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도는 별 다르게 없는 것 같고. 띄엄띄엄 메모.
카메라의 위치나 존재가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권혜원과 무진형제, 박준범이 그렇다. 미디어 자체를 고찰하지 않는다는 건데 그렇다면, 단어 의미 가지고 딴지 걸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서도, 여기에 굳이 미디어(아트)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라면 권혜원과 무진형제는 짧은 필름, 박준범은 퍼포먼스 다큐멘터리라고 하겠다.
그것과 논외로 권혜원은 엽서란 미디엄의 "사회적 삶"을 탐구한다. 동시대 담론과 좀 부합되는 측면이 있달까. 어떤 면에서 트랜디하단 생각.
무진형제는 뭔가 강렬하긴 한데 내러티브 구조가 (없거나 해체된다기보단) 단순하달까 그래서 그저그랬다.
박준범은 대표작을 전시했는데, 10년전 거라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준범은 (미디어 아티스트라기 보다) 좋은 개념미술 작가다.
그 외 태싯그룹은 실로 미디어아트의 스테레오타입, 즉 상호작용성 그 자체에 함몰된 경우. 내 기준에선 좀 편파적이긴 하지만서도, 이건 미술이 아니다.
조현아 작업은 잘 이해가 안 된다. 빌비올라 같은 옛날 비디오아트가 상기되기도 하는데, 어렵다. 영상에선 수화, 4개의 스피커에서는 각기 다른 소리가 나온다. 언어와 목소리(플라톤식의 의미에서?)에 관한 내용인 건 맞는 거 같은데 뭔가 형이상학적이랄까.
모아 놓고 보니 되게 혹평인 것 같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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