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1일 화요일

'후죠시 매니페스토' 전에 관한 촌평

이 전시의 제목은 '후조시 마니페스토'다. 작가 스스로의 후조시 정체성을 공표하는 것과 동시에, 나아가 그런 행동을 공식적으로 다른 후조시에게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1차적으론 스스로에 대한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이런 취지를 십분 인정해가면서 전시를 따라가보면 이렇다.

존잘님들이 그린 야오이물을 수집한 후, 침흘리며 보고 또 꺼내 보는 자를 후조시라고 한다면, 후조시 진챙총은 그 절차를 그대로 전시장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야오이물을 모아서 프린트해서 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전시를 남의 그림을 멋대로 가져와 공공연하게 전시한 '개인 폴더' 전이라고 힐난했다.

어떤 이는 리처드 프린스의 예를 들면서, (도용이 아니라) 전유의 작법을 사용한 엄연한 현대미술 작품이라는 해석을 내 놓았으나, 내가 보기에 그런 식이면 치명적인 모순이 생긴다. 방금 후조시 마니페스토를 한, 후조시부심 쩌는 사람이, 그쪽 문화계에서 추앙 받아야 할 존잘님이 그린 야오이물을 가져와서 전유, 즉 원본 이미지를 약탈하고 해체하고 비판하는 식으로 역주행을 할 이유가 있을까? 따라서 후조시 마니페스토의 취지를 인정하는 한, '개인 폴더'론 쪽이 더욱 정당해 보인다. (도용의 윤리적인 측면은 차치하고 서라도) 그가 이미지를 순진하게 전시장으로 가져온 이유는 그것을 비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좋아했기 때문이란 소리다.

그렇다면 무단 도용/전시된 그림에 픽셀 그리드와 야릇한 볼록 그리드를 새겨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굳이? (여기가 창작이냐 도용이냐 헷갈리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아마도 모니터의 그라운드가 각별히 그에게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추측하자면 납작한 스크린에 떠 있는 이미지가 가상의 픽셀 그리드라는 사실을 작가 스스로 조차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리드를 즐기겠다는 비장한 의지 같은 것을 이 전시로 표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즉 작가에게 창작이냐 도용이냐의 문제보다 더욱 중요했던 것은, 스스로의 문화 소비 양식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싶은 어떤 진정성으로의 열망 같은 것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볼록 그리드는 정말로 야릇하고 변태스럽다.) 

여하튼 그래서 이 전시는 원본 이미지를 픽셀화/추상화 시키는 방식으로, 하지만 동시에 더욱 사실에 다가가는 방식으로, 진챙총 자신이 야오이물을 집 모니터에 띄워놓고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 인지적 경험을 구현했다. 그리고 진챙총 자신이 그런 취미를 가졌다는 것을 만인에게 밝히려 했다. 여기에 동참하자고 권유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자기-리얼리즘이며, 그런 한에서 소비에 대한 선언이자 권유다. 창작이나 생산에 대한 선언이 아니다. 진챙총은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덧글 OK, 외부 링크 금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