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9일 화요일

보디츠코 사용법

<디자인과 범죄>에서 할 포스터는 현대 디자인을 두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라고 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80년대 포스트모던 미술의 비판적 실천은 당시 부상하던 팝문화 속에 내재하던 전복적 성질에 주목하여, 그 코드를 대항문화의 자리에 위치 지으려고 애썼다. 포스트모던한 실천가들이 이를 통해 하려고 했던 일은 물론 모더니즘의 초월론적 미학을 약화시키고 해체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저항적 실천은 너무나 간단히 자본주의의 '미학'으로 다시금 전유되었다. 여기서 대중문화는 더 이상 대안이 아닌 주류로 떠올랐고,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벤자민 부클로 같은 문화산업론자가 우려했던 상황이 그대로 펼쳐져 갔다. 첨병은 현대 디자인이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에서 일찌기 경고한 일상의 전방위적인 미학화는 사물부터 라이프스타일까지 물질과 비물질적인 세계의 모든 것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는 현대 디자인에 의해 실현되어 갔다. 예술은 창작되었고 여전히 되고 있지만 질과 양 모두에서 판정패는 뻔해 보인다. 디자인이 이른바 바우하우스의 토탈아트를 새로운 자본주의의 정신에 맞게 '토탈키치'로 개량하는 사이, 예술은 인사동 길 어딘가로 퇴락 중인지도 모른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80년대의 전설적인 실천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예술과 디자인이 아직 '살아 있을' 당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신보수주의가 활공하던 시기인 80년대엔 반대로 훌륭한 진보적 예술가가 많이 배출이 되었지만, (예술을 통한 사회의 변혁이라는 아방가르드의 본 의미에 충실한다면) 보디츠코만큼 아방가르드 꼬리표가 잘 어울리는 실천가도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시 많은 포스트모던한 예술가들이 문화 코드의 저항에 천착했지만, 그 사회적 실효성에 관해서만큼은 뜨뜻미지근했다. 때문에 많은 포스트모던 예술가들은 전복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을 비판적 문화 지식인, 이데올로그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예술가가 생산자로서의 실천보다,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빌리자면) "이데올로기적 후원자"로 남는 것을 더욱 선호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보디츠코는 의식적으로 생산물의 실질적인 기능성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런 면모는 보디츠코 자신이 디자이너로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이란 분야는 특정 목적에 맞게 기능하는 문화적 산물을 만들어내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복무하는 자율적 예술보다 존재론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신화는 내부에서 무수히 많이 검토되고 비판되었지만, 마치 사진 시대의 회화, 디지털 무빙이미지 시대의 영화처럼, 디자인 시대를 맞이하며 예술은 '무관심성'을 드러내며 자신을 상대화해야만 얼마간 존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디자인과 예술의 분리를 의미한다. 최근의 로잘린드 크라우스나 할 포스터는 예술의 준자율성semi-autonomious 회복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는 마치 그의 은사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그랬듯이, 예술에 최종 방어선을 둘러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를 목욕물과 함께 버릴 것인가? 디자인에는 이제 남아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을까?

보디츠코를 이른바 사회적 디자이너로 보고 싶은 이유는, 현대 디자인의 토탈키치화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디자인의 재혁신을 소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광범위한 토큰을 가지게 된 디자인을 이른바 독당근 같은 처방으로 볼 수도 있을 일이다. 때때로 극악의 독은 최상의 약이 되기도 한다.

보디츠코는 그런 참조점을 제시한다. 보디츠코는 분명히 쓸모를 위해 디자인하지만, 그 초점은 타자의 자율성 고양에 맞춰있다. 보디츠코의 <노숙자 수레>나 <대변인> 같은 작품이 강력한 도구성을 가진 디자인 산물처럼도, 하지만 어딘가 예술 오브제로도 보이며, 혹은 둘 다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유는 이런 둘 사이의 경계 위에 그의 작업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보디츠코의 관심은 주류 미학 코드를 디코딩하고 다시 코딩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가속화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노숙자나 하층민, 제대로 된 사회보장을 받지 못하는 이주자 등, 사회 곳곳에 (비)존재하는 소수자의 '존재성'을 어떻게 드러낼 것이냐였다. 이는 그의 실천이 디자인 산물을 고안하고 제작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도 그것이 어떤 문맥에서 어떻게 사용되며, 또한 디자인/예술의 산물의 주인공이 누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뜻이다. 보디츠코의 디자인에서 노숙자는 작품으로부터 자율성을 위임 받는다. 때문에 보디츠코의 작업에서는 수행performance과 현존presence이 중요하다. 누구도 아닌, 디자인의 클라이언트, 사회적 소수자의.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은 노스텔지어와 함께 꽤나 멜랑콜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사회적 실천이 전시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한다. 화이트큐브에 얌전하게 아카이브된 기록 영상과 사진, 오브제는 어쩔 수 없이 아방가르드의 폐허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새롭게 커미션한 <나의 소원> 같은 작품은 제3세계 미술관 키치라고 불러도 무방할 종류의 어떤 것이었다. 움직임을 정태가 대체했고 이 시점에서 나는 또 다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를 떠올린다. 하지만 보디츠코 스스로 말했듯이, 우리는 너무 쉽게 아방가르드를 쓰레기통에 처박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디츠코가 한때 그렇게 했듯이, 오늘날 디자인 실천은 또 다른 형태로 개진될 수 있다. 그 방법은 아무도 모르지만, 보디츠코가 그 시대에 가능했듯이, 지금 시대에 불가능할 법도 없다. 우리는 그런 태도를 보디츠코의 전시에서 고고학적으로 발굴할 수도 있다. 이것이 보디츠코 전시의 ‘사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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