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엄마

울산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결국 엄마가 아프다고 하니 병실에서 엄마를 만났다. 바늘이 몸안에 있다고 하는데 수술로 빼낼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엄마 몸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수술을 받으면 분명히 몸에 무리가 따를텐데 그게 너무 걱정된다.

병실에 있으면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생명이란게 참 덧없다. 나도 언젠가 이 자리에 눕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엄마가 여기 누워 있는 게 좀 위로가 된다. 엄마가 처음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 충격은 엄청났다. 그러고 병원의 분위기를 배우게 되었다. 아픈 엄마의 모습도 익숙해졌다. 그럴수도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건 내 삶도 유한하단 깨달음과 같이 간다. 

지금 엄마가 잠든 거 같다. 우리 엄마는 잠을 잘 못잔다. 신경성 때문이란다. 그게 잠을 잘 못자는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잠을 잘 못잤다고 사면 속삭하다. 두시간 잘 잤단 이야길 들으면 뭐라고 반응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엄마 괜찮을거야. 앞으로 오래오래 살자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가능성과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변화가 따라오지는 않는다. 넷플릭스에는 1년동안 봐도 다 못볼 컨텐츠가 쌓여있다. 그런 가능성이 1편의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변화로 이끌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가능성은 종종 1편의 영화의 독특함도 포착하지 못하는 산만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용자가 하는 일이란 나중에 볼 목록 정도를 작성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고선 안심한다. 그 목록에서 다시 그 영화를 찾을 일이 없음에도.

그 영화를 다시 찾는다면 그건 아마 사라지는 영화 리스트에 그 영화가 포함되어 있을 때 정도일 것이다. 혹은 넷플릭스가 더 이상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따라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데이터베이스-가능성이 아니다. 오히려 가능성이 사라지는 순간 변화의 불씨가 당겨진다.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미술감상과 큐레이토리얼

배경

미술에서 ‘저자(author)’는 보통 캐캐묵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따지고 보면 근대에 발명된, 약 100여년 된 개념에 불과한데, 미술사 책에 나오는 반 이상의 도판의 진정한 주인공은 실상 커미셔너였다. 근대가 들어서자 미술은 커미셔너와 단절하고 자율성을 얻기 시작했다. 저자는 작품의 절대적인 기원처럼 생각되었고, 이것이 1900년대 이후 서양미술에서, 사실 지금까지도 지배적이다. 서양미술을 제도로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더니즘 이후의 많은 미술 실천을 저자라는 울타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라고 압축할 수 있지도 모른다. 미니멀리즘의 유명한 연극성,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제도비판과 장소특정성, 플럭서스의 해프닝과 이벤트, 팝의 대중주의, (뉴장르)공공미술, 관계미술과 사회적 실천 등 이루 다 열거하지 못하는 많은 흐름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모두 단일한 저자-기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요약된다.

제도 자체도 유사하게 변해왔다. 원래 예술품 같은 진귀한 물건은 귀족이 사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서 만든, 분더캄머(Wunderkammer), 스투디올로(studiolo), 진귀한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 등으로 유럽의 각 나라에서 불리는 제한된 방에서만 볼 수 있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 이후 이런 공간적 분할이 재배치된다. 혁명정부는 왕가와 귀족을 위한 궁이었던 루브르를 미술관/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왕실 소속이었던 예술품은 이제 무료로 일반 예술가나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여기에 비치된 다양한 그림을 통해 시민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는데, 박물관은 말하자면 시각 교육의 장으로 기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미술관/박물관의 원형이다.

1960년대 후반 하랄트 제만이라는 창조적 큐레이터의 부상은, 최소한, 예술가가 유일한 저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일깨웠다. 이후 큐레이터쉽의 확장은 (그것이 큐레이터라는 저자의 강화를 가져왔다손 치더라도 일단은) 예술가와 작품에 독점적으로 부과된 권위(authority)를 약화시켰고, 대신, 부차적이라고 생각했던 다양한 것—아티스트 토크, 설문조사, 오프닝 퍼포먼스, 카탈로그 및 출판, 전시 티켓 등—이 예술 프로덕션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이들의 주제는 다양하다 하더라도,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생산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압축된다. 이후 미술계의 창작 방법을 보면 큐레이터와 예술가 매한가지로 무엇이 큐레이팅이고 무엇이 작업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혼종적인 양상을 보인다. 더 이상 기존의 카테고리로선 이해하고 정의할 수 없는 확장된 실천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쯤, 유럽에서는 볼로냐 선언(Bologna Process, 1999)이라는 대규모 학제 개편과 함께 아카데미가 자본주의로 물들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교육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그리고선 큐레이토리얼에서는 ‘교육적 전환(educational turn)’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큐레이터와 예술가는 매한가지로 교육이라는 어젠다, 지식의 생산과 공유라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다. 여기서 핵심은 앎의 자유와 평등이다. 아카데미가 지식을 독점하고 그것을 자본화하는 시대에, 더욱 자유롭고 평등한 앎의 실천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는 교육을 계급 상승의 동아줄쯤으로 보는 게 상식인 우리나라 사정에 비추어 봤을 때 속 편한 고민이지만 유럽에서는 달랐던 것 같다. 별로 인지되지 못했던 것 같지만 부산에서 친숙한 로저 뷔르겔 감독의 2012년 부산비엔날레 《배움의 정원》은 그런 맥락이 한국에 이식된 것이다.

미술관 교육의 경우

주지하다시피 능력주의는, 최소한, 한국 교육에서 상례화된 인식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험 경쟁에서 살아남아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매우 평범한 꿈이다. 능력을 키워야 한다. 능력은 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하므로, 사회는 시험이라는 눙력의 계량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시험은 교육을 고효율 단방향 지식 습득의 장으로 이끈다.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다 아는 ‘교육’은 바로 이런 것이다.

여전히 한 쪽에서 능력과 능력의 계량을 중심으로 아우성이 있다면, 이제 앞서 나가는 기업은 모두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입사 지원 철마다 구글이나 삼성 등 초거대기업의 면접 시험 질문과 답이 ‘카더라’ 소문처럼 인터넷상에 공유된다. (‘아무말 대잔치 했는데 붙었어요’가 레퍼토리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학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미술이나 예술을 접하게 하도록 노력한다. 주말이 되면 우리 미술관에도 아이 손을 잡고 미술관을 방문하는 어른 관객을 많이 볼 수 있다.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대부분 학부모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처럼 미술관에 아이를 맡기고 이 프로그램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사라진다. 또 중고등학생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국, 영, 수 하느라 바쁠 것이다. 미술은 그래서 아이들의 몫이고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미술관 교육에서 노력하는 건 단순하다. 미술이 모두에게 열려있고 사실은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시립미술관은 그림도 있고 해서 자세히 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 현대미술관 전시는 도무지 모르겠다고. 이는 아이든, 어른이든, 입시생이든 누구나 관객으로서 겪게 되는 문턱이다. 미술은 어렵다는 것. 물론 미술의 지식을 얻기엔 쉽지 않다. 미술은 오래된 역사가 만들어 놓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을 알기 위해선 선행공부가 필요하다. 그런 지식 없이 미술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술의 감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리 주어진 지식과 지금, 여기서 내가 무엇을 느낌으로써 앞으로 만들어질 지식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감수성의 능력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 있다. 누구나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매우 다이나믹한 지적 활동이다. 내가 원래 알고 있는 것과 오늘 내가 겪었던 일과 뉴스에서 본 사건과 작업의 단편적인 느낌을 서로 연관지으면서, 그것을 내 옆의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깨쳐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는, 미술관 밖을 나서면서도 계속 이어진다. 이런 활동을 통해, 심지어는, 동시대미술로부터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어느 챕터로 들어갈 수 있다. 좋은 감상은 그런식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입시생도 모두 포함된다.

우리 미술관에서 기획하는 교육은 모두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미술관에 온 많은 학부모는 여전히 교육 프로그램에 ‘미술 시간’을 기대한다.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어보고 그 결과물을 집에 가져간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정확하진 않지만) 창작자를 키워내는 데 도움이 될지언정, 감상자를 키워내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사실은 좋은 감상자는 키워낼 수 없다. 왜냐면 좋은 감상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미술관에서는 미술교육의 고정관념을 탈피하려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발단-전개-마무리로 가는 관례화된 교육은 최소한 내가 이해하기론 미술에선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수많은 고정관념이, 어른부터 아이까지, 심지어 미술관 제도 안에도 상존해 있다. 그리고 때와 상황에 따라 그것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감상의 문제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달렸다. 이 조건은 프로그램화 될 수 없기에 매번 다르게 기획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럴 때 교육은 큐레이토리얼 실천이다.

21.11.10. 

부산문화재단 포스트-에듀케이터 심포지엄 발제문으로 씀

2021년 11월 8일 월요일

로컬들

우리나라에서 로컬이란 인식이 전방위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건 아마 88올림픽 전후, 미술계에선 IMF 이후 유학 세대가 돌아오고 90년대 광주비엔날레가 생긴 시점부터가 아닐까 한다. 국내에 머물던 시야는 삽시간에 ‘지구’ 차원으로 확장됐다. 소위 선진국과의 반강제적 연결은 ‘우리는 뭐지’라는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지역, 지방, 비수도권, 주변, 비주류 등 그중에서도 로컬은 우리를 부르는 가장 세련된 명명법일 것이다. 이 영단어는 자주 번역 없이 그대로 쓰는데, 아마 로컬이라는 말이 글로벌과 함께 탄생했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로컬은 항상 글로벌을 의식한다. 여기에 로컬의 문제가 있다.

로컬에는 항상 모순된 이중의 과제가 부과되어 있다. 하나는 로컬 투 글로벌(local to global)로, 글로벌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로컬 자신의 강박이다. 이때 가정되는 것이 일종의 글로벌 스탠다드, 표준 규약이다. 이런 인식에 따르면, 글로벌에는 보편적이고 선진화된 규약이 있으며, 로컬은 아직 거기에 닫지 못했다. 그래서 들어 봤을 법한 로컬의 행사에는 항상 중앙의 인물이, 그가 서울이든 뉴욕이든, 몇 명씩 끼어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못지않다’, 혹은 ‘따라가고 있다’를 표명을 하고 싶어 한다. 90년대 이후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수없이 나타난 국제교류, 네트워킹 행사와 지원 사업을 떠올려 보라.

또 다른 과제는 글로벌 투 로컬(global to local)로, 글로벌 체제가 강요하는 지방색이 바로 그것이다. 실로 로컬은 글로벌 표준에 가까이 갈수록 절대로 같아질 수 없다는 열패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실 이는 시작부터 불가능한 꿈이었는데, 글로벌은 강대국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체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낭만주의 이래로 제국의 체제는 이국주의를 소비했다. 로컬은 글로벌 권력의 아주 원시적 상태를 자신의 것으로 정체화할 때만 흥미로운 것이 된다. 그들의 질문: 로컬은 로컬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모종의 합의가 이뤄지는데, 로컬은 글로벌 경기장에 참가하기 위한 티켓을 얻는 대신, 제국의 로컬로 남아 있기를 서약을 한다. 한국 고유한 미술로 단색화를 재발명하려는 여러 큐레이토리얼 실천을 떠올려 보라.

따라서 로컬과 글로벌은 일상 감각에서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어떤 경우에든, 사실은 한 몸통이어 왔다. 로컬로부터 시작해 글로벌과 같아지든, 지방색으로 글로벌 체제에 흡수되든, 이는 글로벌과 로컬의 상호 관계 속에서 정립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글로벌이란 개념은 환상에 불과하며 실은 로컬 자체도 그렇다. 90년대 이후 큐레이팅은 한편에서 국제교류라는 환상 속에서, 다른 한편에서 로컬이라는 환상 속에서 글로벌 체제에 참여했다고 봐야 한다.

로컬이 글로벌을 닮으려고 할수록 로컬이 사라지고, 진정성, 지방색으로 규정되어서야 글로벌에 참여한다는 이런 이중구속의 상황을 로컬은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먼저, 로컬은 글로벌이 강요했던 지방색 담론을 고스란히 돌려줄 필요가 있다. 봉준호의 “오스카도 로컬이잖아” 발언을 떠올려 보자. 만약 글로벌을 단일한 규준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다양한 지방에 불과한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면, 로컬이 실패하고야 마는 글로벌 따라잡기 역시 교정되어야 한다. 우리가 따라잡고자 했던 것은 실제론 다양한 로컬이라고. 이렇게 우리는 단일한 것으로 상상된 글로벌 체제 속에서 지방색에 갇힌 로컬의 운명을 구제할 방법을 얻게 된다. 로컬은 다양한 로컬과 연결됨으로써 단일한 지방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로 향할 수 있다. 이때의 글로벌은 인터-로컬(inter-local)이라고 다시 명명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오픈스페이스배 <<로컬 투 로컬>> 카탈로그 글로 씀

2021. 11. 8.

2021년 11월 4일 목요일

어뷰징

엄청 배고프고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이 눈 앞에 있다면 무엇을 먼저 먹을 것인가. 맛있는 걸 먼저 먹는 쪽은 높은 확률로 모든 것에 그런 태도를 취할지도 모른다. 이런 스타일은 좋은 것에 다음이 없다. 지금 당장 그것을 하지 않으면 곧 사라지거나 혹여나 있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어지거나 누군가에게 빼앗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쾌락의 독점주의는 자신에겐 최선의 가성비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한철 메뚜기식 장사의 경우 공동 자산이란 아이디어는 시작부터 불가능하다. 한편 이 쾌락이 극단에 치달으면 적당히 쾌락을 생산하는 현실원칙 자체에 “구멍”을 낼지도 모른다. 어떤 라캉적 실재주의자는 그런 의미에서 쾌락이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 쾌락을 착취하고 또 혁명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혹시나 밥솥에 남은 다음 한 숟가락을 기다리던 평범한 사람에게 그것은 재앙에 가깝다. 모두가 한 숟가락 씩 먹으려고 경쟁할 바엔 차라리 경쟁을 멈추기 위해 한 숟가락마저 없애버리자. 이건 아무리 모두를 위한 재앙이라고 주장해봤자 그건 평범한 사람에겐 어뷰징이다. 단숨에 혁명이 일어나면 모를까 그 과정 속에서 나머지 한 사람이 굶어 죽고 또 다른 한 사람이 그것을 지켜 보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사실상 혁명은 죽음조차 불사하며 밥을 처먹은 자기를 기특하게 여기는 수사학에 불과하다.

