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백치>에 나오는 간질병, 진리를 통찰하는 엑스터시
"도스토예프스키가 18세 되던 해, 1839년 그의 아버지는 실제로 영지 농노들의 원한을 사 살해를 당하는데, 한 도스토예프스키 전기 작가에 따르면, 당시 그는 맞아 죽었을 뿐만 아니라, 성기도 잘려 있었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로 농노들의 원한을 샀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최초의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의 첫 발작 시기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이견이 있지만, 어쩄거나 중요한 점은 그 후로 평생동안 이 병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의 많은 주인공들이 이 병을 나누어 가진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백치>>의 미시킨 공작도, <<악령>>의 키릴로프도, 마지막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부친 살해자 스멜댜코프도 다 간질병을 갖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 간질 발작은 우리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질병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간질 발작의 순간은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신의 세계를 넘볼 수 있는 경계 이월이 가능한 절대 황홀경의 순간이었고, 유한한 존재가 무한의 세계를 일순이나마 맛볼 수 있는 신비한 순간이었으며, 세계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의 순간이었다. 간질 발작이 일어나는 불꽃같은 찰나의 순간이 갖는 이러한 미학적, 철학적 의미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백치 천줄 읽기> 중에서
쿠르트 슈비터즈의 메르츠. 슈비터즈는 베를린 다다이스트의 정치적 성향을 배격했다. 다다이스트가 쓰레기를 쓰레기로 제시한 반면 슈비터즈는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
“나는 다다이즘 미술을 그 가장 고상한 형태에 있어서 메르츠와 비교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다다이즘은 오로지 반대를 위한 시도이나, 메르츠는 이 반대항들을 예술작품에서 일상의 요소들에 상대적인 가치들을 부여함을 통해 화해시킨다. 순수한 메르츠는 순 수한 예술이고 순수한 다다이즘은 비예술이다.” Kurt Schwitters, “Banalität,” 1923, (in Kurt Schwitters, Das literarisches Werk, 1973-81, Bd. 5), p. 148.
백남준은 <실험티비의 후주곡>에서 영원을 포착하는 2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는 "정점이나 불모의 영점에서 정지하는 것." 이는 의식의 비정상적 상태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의 경험이다. 의식의 이중성의 종합.
다음은 "독립적인 다수의 평행적인 움직임을 동시에 감지하는 것." 의식을 끊임 없이 지속하는 것. 사르트르적인 의미(인간의 의식은 언제나 대자적 자아)에서의 황홀. 의식의 통상적인 상태. 의식의 이중성(정신의 변증법적 진화)이 자유의 증거로서 보존된다. -> 12대의 실험티비를 동시에 감지하는 것은 신비주의자의 오랜 소원을 실현해줄지도 모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