 행위 자체는 뭔가 섹슈얼한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 의미에서 어떤 처녀지에 대한 정복욕처럼 보이기도 한다.

3. 동굴이 끝이 안보인다는 점에서, 뭐랄까 정말로 깊고 깊은 구멍이란 점에서 그 발굴 충동은 이미 시작부터 실패한다. 정복하려 하면 할 수록 정복 할 수 없음의 공포만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없음은 카메라 랜즈의 들이댐으로 확증되며, 그 순간 카메라는 무력감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4. 김익현은 최소한의 컨텍스트 매개 장치를 전시장 내에 배치했는데, 그것이 동굴과 금(돈)을 연결하며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상기해보게끔 한다. 파편적이만 그리 디테일하거나 복잡해 보이진 않는다. 단순히 금광과 광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몇몇 문화 현상과 연결된다는 식.

5. 그런 자료는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통해 동굴 사진과 겹쳐진 모양으로 벽에 쏘아진다. 효과는 (다소 직접적이지만) 동굴과 자료 사이의 링크를 만든다. 오래된 미디어(슬라이드 필름)로 모조된 '오래된 것처럼 보임'은 유사 알리바이다. 하지만 개연성이 있다곤 보기 힘들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어떤 유사의 게임이 시작된다.

6. 동굴은 텅 비어있기 때문에 무엇이 채워져도 상관 없다. 유사의 게임이 어떻게 동굴을 채워 갈지, 그리고 (필연적으로) 실패할지 보는 것이 앞으로 동굴 작업의 관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할 포스터라면 이것을 아카이브 충동이라고 했을 것이다.

/

7. 동굴 사진을 시뮬레이션 이미지 > 하이퍼-리얼한 이미지로 읽고 싶은 사람의 눈에 대해선 뭐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인다고 밖에... 사진의 인덱스성을 십분 인정한다면, 작품 제작 방식을 참고 한다면, 그리고 눈이 있다면, 이 사진이 단지 '이미지'가 아니라 빼도박도 못하는 동굴의 '흔적'이라는 것을 똑바로 봐야한다. 너님이 동굴 사진을 보고 동굴을 너머 뭔가 평편한 세계를 느꼈다면, 그건 너님만이 아는 푼크툼일 확률이 높다는 것. 그렇다면 너님이 말하고 있는 바는, 사진 자체가 아니라 너님의 뇌구조/무의식일 확률이 높다는 것.

2016년 1월 31일 일요일

아르코 <미디어 아카이브> 관람

기획의도는 별 다르게 없는 것 같고. 띄엄띄엄 메모.

카메라의 위치나 존재가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권혜원과 무진형제, 박준범이 그렇다. 미디어 자체를 고찰하지 않는다는 건데 그렇다면, 단어 의미 가지고 딴지 걸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서도, 여기에 굳이 미디어(아트)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라면 권혜원과 무진형제는 짧은 필름, 박준범은 퍼포먼스 다큐멘터리라고 하겠다.

그것과 논외로 권혜원은 엽서란 미디엄의 "사회적 삶"을 탐구한다. 동시대 담론과 좀 부합되는 측면이 있달까. 어떤 면에서 트랜디하단 생각.

무진형제는 뭔가 강렬하긴 한데 내러티브 구조가 (없거나 해체된다기보단) 단순하달까 그래서 그저그랬다.

박준범은 대표작을 전시했는데, 10년전 거라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준범은 (미디어 아티스트라기 보다) 좋은 개념미술 작가다.

그 외 태싯그룹은 실로 미디어아트의 스테레오타입, 즉 상호작용성 그 자체에 함몰된 경우. 내 기준에선 좀 편파적이긴 하지만서도, 이건 미술이 아니다.

조현아 작업은 잘 이해가 안 된다. 빌비올라 같은 옛날 비디오아트가 상기되기도 하는데, 어렵다. 영상에선 수화, 4개의 스피커에서는 각기 다른 소리가 나온다. 언어와 목소리(플라톤식의 의미에서?)에 관한 내용인 건 맞는 거 같은데 뭔가 형이상학적이랄까.

모아 놓고 보니 되게 혹평인 것 같네. 끝.

2016년 1월 30일 토요일

교역소 <헤드론 저장소> 관람

봐야되는데...하다가 이현씨랑 이야기가 되어서 함께 관람. 교역소의 마지막 전시라고. 짧은 메모.