2021년 11월 1일 월요일

예술과 디자인

얼마 전 ≪서울, 25부작≫의 홈페이지와 관련해 SNS상에서 자그마한 논란이 있었다. 시작은 최황이라는 이름의 작가로,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가 자신이 기획하고 작가로 참여한 ≪광장조각내기≫와 “아이디어와 보여주는 형식”이 몹시 유사하다는 것이 이유였다.[1]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는 미술계 일을 꽤 많이 맡아서 하는 걸로 알려진 디자인 스튜디오인 일상의 실천이 만든 것으로, 공교롭게 일상의 실천은 ≪광장조각내기≫ 웹사이트의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일단, 최황은 일상의 실천이 아니라 ≪서울, 25부작≫의 실무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아마 ≪광장조각내기≫의 웹사이트의 제작자가 일상의 실천으로 동일하므로 표절까지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2] 그러다 약 4시간 뒤 최황은 생각을 바꾼다. 자신의 SNS 계정에서 최황은 ≪서울, 25부작≫이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전시의 주제나 형식까지 모두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창피한 줄 압시다”라는 문장을 필두로 본격적인 비판을 시작한다.[3]

여기서 최황은 일상의 실천을 향해 큰 실망감을 표하며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문체의 문제”를 문제 삼았다.[4] 문법과 문체는 뭐가 다를까? 이걸 이해하기 위해 『글쓰기의 영도』 씩이나 들고 올 필요는 없겠지만 대략 문법은 일반적이고 문체는 독특하다고 이해하면 여기선 무리가 없을 듯하다. 왜 이런 구별을 했는지는 비교적 분명한데, 최황은 일단은, 일상의 실천을 자신의 ≪광장조각내기≫에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섭외했기 때문이다.[5] (그리고 이것이 일차적으로 최황이 비판의 대상으로 일상의 실천이 아니라 ≪서울, 25부작≫의 실무진을 떠올린 이유인 듯 보인다.) 최황 입장에서, 일상의 실천은 비슷한 컨셉의 전시에 비슷한 작품을 다른 듯이 내는 아방하지 않은 작가로 비쳤을지도 모르며, 약간의 심한 배신감과 함께 매머드급의 ≪서울, 25부작≫ 프로젝트가 일상의 실천이 디자인한 홈페이지를 통해 유명세를 탈 경우, ≪광장조각내기≫의 의미가 역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퇴색될 수 있으리라 걱정이 미치는 것도 자연스러운 전개다. 두 작품의 전체적인 컨셉과 형식이 유사하다고 비쳐질 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가가 가지는 고민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

더군다나 ≪광장조각내기≫가 안티-공공미술이라면 최황이 보기에 ≪서울, 25부작≫은 ≪광장조각내기≫를 정반대로 차용한, ≪광장조각내기≫가 비판하고자 했던, 누가 봐도 “관-제도”의 공공미술이다. 만약 일상의 실천을 작가의 위치에 놓을 수 있다면, 이는 실로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데, 똑같은 작업물로 하나는 안티-공공미술에,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관-제도 공공미술에 참여한 것이다—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급이 되는 디자이너만 출연한다는 가장 힙한 디자인 비엔날레다. 최황이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여기쯤인 듯하다.

일상의 실천이 내놓은 답변은 조금 다르다. “최황 작가가 찾아온 것은 작년 8월이었다”로 운치 있게 시작하는 이 글은 곧바로 ‘손님 이제 와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흐름으로 간다.[6] 그에 따르면, ≪광장조각내기≫의 웹사이트 작업은 원래 2017년 ≪타이포잔치≫에 출품했던 골격을 그대로 사용한 작업이며, 터무니없이 적은 보수로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시간도 별로 주어지지 않았지만 의미가 있어 보여서 특별히 자신의 ‘문체’를 “차용할 수 있게 허락해줬다.” 마지막의 표현의 이 복잡 미묘한 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간에 일상의 실천은 이 논란에서 최황이 애매하게 부과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대신, 일상의 실천은 예술가의 생각을 충실히 구현해주고 싶은 선의의 마음을 가진 디자인 에이전시로 돌아간다—여기서 최황은 당연히 클라이언트가 된다. 디자인은 매우 “섬세한 노동”이며, 3개의 프로젝트는 큰 골격은 공유하고 있지만 “레이아웃, 타이포그래피, 인터페이스, 개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른 접근과 고민으로 만들어진 결과물들이다”라는 것—이것은 모두 기술적인 문제다.

여기에 더해, 이어지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최황은 기획자와 작가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일상의 실천을 작가로서 섭외할 때 최황은 기획자이지만, 이제는 자신이 기획자가 아니라 작가라 기획의 일반적인 진행을 잘 알지 못하며, ≪광장조각내기≫ 역시 그 자체로 자신의 작업과 다름이 없다고 밝힌다.[7] 이 발언은 물론 자신의 진심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부지불식 기획자와 다른 참여 작가 사이의 암묵적 거리를 좁히는 효과도 있다. 이것은 창조적인 큐레이터가 작가의 작업을 도판으로 만들어버린다거나 하는 전시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로 사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위해 고용한 어시스턴트의 창의력까지 도용하는 일에 비견될만 하며, 최황이 전시가 작업이었다고 공표하는 순간 이 갈등은 심화된다. 이렇게 최황은 기획자와 작가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또 일상의 실천은 참여작가와 디자인 에이전시 사이에서 몹시 진동한다.


가장 바깥의 표층

두 프로젝트에 관한 논란을 지켜보다 보면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유사하든지 다르든지 간에, 양측의 말에서는 전혀 구체적인 참여작이 등장하지 않으며, 마치 웹사이트가 전체 프로젝트를 대변하는 듯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보면, ≪광장조각내기≫의 경우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건 서울의 지도 위에 표시된 작업의 좌표인데, 여기를 클릭하면 간단한 작업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일단은 이것이 가장 먼저 ≪서울, 25부작≫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튼 상당히 깔끔한 레이아웃에 다양한 필자의 텍스트와 작가의 이력, 작업 아카이브가 올라와 있어서 전시 카탈로그를 대체해도 될 정도로 포멀한 인상이다. 그럼에도, 부분적인 작가의 스테이트먼트와 스틸컷, 영상만으로는 대략의 스케치는 가능해도 작업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파고 들기는 힘들다—그러니까 레이아웃이 깔끔하게 잘 빠졌을 뿐, 일반적인 카탈로그의 수준 이상의 정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25부작≫의 경우는 어떨까? 먼저 ‘스토리’ 페이지에는 서문 격의 인사말과 참여작가의 한마디가 짧게 올라와 있어서 ≪광장조각내기≫의 ‘광장’과 대응한다. ‘스페이스’ 페이지에서 보여주는 지도의 경우, 라운드가 직각이 되어 있다거나 하는 것만 빼놓곤 ≪광장조각내기≫와 같은 시스템을 사용한 것처럼 보이며, 마찬가지로 클릭하면 간단한 작업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외 ‘시퀀스’와 ‘스토리지’ 페이지에는 각각 진행과정과 보도내용 등을 기록해놨는데, 큰 틀에서 둘을 비교하면 이렇다. ≪광장조각내기≫의 경우, 좀 더 기획자와 참여자의 작가주의 성향이 드러난다면, ≪서울, 25부작≫의 경우, 서문을 통해 드러나는 기획자의 방향성보다는 참여작가의 짧은 후기로 대체했고, 대체로 다양성과 공정한 과정 집행을 사이트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이것은 최황이 쓴 “관-제도”라는 말과 공명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웹사이트 디자인은 두 프로젝트에서 모두 중요한데, 왜냐면 두 경우 모두에서 서울시에 분산되어 있는 개별 작업을 총괄하는 아이덴티티는 오로지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란 메가-데이터베이스, 어떠한 필요와 판단 이전에 이미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가 내 편이라고 믿게 만드는 상호수동적 매체의 시대다—인터넷에 있다면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끝을 시작으로 습관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타임라인 속에서 가시성 있게 포착되는 이미지는 단순하게 작업된, 말하자면 포스터, 그래픽 디자인이다. 누가 그의 작업을 보러 친히 전시장을 찾을까? 따라서 최근 담론에서 디자인은 예술의 가장 바깥쪽을 감싸면서 거기서부터 안을 향해 예술을 정의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짤막한 소개와 파편적인 이미지가 결국 실질적인 작업의 프레젠테이션이다. 그런 면에서 웹사이트 디자인은 프로젝트 자체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하고 프레젠테이션하는 중요한 미적 형식이며, 거듭 최황이 지적한 문체는 프로젝트 전체를 통틀어서도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8] 확실히 최황이 지적한 어떤 종류의 문체—예를 들어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미니멀한 기능주의적 레이아웃—는 두 프로젝트가 확실히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어떤 면에서 일상의 실천이란 디자인 스튜디오가 가진 독특한 저자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동상이몽

그래서 무엇이 문제란 말일까? 최황은 웹사이트의 형식을 “전시의 구조”라고까지 이야기한다.[9] 앞서 최황은 두 웹사이트의 문체가 유사함을 지적했는데, 거듭 문체는 저자의 독특성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되돌아오는 질문. 일상의 실천이 가진 ‘문체’, 즉 독특성은 최황의 전시의 구조가 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질문은 일상의 실천은 그 문체를 최황이 차용하도록 허락해줬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두 가지 문제는 사실 공공미술 사업에서 다른 형태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자는 예술가가 참여한 관급 사업에서 자주 보이는데, 이때 행정가 입장에서 예술가는 용역이고 작업은 물품이자 자산이다—행정적 프로토콜에서 그런 격이다. 따라서, 결과물에 관해 기관은 배타적 소유권을 가지며, 참여한 예술가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으며, 성공적일 경우 그것은 담당자나 관리자, 기관의 실적으로 홍보될 것이며, 운이 나쁘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같은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데, 별다른 특약이 없다면 대체로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여기서 예술가의 자리는 차라리 디자인 업체다.

후자의 경우 속되게 말해 공공미술의 업자를 떠올려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업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유는, 알다시피 자신의 예술혼을 다른 사람에게, 느낌적으론 부적절하게 팔아넘기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지방의 홍보 캐릭터 조형물이 때가 되면 인터넷 밈으로 주기적으로 떠돈다. 대부분 지방의 공무원의 미감이란 일반인 평균에 운 좋으면 가깝거나 대부분 미달한다. 이런 공무원과 가장 시너지가 좋은 사람이 업자 예술가인데, 이들은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에 최대한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줄 뿐이다—이유는 다양한데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실적일 때도 있다. 무엇이 좋은 예술인지 판단할 수 없다면 쉬운 방법은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며 그래서 전국 방방곳곳 공원이나 휴양지에서 항상 보게 되는 것이 땡땡 미대 교수의 어시스턴트가 열심히 만들었을 조형물이다—그런데 이 업자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평가가 일하기 편한 디자이너의 긍정적 요건이 된다.

작가의 경우 문체는 오로지 자신에게 귀속된다. 반면 업자는 문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를 다시 돌아와서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근대 이후 예술가는 자율적 대상을 디자이너는 도구적 대상을 만드는 것으로 분화했다. 두 가지 상반된 미술의 단면이 일상의 실천과 최황의 예에서 봤듯이, 공공미술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이따금씩 충돌한다. 우리는 왼쪽을 보면서 오른쪽을 볼 수 없으므로, 둘 다 가능하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은 되도록 피하자. 공공미술은 예술일까 디자인일까? 공공의 이익, 그러니까 되도록 많은 사람의 만족이 중요하다고 믿을수록 공공미술은 디자인에 가까워진다. 반면 독특하고 자유로운 표현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공공미술은 예술에 가까워진다. 작가주의를 밀어붙인 경우, 작가로서 성공은 차치하고서라도 클라이언트에 만족을 주지 못해 실패한 디자이너가 되기 십상이다—이럴 경우 작업에 붙은 대부분의 별칭은 흉물이다. 디자이너로서 클라이언트의 만족에 가까워지면 실패한 작가라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다—별칭은 역시 업자다. 이렇게 공공미술에 대한 이중잣대는 자유롭고 독창적인 표현이 최대한 다수의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가능할까?

실로 최황과 일상의 실천은 동상이몽을 꾸었다. 최황의 야심은 디자인을 예술로 끌어당기는 것이었지만, 종국에 드러낸 것은 모더니스트적 독단적 저자성이다. 이는 최황이 작가로서, 큐레이터로서, 참여작가를 섭외하고, 또 디자이너를 섭외할 때 주문했던 모순적인 위치성--충분히 독창적이면서도 자기목적성을 가지면 안 된다는--을 독단주의적으로 편취한 것에 기인한다. 여기서 일상의 실천은 큐레이터의 생각을 표현해주는 수단, 즉 디자이너일 뿐이다. 반면, 일상의 실천은 나쁜 업자와 착한 업자 사이에서 진동한다. 일상의 실천은 정반대의 취지를 담고 있는 전시에 같은 계열의 작품을 보낼정도로 의식이 없는 업자-작가이거나, 혹은 클라이언트의 의제에 부합하는 무언가를 안 되는 여건 속에서도 제공해주는 착한 업자-디자이너다. 이런 일상의 실천의 위치는 최황과 일상의 실천 모두 절대로 바란 것이 아니었겠지만, 봤다시피 구조적으로, 시작부터 그렇게 되어 있다. 


소결

이 웹사이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자그마한 해프닝은 그래서 우리가 공공미술을 볼 때 부과하는 교묘한 이중잣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같다. 그리고 이 심급에 구조화되어 있는 것은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분화된 학제가 서로의 위치를 고수한 채 씨름하고 있는 줄다리기며, 이는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 사이의 익숙한 반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혹은 서로를 편취하는 것 이상이 가능할까? 최황이 바랐던 것처럼, 예술과 디자인은 동료가 될 수 있을까? 같이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상태일까?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예술이란 게 가능이나 한 것일까? 

