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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섹슈얼리티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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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lf Portrait with Wife and Models negative 1981; print about 1984 |
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세마 하나평론상
링크: 관종의 시대와 자기 노출 전략의 미학 :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을 중심으로 –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
집중해서 텍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다. 한 두 번 정도 스킴했으나 결국 제대로 읽진 못했다. 왜 그런진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 글에서 놀라운 점 하나는, 작품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큐레이터의 의도만 가지고서 전시비평을 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호오를 떠나서 이런 관점이 '수상'까지 했다는 건, 어떤 변화에 대한 합의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지도 모른다. 큐레이팅이든 비평이든.
- 이 글은 전시가 일종의 '수치플'을 하고 있다고 봄. 기후정의를 실천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자신을 일정 부분 '노출'하는 일. 수치스러움이야말로 여성적이고 해방적이다..?
- 할 포스터는 포르노그래피적인 것과 옵씬한 것을 구별한다. 최소한 내가 지속 가능한 미술관에서 본 것은 옵씬하진 않았다. 오히려 '지속가능성'이란 정상적 규범의 강박적 재현에 가깝달까..?
- 로라 멀비라는 반갑고도 오래된 이론가가 글 속에서 등장하는데. 내가 기억하기로 멀비의 <시각적 쾌락>은 글 대부분을 헐리우드 내러티브 영화가 여성을 재현하는(대상화하는) 방식, 소위 남성적 응시의 구조를 비판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멀비가 노출증을 해방적 요소라고 보았는 게 정말 그랬나? 싶은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체크해봐야겠다. 아무튼 멀비 같은 오래된 글을 이론에서 더 이상 보고 싶지는 않다.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보는자 보이는자.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 권력과 피해자 등등의 이분법.
- 관종의 원래 뜻에 좀 더 충실했다면 어땠을지. 노출증자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서 더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성기를 시각적으로 쏘아 보냄으로써 당하는 쪽이 당황하게끔 하는 게 목적 아닌가? 바바리맨이 고추를 보여줄 때 작다고 놀리면 당황해서 도망간다는 썰처럼. '과도하다'는 건 노출증자의 생각이 아니라 그걸 쓰고 있는 필자의 생각인듯. 암튼 노출증자의 목적은 성적 쾌락이지 수치스러움? 그 자체가 아니라는 거...
- 인격화된 미술관: 여럿 작품을 모아 둔 전시를 블랙박스화하고 블랙박스의 표면만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큐레이터는 작품과 미술관의 대변인이 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