무엇보다 놀라운 점. 전시 서문이 없다. 리플렛도 없다. 도록은 만들 예정인지 모르겠는데 여튼 현재 스코어 그렇다. 포스터를 판다. 스티커를 판다. 이게 맞다 그르다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되게 다른 문법임엔 분명하다.

판단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사이에 교역소는 사라진다. 지금까지 전시들이 그랬다. 치고 빠지는 식이랄까. 속도전.

이런 경황이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문법, 이 작업이 무엇을 의미하고 전시 기획의도가 무엇이며 등등을 말하기가 무색해진다. 개별 작품의 의미가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기획자의 취향 컬렉션에 가깝다. 이유는 없다. 그냥 취향이다로 끝나버리는 것 같다.

전시작들도 거개 그런식이다. 인스타그램 사진이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익히 미디어에서 봐오던 이미지나 내러티브를 따른다. 물론 그것의 최신버전에 가깝다.

그러고보면 교역소 자체가 일종의 미적 액티비즘 블럭에 가깝다. 신생공간이라고 불리는 대다수가 그렇다. 작업 자체가 중요하기 보다는 공간-아이덴티티를 계속 움직이기 위해 작업을 땔감 삼는다. 이것은 큐레이팅이란 요소가 작업화되는 경향이고, 더불어 그것이 일종의 액티비즘 요소로 적극 도입된다는 말이다. 어떤 액티비즘이냐고 하면 일단은 거칠게 세대 전복이라고 밖에 말을 못 하겠다. 다른, 새로운 세대적 미적 감수성을 기존 생태계에 끼얹는 일이랄까.

2016년 1월 20일 수요일

백남준 <흥> 관람

교보에 갔다가 백남준 전시를 세종문화회관에서 봤다. 전시 제목이 <흥>인데 분명히 김남수 선생의 감각이 확실해서 갸웃했달까. 왜냐면 세종문화회관이고 김노암 선생이 큐레이터한 소릴 어디서 들어서. 근데 가이드북 보니까 공동 기획으로 나와 있다.

여튼. 전시는 거의 남수샘 독무대다. 시작부터 백남준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 월텍스트로 펼쳐지고 마지막까지 피피티 프린트 해 놓은 것들이 향연을 벌인다. 디자인이 그걸 재빠르게 따라가지 못한 느낌이라 좀 아쉽다만.

백남준이 60-80년대 전성기였다고 하면, 그가 사용한 푸티지 필름은 다 그때 거니까, 그걸 보는 것도 그거 대로 되게 재밌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굉장히 멋쟁이였고 멋을 부리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서 심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보면 좀 웃기기도 하고 순진하고 풋풋해 보이기도 좀 병맛도 느껴지고 그렇다. 그런데 정말 진지해서 무시할 수도 없고 그때 당시엔 정말로 그게 힙했을 것이기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은밀히 재밌다고 그렇게 느꼈다. 오늘날의 멋쟁이는 어떨까? 타인의 눈을 더욱 의식하는 건 아닐까? 몰겠다.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할지도 모른다.

나로선 무엇보다 위성 3부작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머스 커닝햄 춤의 발견. 내가 예전에 본 것은 대부분 머랄까 정말 현대무용스러운 것들이어서 좀 재미없었는데. 남준파이크와 함께 작업한 비디오에선 먼가 병신미가 철철 흘러 넘친달까 그래서 넘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샬럿 무어만 관련 비디오도 좋았다. 무어만도 백남준 못지 않게 또라이더라.

친절한 월텍스트와 설명 때문에 꼼꼼하게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전시다. 하지만 전시 인터페이스의 문제는 좀 아쉽다. 마치 광케이블 시대에 90년대 피씨통신의 인터페이스와 마주한 느낌이다. 나는 싫어하진 않지만, 여튼 그것만큼은 좀 백남준스럽지 않았달까. 몰겠다. 어땠을까?

하나 더. 도록 대신 만든 가이드북은 무성의하다. 거의 김남수 선생 혼자서 다 한 것 같은데 <백남준의 귀환>을 떠올려 본다면 여러모로 아쉽다. 김남수 선생이 아쉽다는 게 아니라 그 반대다. 김남수만 빼놓고 모든 것이 이상하다. 