한 가지 사례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장근희와 김태균은 2015-7년 <파지키트>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는 경기문화재단의 문화 바우처 사업으로, 보통 차상위 계층에 문화상품권 따위를 나눠주는 것으로 일이 진행된다—사업의 성격상 여기서 독특한 예술 실천이란 기대되기 힘들다. 당시 경기문화재단 사업 담당자였던 류혜민은 예술가를 채용해 관례적인 무언가를 넘어보자 했다—그렇다고 해서 '문화를 나눈다'라고 하는 현물 지급의 성격이 바우처 사업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파지키트> 프로젝트에서 바우처 대상으로 주목한 건 파지 줍는 노인이다. 컬렉티브가 보기에 이들이 리사이클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너무나 주변화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이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파지키트'를 디자인한다. <파지키트>는 파지를 줍고 리어카에 싣고 이동할 때 제반 효율성과 안정성을 강화시키는 도구다. 폐지를 주우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지압 점이 새겨 있는 방수 손 장갑이라던가, 자동차 운전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형광색 고무밴드로 만든 수레 고정끈, 파지 보관 시 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꽃과, 숲, 그리고 보석함이 인쇄된 방수 덮개 등이 이 파지키드에 담겨 있다. 이 키트는 바우처 사업이라는 한계 내에서,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현물을 지급하기 위해 디자인 된 물건임에 분명하다—더군다나 이 키트는 철저히 효율적 도구로서 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파지키트>는 도구적인 무언가를 넘어서는 면이 있다. 예술가가 상상하기에, <파지키트>는 전문가의 장비이며, 그것을 장착하는 순간, 남들이 쓰다 버린 고물을 주워다가 생계를 연명하는 불쌍한 노인은 사회의 리사이클러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파지키트>는 파지를 줍는 도구가 아니라 일종의 변신 키트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물론 예술가의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상상은 독단주의라고 볼 수 없다. <파지키트>가 제공하는 어떤 효율성, 다시 말해 달리는 차와 거친 고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을 통해 사용자는 지금 보다는 더욱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파지키트>는 일반성—파지 줍는 노인의 스테레오 타입—을 넘은 독특성이 나타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며, 저자의 독단주의라기보다 전적으로 사용자에 달린 것이다. 이 계기는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 사이의 관계 너머의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과 디자인은 무언가 배울 필요가 있다. 


미주

[1] 최황, “제가 2020년에 아르코 후원을 받아 기획했던...”, 페이스북, 2021년 8월 19일, (접근: 2021년 9월 24일, https://www.facebook.com/eltitnu.1984/posts/1335168570212127)
[2] 이런 언급이 특히 그렇다: “디자인은 모두 일상의실천이 맡았습니다. 일단 그래서 표절까지는 아닌 것 같고요.” 위의 글.
[3] 최황, “<서울, 25부작>을 기획한 관계자들, 정말 창피한 줄 압시다.”, 페이스북, 2021년 8월 20일. (접근: 2021년 9월 24일, https://www.facebook.com/eltitnu.1984/posts/1335961470132837)
[4] 위의 글.
[5] 최황은 자신을 큐레이터이자 작가로, 일상의 실천을 작가이자 디자인 에이전시로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뒤에 다루겠다. 최황, “정말로 잘못한 게 0.1g도 없기 때문에...”, 페이스북, 2021년 8월 26일, (접근: 2021년 9월 24일, https://www.facebook.com/eltitnu.1984/posts/1339853853076932)
[6] 일상의실천, “최황 작가의 ‘게으른 디자이너’라는 비난에 대한 답변,” 페이스북, 2021년 8월 23일. (접근: 2021년 9월 24일, https://www.facebook.com/ilsanguisilcheon/posts/2617072175094179). 이후 일상의 실천의 인용은 모두 여기.
[7] 최황, “정말로 잘못한 게 0.1g도 없기 때문에...”
[8]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웹사이트가 이렇게 중요하게 디자인 된 경우가 과거에는 흔치 않았는데, 이는 여러 미디어 환경의 재편성과도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스트-인터넷이라는 담론이 시사하듯, 현재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웹사이트 자체가 작업의 결과물로 프레젠테이션되거나 관급 전시에서 3D 시뮬레이션으로 전시를 공개하는 등 이런 현상은 포스트-코로나를 경유하며 심화되고 있다. 
[9] 최황, “<서울, 25부작>을 기획한 관계자들, 정말 창피한 줄 압시다.”


2021. 11. 1.

동무비평 삼사를 위해 쓰다가 기한을 어겨 폐기한 글을 마무리 함.

2021년 10월 31일 일요일

프리랜서와 기관 큐레이터

프리랜서로 있을 때에 비해 기관 큐레이터가 되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바뀐다. 프리랜서로 있을 때는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서 무언가를 하기가 쉽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오로지 자기를 위한 일이다. 반대로 기관 큐레이터는 태생적으로 시스템을 유지 보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는 일 대부분은 자신을 위한 일이라기보다 시스템을 위한 일이다. 그래서 프리랜서의 큐레이팅에서 큐레이터가 돋보인다면, 기관 큐레이터는 무언가를 해도 시스템이 보이지 큐레이터가 보이지 않는다. 기관 큐레이터의 미덕은 여기서 그런 거 같다: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것. 정리하면 프리랜서가 상대적으로 내용에 충실하다면 기관 큐레이터는 상대적으로 형식을 만든다. 그래서 프리랜서에게 어떤 프로젝트를 했냐 묻는다면 주제와 관여 작가 등등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기관 큐레이터에게 묻는다면 그건 미술관에 어떤 사업이 있느냐는 말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2021년 10월 28일 목요일

몸과 옷

왜 이렇게 사람들이 외모에 집착하고 몸을 자르고 붙이고 늘이고 보형물을 넣고 그러는지에 대한 유물론적 대답 하나는 옷 때문이다. 옷은 표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가장 그런 걸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가 럭셔리 브랜드다. 동시대 패션에서 가장 새롭고 급진적인 건 다 여기서 나온다. 그래서 옷에 대한 흥미가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건 결국 명품이다. 그리고 명품이 등재한 어떤 모델은 결국 다른 저렴한 브랜드가 부분적으로 카피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옷은 가장 몸과 맞닿는 물건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옷은 당연히 그것이 싸고 있는 몸의 사정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옷이 몸에 맞지 않으면 엄청 불편하다. 그래서 다음 단계에서는 명품에 어울리는 몸이 필요하다. 아방가르드 명품 모델이 누군지를 떠올려 보면, 어떤 종류의 신체를 렌더링하는지 알 수 있다. 가느다랗고 긴 몸, 큰 눈, 오똑한 코, 작은 얼굴 등등. 큰 맘먹고 그 비싼 명품 옷을 샀지만 내 몸이 받쳐주지 않아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어찌보면 슬픈 일이다. 

올해인가 빌리 아일리시 같은 연예인의 명품 학대 패션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학대라는 말이 재밌다. 이런 말은 매우 소중히 보호하고 지켜줘야 하는 대상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 쓴다. 그런 워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건 이미 심급에서 숭고한 대상이 되어 있는 명품이다. 옷이 이렇게 숭고한 대상이 되는 이유는 당연히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미니멀리즘적 현상학이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한 세계에서 표면은 매우 중요한 문화정치적 국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화된 이데올로기다. 여튼 그렇게 비싼 옷을 몸이 간과하기엔 어려운 일이다.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옷을 위해서 몸을 고치는 사람, 다시 말해서 옷에 몸이 배신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평범하고 없는 사람이다. 명품 학 패션에 쾌감을 느끼면서도 막상 명품을 샀을 때 대개 하게 되는 건 살을 빼야지일 거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기원>에서 고흐의 워커 그림에 대해 논한다. 하이데거는 닳고 닳은 워커를 통해 워커가 겪어 왔을 바람과 흙과 쓸쓸함, 농부의 느린 밭고랑 등을 상상한다. 워커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건 그냥 방구석에 있었다면 전혀 주목받지 못했겠지만 그림으로 그려 놓으니 그런 것이 느껴진다. 그런것이 무엇일까? 하이데거가 땅(earth)라고 부르는 것,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요즘 말로는 생태 같은 것이다. 여기서 표면은 땅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불과하다. 아니, 그렇기에 오히려 중요한 것이다. 표면은 땅을 여기로 불러 세우기에. 이런 오래된 미학을 우리가 다시 음미해 볼 수 있을까? 이게 정말 기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향등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2021년 10월 27일 수요일

구두와 워커



이런게 비평이냐??

 http://jihyunjung.com/blog/text/%EC%82%AC%EB%AC%BC%EC%9D%98-%EC%84%B8%EA%B3%84%EB%A5%BC-%EC%82%AC%EC%9C%A0%ED%95%98%EB%8A%94-%EB%AC%B4%EB%8C%80-_-%EC%9D%B4%ED%95%9C%EB%B2%94/

하...

이중구속

공부와 일. 둘 다 하기가 너무 힘들다. 하지만 일만 했으면 분명 바보가 됐을 거다. 공부만 한다면 먹고 살기 힘들었을 거다. 자동적인 삶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따분함이 연속되면 일도 대충하게 될 것이다. 반면 어떠한 생산 활동도 하지 않는다면 삶이 불안정해져서 마음도 산란하고 결국엔 공부도 못하게 될 거다. 그래서 결국엔 둘 다 해야한다. 둘 다 한다는 것은 일도 대충하고 공부도 대충한다로 귀결된다. 꼭 그만큼 공부도 조금하고 일도 조금한다. 각각 박력과 반력이 상호충돌하다 어딘가에서 멈춘 결과가 양자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자유로운 삶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뭔가를 한다는 건 다른 기회비용의 압박을 그럭저럭 견디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에 타협점을 찾게 된다. 나처럼. 이건 보통의 삶이다. 보통의 삶은 그런 방식의 폭력이 만들어 낸 긴장된 조화다.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지바 마사야, 의미가 없는 무의미 - 혹은 자명성의 과로, in 의미가 없는 무의미 (2018)

하..정리할 깜은 안 되고. 천재란 있구나. 인상적인 용어 몇개.

1. Para-maund: 라캉적 팔루스 향락, 과잉, 분출 등과 대비되는 살짝만 솟아오른 언덕

2. 의미 있는 무의미와 의미 없는 무의미

의미 있는 무의미: 라캉적 실재, 칸트적 물자체. 의미화되지 않는 다의성. 이미지와 언어로 포착되지 않음

의미 없는 무의미: 사유나 정신 과정 바깥에 있는 무의미. 라캉적 도식에서 고려되지 않는 물리적 외부 공격. 사유하거나 실패하는 신체 자체의 물리적 문제

3.사교: 사교는 자신을 다의성 ‘이하’로 만들어 (혹은 감산해) 관계하는 것. <-> 전면적 관계는 다의성으로 인해 일어날 수 없음.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의례적, 형식적 -> 형식은 곧 물질

4. 포스트투르스: 지바 마사야가 정의하는 포스트투르스는 가장 내 생각과 가깝다. 예를 들어 이주원 전시때 썼던 서문에서 비쳤던.. 포스트투르스의 의미는 진리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된 진리에 대해 도달 할 수 없기 때문에 해석이 증식하는 상황의 종료. 그 해석의 특권은 보통 레거시 미디어가 가지고 있었음. 하지만 해석에 대해 모두가 신뢰하지 않고 각자의 진실을 가짐. 그 각자의 진실을 지바의 말로 바꾸면 (해석될 필요 없는) 서로 다른 사실 <- 상대주의와 구분 필요

상대주의는 하나의 진실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상대적 다양성

포스트투르스는 하나의 진실은 없고 펼쳐진 서로 른 사실이 (우연적으로) 있음

-> 여기서 의례, 형식의 중요성: 서로 다른 사실이 공존한다. 그런 것을 묶어주는 것은 형식. 지바는 그 형식을 윤리로까지 확장하고 있음

5. 무뇌성(airheadness): 이승현 선생님은 머리빔성이라고 번역했는데 그냥 무뇌상태 그런 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거 같다. 머리를 비워야 몸이 움직인다. 너무 생각해 무한 다의성에 빠지지 말고 몸이 가는대로 움직다. 그것 밖에 없음. 신체라는 물질이라는 단순한 사실성.<->들뢰즈의 잠재성론. 잠재성론에서는 신체가 가능태(뒤나미스)의 현실태(에네르기아). 수반되는 것.

반면 가능태가 필요 없는, 혹은 가능태가 순수하게 현실태가 된 상태를 가정할 수 있는가? 현실태의 극치=신. 순수현실태란 유한한 존재=행위하는 존재->칸트의 실천이성과 비교해볼것

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인간 광고판


1인 미디어는 어떤 시대를 열었을까? 웹 2.0을 부르짖던 시절만 하더라도 유토피아적 상상이 하늘로 치솟았다. 지금은 모르긴 몰라도 영상의 대다수는 유료광고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유튜버 자신은 물론 광고임에도 진정성을 가지고 성심성의껏 리뷰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대다수 유튜버의 계정은 1인 광고판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유튜버 대다수가 조금 인기를 얻고 나니 [유료광고포함]을 자랑스럽게 영상 초기에 달았다. 많은 셰프가 최근 유튜브 시장에 뛰어 들었는데 광고가 들어온 걸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강조되는 것은 광고보다 자신의 요리다. 종종 보는 유튜브 중 예도TV가 있다. 요즘 점점 동시대 철학도 다뤄서 도움이 좀 된다. 예도도 자신의 영상에 광고를 넣는다. 영상 조회수는 조금이지만, 시청시간이 길어서 광고가 붙는단다. 예도는 유튜브 수익을 기부하는 데 쓴다. 그럼에도 예도 역시 광고판이란 사실은 정말 부인하기 힘들다.

오징어게임의 깐부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깐부치킨 광고를 거절한 것이 그래서 그렇게 화제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안 맞아서 안 한다고했다. 그렇다면 얘기는 비슷하다. 내가 광고다라는 사실을 다들 감추고 산다. 마치 내가 원래 그런데 광고가 우연찮게 나와 맞아서 붙은 것처럼 보이길 바란다.

김동규가 포착한 저 간판을 휘두르는 광고맨. 저 광고맨의 몸짓은 그 자체가 광고로 기획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저 몸짓은 광고 이상이 된다. 속된말로 아트네. 예술이다. 처음부터 그런 행위가 광고 그 자체였음에도 그 광고를 넘어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몸은 더 이상 광고판에 관심이 있지 않다. 몸은 오직 자동적이다. 저런 무관심성이 가능할까? 민하한테 귀동냥으로 들은 거지만 랑시에르가 철지난 칸트로부터 길어올린 무관심성이 어떤 종류의 dissensus의 핵심적 태도라면, 저 광고맨의 몸짓 역시 그런 종류의 것이다. 몸짓이 몸과 광고의 연결을 끊어낸다. 김동규는 광고와 예술이 맞붙어서 드물게 예술이 승리한 순간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저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군중 속에서 반쯤은 혼이 나가 광고판을 열심히 돌리는 몸짓으로부터..

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미술비평은 왜 실종됐을까?

