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지바 마사야, 의미가 없는 무의미 - 혹은 자명성의 과로, in 의미가 없는 무의미 (2018)

하..정리할 깜은 안 되고. 천재란 있구나. 인상적인 용어 몇개.

1. Para-maund: 라캉적 팔루스 향락, 과잉, 분출 등과 대비되는 살짝만 솟아오른 언덕

2. 의미 있는 무의미와 의미 없는 무의미

의미 있는 무의미: 라캉적 실재, 칸트적 물자체. 의미화되지 않는 다의성. 이미지와 언어로 포착되지 않음

의미 없는 무의미: 사유나 정신 과정 바깥에 있는 무의미. 라캉적 도식에서 고려되지 않는 물리적 외부 공격. 사유하거나 실패하는 신체 자체의 물리적 문제

3.사교: 사교는 자신을 다의성 ‘이하’로 만들어 (혹은 감산해) 관계하는 것. <-> 전면적 관계는 다의성으로 인해 일어날 수 없음.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의례적, 형식적 -> 형식은 곧 물질

4. 포스트투르스: 지바 마사야가 정의하는 포스트투르스는 가장 내 생각과 가깝다. 예를 들어 이주원 전시때 썼던 서문에서 비쳤던.. 포스트투르스의 의미는 진리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된 진리에 대해 도달 할 수 없기 때문에 해석이 증식하는 상황의 종료. 그 해석의 특권은 보통 레거시 미디어가 가지고 있었음. 하지만 해석에 대해 모두가 신뢰하지 않고 각자의 진실을 가짐. 그 각자의 진실을 지바의 말로 바꾸면 (해석될 필요 없는) 서로 다른 사실 <- 상대주의와 구분 필요

상대주의는 하나의 진실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상대적 다양성

포스트투르스는 하나의 진실은 없고 펼쳐진 서로 른 사실이 (우연적으로) 있음

-> 여기서 의례, 형식의 중요성: 서로 다른 사실이 공존한다. 그런 것을 묶어주는 것은 형식. 지바는 그 형식을 윤리로까지 확장하고 있음

5. 무뇌성(airheadness): 이승현 선생님은 머리빔성이라고 번역했는데 그냥 무뇌상태 그런 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거 같다. 머리를 비워야 몸이 움직인다. 너무 생각해 무한 다의성에 빠지지 말고 몸이 가는대로 움직다. 그것 밖에 없음. 신체라는 물질이라는 단순한 사실성.<->들뢰즈의 잠재성론. 잠재성론에서는 신체가 가능태(뒤나미스)의 현실태(에네르기아). 수반되는 것.

반면 가능태가 필요 없는, 혹은 가능태가 순수하게 현실태가 된 상태를 가정할 수 있는가? 현실태의 극치=신. 순수현실태란 유한한 존재=행위하는 존재->칸트의 실천이성과 비교해볼것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