2015년 11월 28일 토요일

레디메이드와 굿-즈

2015년 <굿-즈>라고 명명된 행사에서 김웅현은 게임에 나올 법한 몬스터를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세심하게 제작한 뒤, 관객이 요구한 부위에 따라 그것을 조금씩 해체하며, 마치 백정처럼, 돈을 받고 팔았다. 같은 행사에서 노상호는 <젊은 모색>에 출품하기도 했던 대형 드로잉에 센티미터 단위로 가격을 매긴 후, 구매자가 원하는 만큼 잘라서 판매했다. 김동규는 거지 노숙자로 감쪽같이 분한 뒤, 길목에 앉아서 행인에게 돈을 구걸했다. 윤향로는 본인의 작품이 프린트된 엽서 시리즈를 한정판으로 제작해서 팔았는데, 여기엔 기묘한 단서가 하나 달려 있다. 즉 팔리지 않는 엽서 분을 전량 폐기처분하겠다는 것.

물론 열거한 바가 <굿-즈>의 모든 것을 포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경향이 한국의 컨템퍼러리 아트씬에서 굉장히 낯선 종류의 것임은 분명하다. 오늘날의 예술가는 계산이 필요한 냉소의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그들은 전통적으로 (좋은) 비판의 대상이 돼주었던 ‘자본’에 저항하길 기꺼이 포기하고, 되레 그것의 규칙을 더욱 충실하게 따르거나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예술가와 예술이 왜 예외여야 하는지 묻는다.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여러 작은 파트로 나눈 뒤 합리적인 가격을 적극 제시하거나(노상호, 김웅현), 팔리지 않으면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아트상품과 동일한 형태의 작품을 제작한다거나(윤향로), 동정심을 자극해, 혹은 ‘불쌍함’을 팔아서 불로소득을 얻는 삶-행위자 그 자체가 됨으로써(김동규)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 모든 예술가는 실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본주의와 상품의 논리로 굴러가는데, 왜 예술만은 그렇지 못하냐고 되묻는다.


선량한 예술이 처한 문제

오늘날의 선량한 예술이 처한 곤경을 지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최근에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검열 문제가 여럿 불거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한 가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예술의 사회 비판적 기능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존중과 보호 받아야 할 그 영역을 검열하는 정치 관료주의를 통렬하게 비난했다. 이때 기대되는 예술과 예술가의 상은 이런 것이다. 이들은 사회의 결점에 끊임없이, 이상적으로 맞서거나 사회를 재생시킬 수 있는 ‘대안’적인 이상을 제시하길 요청받는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사실상 가짜다. 왜냐하면 검열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끊임없이 그런 자율적 권한은 사회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예술가에게 어떤 정의의 사도 역할을 자임하도록 요구하는데, 이때 일종의 불문율이 존재한다. 예술은 무균질적 장소에 안전하게 앉아서 사회를 가능한 그럴듯하게 비판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때 예술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거나 전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 강도는 검열과 같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조정되며, 예술은 여기에 대해서 또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예술과 사회는 건널 수 없는(건널 생각조차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립하며, 또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유지한다. 이때 예술과 사회는 그 자체로 근본적으로 질문되어지지 않으며, 심지어 그 자신을 위해 서로 공모한다.


예술이 아닌, 그렇다고 상품도 아닌

<굿-즈>가 단연 흥미로웠다면, 그 이유는 예술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질문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레디메이드가 작동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마르셀 뒤샹이 20세기 초반에 변기를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출품했을 때 소리소문 없이 폐기처분 됐던 이유는, 그것이 통념상 일개 상품이지 예술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변기가 불러일으킨 것은 기호학적 대혼란이다. 뒤샹은 고정된 기호를 해체하고 재약호화하는 특수한 기호의 운동 상태를 고안했다. 이를 통해 예술은 자기규정의 폐쇄회로를 열어젖히고 사회와의 접면을 근본적으로 재고찰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굿-즈>에 출품된 ‘굿-즈’는 그 자체로 상품으로 제작된 예술작품이었으며, 여기서 예술가는 상품제작자이자 상인이었으며, <굿-즈>는 그런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전시이자 아트페어였다. <굿-즈>는 이런 방식으로 굉장한 기호학적 혼란을 양산했다. 누군가는 <굿-즈>를 창조적인 미술전이나 대안적 아트페어라고 부르며 찬사를 보냈다. 또 누군가는 예술이 자발적으로 상품이 되려한 전무후무한 보수적인 행사로 규정,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은 한 가지만 보려고 하거나 전혀 아무 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굿-즈는 ‘예술’이나 ‘상품’이 아니다. 굿-즈는 ‘예술’이거나 ‘상품’이다. 굿-즈는 그저 굿-즈다.