다 아는 이야기를 해보자. 여기에 전업 미술비평가가 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서 먹고살까? 운 좋으면 대학 강의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교수도 아니고 강사법이 개정된 이후 계속 주어지던 강의도 이제 하나만 남았다—달랑달랑한다. 간간이 미술잡지란 곳에서 원고 청탁이 오는데 그런 곳의 원고료라고 해봤자 뻔할 뻔자다. 미술 매체에서 들어오는 청탁은 대다수 값싼 원고료에 짧은 지면이 주어진다. 비평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대의로 원고를 써내지만, 사실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잊혀지기 때문이라는 긴요함이 의무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한 여기에 에너지를 많이 투여하기엔 힘든데, (적당히 하게 되기 마련인데) 다른 일도 많이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요원하기 때문이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최근 공공기관에서 비평가의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청탁하는 원고량은 A4 한 페이지가량에 불과해 돈도 되지 않을뿐더러 거기서 사용하는 원고료 지급 기준이란 인간문화재라도 되지 않는 이상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1] 그렇다면 남은 동아줄은 작가다. 문예지원사업으로부터 시작되는 작가로부터의 원고 청탁은 요즘 관례화되는 분위기다. 이것이 사실은 비평가가 비평을 할 수 있는 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평가는 이들을 붙잡아야 한다.

언젠부터인진 모른다. 비평가와 작가 사이에는 갑을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혹자는 비평가가 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반대다. 키를 쥐고 있는 쪽은 작가다. 왜냐면 이들은 지원금-기반-예산을 가지고 비평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선택은 뒤샹 이후 가장 강력한 미술의 방법이다.[2] 한 예로, 비평가가 많이들 활동하는 레지던시 같은 곳에서 담당자는 ‘어떤 비평가가 좋을까요’라고 작가에게 묻는다. 작가의 한 마디가 비평가에겐 곧 기회가 된다. 초대된 비평가가 스튜디오 비지팅에서 혹여나 엄한 소릴 한다면 작가 사이에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질 것이다. ‘그 평론가 성의 없고 별로다.’ 물론 작가도 비평을 할 수 있고 비평에 대한 반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 소문을 통해서 행해지는 것은 대개 인물 품평이다. 비평가는 표면에선 떵떵거리면서 선생님 소리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종류의 소문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걸 내심 두려워한다. 작가는 비평가가 먹고살기 위한 중요한 고객이다. 그래서 그런 프로그램에서, 비평에 있어서, 비평가는 항상 CS 교육이라도 받은 양 작가를 대한다.

혹시나 비평가가 제대로 된 비평을 한다면 곧바로 민원 처리를 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여기서 제대로 된 비평이란 비판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비판적이지 않은 비평은 비평이 아니다.[3] 가장 많은 것은 ‘내 작품을 잘못 읽었다’ 류의 민원이다. 대부분 평범한 비평가는 작가의 의견을 반영해준다. 그건 비평가가 작가의 말에 수긍해서가 아니다. 그냥 그 돈 받고 글을 쓰는데 문제까지 생겨 품평의 대상이 되는 것이 귀찮고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물게 수정요청에 이의를 가진 비평가가 있다면 실로 문제가 된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작가는 아마 수정 원고를 받기 전까지 돈을 입금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돈을 줬다면 돌려달라고 할 것이다. 돈 없는 예술가가 다른 비평가에게 원고를 청탁하려고 한다고. 그래서 그 돈과 기회를 포기할 수 없다고 약자성을 드러낼 것이다. 한편, 공공기관이 중간에 있다면, 곧장 가장 곤란해지는 건 담당자다. 담당자는 여기서 선택해야 하는데, 대개 누가 문제를 더욱 크게 일으키지 않을지에 따라 ‘원래 그런 거니 좀 참아주세요’를 말해야 하는 대상이 정해진다는 이야기로 흐른다. 대개 작가의 입장은 자신은 말도 안 되는 모욕을 당한 선량한 피해자다. 반면에 비평은 자신의 작업을 의미화하고 계속 남아 참고와 인용될 강력한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이므로 수정밖에 답이 없다. 비평가는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비평의 본임이 작가의 의도를 진실되게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수정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담당자가 죽을 때까지 들들 볶여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 것이다. 싼값에 쓴 글 하나쯤은, 그리고 이 글로 인해 관련된 사람이 모두 불행해진다면, 더불어 내 상황까지 악화된다면, 그런 글 수정 하나쯤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 이 경우 비평가는 글을 고쳐줄 것이다. 일은 이렇게 진행된다.

작가들은 비평의 실종을 말한다.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숨어 있다: 비평이 없기 때문에 작업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비평이란 무슨 뜻일까? 실제로 그런 비평은 곧장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작업을 가장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작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의 진짜 의미를 가장 잘 안다고 추정되는 사람은 작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는 비평의 실종을 말한다. 자신의 말을 그대로 갖다 붙인 그런 비평은 비평이 절대로 아니라고. 아무 의미나 통찰이 없다고. 이 경우, 비평은 사라진다. 한편, 비평이 자율적인 주장을 담았을 때 결과는 모 아니면 도다. 가장 성공적인 경우에, 작품에 대한 평가가 작가에게 수긍 가능하면서도 어떤 종류의 통찰까지 줬다면, 그런 비평가는 작가에게 최고의 비평가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해피한 아이디얼이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때 사정은 달라진다. 이때 비평은 작가의 작업을 왜곡하거나, 비평가 자신의 개인 주장을 위해 작업을 멋대로 사용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경우 작가의 입장에서 굳이 이런 비평은 있을 필요가 없다. 내 작업에 대해 좋게 써 줄 비평가가 얼마든지 있을 텐데, 굳이 내 돈과 기회를 써서 그런 것이 세상에 있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작가는 아마 이 글은 청탁의 요점에서 벗어났으며, 자신에 대한 적절한 비평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 경우도 비평은 사라진다.

그래서 비평가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비평은 분명히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야 하지만, 그리고 그런 비평은 작가의 의도보다 비평가 자신의 고유한 주장을 담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 비평은 비판보다는 작품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종류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작가는 비평가 고유의 예술관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찬사를 매우 괜찮은 모양새로 붙여 줄 비평가라는 아이디얼을 꿈꾼다. 그것이 가능할까? 얼굴도 작업도 모르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에게서 ‘지원을 받았는데요’하면서 연락해오는 관계에서, 기관 담당자가 올해도 무탈하게 진행할 연례 행사에 매칭 비평가로 모시고 싶다고 천진난만하게 연락 오는 제도적 상황에서 가능한 일일까? 지금의 관계에서 비평가는 작가의 동료인가? 적인가? 실로 적도 동료도 아니다. 비평가는 마치 진열대에 디스플레이된 다채로운 상품처럼 쇼핑의 기회비용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그런 관계 속에서 한편에서 아이디얼한 모델을 전제하고, 또 한편에서 비평의 실종을 냉소적으로 되뇌고 있다—여기서 가장 흔한 비평 모델이 주례사가 아닐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교착 상태에서도, 만약 작업과 세상에 대한 비판적 통찰이 비평이고, 여전히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모종의 자율성을 긴급하게 요청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이런 관계적 배치에서 작가는 어쩌면 썩은 동아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런 관계를 이야기하는 건 저런 관계도 있다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미술의 역사에서 작가와 함께한 비평가가 수도 없이 많다: 각자가 떠오르는 인물을 열거해 보자. 이들은 어떤 작가와 이웃해 있거나 어떤 작가와 적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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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생한 경험담에 관해서는 미술비평가 안소연의 글을 참고할 것. 안소연, "나의 글쓰기와 원고료", 예술경영 웹진, 2021.10.28. (접근: 2021년 11월 1일, https://www.gokams.or.kr/webzine/wNew/column/column_view.asp?idx=2505&page=1&c_idx=90&searchString&c_idx_2&fbclid=IwAR2EzDOi_mR4dvBK4H90LXXssyMZZaDxr5YnTMS73VnAhKsGV_awHkeQsiM) 하지만 안소연 자신도 시사했듯이, 공공기관을 향한 인건비 상향의 우선적 요구는, 비평 그 자체의 문제에 관해선 부분적이거나 간접적인 해결책이다.

[2] 최근 몇 년간 전시나 창작 지원에서는 사례비를 쓸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과거에는 인건비 지출이 더욱 제한적이었다. 이제 문화재단 지원에서 기획자나 비평가를 작가 자신의 전시에 채용할 수 있고, 사례비도 지급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비평은 전문가 리뷰라는 명목으로 작가 지원 '혜택'에 동원되는 것이 현실이다. 작가를 위한 비평 지원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에서 특히 유망예술가 지원 참고. "2019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사업 정기공모 안내", 서울문화재단 웹사이트, 2018년 12월 19일 (접근: 2021년 11월 1일, https://www.sfac.or.kr/opensquare/notice/support_list.do?cbIdx=992&bcIdx=57533&type=). 한편, 아르코는 비평가나 기타 전문가를 섭외할 경우 계약서를 쓰도록 명시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아르코,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을 통해 표준계약서 만들기를 추진했으나, 여기서 비평가와 의뢰자 사이의 계약서는 어느 곳에서도 고려되고 있지 않다. 자주 비평가와 의뢰자는 기관제출용 형식적인 용역 계약서를 작성하곤 하는데, 글의 사용 범위와 기한의 고려 없이 을(비평가)이 갑(의뢰자)에게 어떤 경우에든 피해주는 것에 대한 엄격한 손해배상을 명문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비평가와 작가 사이에 글을 '준다/(못)받는다'라는 일반적인 통념과 공명한다. 아르코 표준계약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문체부)시각예술분야 표준계약서 11종 고시(2019.3.1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웹사이트, 2019년 3월 12일, (접근: 2021년 11월 1일, https://www.arko.or.kr/board/view/4008?bid=639&cid=1601718).

[3] 내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할 포스터(Hal Foster)의 어느 인터뷰다. "비판적(critical)이지 않다면 그것은 비평(criticism)이 아니라, 단지 부연설명이나 의견에 불과하다. ... 또한 부정성의 해명이란 긍정적일 수도 있다." Christopher Bollen, "Hal Foster", Interview Magazine, December 5, 2014, (acceced: Nov 1, 2021, https://www.interviewmagazine.com/art/hal-foster-the-insiders)


2021. 10. 22.

퐁에 게재됨

오늘의 인용

“결과 안에는 원인 안의 것보다 많은 것이 들어 있다.” 퀑탱 메이야수

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미술과 사회

1980년대 민주화 진영이 대통령 직선제를 성사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동력을 상실하고 난 후, 몇몇의 유학생을 통해 공공미술은 민중미술의 다음 단계로서 상정되었다. 공공미술은 2000년대 참여정부를 맞아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급성장했는데, 이제 시민의 미술로서, 엘리트주의적 순수미술과도, 또 과격한 반정부 지향성을 가진 민중미술과도 거리를 두는 것으로 특징화 된다. 이는 참여정부의 포퓰리즘적 지향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공공미술은 말하자면 관주도-대시민-복지서비스와 대동소이하게 이해되거나, 최소한 그런 효과를 냈다. 그리고선 수많은 문제가 나타났고, 또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많은 연구자와 비평가는 공공미술의 발전 3단계—공공장소 안의 미술(art in public space), 공공장소로서의 미술(art as public space), 공공의 이익을 위한 미술(art for public interest)—를 논했는데, 이는 사실 미국 NEA 예술 기금 지원 제도의 변천사를 미술의 발전과 겹쳐놓고 오인했을 뿐이다—제도와 작품을 혼동하는 것이 이 분야의 특징이다.

아무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미술은 90년대 행동주의 미술을 주름잡았던 뉴장르공공미술의 수용과 더불어 종종 커뮤니티 아트와 동일시되어 가장 진일보한 공공미술로 여겨졌다. 어느 순간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최, 주관하는 공공미술—여기에 더해 예술가를 동참시키는 공공사업—공모에는 전문 커뮤니티 아티스트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여기서 커뮤니티 아티스트는 기관과 시민 사이에서 상상력을 기입하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공공의 이익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대부분 공공장소 안에서 ‘조형물’이 남긴 물리적 폐허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심리적 폐허를 남겼고, 종종 누군가는 실패를 말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그런 실패는, 1980년대 민중미술, 그 중에서도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의 시민미술학교에서 이미 겪은 바 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아무리 평등한 관계 안에서 함께 예술로 놀아보자고 주문해 봤자, 그리고 위계질서를 만드는 일을 동인 내에서 금지하는 행동강령을 만들어 봤자, ‘일반인’의 입장에선 심드렁하거나 배우기도 빠듯하다. 그렇다면 예술의 ‘이유’는 시작부터 미끄러진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일반인이어야 하지만, 충분히 예술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일반인이어야 한다는 모순 때문에.

이따금씩 자주, 이런 관계 속에서 ‘결과 보고’로 갈무리되는 전시는 모두 예술가 자신의 자의적 아이디얼로 수렴되곤 했다. 커뮤니티 아트, 사회와 관계 맺는 예술, 공동 프로젝트의 결과는 대개 재미없는 사진 다큐멘테이션이나 수집품이 나열되거나, 프로젝트의 부산물이 그대로, 혹은 약간의 조작을 거쳐 전시되거나, 혹은 작가의 개인전이 되거나이며, 여기서 ‘전시’라는 포메팅(formating) 그 자체가 가지는 문제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전시는 내부로부터 무엇이 표면으로 나왔든, 표면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는 관람 형식이다. 그리고 그 표면은 곧 약자성의 포르노적 재현이라는 문제와 부딪친다. 하지만 대개 타자의 재현은 별다른 숙고 없이 온정적인 태도로, 다수 무신경하게 제시되곤 했는데, 이유는 아마 작가의 위치가 이미 타자의 편에 속해 있거나 최소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류학의 기초 조사 방법인 라포 따위가 거론된다.) 하지만 착각으로, 작품이 예술계에 프레젠테이션 되고, 전시라는 제도적 표면으로부터 들어가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특권적 장소에서 작가는 약자가 아니라 저자이며, 무언가를 결정하고 보여줄 권한을 가진다. 그러므로 작가가 스스로의 위치를 타자의 편으로 착각함으로써 등장하는 문제는 약자성의 전용이다. 약자성은 작가의 표현을 위한 재료로 격하된다. 그 효과는 미술계 내 적극적 우대 조치라는 우산이지만, 꼭 그만큼 약자성을 확증하고 강화시킨다.

이 고리타분한 문제는 민중미술부터 공공미술을 지나 사회적 실천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관계 맺으려는 작가의 프로젝트 언저리에 언제나 그림자를 드리우며, <1968-1995>나 <30년x365일x1만8백회> 같은 김리아의 몇몇 작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김리아는 과거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였던 사물을 미학적 오브제나 설치로 재가공했다. 이것은 아마도 어떤 경의를 담은 ‘헌사’겠지만, 그것은 쇠락해버린 어떤 기억-오브제에 대한 멜랑콜리한 헌사인 동시에, 그 멜랑콜리아에 사로잡힌 작가 자신에 대한 헌사일 때 그렇다. 가장 성공적인 경우, 이 멜랑콜리한 시선은 유행에 따라 빠르게 성쇠하는 근대성이라는 한갓 덧없음을 포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근대적 진보의 폭력에 짓눌린 약자성 역시 확증된다: 작가의 성찰성이 강화될수록 대상의 해방은 요원하다.

