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는 어떤 시대를 열었을까? 웹 2.0을 부르짖던 시절만 하더라도 유토피아적 상상이 하늘로 치솟았다. 지금은 모르긴 몰라도 영상의 대다수는 유료광고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유튜버 자신은 물론 광고임에도 진정성을 가지고 성심성의껏 리뷰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대다수 유튜버의 계정은 1인 광고판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유튜버 대다수가 조금 인기를 얻고 나니 [유료광고포함]을 자랑스럽게 영상 초기에 달았다. 많은 셰프가 최근 유튜브 시장에 뛰어 들었는데 광고가 들어온 걸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강조되는 것은 광고보다 자신의 요리다. 종종 보는 유튜브 중 예도TV가 있다. 요즘 점점 동시대 철학도 다뤄서 도움이 좀 된다. 예도도 자신의 영상에 광고를 넣는다. 영상 조회수는 조금이지만, 시청시간이 길어서 광고가 붙는단다. 예도는 유튜브 수익을 기부하는 데 쓴다. 그럼에도 예도 역시 광고판이란 사실은 정말 부인하기 힘들다.
오징어게임의 깐부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깐부치킨 광고를 거절한 것이 그래서 그렇게 화제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안 맞아서 안 한다고했다. 그렇다면 얘기는 비슷하다. 내가 광고다라는 사실을 다들 감추고 산다. 마치 내가 원래 그런데 광고가 우연찮게 나와 맞아서 붙은 것처럼 보이길 바란다.
김동규가 포착한 저 간판을 휘두르는 광고맨. 저 광고맨의 몸짓은 그 자체가 광고로 기획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저 몸짓은 광고 이상이 된다. 속된말로 아트네. 예술이다. 처음부터 그런 행위가 광고 그 자체였음에도 그 광고를 넘어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몸은 더 이상 광고판에 관심이 있지 않다. 몸은 오직 자동적이다. 저런 무관심성이 가능할까? 민하한테 귀동냥으로 들은 거지만 랑시에르가 철지난 칸트로부터 길어올린 무관심성이 어떤 종류의 dissensus의 핵심적 태도라면, 저 광고맨의 몸짓 역시 그런 종류의 것이다. 몸짓이 몸과 광고의 연결을 끊어낸다. 김동규는 광고와 예술이 맞붙어서 드물게 예술이 승리한 순간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저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군중 속에서 반쯤은 혼이 나가 광고판을 열심히 돌리는 몸짓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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