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놀라운 점. 전시 서문이 없다. 리플렛도 없다. 도록은 만들 예정인지 모르겠는데 여튼 현재 스코어 그렇다. 포스터를 판다. 스티커를 판다. 이게 맞다 그르다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되게 다른 문법임엔 분명하다.
판단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사이에 교역소는 사라진다. 지금까지 전시들이 그랬다. 치고 빠지는 식이랄까. 속도전.
이런 경황이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문법, 이 작업이 무엇을 의미하고 전시 기획의도가 무엇이며 등등을 말하기가 무색해진다. 개별 작품의 의미가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기획자의 취향 컬렉션에 가깝다. 이유는 없다. 그냥 취향이다로 끝나버리는 것 같다.
전시작들도 거개 그런식이다. 인스타그램 사진이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익히 미디어에서 봐오던 이미지나 내러티브를 따른다. 물론 그것의 최신버전에 가깝다.
그러고보면 교역소 자체가 일종의 미적 액티비즘 블럭에 가깝다. 신생공간이라고 불리는 대다수가 그렇다. 작업 자체가 중요하기 보다는 공간-아이덴티티를 계속 움직이기 위해 작업을 땔감 삼는다. 이것은 큐레이팅이란 요소가 작업화되는 경향이고, 더불어 그것이 일종의 액티비즘 요소로 적극 도입된다는 말이다. 어떤 액티비즘이냐고 하면 일단은 거칠게 세대 전복이라고 밖에 말을 못 하겠다. 다른, 새로운 세대적 미적 감수성을 기존 생태계에 끼얹는 일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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