또 하나 중요하게도, 이미 지적했다시피, 이 성찰성의 문제는 작품과 전시라는 관례적 프로토콜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때 작품과 전시는 근대성의 균열을 포착했음에도, 그것을 데카당하게 찬미하는 가운데 심미주의 그 자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가장 진보적인 의제와 태도를 가진 작가의 예술이 가장 관례적이고 보수적으로 나올 수 있을까? 이는 많은 사회와 관계된 미술이 화이트큐브와 맞닥뜨렸을 때 똑같이 겪는 문제다. 현실과 발언이 회화라는 재현 매체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들이 그렇게 형상화하고자 한 민중 이미지가 사실은 그들 자신이 만든 이데올로기적 재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것보다 예술은 더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이나 예술가 그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말을 기억해봐도 좋을 듯 싶다. “예술가는 제도다.” (2021. 10. 19.)

홍티아트센터 작가비평으로 씀

실재의 귀환?

늦게 잡아도 2000년대 중반 언제쯤부터 인문학의 지형도에 실재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은 유럽과 영미권에 산개한 젊은 철학자의 지적 네트워크가 주도했고 전통적인 아카데미라기보다 블로그를 통한 상호 간의 교감으로부터 시작된, 상대적으로 ‘젊고’ ‘혁신적인’ 시각으로 평가된다. 이들이 급진적으로 단절하고자 한 것은 근대 이후, 정확하겐 칸트가 구축한 어떤 종류의 거대한 철학적 체계 그 자체다. 칸트의 유명한 이성에 대한 ‘비판’이 신, 절대자, 물자체(thing itself)에 대한 실재론적 관심을 제한해 인식론으로 전환시켰다면, 일군의 젊은 철학자는 상관주의라는 용어로 그것의 한계를 포착해내기 시작했다. 인간이 있든 없든 간에, 인간이 인식하든 아니든간에, 저 산과 공룡의 화석은 실제로 ‘있으’며, 방사능 핵의 분해의 속도 상수와 열광 법칙의 결과로부터 지구의 나이를 도출해낼 수 있다. 젊은 철학자는 말한다. 일단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인간과 상관없이, 인식의 범위를 훌쩍 넘어버린 태초의 순간에 무언가 ‘있었다’라고 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상관관계에 기초한 필연성이라는 기반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리고선 우연성, 가능성 그 자체가 실재라는 결론, 그러니까 실재하지 않는 것이 곧 실재한다라고 하는 역설적인 결론에 공통으로 도달한다. 젊은 철학자는 주장한다. 그 가능성을 사변하는 것이 곧 철학의 본임이라고.

그리고 이 사변의 한 가지 방식이 예술이며, 어떤 종류의 패러다임적 전환도 감지된지 오래다. 실재론적 전환에서도 전위병 역할을 하고 있는 객체지향존재론(OOO)의 그래엄 하만(Graham Harman)은 《아트리뷰》가 선정한 미술계 파워 피플에서 언젠가, 몇 년동안 10위 안에 랭크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시장에는 한편에서 한갓 돌멩이 같은 사물이 예술가와 무언가 교감이 끝난 듯, 의미심장하게 배치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샤먼이라는 오래된 예술가 모델이 돌아온다. 또 다른 한편에서 과학과 기술과 상상력을 동원해 물질에 접근하는 다양한 실천이 예술에서 가능한 영역으로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 모델은 연금술사와 비슷하다. 옥창엽의 뮤온 입자를 가시화하는 작업 <흩어지는 것에 대하여>는 다분히 후자 쪽에 속한다. 뮤온 입자는 우주방사선이 지구 대기권과 충돌하면서 발생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일상적 감각에서 그것을 절대 볼 수 없지만, 이 전시장에서는 감지기를 통해 반응하는 전자 장치—깜빡이는 빛과 소리—를 통해 그것의 ‘존재’를 예외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보이지 않는 뮤온입자가 움직이며 감지되는 순간,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 경험이 미술사에서 미니멀리즘부터 익히 연구된 현상학적 경험과 유사한 것으로,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이의는 하만에 의해 반박된다. 하만은 그의 예술론을 짧게 축약한 에세이 「관계 없는 예술(Art without Relations)」에서 마이클 프리드의 유명한 연극성 개념이 관계주의적으로 잘못 이해됐다고 주장하는데, 연극성은 관찰자가 인식론적 관점에서 무언가를 보고 패러프레이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들뢰즈 식의 존재론, 무언가로 되기(becoming)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다양한 요소는, 하만식으로 인간을 포함하는 다양한 부품은, 무대 위에서 상호 결합해 새로운 존재로 변모한다—마치 가면을 쓴 연기자가 무대에서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변신하듯이. 이렇게 보면 물질과 인간 사이에 펼쳐진 연극적 경험은 그 자체가 (인식론적 패러프레이징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건이 된다. 하만은 이런 사건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품의 하이브리드가 진정한 예술작품의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 의미에서 옥창엽의 전시장은 관람성의 장소라기보다, 그 자체가 존재 탄생의 무대다. 여기까지가 이론의 이야기다.

고대 애니미즘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는 항상 현실에 없는 것에 매혹되고 그것을 사변해왔다. 페인트든 입자가속기든 뮤온 감지기든지 간에, 예술가에게 매체는 그런 것과 접속하는 가능성의 매개체였다. 그것은 결코 신실재론적 전환이 불러일으킨 특별한 일이 아니며, 다만 이론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다르게 예술을 이해했다는 사실만이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흩어지는 것에 대하여>는 실재론적 전회 속에서 ‘이론적’으로 새롭게 읽혀질 여지가 충분히 있음에도, 만약 ‘실재한다’ 그 자체에 그쳐버린다면, 그것은 특별하다기보다 그냥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무엇이 특별한가? (2021. 10. 19.)

그럴 수도 있는 일에 대하여

전시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폐선이 불안정하게 놓여 시선을 붙잡는다. 조금 눈을 돌려보면 해양 쓰레기처럼 보이는 사물이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그 위에는 각각 적당한 크기의 고깔이 천장으로부터 매달려 있어, 거기서 모래가 떨어지며 사물의 형태를 서서히 덮고 있다—이것은 폐선도 마찬가지다. 곧 모래는 모두 떨어지고 사물은 이 속에 잠기리라. 어느 방치된 바닷가는 전시된 이 광경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때 새롭고 멋져 보였을, 바다를 몇 번이고 가로질렀을 배는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관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지배하는 것은 덧없음이라는 감각이다.

어떤 종류의 압박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휴먼스케일을 훨씬 상회하는 배가 억지로 인부 여럿과 기계의 힘을 빌려 전시장에 들어가는 상상은 전시를 보는 것과 동시에 거의 자동으로 이뤄진다. 안 보이게 치워놨다곤 하지만 조금만 돌아다니면 발견할 수 있는 전시장 구석에 수납된 모래 포대 역시 어떤 종류의 처리 곤란함을 잘 보여준다. 애초에 화이트큐브로서 매우 간결하고 비특정적으로 만들어진 장소에 힘겹게 구축된 인공자연은—비록 그것이 자연과 닮는 것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성공했다면 더더욱—그 자체로 강밀한 에너지가 투여된 결과다. 서서히 떨어지는 모래가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사라짐에 관한 시학’은 그런 면에서 보면 그 자체가 압박이다. 화이트큐브라는 무균질 공간에 자연적 특성을 구축하고 다시 그것을 서서히 무로 되돌린다는 식의, 그리고 종국에 전시가 끝나면 반드시 같은 과정을 역순으로 해야만 하는 운명의, 만약 허락한다면, 그 압박의 실체를  낭비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시적인 작업이 낭비를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할 뿐만 아니라,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 자체로 뭔가를 알려준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마르크스가 일찍이 지적했던 상품이 가진 독특한 특징으로, 이것은 자신의 기원을 감춘 채로 처음부터 그것이었던 것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김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른 채 마트에서 잘 포장된 브랜드를 안심하고 구매한다. 나아가, 역시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나면 인과 관계의 전도가 일어나는데, 노동이 있기 때문에 상품이 있다는 자명한 사실은 여기서 외려 상품이 노동을 결정한다는 명제로 교체된다. 뜬금없이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전시장과 작품이 전제하는 자연성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 미술 전시에서, 그것이 오브제든 설치든 환경이든 뭐든 간에, 작품은 화이트큐브와 함께 브라케팅(bracketing)될 운명에 처해있고, 이 사실은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전제되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이트큐브 안과 밖은 여기서 통약불가능한 선으로 나뉜다. 거대한 폐선과 쓰레기와 모래가 여기 놓여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관해서 궁금해하는 것은 뭔가 작업의 본질과 무관하게 느껴지며, 대신 강요받는 것은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와 사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니멀리즘을 지나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이란 이름으로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리얼리티에 대한 탐사가 여기서 왜 희박해지는지가 궁금했다.

생각해볼 수 있는 한 가지는 리얼리티가 미적 가상이 되어버렸다는 불길한 가설이다: 즉 홍티아트센터 옆 포구에 버려져 있던 폐선은 그 자체로 아무 의미가 없으며, 반드시 미적 브라케팅이 이뤄지고나서야 어떤 종류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 이는 단 한 장의 멋진 사진을 건지기 위해 낭떨어지에 매달린다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되어버린 지금의 패러다임에서, 인스타그램을 가득 메우는 팬시한 사진이 그 한 장이 나오기까지 수 많은 B컷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을 우리가 모두 알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럴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장소에서 비장소로의 이동, 폐선이 홍티 포구에서 갤러리로 이동한 사건은 퇴행적이라기보다 동시대적이라고 봐야한다. (2021. 10. 19.)

홍티아트센터 작가 비평으로 쓰였음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MBTI

 


심심해서 해 봄

2021년 9월 15일 수요일

Afrofuturism

 https://www.tate.org.uk/art/art-terms/a/afrofuturism

신유물론의 문제 하나

노버트 위너의 이론에서 하나 계속 신경쓰였던 것 중 하나는 위너의 시스템 이론에서 의미있는 값은 질적이라기보다 양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양이 체계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데 그 양이 쓰이는지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 탄 사람이 철수냐 영희냐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안에 탄 사람과 비행기가 어디로 얼마만큼 이동하는지가 중요하다.

신유물론의 물질에 대한 관심이 약간 그런 식인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하만을 따라 위로의 환원, 아래로의 환원을 피한다는 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그 결과에 대해 가치평가를 통해 의미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니 결국 남는 건 그 물질 혹은 객체의 물리학으로 전락하는 거 아닌지.

2021년 9월 10일 금요일

Glitch Feminism: A Manifesto (Verso, 2020)

https://www.legacyrussell.com/GLITCHFEMINISM

키친의 디렉터가 되었다는 레거시 러셀

지식과 오리지널

 https://m.news.nate.com/view/20210909n06703

원희가 하는 재주도좋아가 바라던바다라는 JTBC 프로그램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재주도좋아측에서 바라던바다에 상표권 등록을 했는데 jtbc가 이걸 침해했단 것이다. 바라던바다는 친환경 축제의 상표라고 한다. 그러면서 “큰 금전적 보상 없이도” 보람이 있으므로 활동을 지속했다고 주장한다. 제주도좋아측의 요구는 원작자의 출처를 밝혀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게 아니라면,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것이다. 

나는 제주도좋아의 말이 좀 웃기다. 공공재를 이야기하면서 지식의 원본성은 주장한다? 바라던바다란 문자는 JTBC측의 주장과 같이 매우 평범하게 쓰이는 단어이며, 비치코밍, 플러깅, 버스킹 등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걸 조합하는 행사는 찾아보면 솔직히 수두루빽빽 나올 거 같다. 내가 보기에 재주도좋아의 바라던바다 행사 취지에 어디에 오리지널리티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착하고 평범한 행사에 바라던바다라는 레이블을 붙였다는 것인 것이 가장 특별하다, 그러니까 핵심은 상표권인 것이다. 

뉴스에서 지적하다시피 바라던바다에서 쟁점이 되는 상표권은 문자상표권이 아니다. 바라던바다는 고유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한 표절이 없는 것과 같은 의미다. 모두가 그림을 그린다. 재주도좋아의 바라던바다가 상표로서 등록된 건 도형이다. 바라던바다의 로고란 뜻이다. 이건 JTBC의 경우도 마찬가지어서 그러니까 둘은 로고의 유사성을 놓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재주도좋아측이 문제삼고 있는 건 도형이 아니라 문자, 나아가 아이디어, 지식이다. 내가 보기에, 그리고 법이 판단하듯이 바라던 바다라는 명명과 행사는 매우 일반적인 것이어서, 그리고 과거 사례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고유한 것으로 이해되 힘들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APAP에 표절임을 문제 제기하나? ㅎ 따지고 들어가면 그래서 이 문제는 일반적인 행위를 고유하게 브랜드화한 것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제주도좋아가 어떤 종류의 공공재를 사유화했다는 거다. 이율배반 아닌가? 

물론 JTBC를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바라던바다는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으로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라는 아이디어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JTBC도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JTBC 같은 대자본이 그린워싱을 하는 제스처엔 크게 동의되지 않고 그건 그거대로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재주도좋아가 공공적으로 보이냐, 그렇지도 않다는 것.

2021년 9월 3일 금요일

Jacques Ranciere, Communist without Communism?, In the Idea of Communism

 “Its opposite, the egalitarian maxim, can be summed up in two principles: firstly, equality is not a goal; it is a starting point, an opinion or a presupposition which opens the field of a possible verification. Secondly, intelligence is not divided, it is on. It is not the intelligence of the master orthe intelligence of the student, the intelligence of the legislator or the intelligence of the artisn, etc. Instead, it is the intelligence of that deos not fit any specific position in a social order but belongs to anybody as the intelligence of anybody. Emancipation then means: the appropriation of this intelligence which is one, and the verification of the potential of the equality of intelligence.”(168)

“The emancipation of the workers thus means the affirmation that work can wait and the there is no specific ‘aptitude’ of the artisan. It entails the possibility of breaking the links of ‘necessity’ tying an occupation to a form of intelligence, the affirmation of the universal capacity of those who were supposed to have just the intelligence of their job, which means the intelligence or unintelligence befitting their subordinate position.”(168)

Position이 계속 나오고..