<굿-즈>가 이룬 성취는 분명해 보인다. 레디메이드의 전통에 따라, 현재 예술에 관한 통념을 보다 더 유동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상업과 결탁하는 제스쳐를 취함으로써, 예술과 상품, 예술계와 시장계 사이의 어디쯤에 스스로를 슬며시 놓음으로써, <굿-즈>와 ‘굿-즈’는 기존의 예술의 고질적 문제, 즉 쓸모없는 도덕적 엄숙주의와 공허하기만한 반자본주의적 투사의 자리를 해체하는 한편, 문제의 장소로 깊숙이 들어가 그 메커니즘의 한복판에 예술을 위치시킨다. 이로써 예술은 통합적 생태계에서 움직이는 더욱 활기차고 유연한 기호로 재정의 된다. 예술의 개념은 변하겠지만, 시장 또한 변할 것이다. 이때 예술은 예술 자신이나 사회에 관해 더욱 할 말이 있을 것이다. (15.11.28)

* 첨부서류에 전시리뷰를 2쪽짜리 써내라고 해서 한 번 써봄..

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굿-즈 2015를 보고 메모 몇 개.

1. '젊은 작가가 뭔가를 한다'라는 타이틀이 비록 상투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됐을 때 느껴지는 긍정적인 기운 같은 것이 있었다. 역시 젊음이란 웬만한 건 다 이겨버리는 깡패 같은 것...

2.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굿-즈란 프로젝트는 과연 미술인가? 혹은 미술 담론에서 논의될만한 현상인가? (화랑협회에서 개최하는 아트페어가 페어로서만 이야기되는 것과 비교해서 굿-즈 또한 기존의 페어 담론을 기반으로 논의되어야 할 성질의 것인가, 아니면 미술 일반의 담론을 기반으로 논의되어야 할 성질의 것인가? 다시, 미적 대상일까 사회적 현상일까? 등등) 분석 대상이 어떤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지 판단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심지어 그 카테고리를 해체시키는 작업일지라도 말이다. 예컨대 젊은 층이 자치적으로 벤처 박람회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해보자. 사회 비평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미술 전문가들이 여기에 대해서 입을 덧대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해마다 코엑스 등지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비엔날레와 같은 기준의 비평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것들에겐 다른 방식의 평가 기준이 있는 것이다.

3. 굿-즈는 과연 흥미로운 현상이다. 작품 일반이 상품의 외관을 (마치 레디메이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의태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의사 상품이 상품 체계를 교란시킬 때 정말 그럴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이 페스티벌 자체는 일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개별 작품-상품이 그랬나? 글쎄. 예술 작업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 아예 아트 상품을 제작한 경우가 90퍼센트.

4. 굿-즈는 인디 문화의 한 풍경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국가 제도의 지원이나 대대적인 홍보 없이도,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일종의 자폐적 문화일지라도 자생할 수 있는 그런 문화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선 판단 하지 않겠다.

5. 굿-즈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한다. 잘 팔린 작가의 상품은 극소수. 그것도 싼 가격의 엽서나 뱃지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인파가 아무리 많이 몰렸더라고 해도 역시 '판매' 그 자체의 컨셉은 실질적으로 주효하지 않았던 듯하다. 대부분의 관객-컬랙터는 대학생...그들은 셀립의 유명세를 구입/소비하는 것이지 작품을 컬렉팅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머니 사정과 관심은 굉장히 특정적이다.

6. 굿-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굿-즈를 미술 전시나 미술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암 걸린다. 작가 플리마켓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가서 보면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만날 수 있다.

7. 창작 유통 소비의 서큘레이션이 좀 자폐적인 구석이 있는 듯.

8. 귀여움의 감정이 지배적이었던 굿-즈에서 김웅현의 몬스터 고기 해체 작업은 꽤나 충격적인 비주얼을 선사했다. 홍철기의 1000원짜리 휴지는 대놓고 굿-즈의 감수성을 배반하는 굿-즈였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거지 퍼포먼스도 기억에 남는다. 이들은 일정부분 굿-즈란 브랜드 마케팅 포인트의 대척점에 있기에 조금 이상해보이기도 한다. 왜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 그런.

