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에 나는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의 초안을 완성했다. 여기에서 관객은 마음대로 방을 옮겨 다니며 적어도 20개의 다른 소리를 선택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시간은 필연적으로 음악-공간(음악-홀)으로 귀착되는데, 그 이유는 자유로운 시간에는 두 개 이상의 매체(방향)이 필요하고, 두 매체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공간(홀)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홀(공간)은 단지 소리의 풍요로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필수불가결한 '더 나은 절반'이 된다. (이것은 예를 들어 귀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는 식의 현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좀 더 강한 불확정성으로 향하는 다음 단계로서 나는 관객이 (혹은 이 경우에는 대중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즐기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곡의 연주를 포기했다. 나는 음악을 전시한다. 나는 방에 각종 악기와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물을 전시해서 관객이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게 한다. 나는 이제 요리사(작곡가)가 아니라 'feinkosthandler'(세련된 식품가게 주인)일뿐이다." <음악전시회>, <<말에서 크리스토>>, pp. 369-70.
이 인용에서 백남준은 자유로운 시간을 관객에게 선사하기 위해서 두 가지 매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백남준의 의도는 한 매체가 하나의 방향을 가지며,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이상의 매체를 통해 선형적 시간을 뒤섞는 것이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공간"으로 귀착된다. 이 공간은 소리의 절반으로, 백남준이 쓰기론 현학적인 차원이 아니라 아주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렇다.
시간을 공간화하려는 실험은 1960년대와 70년대 미디어 인스톨레이션 예술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다. 또한 60년대에는 미니멀리즘에 의해 모더니즘 조각의 초월론적 시공간이 질문에 붙여지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은 후기(성기) 모더니즘과의 단절인과 동시에 위반적 아방가르드, 그 중에서도 뒤샹식의 다다와 구축주의의 복귀를 동시에 시작했다.
"미니멀리즘이 특수하게는 레디메이드 패러다임의 복귀이며 일반적으로는 미술제도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공격이라는 인식은 미니멀리즘의 옹호자와 반대자를 막론하고 공히 직관되었는데, 내가 여기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요지도 바로 이것이다." 할 포스터, <<실재의 귀환>>,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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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로스Christine Ross는 초기 비디오아트가 시간 만들기making time의 양식을 실험하는 데 가장 이해도가 높았다고 썼다. 그에 따르면 비디오라는 미디엄은 비쥬얼 아트에서 선형적 시간성과 그 시간의 지배적 관습성을 교란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 백남준은 시간의 전시, 다음 단계로 관객에 관심을 가졌다. 연주를 포기하고 관객이 자유롭게 행동하길 바랐다. 이런 의식적인 시간의 전시에 대한 실험은 구조주의 영화 제작자에게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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