“I said: we can add. This means: we can draw a deduction from the thesis of the communism of intelligence to forms of collective implementation of this communism. This is where the difficulty appears. How far can the communist affirmation of the intelligence of anybody coincide with the communist organization of a society? Jacotot entirely denied such a possibility. Emancipation, he said is a form of action that can be transmitted from individuals to individuals. As such it is strictly opposed to the logic of social bodies which is a logic of aggregation governed by laws of social gravitation similar to the laws of physical gravitation. Anybody can be emancipated and emancipate other persons so that the whole of mankind be made of emancipated individuals. But a society can never be emancipated.”(169)

이건 뛰어난 개인을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집단 해방과 개인의 해방을 대립시키는 질문도 아님. 진짜 질문은 어떻게 anybody의 역량(capacity)을 집단화(collectivization)하는 일과 글로벌하게 사회를 조직하는 일과 동시에 일어나게 할 수 있냐는 것. 어떻게 해방의 아나키한 법칙이 일과, 지위와 힘을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법칙이 될 수 있게 하냐는 것. … 

이러면 꼭 자발적으로(스스로) 조직화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옴.

그런데 해방은 탈질서(disorder)가 분명하지만 이 탈질서는 자발적(spontaneous)인 것과 아무 관련이 없음. 반대로, 조직화(organization)은 쉽게도 기존 사회원칙의 형태를 자발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을 뜻함. 해방의 법칙은 자콕토의 시대에는 카비트(Cabet)나 간단히 마르크스와 앵겔스 공산당 같은 커뮤니스트 콜로니를 건설하는 문제로 나타났음.  

카비트는 미국의 이카리안 공동체에서 나온 커뮤니스트 커뮤니티인데 실패했음. 랑시에르가 보기에 실패하지 않은 지점은, 애초애 개인이 공동의 법칙에 아무 것도 제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패할 것도 없었다는 거. 반대로 실패한 지점은 커뮤니스트의 역량이 개인화(privatized)되지 않았다는 것. 즉 랑시에르는 개인은 아무 잘못이 없고(잘못할 꺼리조차 없었고) 집단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음. 애니바디(anybody)의 역량을 공유하는 것이 개인 커뮤니스트 인간의 미덕이 될 수 없었음. 그런 해방의 템포(temporality), 즉 다시 말해 집단적 힘이 폭발하는 템포는 모두에게 특정한 기능을 사회가 줘서 조직한 시간표로 일어나지 않음. 

그런데 이카리안 커뮤니티 언저리에 다른 종류의 커뮤니티가 좀 더 잘한 사례가 있음. 이들이 성공한 이유는 커뮤니스트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 그들은 종교적 원칙을 숭배하는 여성과 남성으로 만들어져 있음. 그러나 이카리안 커뮤니티는 커뮤니스트로 만들어져 있었음. 그래서 이카리안 커뮤니티의 커뮤니즘은 두개로 갈라짐: 하나는 커뮤니티의 아버지(Father)가 지배하여 일상을 커뮤니스트적으로 조직화하는 거. 결국 커뮤니스트 일꾼은…


좀 있다가 더 읽고 메모해야지 메모를 하려고 했더니 다 중요해보여서 번역을 하고 있네..

2021년 9월 1일 수요일

최근 본 것

1. 맨헌트: 유나바머 (2017)
다른 무엇보다 유나바머라는 독특한 인물을 알 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 잠깐 구글링을 통해 유나바머가 썼다는 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를 좀 봤는데, 이정도면 뭐...OK. 근데 좀 상식적이고 일반인스럽단 생각도?

2.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
그냥 소년물의 정석. 약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점점 강해져 끝판 대장을 물리치는. 호흡법 등 고졸한 설정이 재미있는 요소. 

3. 범털 (2020)
유튜브에서 소개해주는 짤을 보고 감상. 넘기면서 봐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은 딱히.. 밑바닥 싸나이의 거칠지만 인정도 있는 으리 그런 거가 주제?

4. D.P. (2021)
사람들이 트라우마 트라우마 이야길 많이 한다. 나 또한 군대 시절이 안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군대는 집단 트라우마가 맞긴 한 듯. 고어적 요소가 있는데 그게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요인이고 국방부가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요즘은~ 하면서 나오는 지점. 이런 시리즈가 극사실주의라고 표현되는 것 자체가 매우매우매우 이상한 상황인데 다들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는 분위기. 한국에서 군대는 너도 나도 상대하기 싫은 주제임이 확실한듯.

죄다 넷플릭스네!

2021년 8월 19일 목요일

Figurative painting

구상과 추상 중 하나를 굳이 선택하라면 나는 구상 그림이 더 좋다. 구상과 추상이 적절하게 섞여져 있는 게 좋겠지만 그럼에도 구상적인 면이 강하면서 추상적인 면도 테크니컬리 도와주는 그림이 좋다. 누구나 좋아하는 화가로 말하자면 루시앙 프로이트 같은 자의 그림이다.

어느정도 이론적 입장이란 게 생기면서는 구상이 가지는 정치적 위치성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나치가 아방가르드를 퇴폐라고 규정했던 건 지나치게 추상화되어 민중이 알아먹을 수 없는 대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스탈린 치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나오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우리는 이런 미술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법부터 배웠다. 하지만 극소수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미술이 대단해봤자 뭐가 어떻단 말인가. 오히려 미술의 역능이 어떤 계기를 통해 발휘되는지 잘 알아본 쪽은 이쪽이다. 그런 면에서 아방가르드는 시작부터 판을 다시 짜야할지도 모른다. 

요즘엔 리터러시란 말을 많이 쓴다. 아바가르드는 자신의 리터러시로 사람들의 고유한 리터러시를 깨부수려고 했다. 나잘난 맛에 살았다는 거다. 하지만 사람들의 리터러시가 얼마나 다른 층위에 있는지 미술은 별로 안 궁금해왔다. 오히려 미술이 사람들의 리터러시를…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윤리적 취향

열심히 생각해서 무슨일을 하는 것과 그냥 해도 무슨 일이 되는 것의 차이를 모든 사람이 경험해봤을 것이다. 생각해서 하지 않아도 그냥 생긴대로 했는데 뭐가 되는 것. 후자의 그것을 우리는 보통 천재라고 부른다. 

천재란 개념은 판단력비판에 나온다.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타고 나서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천재가 하는 것이 말하자면 취미판단, 심미적 즐거움의 보편적 영역을 구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나이가 먹으면 그렇게 된다는 썰이 있다. 공자가 70세가 되면 종심이라고 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학과 윤리가 만난다.

추구해야 할 미학이 있을까? 반대로 추구하지 않아야 할 미학이 있을까? 좀 애매하다. 미학에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잘 없는 거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예술은?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 (2015-6)

탈레반 생각도 나고.. 요즘 시국에 재밌게 시청했다.

2021년 8월 17일 화요일

주말 동안 본

1. 에반게리온 3.0+1.1

감개무량한 약 3 decades의 마무리. 신지가 커버린 모습이 내 모습과 닮았단 생각을 했다. (에반게리온을 처음 봤을 때 나도 신지와 같은 고등학생이었다.) 건너뛰고 결말… 레이도 아니고 아스카도 아니고 마리와 애인 사이가 되고 거기엔 아무런 에피소드가 없다. 아스카가 맨날 카메라 들고다니던 찌질이랑 14년동안 동거했단 이야기도 그냥 한 번 정보로만 나온다. 그냥 무심하게 특별하지도 않게 주목할 필요도 없이 그냥 그런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마무리가 제대로 된 연애로 끝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결국 사랑.

2. 블랙위도우

사실 별 기대없이 봤는데 재밌게 봤다. 스칼렛 요한슨은 별로 좋아하는 캐릭이 아닌데, 그 리틀 드러머 걸에 나온 여주가 차세대로 등장하면서 좀 흥미로워졌다. 약간 히어로물의 설정을 빼면 가족드라마인데, 미국 보통 가정의 모습(?)일 법한 상황이 꽁트처럼 약간 뒤틀려 들어가 있다. 그런 연출이 좀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쫌 단순한데 그런 느낌도 들고. 

3. 천공침공

부산집에 돌아와 적적해서 틀어놨던 걸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몰아서 봤다. 그덕에 오늘 아침엔 지각.. 알람 소리가 안 들렸는데 내가 끈 건지 알람이 안 울린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생각보다 신선한 설정의 베틀로얄물이다. 요즘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모든 게 게임적 설정이다. 능력도 성장하는 게 아니라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다운로드 받고 뭐 그런 식. 세계가 이렇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계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마 메타버스적 세계관이 점차 도래하면 후자와 전자가 합쳐지겠지. 아무튼 요즘 나오는 애니의 병폐(모에, 써비스씬)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참을만한 정도에, 생각보다 정교한 설정과 캐릭터성 때문에 끝까지 봄.

4. 암살교실

조금정도 인기를 끈 만화인데 유튜브에서 전편 요약해주는 영상을 봤다. 나름 특이한 소재에 학교 비판이 섞여 있는, 보기 드문 작업이란 생각.

홍혜은 글의 반응의 반응

나는 홍성담의 <세월 오월>, 이구영의 <더러운 잠>을 지지하는 것 만큼 홍혜은의 글도 지지할 수 있다. 모두 이미지와 신체의 어떤 특징을 연결시켰다. 이걸 파시즘이라고 우려한다면 차라리 집에 까스랜지 불 꺼졌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권력의 이미지를 조롱하는 건 그리 새롭지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도미에의 가르강튀아를 당장 검색해보라. 어떤 소수자성 때문에 권력의 이미지를 비판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웃기다. 똥이 무서워서 된장 못 담그랴. 대통령이자 여성인 박근혜는 박근혜다. 통합되어 있는 걸 갈라서 이야기하기보단 다른 것이 왜 통합되어 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분위기

최근 내가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한 건 도슨트교육이다. 기존에 행정 주사가 자원봉사자 수준으로 관리하던 도슨트를 이어 받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규칙도 만들고 교육도 진행했다. 뽑아 놓기만 하고 제대로 된 전시에 관한 교육과 프로그램화 된 스크립트 작성 시간이 없다보니 주먹구구식으로 자기네들끼리 그룹 지어서 스터디하고 마지막에 스크립트를 각 전시별 학예사에게 검수받은 후 동일한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는 식이었다. 이들이 불만이 안 생기겠나.

아직 15명 남짓 되는 도슨트 선생님들을 데리고 현대미술에 대한 이런 저런 강의를 듣고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주 모이고 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수준과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스크립트를 짜고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다보니 시간과 장소가 많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도슨트실이 필요해 관장에게 요구했더니, 잠깐 쓰는 거 가지고 공간을 내주기 아깝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도슨트가 귀찮고, 내년엔 가능하면 전문 전시해설사 용역을 쓰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서울시립은 보니깐 도슨트대회인지 뭔지 하는 걸 한다. 최소 도슨트를 우리 가족으로 본다는 거다. 임근준은 그걸 봤는지 최근 블로그에 비슷한 글을 올렸다. 맞는 말이다. 도슨트는 적극적인 시민과 관객 참여의 공간이다. 그런데 여기는 부외자다. 쓸데없이 나서서 상전노릇하는 좆문가 민원 집단이다. 뭘 열심히 하는 걸 알아주진 못해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뭐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다보니 꺾이는 기분이 든다. 뭘 열심히 하려고 들면 자꾸 불려가서 왜그러는지 말해보라고 한다. 이유를 말해주는 것도 지친다. 그렇다고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 이들은 내가 말하는 가운데 나의 빈틈만 찾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미술관은 전시만 하는 곳이 아니다. 공무원들의 직장만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미술관은 공무원의 직장이고 관객은 무지한 사람들이고 도슨트는 필요에 따라 이용했다 버렸다 하는 사람들이고 학예사는 좆도 모르는 병신들 주제에 뭐라도 되는듯 지식인 행세나 하고 전시는 대안공간보다 못한 것을 몇억씩 들여서 만들었다 부셨다. 그런 분위기 속에 있다보니 무언가 시간이 뒤로 가는 기분을 자꾸 받게 된다. 자기보존을 위한 격렬하지만 정적인, 기어 중립으로 놓고 풀악셀 밟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갑갑하다. 그래도 해야지 뭐 별 수 있나.

2021년 8월 6일 금요일

신지승

이번 인제 여행에서 신지승을 만났다. 몇 가지 메모.

1. 마을영화 제작법

영화를 만들면서 마을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이건 마을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해서 인심을 잃어버리면 마을영화 자체를 찍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최소한의 개입은 필요충분조건일 수밖에 없다. 마을에 이벤트가 있다면 감독은 쏜살같이 달려가 양해를 구하고 약간의 구성을 가미해 시퀀스를 만든다.

2. 작은 마음

신지승은 참 작은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은 것 큰 것 가리지 않고 분노도 잘 하고 상처도 잘 받는다. 너무 깨알 같은데 그게 영화에서잘 나타난다. 되게 그 깨알 같음이 의미없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홍상수식 ‘아무말 대잔치’가 아니라, 뭐랄까 아이고 모르겠다. 암튼 웃기지도 않고 어떤 의도도 있어 보이지 않는 그냥 무심한 일상이 거기에 있다. 극강의 클리셰? 대충 딱딱한 똥은 그래도 괜찮은데 휴지에 묻어 있는 똥이나 어디 발라져 짓이겨져 있는 똥은 너무 더러워서 못참는..? 아이고 모르겠다. 표현이 안 된다. 그것보단 미술적 표현이 낫겠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란 개념에 만족하지 않고 레디메이드 에이드란 개념도 만들고 여러가지 만들었다. 그 후예 중 조지 브레히트는 lamp event란 작업을 위해 레디메이드-액션이란 걸 했다. 레디메이드-액션은 조지 마키우나스가 한 말이다. 아무튼 일상에서 늘상 하는 행동을 레디메이드로 가져와서 그냥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허무한 작업이다. 이렇게 내가 레퍼런스로 뭔갈 가져와서 신지승의 이미지가 있어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진짜 아무 의미없어 보인다. 일상을 너무 무심하게 대충 찍었달까. 그냥 그대로 가져왔달까. 이 지점에서 좀 토할 것 같달까, 왜? 그게 너무나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클리셰 중의 클리셰여서?  아무튼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신지승이 여기서 감독의 시대는 갔다라고 했다. (때때로 모순적임) 신지승의 로망은 아마도 마을의 삶이 그대로 영화가 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하는 건 영화적 삶이다. 그게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 아무튼 신지승은 왜 그렇게 클리셰를 가지고 오느냐 그건 작은 마음과 통한다고 본다. 