2015년 8월 11일 화요일

'후죠시 매니페스토' 전에 관한 촌평

이 전시의 제목은 '후조시 마니페스토'다. 작가 스스로의 후조시 정체성을 공표하는 것과 동시에, 나아가 그런 행동을 공식적으로 다른 후조시에게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1차적으론 스스로에 대한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이런 취지를 십분 인정해가면서 전시를 따라가보면 이렇다.

존잘님들이 그린 야오이물을 수집한 후, 침흘리며 보고 또 꺼내 보는 자를 후조시라고 한다면, 후조시 진챙총은 그 절차를 그대로 전시장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야오이물을 모아서 프린트해서 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전시를 남의 그림을 멋대로 가져와 공공연하게 전시한 '개인 폴더' 전이라고 힐난했다.

어떤 이는 리처드 프린스의 예를 들면서, (도용이 아니라) 전유의 작법을 사용한 엄연한 현대미술 작품이라는 해석을 내 놓았으나, 내가 보기에 그런 식이면 치명적인 모순이 생긴다. 방금 후조시 마니페스토를 한, 후조시부심 쩌는 사람이, 그쪽 문화계에서 추앙 받아야 할 존잘님이 그린 야오이물을 가져와서 전유, 즉 원본 이미지를 약탈하고 해체하고 비판하는 식으로 역주행을 할 이유가 있을까? 따라서 후조시 마니페스토의 취지를 인정하는 한, '개인 폴더'론 쪽이 더욱 정당해 보인다. (도용의 윤리적인 측면은 차치하고 서라도) 그가 이미지를 순진하게 전시장으로 가져온 이유는 그것을 비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좋아했기 때문이란 소리다.

그렇다면 무단 도용/전시된 그림에 픽셀 그리드와 야릇한 볼록 그리드를 새겨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굳이? (여기가 창작이냐 도용이냐 헷갈리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아마도 모니터의 그라운드가 각별히 그에게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추측하자면 납작한 스크린에 떠 있는 이미지가 가상의 픽셀 그리드라는 사실을 작가 스스로 조차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리드를 즐기겠다는 비장한 의지 같은 것을 이 전시로 표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즉 작가에게 창작이냐 도용이냐의 문제보다 더욱 중요했던 것은, 스스로의 문화 소비 양식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싶은 어떤 진정성으로의 열망 같은 것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볼록 그리드는 정말로 야릇하고 변태스럽다.) 

여하튼 그래서 이 전시는 원본 이미지를 픽셀화/추상화 시키는 방식으로, 하지만 동시에 더욱 사실에 다가가는 방식으로, 진챙총 자신이 야오이물을 집 모니터에 띄워놓고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 인지적 경험을 구현했다. 그리고 진챙총 자신이 그런 취미를 가졌다는 것을 만인에게 밝히려 했다. 여기에 동참하자고 권유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자기-리얼리즘이며, 그런 한에서 소비에 대한 선언이자 권유다. 창작이나 생산에 대한 선언이 아니다. 진챙총은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덧글 OK, 외부 링크 금지.

2013년 10월 19일 토요일

조각의 순간들: 정서영,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마치 물리 공식을 참조한 것처럼 보이는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란 알쏭달쏭한 전시 제목이었다.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은 모두 사물의 부피, 그러니까 공간적인 것을 지시하는 반면, 속도는 변화, 곧 시간적인 것을 의미한다. 제목을 조금, 물리학적인 느낌(?)으로 다시 쓰면 '사물의 운동'이 되며, '공간적인 것의 시간'으로 말 바꾸면 철학적인 느낌(?)이 되겠다. 그러니까 전시 제목은 어쩌면 ‘시-공간’이라는 순수학문의 본질적인 문제를 시적으로 나열한 셈이다. 왜?

