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필자의 책을 읽었다.
강덕구의 <밀레니얼의 마음>
윤아랑의 <뭔가 뱃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
강덕구가 92년생, 윤아랑이 91년생이다. 둘다 90년대 초반생. 새로운 평론가가 안 나올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씩 튀어 나온다. 참 신기하다.
두 필자의 글을 읽으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해박하다. 자기 이야기를 조곤조곤 잘 쓴다. 이 느낌에는 한 가지 의구심도 있다. 어떻게 이런 지식을 다 습득했을까. 현란한 레퍼런스가 무리없이 자기 글 속에 녹아 있다. 언젠가 레퍼런스로 떡칠된 글을 기피하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그것이 '먹고 체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완전 업그레이드 됐다고 해야하나. 레퍼런스가 많다 적다를 떠나서 적절하다.
이 적절한 것에는 또 한 가지 미심쩍음이 있다. 레퍼런스는 굉장히 얕게 인용이 되는데, 딱 자기가 필요한 것만큼만 파고든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 책의 서문 정도, 아니면 출판사 서평 정도만 읽어도 다 알 수 있는 정도가 딱 인용이 된다는 것인데, 재밌게도 이 글에서 그정도면 충분하고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 자체가 레퍼런스가 많되, 그러한 얕은 깊이만을 요구하는 상태로 적절하게 조율되어 있는 상태라, 레퍼런스가 난무해도 오히려 난해하다거나 그런 느낌도 없고, 쉽게 잘 읽힌다.
음. 얕은 깊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설명이 제대로 안 되고 음..이거 이정도만 나열해놓으면 다 알아듣지? 하면서 중간 다 생략하고 바로 결론을 사용한다고 해야하나. 텍스트의 객체적 사용이라고 해야하나. 객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 없다. 객체의 용도만 안다면 프로그래밍 디자인에서 임포트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건 그 용도를 정확히 아는 것인데, 글만 봤을 땐 정말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CHAT GPT가 글을 쓰면 이런 느낌이려나? 모르겠다만. ㅎ
아, 인공지능이 흉내내지 못할 것 같은? 것은 뭐냐면, 두 필자 모두 자신의 기분을 글로 굉장히 잘 나타낸다는 것이다. 마치 인터넷 상에서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기 위한 통한의 짧은 댓글이랄까. 한자 세대보다 훨씬더 직관적으로 감각적으로 한글을 조합해서 그렇게 한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는 오히려 한글 사용의 달인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