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미술과 사회

1980년대 민주화 진영이 대통령 직선제를 성사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동력을 상실하고 난 후, 몇몇의 유학생을 통해 공공미술은 민중미술의 다음 단계로서 상정되었다. 공공미술은 2000년대 참여정부를 맞아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급성장했는데, 이제 시민의 미술로서, 엘리트주의적 순수미술과도, 또 과격한 반정부 지향성을 가진 민중미술과도 거리를 두는 것으로 특징화 된다. 이는 참여정부의 포퓰리즘적 지향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공공미술은 말하자면 관주도-대시민-복지서비스와 대동소이하게 이해되거나, 최소한 그런 효과를 냈다. 그리고선 수많은 문제가 나타났고, 또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많은 연구자와 비평가는 공공미술의 발전 3단계—공공장소 안의 미술(art in public space), 공공장소로서의 미술(art as public space), 공공의 이익을 위한 미술(art for public interest)—를 논했는데, 이는 사실 미국 NEA 예술 기금 지원 제도의 변천사를 미술의 발전과 겹쳐놓고 오인했을 뿐이다—제도와 작품을 혼동하는 것이 이 분야의 특징이다.

아무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미술은 90년대 행동주의 미술을 주름잡았던 뉴장르공공미술의 수용과 더불어 종종 커뮤니티 아트와 동일시되어 가장 진일보한 공공미술로 여겨졌다. 어느 순간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최, 주관하는 공공미술—여기에 더해 예술가를 동참시키는 공공사업—공모에는 전문 커뮤니티 아티스트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여기서 커뮤니티 아티스트는 기관과 시민 사이에서 상상력을 기입하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공공의 이익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대부분 공공장소 안에서 ‘조형물’이 남긴 물리적 폐허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심리적 폐허를 남겼고, 종종 누군가는 실패를 말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그런 실패는, 1980년대 민중미술, 그 중에서도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의 시민미술학교에서 이미 겪은 바 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아무리 평등한 관계 안에서 함께 예술로 놀아보자고 주문해 봤자, 그리고 위계질서를 만드는 일을 동인 내에서 금지하는 행동강령을 만들어 봤자, ‘일반인’의 입장에선 심드렁하거나 배우기도 빠듯하다. 그렇다면 예술의 ‘이유’는 시작부터 미끄러진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일반인이어야 하지만, 충분히 예술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일반인이어야 한다는 모순 때문에.

이따금씩 자주, 이런 관계 속에서 ‘결과 보고’로 갈무리되는 전시는 모두 예술가 자신의 자의적 아이디얼로 수렴되곤 했다. 커뮤니티 아트, 사회와 관계 맺는 예술, 공동 프로젝트의 결과는 대개 재미없는 사진 다큐멘테이션이나 수집품이 나열되거나, 프로젝트의 부산물이 그대로, 혹은 약간의 조작을 거쳐 전시되거나, 혹은 작가의 개인전이 되거나이며, 여기서 ‘전시’라는 포메팅(formating) 그 자체가 가지는 문제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전시는 내부로부터 무엇이 표면으로 나왔든, 표면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는 관람 형식이다. 그리고 그 표면은 곧 약자성의 포르노적 재현이라는 문제와 부딪친다. 하지만 대개 타자의 재현은 별다른 숙고 없이 온정적인 태도로, 다수 무신경하게 제시되곤 했는데, 이유는 아마 작가의 위치가 이미 타자의 편에 속해 있거나 최소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류학의 기초 조사 방법인 라포 따위가 거론된다.) 하지만 착각으로, 작품이 예술계에 프레젠테이션 되고, 전시라는 제도적 표면으로부터 들어가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특권적 장소에서 작가는 약자가 아니라 저자이며, 무언가를 결정하고 보여줄 권한을 가진다. 그러므로 작가가 스스로의 위치를 타자의 편으로 착각함으로써 등장하는 문제는 약자성의 전용이다. 약자성은 작가의 표현을 위한 재료로 격하된다. 그 효과는 미술계 내 적극적 우대 조치라는 우산이지만, 꼭 그만큼 약자성을 확증하고 강화시킨다.

이 고리타분한 문제는 민중미술부터 공공미술을 지나 사회적 실천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관계 맺으려는 작가의 프로젝트 언저리에 언제나 그림자를 드리우며, <1968-1995>나 <30년x365일x1만8백회> 같은 김리아의 몇몇 작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김리아는 과거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였던 사물을 미학적 오브제나 설치로 재가공했다. 이것은 아마도 어떤 경의를 담은 ‘헌사’겠지만, 그것은 쇠락해버린 어떤 기억-오브제에 대한 멜랑콜리한 헌사인 동시에, 그 멜랑콜리아에 사로잡힌 작가 자신에 대한 헌사일 때 그렇다. 가장 성공적인 경우, 이 멜랑콜리한 시선은 유행에 따라 빠르게 성쇠하는 근대성이라는 한갓 덧없음을 포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근대적 진보의 폭력에 짓눌린 약자성 역시 확증된다: 작가의 성찰성이 강화될수록 대상의 해방은 요원하다.

또 하나 중요하게도, 이미 지적했다시피, 이 성찰성의 문제는 작품과 전시라는 관례적 프로토콜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때 작품과 전시는 근대성의 균열을 포착했음에도, 그것을 데카당하게 찬미하는 가운데 심미주의 그 자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가장 진보적인 의제와 태도를 가진 작가의 예술이 가장 관례적이고 보수적으로 나올 수 있을까? 이는 많은 사회와 관계된 미술이 화이트큐브와 맞닥뜨렸을 때 똑같이 겪는 문제다. 현실과 발언이 회화라는 재현 매체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들이 그렇게 형상화하고자 한 민중 이미지가 사실은 그들 자신이 만든 이데올로기적 재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것보다 예술은 더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이나 예술가 그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말을 기억해봐도 좋을 듯 싶다. “예술가는 제도다.” (2021. 10. 19.)

홍티아트센터 작가비평으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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