3. 극영화

신지승의 자부심은 마을사람들과 극영화를 찍는다는 거다. 그러니까 진지한 영화라는 거다. 자신은 감독이다. 영화감독. 이런 식의 작업에서 이런 프레이밍은 보기 드문 것이다. 보통 감독은 낮은 자세로 감독이란 위치성에 대해 의식하며, 마을사람들을 우쭈쭈 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해나간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그렇다. 소셜프랙티스로 가면 너무 다양해서 이건 전통적 장르적 규정이 와해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신지승은 완고하게 극영화를 추구하는 영화감독이다. 등장인물은 마을사람이지만 연기를 한다. 그게 자신인지 타인인지 모르는 경계에서. 감독은 내 위대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이들을 진지한 배우로 본다. 영화인들이 보기에 신지승은 진지한 영화 감독이 아니다. 당연히 등장 인물도 배우로 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어떤 종류의 포인트가 있어 보인다. +  발터 벤야민, <모스크바 일기>, 러시아 연극에 관한 대목 참조할 것.

4. 마을의 영화관

대부도 주민의 꿈은 현대미술가가 뭐 패총으로 뭘 하고 비닐봉다리를 하늘에 날려보고 그런 게 아니라 내 자식이 안산에 가서 늦게까지 CGV에서 영화보고 버스 끊겨서 돌아오지 못해 차로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대부도에도 영화관 하나 만들어지는 거다. 신지승이 마을에 영화관을 튼다는 건 약간 이런 맥락이 있다.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신지승은 조그만 마을에서 자신이 하는 방식으로 국제영화제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좆까라 비싼 상어영화 우리는 더 좋은 영화를 싸게 많이 볼 수 있다는 거다. 지금 인제에서 신지승의 삶을 보면 이건 자신의 처지가 반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지승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과, 대부도 주민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좀 겹치는 지점이 있다.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생각 나면 다시 쓸 것.

요즘의 연애

민하에게 가끔씩 친구 이야길 듣는다. 민하는 또래 사이에서는 일직 결혼한 편이라 친구 연애/결혼 상담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러면 그걸 나한테 종종 말해준다.

듣고 흥미로웠던 건 친구가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그 남자친구가 페미니즘 지지하냐 그런 질문을 했다는 거다. 나는 바로 일베네 했지만, 사실 그런 질문 외에는 너무 괜찮은 사람이란다. 맞다. 일베도 일상생활에서 다 괜찮은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 나름의 정상성을 추구한다.

보통 이데올로기가 뭐냐라는 질문은 막장까지 치닫을 때 만나게 된다. 근데 요즘은 그게 디폴트란다. 여자는 남자를 일베인지 검증하고 남자는 여자를 메갈인지 검증한다. 그런데 모두에게 그런 부분이 조금씩 있으므로,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결국 해야 하는 건 말의 correction이다. 왜? political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그걸 해소하기 위한 거다. 원래 정치적 교정이란 적극적 조치였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치적인 것을 막는 조정 장치다. 

어찌보면 과거엔 하지 않고 살았던 질문. 그렇기 때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었던 질문 하지만 문제는 늘상 있었던,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았거나 볼 필요가 없었던 거라면, 지금은 correction을 통해 있는 걸 알지만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좀 더 괴로운 장치적 상황이 되었다. 

2021년 7월 29일 목요일

킹덤: 아신전 (2021)

속빈강정. 설명되어야 할 부분이 죄다 느낌적 느낌으로 넘어감. 특히 아신이 성장하는 부분이.. 돼지 우리에서 고생을 하면서 사는 것과 무력이 세지는 건 너무 다른 이야기인데. 고생을 성장으로 등치시키는 매우 한국스러운 전개. 아픈만큼 성장한다..?

2021년 7월 2일 금요일

미술계 젊은 작가와 대화해 보면 내가 봐왔던 미술계와 판이하게 다른 미술계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게 미술계를 몰라서 그렇다라고 하기엔 너무 열심히 돌아다니고 본다. 여기에는 뭔가 편견이 없달까? 내가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어떤 분할선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란 그런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급해 현재적으로 재규정한다. 그런데 이들은 역사가 없다. 그 대신 분할된 시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별로다라고 생각하는 전시 공간을 그들은 방문하고 흥미롭게 본다. 

2021년 6월 24일 목요일

신지승 페북에서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

몇일 동안 무기력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생전 처음 본  사람이 찾아왔다 

소주를 마시면서  내 영화 한편을 안주로 삼았다 

영화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 마을영화란게  이런 드라마가 있는  영화인지 몰랐어요 

 영화의 중간 정도에서 

- 이건 키에로스타미를 뛰어 넘는다 "라는  혼자소리를 듣고  

키에르스타미를 아는 사람이네  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얼굴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사람 좋은 호의와 예의치례로 여겼다 

-음악 감독이 있어야 하겠다 

그 소리에  빈틈을 잘 보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제 다시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다 이루었네요 

 -이 작품은  음악이나 편집 이런 건 전혀 문제가 안되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과연 이 사람의 정체는 뭔가 ?

사실 그 사람이 어느정도 영화를 알고 있는가 궁금 했다 

그는 화가이면서 작가였고 대학 시절  학교앞 작은시네마뗴끄에서 안 본  영화가 없는 영화광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내 속에 감동이 몰려 왔다  

-이건 그 모든 걸 뛰어넘는다   

그의 영화에 대한 찬사는 이제 묵직하고 냉정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작가나 감독의 시선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

나는 시나리오를 만들지 않고 끊임없이 즉흥의 구성을 해 나간다 

그리고 이야기의돌탑을 쌓는다 .이 영화는 나의 창작 방식을 올곧이 반영한 

즉흥과 우연의 영화였다 


-평범한 이들은 감당 하지 못하고 봐도 무엇을 봤는지 모를 것이다 

사실 만든 나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등에 엎혀가는 노인의 얼굴을 보고 뭔가를 끄집어낸다 

-이 영화는 랑시에르에게나  부산의 안00에게  보내 평을 맡겨야 하겠다 . 아마 세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두서없음도 엿보인다 


사실 며칠동안 무력함 속에서 지냈다 

감독전을 준비하기로 했지만 금세 포기했다 


누가 올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급히 다른 감독전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예기치 않은 손님을 만난 것이다 

11년전에 만든 이작품을 보고 남긴 그의 단호하고 분명한 작품의 평가는 지난 시절 이 작품에 남긴 다른 이들의 글을 아침에 찾아보았다


생활연기를 구현! (편지의 이정국 감독)

삶의 비의성을 드러낸 작품 ,해석 이전의 세계를 다룬 영화 (이산하 시인)

예술의 정수 ,삶의 교향악 ,발견과 기다림의 미학,신화적 이면서도 생활적인 영화 (국민대 김윤진 교수,댄스서울프로젝트 총감독) 

한국적인 감성을 가장 잘드러낸 내가 본 유일한 한국영화답다 ( 파비안 ,독일 영화평론가 ) 


지금 이 시기 신지승은 가장 중요하다 신지승은 그는 새로운 발견이다. 한국영화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중요한 미덕을 신지승은 제시한다. 

(정재형 중대영화과교수 ) 

애초부터 기록미디어로서 탄생한 카메라를 삶과 가장 자연스럽게 밀착시키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김지하 오프앤프리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마을영화는 에어컨-선풍기-부채- 그늘이라는 생태적 귀환을 영화적 방향으로 설정하고있다 

(경인여대 김태경 교수 )

기존 영화와는 달리 메세지를 의도적으로 주지 않는다는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김찬연전문번역작가)

백남준이 했던 이동극장의 동네음악을 가능하게 한 예술혼이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하는 마을영화제와 공명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백용성 )

신지승감독전을 준비해 나갈 불씨 하나를 안긴 밤이었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  궁금증이 더 해갔다 .

나에게  이 영화의 또 다른 시선 하나가 보태어졌다  

알고보니 작년  오늘 온라인으로 개봉?한 작품이었다

내 영화를 아무나에게  보여줄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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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7일 목요일

오늘의 일기

분수에 안 맞는 차를 샀다. 고르고 고르다가 어째 어째 샀는데 민하도 마음에 들어하고 나도 맘에 든다. 아직 운전이 미숙하지만 그럭저럭 대충 피하면서 하긴 한다. 나머진 하늘에 맡겨야지 뭐 별 수 있나.

2021년 5월 21일 금요일

수족관의 삶

김기대, 《AQUA UNIVERSE》,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 2021.4.3.(토) ~ 5.22(토)

주택을 개조해 만든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의 조그만 방 여럿에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핸드메이드 수족관 몇 세트가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횟집의 영업용 수족관부터 분재나 가구와 결합된 커스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오래된 느낌을 자아내는데, 아마도 사용된 재료를 모두 주워 온 탓일 테다. 또 이 수족관에는 여러 치어가 실제 배양되고 있어, 마치 어린 시절 익숙한 수족관의 기억, 그러니까 조그만 생명을 길러보고자 시도하고, 방치하고, 실수하고, 실패했던 그런 기억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생명이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조그맣고 취약한 것이다.

여러 곳에 붙어 있는 메모를 읽으면서 진행하면, 수족관이 자전적 메타포라는 사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반영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자아처럼 보이는데, 그 순간 수족관이란 장소적 메타포에는 의미가 여럿 중첩된다. 준비하는 장소로서 스튜디오, 그리고 전시하는 장소로서 갤러리.

그러니까 예술의 장소적 기억이라고 할까? 그렇게 아름답진 않다. 특히 작가의 작업실 침실로 제시된 3층 통로 옆 조그마한 방이 그런데, 배치된 야전침대와 수술용 트레이와 도구는 전쟁 중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군인이 대강의 조치를 취하고 어서 빨리 쉬어야만 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런데 중요하게도 이 방에는 아무도 없다. 마치 키우던 금붕어가 죽고 나서 한동안 방치된 수족관처럼, 볼 수 있는 것은 온통 긴급성이 지나간 부재의 흔적뿐이다.

한편 문고리 대신 붙어 있는 마네킹 손을 잡고 밀고 들어가야 하는 다른 방에서는 빔프로젝터가 한 벽면에 쏘아져 있고, 벽에는 여러 오브제가 둥둥 떠다니듯이 붙어 있다. 여기서 VIP에게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을 작가의 모습을 떠오르며, 그래서 그런지, 볼 사람과 보여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은 채로 홀로 틀어진 영상과 장식된 오브제는 실로 기괴하게 느껴진다. 어떤 종류의 긴급성과 어긋남, 실패의 감각, 초현실주의자가 보면 낭만주의적 폐허라고 불렀을 감성 같은 것이 이 전시 곳곳에 서려 있다. 무언가 몹시 붕괴하였고, 하고 있거나, 할 것인데, 그건 작가 자신일 수도, 미술계일 수도 있다.

옥상 끝 방에 들어서면 좀 더 구체적인 삶이 보인다. 이 방에는 제주도 출신의 여러 미술 관련 간행물이 일렬로 진열이 되고, 탁자와 의자가 누군가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말하자면 응접실로, 작가 자신을 다른 이에 홍보하고자 하는 공간이라고 해야 할 텐데, 막상 느껴지는 것은 적막과 고독, 손이 한동안 닿지 않았던, 부식되거나 풍화되거나 퇴적된 감각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기어이 사라지고 말았을까?

전시는 소위 말하는 기획된 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작가는 작업과 전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여한다. 소위 말하는 진정성을 이입하면서 작가와 작업 사이에 끈끈한 연결을 만들어 내며, 어떤 경우에 그것은 기획된 것이 경계 짓는 분할선을 가로질러 보편적 공감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경우 그런 것처럼 보이며,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자전적 회고를 넘어, 어떠한 종류의 작가적 삶의 일반 모델을 고찰할 수 있게 해준다. 작가가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 작가의 커리어를 생각해본다. 분명히 지배적인 흐름이 분명히 있고, 이를 둘러싼 권력도 작동한다. 그것은 불명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확실한 어떤 분할 선을 긋는다. 알만한 주요 대학을 졸업해 주요 공간에서 전시하고 주요 큐레이터와 비평가와 얼마나 네트워크를 형성했느냐 등에 따라서 기회와 커리어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런 풍경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지방 소도시의 작가는 어떤 기분일까? 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면서? 누구와 어떤 미래의,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대다수 작가에게 아무도 오지 않는 스튜디오와 전시장은 치어가 담긴 방치된 수족관과 비슷하다. 그들 또한 언젠가 스튜디오와 전시장을 비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떤 종류의 윤리일지도 모른다. 이들을 더욱 잘 알 필요가 있다.

김기대 인터뷰: https://fb.watch/5SuR4vrftn/


김기대 인터뷰: https://fb.watch/5SuR4vrftn/

2021년 4월 26일 월요일

지금 나의 꿈은 빨리 중고차라도 하나 사서 와이프랑 주말에 오붓하게 놀러다니는 거다. 그게 이뤄질까..?

단상

4월이 거의 다 지나고 있다. 공허하다. 

공부도 일도 하고 있고 그럭저럭 살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 스스로는 전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돈 벌고 대충 수업 떼우며 최소한의 삶만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이상한 일이다.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는 느낌을 가져본지 오래다. 그런 일을 하기도 싫다. 물론 무언가를 한다면 열심히는 할 거고 성과도 낼 것이다. 그런데 그뿐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많이 지겹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처럼 호기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나이도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미술계에선 나이가 많아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점점 그런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호의적인 동감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어린애들 장난처럼 보인다. 조로한 건지. 큐레이터 실격이 아닌가. 

촉각

미술에서 촉각이란 말이 시각의 안티테제처럼 쓰일 때가 있었다. 촉각은 시각적 환영과는 달리 훨씬 더 실존적 확실성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촉각 또한 시뮬레이션될 수 있으며 실제로 촉각하지 않더라도 뇌의 자극만으로 여러가지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됐다. 이것이 공각기동대 같은 작품이 선지적으로 다룬, 메타버스 미래의 감각적 조건을 이루는 것이다.

2021년 4월 20일 화요일

오세훈 사과 발표에 관해

오세훈이 전임 시장의 성추행 범죄에 관해 사과에 나섰다. SNS 게시물을  성인지감수성이 높다는 젊은 세대가 공유하고 나섰다.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걸 사람들이 몰라서 쓰레기를 만드는 게 아니다. 이 쓰레기가 장기적인 생존에 불이익을 줄 것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무한한 쓰레기를 만든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같은 의미로 성폭력이라는 게 나쁜지 몰라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게 아니고, 또 오세훈 같은 사과의 말을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접대를 받았을 거라고 쉬이 추측할 수 있는 오세훈이 그런 속시원한 말을 한다는 것, 마치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그런 종류의 주장이 맞는 말 같은가? 물론 맞는 말이다. 박원순보다 오세훈이 더 문제가 많을 거라는 의심만 빼고.

