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마치 물리 공식을 참조한 것처럼 보이는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란 알쏭달쏭한 전시 제목이었다.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은 모두 사물의 부피, 그러니까 공간적인 것을 지시하는 반면, 속도는 변화, 곧 시간적인 것을 의미한다. 제목을 조금, 물리학적인 느낌(?)으로 다시 쓰면 '사물의 운동'이 되며, '공간적인 것의 시간'으로 말 바꾸면 철학적인 느낌(?)이 되겠다. 그러니까 전시 제목은 어쩌면 ‘시-공간’이라는 순수학문의 본질적인 문제를 시적으로 나열한 셈이다. 왜?
먼저 작품을 살펴보자. 출품작 중 하나인 <흙탑>(2013)은 의자에 앉은 사람의 무릎 위에 즉흥적으로 만든 탑을 올려 놓고, 쓰러지지 않게 균형을 잡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 시리즈다. 엉성하게 만든 탑을 무릎 위에 올려 놨으니 쓰러지는 것은 당연지사. 흥미로운 점은 중력이라는 물리법칙과 신체 감각의 불항상성 사이에서 ‘어영부영’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려는 그 ‘조각적 상황’이다. (여기서 나는 조각적이라는 형용사적 용법을 썼는데, <흙탑>은 역사적 관습으로서의 ‘조각’이라기 보다 퍼포머와 조각이 갖는 관계, 조각의 가능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짧게 하나 더 살펴본다면 <운동>(2013)이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곧 무너질 것 같이 위태롭게 서로 기대어진 나무 책장과 각목은 중력과 인력 그리고 척력 사이의 긴장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드러나는 것은 이들이 관계 맺는 '찰나'적 방식이다. 전통적 조각이 가지는 초시간성을 염두에 둔다면, 인식론적 전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는 조각을 넘어 조각을 지배하는, 이른바 메타-조각적 현실 원칙을 은유하기 위해 고안된 말인 듯하다. 미술관 벽을 상징하는 듯 해보이는 작은 하얀 판을 가로로 눕힌 후 바퀴를 단 <직전과 직후>에서는 미술계(제도) 같은 사회 문화적 문맥과 관련이 있는 듯 하고, 실제 그것과 상관 없이 본 것을 그대로 조각으로 만들어버린 듯해 보이는 <멀리서 본 것>은 어떤 인식론적 경험성을 더욱 부각시켜 객관적 실재의 부재를 시각화 한 것으로 보인다. 공간예술이라는 조각의 제 전통을 초과하는 듯 해 보이는 이 조각들은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조각의 내적 진리에 대한 순진한 믿음보다, '조각은 언제 조각이 되는가'라는 시간적이고 경험적인 우회로를 택한다.
한편 정서영은 조각적 진리의 확신을 유보한 채, 모든 상황을 통해 의심하길 원한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떠올리게 하는, 조각에 대한 궁극적 질문의 한 뭉치다. 또 그런 의미에서 의자의 사전적 정의, 실제 의자 그리고 의자 사진을 병치해 분석철학적으로 예술 개념을 도해했던 조세프 코수스의 개념주의 작업과 어느 정도 맥이 상통해 있다. 하지만 이 조각이 동어반복적 예술 명제로 순환하는 것에서 끝나지는 않는 듯 하다. 속도, 즉 공간으로부터 시간으로 관심의 돛을 돌린 바, 반복해서 말하지만 경험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험의 조건으로 기능하는 '관객'이 조각에 실재성을 부여하며 그 틈을 벌린다. 특히 벽으로부터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어 나온 철제 펜스와 지시문이 적힌 나무 판넬의 연결로 구성된 작품, <무릎>(2013)이 그러한데, “벽과 가장 가까운 바닥에 자리를 잡고 멀리서 다가오는 그것이 둘로 나뉘는 것을 응시하라” 같은 알쏭달쏭한 지시문은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관객이 조각을 지각하고 반응하길 요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퐁티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작가의 조각적 회의는 조각 내부에 새겨진 진리의 탐구라기보다, 역설적으로 그것의 부재의 혐의를 도출해 낸다. 내부의 관념성에서 현실로 빠져나온 조각은 경험적 탐색의 장이 되며, 여기서 관객은 탐험가로서 '실재와의 접촉'이라는 조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내는 핵심적 위치에 지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관념에서 현실로, 내부에서 외부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작품에서 관객으로 향하는 서구 현대 조각의 지난 한 경향을 정서영의 조각을 통해 충실히 보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사실, 관객이 어떤 구체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지에 이 조각은 여전히 관심 없어 보인다. 불충분한 레퍼런스의 제시, 고강도의 암호 같은 제목, 그럼에도 불구한 지속적인 자기 참조의 제스쳐에서 분명 모더니스트의 한 면모가 강력하게 드러난다. 나는 앞서, 요소로서의 관객의 역할을 언급하며, 작가의 예술적 기획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했다. 굳이 '기능'이라는 다소 기계적인 뉘앙스의 단어를 고른 이유는, 어디까지나 계산된 기획에 따라 부여된, 관객 역할의 형식적 한계 때문이었다. 관객 경험성은 분명히 동어반복을 넘어서기 위한 키워드지만 딜레마적 상황에 빠진다. 경험하는 순간 형식적 경험으로 전락하고, 생각하는 순간 동어반복에 빠지는, 매우 고약한 상황이다.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 현대 조각이란 바로 이런 거야!"