먼저 작품을 살펴보자. 출품작 중 하나인 <흙탑>(2013)은 의자에 앉은 사람의 무릎 위에 즉흥적으로 만든 탑을 올려 놓고, 쓰러지지 않게 균형을 잡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 시리즈다. 엉성하게 만든 탑을 무릎 위에 올려 놨으니 쓰러지는 것은 당연지사. 흥미로운 점은 중력이라는 물리법칙과 신체 감각의 불항상성 사이에서 ‘어영부영’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려는 그 ‘조각적 상황’이다. (여기서 나는 조각적이라는 형용사적 용법을 썼는데, <흙탑>은 역사적 관습으로서의 ‘조각’이라기 보다 퍼포머와 조각이 갖는 관계, 조각의 가능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짧게 하나 더 살펴본다면 <운동>(2013)이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곧 무너질 것 같이 위태롭게 서로 기대어진 나무 책장과 각목은 중력과 인력 그리고 척력 사이의 긴장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드러나는 것은 이들이 관계 맺는 '찰나'적 방식이다. 전통적 조각이 가지는 초시간성을 염두에 둔다면, 인식론적 전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는 조각을 넘어 조각을 지배하는, 이른바 메타-조각적 현실 원칙을 은유하기 위해 고안된 말인 듯하다. 미술관 벽을 상징하는 듯 해보이는 작은 하얀 판을 가로로 눕힌 후 바퀴를 단 <직전과 직후>에서는 미술계(제도) 같은 사회 문화적 문맥과 관련이 있는 듯 하고, 실제 그것과 상관 없이 본 것을 그대로 조각으로 만들어버린 듯해 보이는 <멀리서 본 것>은 어떤 인식론적 경험성을 더욱 부각시켜 객관적 실재의 부재를 시각화 한 것으로 보인다. 공간예술이라는 조각의 제 전통을 초과하는 듯 해 보이는 이 조각들은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조각의 내적 진리에 대한 순진한 믿음보다, '조각은 언제 조각이 되는가'라는 시간적이고 경험적인 우회로를 택한다.

한편 정서영은 조각적 진리의 확신을 유보한 채, 모든 상황을 통해 의심하길 원한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떠올리게 하는, 조각에 대한 궁극적 질문의 한 뭉치다. 또 그런 의미에서 의자의 사전적 정의, 실제 의자 그리고 의자 사진을 병치해 분석철학적으로 예술 개념을 도해했던 조세프 코수스의 개념주의 작업과 어느 정도 맥이 상통해 있다. 하지만 이 조각이 동어반복적 예술 명제로 순환하는 것에서 끝나지는 않는 듯 하다. 속도, 즉 공간으로부터 시간으로 관심의 돛을 돌린 바, 반복해서 말하지만 경험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험의 조건으로 기능하는 '관객'이 조각에 실재성을 부여하며 그 틈을 벌린다. 특히 벽으로부터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어 나온 철제 펜스와 지시문이 적힌 나무 판넬의 연결로 구성된 작품, <무릎>(2013)이 그러한데, “벽과 가장 가까운 바닥에 자리를 잡고 멀리서 다가오는 그것이 둘로 나뉘는 것을 응시하라” 같은 알쏭달쏭한 지시문은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관객이 조각을 지각하고 반응하길 요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퐁티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작가의 조각적 회의는 조각 내부에 새겨진 진리의 탐구라기보다, 역설적으로 그것의 부재의 혐의를 도출해 낸다. 내부의 관념성에서 현실로 빠져나온 조각은 경험적 탐색의 장이 되며, 여기서 관객은 탐험가로서 '실재와의 접촉'이라는 조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내는 핵심적 위치에 지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관념에서 현실로, 내부에서 외부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작품에서 관객으로 향하는 서구 현대 조각의 지난 한 경향을 정서영의 조각을 통해 충실히 보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사실, 관객이 어떤 구체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지에 이 조각은 여전히 관심 없어 보인다. 불충분한 레퍼런스의 제시, 고강도의 암호 같은 제목, 그럼에도 불구한 지속적인 자기 참조의 제스쳐에서 분명 모더니스트의 한 면모가 강력하게 드러난다. 나는 앞서, 요소로서의 관객의 역할을 언급하며, 작가의 예술적 기획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했다. 굳이 '기능'이라는 다소 기계적인 뉘앙스의 단어를 고른 이유는, 어디까지나 계산된 기획에 따라 부여된, 관객 역할의 형식적 한계 때문이었다. 관객 경험성은 분명히 동어반복을 넘어서기 위한 키워드지만 딜레마적 상황에 빠진다. 경험하는 순간 형식적 경험으로 전락하고, 생각하는 순간 동어반복에 빠지는, 매우 고약한 상황이다.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 현대 조각이란 바로 이런 거야!"

* 퍼블릭아트 게재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