니가 보는 게 바로 니가 보는 것이다라는 미니멀리즘 현상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미니멀리즘은 경험을 미술에 중심에 놓았을진 몰라도 경험 이외의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보는 것만 본다는 소리다. 하지만 니가 못 본 것은 니가 못본 거다라는 생각도 해봤으면 좋겠다. 

2021년 4월 13일 화요일

뉴딜-공공미술 사업 비판

의식의 흐름에 따라서...

요즘 뉴딜과 관련해서 다시 공공미술에 대한 비판이 입에 오르내린다. 호방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과거의 모습을 본다. 나는...글쎄. 이제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뉴딜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구실을 공공의 이익에서 찾는 게 핵심이다. 이건 철저하게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대부분의 미술인과 상극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자족적인 미술은 뉴딜 사업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미술을 퉁쳐서 공공미술이라고 치자. 어떤 공공미술이 공공의 이익이 되는지는 굉장히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다. 미술자체가 그렇기도 하다. 아무튼 그러므로 공공미술 사업에서 자신있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돈의 효과가 가는지다. 많은 공공미술 사업은 그런 관점에서 설계된다.

여기서 예술인의 불만. 공공미술의 퀄리티의 문제다. 뉴딜의 핵심이 양적 완화라면 공공미술의 평가에 와서는 그것과 배치되는 문제가 나타난다. 공공미술에는 질적 통제가 필요하다, 라는.

이런 평가를 누가하느냐. 크게 전문가와 일반인이 있다. 전문가들은 미술계 이너서클. 작품같지도 않은 작품을 돈을 써서 지원한다. 프로젝트가 구리다 그런 거다. 하지만 여기서 일반인의 불만은 제대로 인용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도 불만은 있겠지만 전혀 다른 방향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질적인 문제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첫번째로 이것이 우리에게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할 것이다. 이런 반응이 전문가의 비판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공공미술에서 '공공'이 잘못됐다는. 하지만 사실 말을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두 번째는, 공공'미술'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전문가는 답을 하지 않는다. 왜?

미술이 공공적이지 않느냐, 아니면 공공이 미술을 필요하느냐. 이 두 가지중 미술계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전자이지만, 후자는 전자의 문제의식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미술계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집단인지 후자의 생략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본다. 

2021년 3월 27일 토요일

비디오클립과 정보

요즘은 많은 정보가 영상으로 만들어진다. 잠깐 생각이 든 것이지만 그렇다면 이 정보들을 어떻게 검색할까? 최소한 텍스트를 쳐 넣어 하는 기존의 주류 검색 방법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게 제목과 해시태그 정도다. 그렇다면 가성비 떨어지게도 내가 필요한 정보가 있는지 없는지는 결국 영상을 봐야만 판단할 수 있다. 만약 정보를 얻기 위해 영상을 보는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정보 기근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인간의 뇌가컴퓨터였다면 이런 문제는 없겠지. 그런 면에서 인간은 점점 반디지털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21년 3월 3일 수요일

서양사 연표(스크랩)

 역사 연표 | 서양사 (sootax.co.kr)

서양사 연표

고대 그리스

    B.C 1100-800 그리스역사의 암흑 시대

    B.C 800 그리스 도시 국가의 시작

    B.C 800 뤼코르고스

    B.C 750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B.C 650-500 그리스 참주 시대

    B.C 640-560 솔론

    B.C 594 아테네에서 솔론의 개혁

    B.C 582-507 피타고라스

    B.C 560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

    B.C 524-459 테미스토클레스

    B.C 496-406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오이디푸스>>

    B.C 499-450 페르시아 전쟁

        B.C 499-493 이오니아 반란

        B.C 490 마라톤 전투

        B.C 480 테르모퓔라이 전투

        B.C 480 살라미스 해전

    B.C 480-420 헤로도토스 <<역사>>

    B.C 479-404 델로스 동맹

    B.C 471-400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B.C 470-399 소크라테스

    B.C 461-429 아테네 민주정의 완성

    B.C 460-377 히포크라테스

    B.C 460-362 데모크리토스

    B.C 427-347 플라톤 <<국가>>

    B.C 431-404 펠로폰네소스 전쟁

    B.C 384-322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B.C 336-323 마케도니아의 그리스 정복

    B.C 336-323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로마의 역사

    B.C 750-265 초기 로마

        B.C 750-500 초기 로마

        B.C 509-287 로마 공화정의 대두

        B.C 509-264 로마의 이탈리아 정복


    B.C 264-134 공화정의 전성기

        B.C 264-241 로마 제국주의의 시작과 제1차 포에니 전쟁

        B.C 218-201 제2차 포에니 전쟁

        B.C 200-133 헬레니즘 세계 동방 / 서방에서의 전쟁과 제국주의

        B.C 149-146 제3차 포에니 전쟁


    B.C 133-30 공화정 후기

        B.C 133-121 그라쿠스 형제와 농지개혁을 둘러싼 투쟁

        B.C 106-43 키케로

        B.C 88-78 마리우스와 술라 : 내전과 반동

        B.C 60-44 카이사르의 등장, 승리와 몰락

        B.C 58 <<갈리아전기 / 내전기>> / 율리우스 카이사르 B.C 100-44


    B.C 29- A.D 181 초기 로마 제국

        B.C 29- A.D 14 아우구스투스의 원수정 

        B.C 8 <<아이네이아스>> / B.C 70-19 베르길리우스

        A,D 35-67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

        A.D 41-68 클라우디우스, 네로, 그리고 율우스-클라우디우스가의 종말

        A.D 69-96 원수정의 위기와 플라비우스 가 황제들 치하에서의 회복

        A.D 96-180 오현제

        A.D 121-18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80-565 로마 제국의 변형과 해체 

        180-235 세베루스가 황제 치하에서의 위기와 일시적 회복 

        235-285 제3세기의 무정부 상태 

        284-305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전제정 치하에 이루어진 제국의 재편

        305-337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리스도교 

        337-395 콘스탄티누스의 왕조부터 테오도시우스 대제까지

        518-532 유스티누스와 유스티니아누스의 독재정 확립 

        395 로마제국 동·서 분열

        401 <<고백록>>  / 성 아우구스티누스 354-430

        410 <<신국론>> / 성 아우구스티누스 354-430

        410 서고트족의 로마 약탈

        476 서로마 제국 멸망


중세의 역사

    400-1000 중세 초기 / 게르만족의 정착(5∼7세기) / 게르만적 재편의 시도(8∼10세기)

        486 프랑크왕국 건국

        726-843 비잔틴 제국의 성상 파괴 운동

        768-814 샤를마뉴 대체

        800-850 카롤링 르네상스

        870 메르센조약:  중세의 독일 (동프랑크 왕국) 과 프랑스 (서프랑크 왕국)  분리

        880-911 바이킹의 유럽 침입 절정기

        962 오토 대제, 황제로 즉위(신성로마제국 성립)


    1000-1300 중세 중기(전성기) / 기독교 세계의 형성(11∼13세기) 

        1054 동서 교회의 분열

        1095-1099 제 1차 십자군

        1077 카노사의 굴욕: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 교황 그레고리오 7세

        1140-1260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라틴어로 번역됨

        1204 제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1215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1266 <<신학대전>> /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 

        1285-1349 윌리엄 오컴


    1300-1500 중세 후기 / 기독교 세계의 위기(14∼15세기)

        1308 <<신곡>> / 단테 1265-1321 

        1309-1377 아비뇽 유수:  교황 클레멘스 5세

        1338-1453 백년전쟁

        1347-1350 흑사병

        1414-1417 콘스탄츠 공의회

        1440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금속 활판 인쇄술 발명

        1453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 멸망

        1455-1485 잉글랜드 장미전쟁 발발

        1485-1603 잉글랜드의 강력한 튜더 왕조


근대의 역사

    1350-1550 르네상스/종교 개혁, 지리상의 발견

        1473-1543 코페르니쿠스

        1483-1546 마르틴 루터: 95개조 반박문

        1487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인도 희망봉

        1492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항해

        1497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해

        1509-1564 장 칼뱅

        1513 <<군주론>> / 마키아벨리 1469-1527

        1516 <<유토피아>> / 토마스모어 1478-1535

        1545-1563 트리엔트 공의회


    1560-1660 근대초 유럽의 위기

        1580 <<수상록>> / 몽테뉴 1533-1592

        1564-1642 갈릴레이

        1571 레판토 해전

        1598 낭트칙령, 프랑스 앙리 4세

        1599 <<햄릿>> / 셰익스피어 1564-1616 영국

        1604 <<오셀로>>  / 셰익스피어 1564-1616 영국

        1605 <<맥베스>>  / 셰익스피어 1564-1616 영국

        1605 <<리어왕>>  / 셰익스피어 1564-1616 영국

        1615 <<돈 키호테>> / 세르반테스 1547-1616 에스파냐

        1628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 / 윌리엄 하비 1578-1657

        1651 <<리바이어던>> / 토머스 홉스 1588-1679

        1637 <<방법서설>> / 데카르트 1596-1650

        1618-1648 30년 전쟁

        1648 베스트팔렌 조약


    1660-1789 구체제, 절대주의 시대,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

        1670 <<팡세>> / 파스칼 1623-1662

        1685-1750 바흐

        1685-1759 헨델

        1687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 뉴턴 1642-1727

        1688 잉글랜드의 명예 혁명

        1689 <<통치론>> / 존 로크 1632-1704 잉글랜드

        1701-1714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

        1739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 데이비드 흄 1711-1776 스코틀랜드

        1744 <<새로운 학문>> 비코 1668-1744 이탈리아

        1748 <<법의 정신>> / 몽테스키외 1689-1755 프랑스

        1754 <<인간 불평등 기원론>> / 루소 1712-1778 스위스

        1756-1763 7년 전쟁

        1756-1791 모차르트

        1759 <<캉디드>> / 볼테르 1694-1778 프랑스


    1770-1850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1762 <<사회계약론>> / 루소 1712-1778 스위스

        1763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

        1770-1827 베토벤

        177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749-1832 독일

        1776 <<국부론>> / 애덤 스미스 1723-1790 스코틀랜드 

        1776-1783 미국의 독립 전쟁

        1790-1850 낭만주의 운동

        1781 <<순수이성비판>> / 칸트 1724-1804 독일

        1789 프랑스 혁명

        1791 <<파놉티콘>> / 벤담 1748-1832 영국

        1793-1794 공포정치

        1793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 콩도르세 1743-1794 프랑스

        1804 나폴레옹 프랑스 황제 즉위

        1807 정신현상학 / 헤겔 1770-1831 독일

        1808 독일 국민에게 고함 / 피히테 1762-1814

        1808 <<파우스트>> / 괴테 1749-1832 독일

        1814-1815 빈 회의

        1829 그리스의 독립

        1832 <<전쟁론>> / 클라우제비츠 1780-1831 독일

        1838-1848 영국 차티스트 운동

        1844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 엥겔스 1820-1895 독일

        1847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1818-1848 영국

        1848 <<공산당 선언>> / 마르크스 1818-1883 독일

        1856 <<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1821-1880 프랑스

        1858-1866 이탈리아 통일

        1859 <<종의 기원>> / 찰스 다윈 1809-1882 영국

        1859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1806-1873 영국

        1861-1865 미국의 남북전쟁

        1862 <<레 미제라블>> / 빅토르 위고 1802-1885 프랑스

        1865 <<전쟁과 평화>> / 톨스토이 1828-1910 러시아

        1867 <<자본론>> / 마르크스 1818-1883 독일

        1869 미국의 대륙 횡단 철도 건설

        1849 <죽음에 이르는 병>> / 키에르케고르 1813-1855 덴마크


    1870-1914 국제적 산업화 및 경쟁의 발전

        1871 파리코뮌

        1872 <<권리를 위한 투쟁>> 루돌프 폰 예링 1818-1892 독일

        1875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1828-1910

        1878 베를린 회담

        1880 카라마조프의 형제 / 도스토옙스키 1821-1881 러시아

        1882 드레퓌스 사건

        1883-1945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1888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  엥겔스 1820-1895 독일

        1889-1945 독일의 수상 히틀러

        189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1854-1900 아일랜드

        1898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 1840-1902 프랑스

        1900 <<꿈의 해석>> / 프로이트 1856-1939

        1902 <<무엇을 할 것인가>> / 레닌 1870-1924

        1904-1905 러일전쟁

        1905 러시아 혁명

        1905 <<상대성 이론>> / 아인슈타인 1879-1955 독일

        1912-1913 발칸 전쟁

        191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프랑스


    1914-1918 제1차 세계대전 

        1917 러시아 혁명


    1919-1938 전간기 

        1919 독일 사회주의 혁명

        1919 베르사유 조약

        1919 <<직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1864-1920 독일

        1926 <<채털리 부인의 연인>> D. H. 로렌스  1885-1930 영국

        1929-1940 대공항

        1930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헤르만 헤세 1877-1962 독일

        1929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오스트리아

        1929 <<옥중수고>> / 안토니오 그람시 1891-1937 이탈리아

        1931 <<몽유병자들>> 헤르만 브로흐 1886-1951 오스트리아

        1932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1894-1963 영국

        1933-1940 미국의 뉴딜 정책

        1935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1872-1970

        1936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발터 벤야민 1892-1940 독일


    1939-1945 제2차 세계대전 

        1943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1877-1962 독일

        1944 <<거대한 전환>> / 칼 폴라니 1886-1964 오스트리아 

        1945 <<열린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1902-1994 오스트리아

        1945 <<동물농장>> 조지 오웰 1903-1950 영국


    1945

        1947-1948 동유럽의 공산주의 정권 수립

        1947 <<도구적 이성 비판>> / 호르크하이머 1895-1973 독일

        1948 이스라엘의 성립

        1948 제1차 중동전쟁

        1949 <<1984>> 조지 오웰 1903-1950 영국

        1950-1953 한국 전쟁

        1953 스탈린의 죽음

        1956 제2차 중동전쟁

        1957 소련의 인공 위성 발사

        1961 베를린 장벽

        1963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솔제니친 1918-2008 러시아

        1964-1975 베트남 전쟁

        1967 제3차 중동전쟁

        1967 <<백년 동안의 고독>> 마르케스 1927-현재 콜롬비아

        1968 루터 킹 목사 암살

        1969 미국의 유인 우주선 달 착륙

        1973 제4차 중동전쟁

        1979 이란 혁명

        198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1929-현재 체코슬로바키아

        1990 <<코스모폴리스>> 스티븐 툴민 1922-2009 영국




출처:

자크 르고프: 서양 중세 문명

윌리엄 맥닐: 세계의 역사 1

윌리엄 맥닐: 세계의 역사 2

 E.M. 번즈: 서양 문명의 역사 - 상

 E.M. 번즈: 서양 문명의 역사 -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