* 퍼블릭아트 게재 원고
2013년 10월 19일 토요일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예술인복지법, 중첩된 냉소주의를 넘어서야 할 때
지난해 11월 많은 논란 속에서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된 후 5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출범전 범람했던 ‘썰전’과는 달리, 현재 예술계, 특히 미술계의 반응은 ‘썰렁’하다. 특히 실질적 수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창작인의 경우,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재단)이 밝힌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한 예술인은 4월 11일 기준 1,300여명. 이 중 산재보험에 가입한 예술인은 4월 12일 기준으로 총 120명, 세부적으로는 문학1 미술2 사진0 건축0 음악1 국악4 무용19 연극7 영화20 연예66으로 집계됐다. 미술인 2명은 모두 공예분야(도자, 석공예)다.
미술계의 이런 냉소의 이유를 거칠게 다음의 두 가지 층위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법안의 근본적 문제점’, 둘째 ‘실질적인 혜택의 부재’다. 전자는 예술가를 일반 근로자와 동일하게 볼 것이냐, 아니면 특수한 근로자로 볼 것이냐의 문제로, 결국 ‘예술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다. 예술가의 근로자성과 특수함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의 입장은 동일하다. 다만 특별법의 제정을 통해 예술가라는 특수한 직업을 근로자, 그러니까 보편적 직업 중 하나로 규정해 노동법 전반에 걸쳐 동일하게 보장 받게 하자는 주장과 예술가의 근로자성은 인정하되, 특별법을 제정할 경우 현행법과 사회적 인식에 상충되는 지점이 많으므로 큰 틀을 깨지 않고 보완하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여기서 예술인복지법은 후자의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예술인, 특히 순수 창작인은 적잖은 실망을 느끼고 있다.
한편 다른 냉소는 실질적 혜택이 전무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기존에 계속해서 제기되었던 4대보험 보장 문제는 결론적으로 ‘차’떼고 ‘포’뗀 오직 산재보험만 남았으며, 그 마저도 보수를 받는 예술인에 한해, 보험료 전액을 스스로 부담하게 되어 있어 계약사항이 없거나, 궁핍한 예술인의 경우, 해당되는 사항이라 볼 수 없다(일반 근로자의 경우 산재는 사측에서 전액 부담). 또한 예술인복지법과 함께 출범해 복지업무 실무를 전담하게 된 예술인복지재단의 경우 예산의 대다수가 삭감되었고, 그나마 남은 예산이 순수 창작인에게 거의 필요가 없는 취업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실효성이 없게 됐다. 한마디로 예술인복지법은 재단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를 앞에 세워두고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예술인을 비껴나간 구색 맞추기 정책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두 가지 냉소의 기저에는 故최고은으로 대표 되듯이, ‘예술인도 보통의 근로자, 근로자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보통 인간처럼 살기 위해 예술인복지법으로 특별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보편적 인권 보장의 문제와 ‘예술인의 문화예술활동은 궁극적으로 공익적 활동이기 때문에 국가가 특별하게 관리/보호해야 한다’는 어떠한 특권 심리가 꽃놀이패처럼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전자를 반론하면 후자의 이유로 다시 반박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식이다. 여기에 ‘복지'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더해진다. 한 일화로, 재단에 따르면 예술인복지법이 예술인의 손에 당장 돈을 쥐어주는 제도라고 오해해 예술인들이 적잖게 실망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각종 문예지원 정책에 길들여진 예술계의 경우, 복지제도와 예술지원제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위화감과 실망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냉소를 더할 수도 있다. 보편적 인권의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같은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의 틀을 개선/확충하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예술 지원의 경우 여타 다른 문예진흥정책을 통해 ‘특별히’ 관리되고 있으며 앞으로 정책 개선을 통해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 예술인복지법은 사실 없어도 되는 법 아니었겠는가? 이것이 차라리 진정 순수 창작인이 바라는 예술 복지 정책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복지 자체에 대한 궁극적인 냉소인 걸까?
