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 ‘저자(author)’는 보통 캐캐묵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따지고 보면 근대에 발명된, 약 100여년 된 개념에 불과한데, 미술사 책에 나오는 반 이상의 도판의 진정한 주인공은 실상 커미셔너였다. 근대가 들어서자 미술은 커미셔너와 단절하고 자율성을 얻기 시작했다. 저자는 작품의 절대적인 기원처럼 생각되었고, 이것이 1900년대 이후 서양미술에서, 사실 지금까지도 지배적이다. 서양미술을 제도로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더니즘 이후의 많은 미술 실천을 저자라는 울타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라고 압축할 수 있지도 모른다. 미니멀리즘의 유명한 연극성,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제도비판과 장소특정성, 플럭서스의 해프닝과 이벤트, 팝의 대중주의, (뉴장르)공공미술, 관계미술과 사회적 실천 등 이루 다 열거하지 못하는 많은 흐름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모두 단일한 저자-기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요약된다.
제도 자체도 유사하게 변해왔다. 원래 예술품 같은 진귀한 물건은 귀족이 사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서 만든, 분더캄머(Wunderkammer), 스투디올로(studiolo), 진귀한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 등으로 유럽의 각 나라에서 불리는 제한된 방에서만 볼 수 있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 이후 이런 공간적 분할이 재배치된다. 혁명정부는 왕가와 귀족을 위한 궁이었던 루브르를 미술관/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왕실 소속이었던 예술품은 이제 무료로 일반 예술가나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여기에 비치된 다양한 그림을 통해 시민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는데, 박물관은 말하자면 시각 교육의 장으로 기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미술관/박물관의 원형이다.
1960년대 후반 하랄트 제만이라는 창조적 큐레이터의 부상은, 최소한, 예술가가 유일한 저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일깨웠다. 이후 큐레이터쉽의 확장은 (그것이 큐레이터라는 저자의 강화를 가져왔다손 치더라도 일단은) 예술가와 작품에 독점적으로 부과된 권위(authority)를 약화시켰고, 대신, 부차적이라고 생각했던 다양한 것—아티스트 토크, 설문조사, 오프닝 퍼포먼스, 카탈로그 및 출판, 전시 티켓 등—이 예술 프로덕션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이들의 주제는 다양하다 하더라도,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생산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압축된다. 이후 미술계의 창작 방법을 보면 큐레이터와 예술가 매한가지로 무엇이 큐레이팅이고 무엇이 작업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혼종적인 양상을 보인다. 더 이상 기존의 카테고리로선 이해하고 정의할 수 없는 확장된 실천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쯤, 유럽에서는 볼로냐 선언(Bologna Process, 1999)이라는 대규모 학제 개편과 함께 아카데미가 자본주의로 물들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교육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그리고선 큐레이토리얼에서는 ‘교육적 전환(educational turn)’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큐레이터와 예술가는 매한가지로 교육이라는 어젠다, 지식의 생산과 공유라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다. 여기서 핵심은 앎의 자유와 평등이다. 아카데미가 지식을 독점하고 그것을 자본화하는 시대에, 더욱 자유롭고 평등한 앎의 실천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는 교육을 계급 상승의 동아줄쯤으로 보는 게 상식인 우리나라 사정에 비추어 봤을 때 속 편한 고민이지만 유럽에서는 달랐던 것 같다. 별로 인지되지 못했던 것 같지만 부산에서 친숙한 로저 뷔르겔 감독의 2012년 부산비엔날레 《배움의 정원》은 그런 맥락이 한국에 이식된 것이다.
미술관 교육의 경우
주지하다시피 능력주의는, 최소한, 한국 교육에서 상례화된 인식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험 경쟁에서 살아남아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매우 평범한 꿈이다. 능력을 키워야 한다. 능력은 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하므로, 사회는 시험이라는 눙력의 계량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시험은 교육을 고효율 단방향 지식 습득의 장으로 이끈다.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다 아는 ‘교육’은 바로 이런 것이다.
여전히 한 쪽에서 능력과 능력의 계량을 중심으로 아우성이 있다면, 이제 앞서 나가는 기업은 모두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입사 지원 철마다 구글이나 삼성 등 초거대기업의 면접 시험 질문과 답이 ‘카더라’ 소문처럼 인터넷상에 공유된다. (‘아무말 대잔치 했는데 붙었어요’가 레퍼토리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학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미술이나 예술을 접하게 하도록 노력한다. 주말이 되면 우리 미술관에도 아이 손을 잡고 미술관을 방문하는 어른 관객을 많이 볼 수 있다.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대부분 학부모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처럼 미술관에 아이를 맡기고 이 프로그램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사라진다. 또 중고등학생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국, 영, 수 하느라 바쁠 것이다. 미술은 그래서 아이들의 몫이고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미술관 교육에서 노력하는 건 단순하다. 미술이 모두에게 열려있고 사실은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시립미술관은 그림도 있고 해서 자세히 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 현대미술관 전시는 도무지 모르겠다고. 이는 아이든, 어른이든, 입시생이든 누구나 관객으로서 겪게 되는 문턱이다. 미술은 어렵다는 것. 물론 미술의 지식을 얻기엔 쉽지 않다. 미술은 오래된 역사가 만들어 놓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을 알기 위해선 선행공부가 필요하다. 그런 지식 없이 미술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술의 감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리 주어진 지식과 지금, 여기서 내가 무엇을 느낌으로써 앞으로 만들어질 지식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감수성의 능력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 있다. 누구나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매우 다이나믹한 지적 활동이다. 내가 원래 알고 있는 것과 오늘 내가 겪었던 일과 뉴스에서 본 사건과 작업의 단편적인 느낌을 서로 연관지으면서, 그것을 내 옆의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깨쳐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는, 미술관 밖을 나서면서도 계속 이어진다. 이런 활동을 통해, 심지어는, 동시대미술로부터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어느 챕터로 들어갈 수 있다. 좋은 감상은 그런식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입시생도 모두 포함된다.
우리 미술관에서 기획하는 교육은 모두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미술관에 온 많은 학부모는 여전히 교육 프로그램에 ‘미술 시간’을 기대한다.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어보고 그 결과물을 집에 가져간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정확하진 않지만) 창작자를 키워내는 데 도움이 될지언정, 감상자를 키워내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사실은 좋은 감상자는 키워낼 수 없다. 왜냐면 좋은 감상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미술관에서는 미술교육의 고정관념을 탈피하려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발단-전개-마무리로 가는 관례화된 교육은 최소한 내가 이해하기론 미술에선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수많은 고정관념이, 어른부터 아이까지, 심지어 미술관 제도 안에도 상존해 있다. 그리고 때와 상황에 따라 그것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감상의 문제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달렸다. 이 조건은 프로그램화 될 수 없기에 매번 다르게 기획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럴 때 교육은 큐레이토리얼 실천이다.
21.11.10.
부산문화재단 포스트-에듀케이터 심포지엄 발제문으로 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