물론 예술인복지법은 불충분한 법이다. 그런 점에서 마땅히 예술인복지법은 추후 계속 개정/보완 되어야 하며, 끊임없이 주장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법을 사람이 만드는 이상, 개정의 기회는 분명히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까지 이 법은 전적으로 무효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법 자체는 중립적이다. 그 가치는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나중에 판단될 일이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바뀐 시대에 확장되는 직업군에 따라 각종 복지제도는 해마다 개정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산재보험 등의 보장의 길이 열린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법안 활용을 통해 사례들을 많이 남기는 것이 급선무일 테다. 헌데, 법을 무용하게 만드는 데에는 예술인도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술인복지법은 화용론적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필자는 미술인이 예술인 복지재단이 실시하는 사업을 살펴 활용하고, 최대한 보장을 받길 바란다. 그리고 그 가운데 문제점 또한 적극 드러내 줬으면 한다.
이어서 예술인 복지재단이 시행하고 있는 사업의 요체를 알아보자. 주지하다시피 예술인복지법에 관한 실무는 재단에서 전담하고 있다. 재단이 하는 사업은 크게 1)예술활동증명 2)산재보험 대행업무 3)표준계약서 보급 4)예술인취업지원교육사업 5)예술창작디딤돌(시범)사업이다. 먼저 순수 창작인의 경우 취업이 원칙적으로 불가하다는 점에서 4)예술인취업지원교육사업은 실효성이 없다. 만약 작업을 포기하고 취업을 목적으로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제공되는 교육이 과연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5)예술창작디딤돌 사업은 대학시절 ‘근로장학생'정도를 떠올리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어려운 삶을 서류로 증명하고, 공익사업에 일정 부분 동참하는 대가로 보수성 지원을 받게 된다. 예술 창작 활동에 관련해 지원을 받고 싶은 예술가는 이 사업에 해당되지 않는다. 차라리 문예진흥기금을 노리는 것이 맞다. 아직은 시범 사업이니, 앞으로 문예지원정책을 적절히 보완하는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2)산재보험 대행 업무는 근로복지공단에 직접 산재보험에 가입할 때 거쳐야 할 복잡한 절차를 대행한다. 예술활동증명을 마친 예술인은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선택해서 가입할 수 있다(1등급은 11,600원이고 3개월 이상 납부 시, 재단에서 30%를 지원한다). 하지만 아직 보상 규정이 미비한 탓에, 보장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예술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재단의 업무 3)표준계약서의 보급과 맞물려 있다. 순수 창작인들은 무목적적으로 창작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또 종종 전시를 위해, 전시 주체(미술관/갤러리 등)와의 계약을 통하기도 한다. 현재까지는 대부분 구두로 전시계약이 이뤄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경우 구체적으로 전시기간과 전시준비기간, 예상 출품작 수 등이 기재된 계약서가 있다면 거기에 준해서 산재보장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따라서 재단이 표준계약서 개발과 보급을 하루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하며, 법률상으로 이것을 강제하는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제출한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에 이 사항이 포함되어 있으나 현재 계류 상태다.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재단 홈페이지 참고) 한편, 재단은 예술인 복지금고를 운영할 계획 중에 있다. 이 사업은 예술인들의 창작여건 개선 및 경제적 보조 혜택을 주기 위해 소정의 금액을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금융서비스다. 최초에 정부 출연금을 통해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예산이 삭감되어 이루어지지 않았다. 향후 지속적으로 각종 기부와 후원를 통해 재원을 확충할 계획이다.(새누리당 박창식 의원이 재단의 예산 확충을 골자로 하는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을 내어 올해 4월 10일 소관위 검토 된 바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1)예술활동증명이다. 예술인복지법에 준해서 보장을 받으려면, 예술활동증명 절차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멤버쉽 가입’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 현행 제도 안에서 예술인, 특히 문학, 미술인이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대단히 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해당 사항이 있는 예술인에 한해 적극적으로 이 법을 활용해주길 바란다. 왜냐하면 재단은 내년부터 정책 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이때, 사례는 많을수록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인과 재단 둘 다 각자의 역할에 힘을 써야 한다. 예술인복지법은 이제 갓 태어났다. 자식이 잘 크는 데는 엄마, 아빠의 역할이 중요한 법이다.
퍼블릭아트 2013년 5월호 기자칼럼에 쓰였음.
미교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