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일 월요일

애프터썬(2022)

추석에 집에 있으면서 할 게 없어서 오랫만에 영화를 한 편. 예전에 띄엄띄엄 보긴 했는데 <애프터 썬>을 다시 봤다. 영화라면 거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넘겨가면서 보는데, 이 영화는 넘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넘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순간 쭉 끝까지 다 봤다. 아련한 느낌에 결국 눈물샘이 자극되었다. 마지막에 결국..ㅠ 소피는 왜그렇게 귀여운 짓을 하는 건지.

보통 영화를 보면 인물 하나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드물게 이 경우는 캘럼과 소피 둘 다에 이입되었다. 이유는 두 인물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또한 어린시절을 거쳐 어른시절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어른은 사실은 어린이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참고 산다. 

캘럼은 삶이 계속해서 안 풀렸던 것 같다. 뭐라고 딱 하나라고 딱 집을 것 없이 무언가 총체적인 문제였던 것 같다. 캘럼은 휴양지에서 태극권을 계속해서 연습한다. 숙소에 보면 태극권과 명상에 대한 책이 몇권 쌓여있다. 태극권은 음양의 기운을 순환시키는 몸짓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면서 삶을 회복하려고 했을 것이다.

캘럼은 '죽지 않음'을 택할정도로 타인을 향한 책임감이 그를 압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딸을 생각했으면 캘럼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타인과 자신 사이에서 크게 갈등하긴 했다. 극 종반부에서 캘럼이 서럽게 운 것은 그때문일 것이다.

타인과 자신 사이에서, 그게 비록 딸과의 관계일지라도 이기적인 선택을 한 아빠. 아마 한국의 부모라면, 최소한 내 세대에서 느끼는 부모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얼마나 죽고싶었던 순간이 많았을까?

캘럼은 가진 돈을 다 털어 딸과 터키에 왔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도 풍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탕진하고 간다는 그것이 그를 후련하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 세대라면 택도 없다. 차라리 무릎의 연골이 다 달아 없어질때까지 자신을 죽이고 자식을 아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가심비와 가성비의 차이.

소피는 가족의 빈곤에 대해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소피가 모르는 것은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사랑이다. 소피는 휴가지에서 여러 종류의 사랑을 관찰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빠와 자신 사이의 사랑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소피가 그러고 있는 반면, 캘럼은 점점 마음을 정리한다. 캘럼의 삶의 곤란이 경제적인 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극 중반에 여러 장면에서 나온다. 이 영화는 소피의 시선에서 캘럼을 보고 있기 때문에 캘럼 그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어른들만의 사정이기도 하고 캘럼만의 사정이기도 하다.

캘럼이 무엇에 의해 고통받았는지는 끝까지 잘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소피에게 그대로 전승된다. 소피는 커서도 그 고통 때문에 과거로 돌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비어있다. 부모를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해하려고 하면 할 수록 미궁에 빠진다. 나 역시 그렇다. 남는 것은 거대한 슬픔밖에 없다.

이야기가 별로 없는 영화다. 사실 이야기가 없을 수 밖에 없다. 서먹한 아빠와 딸 사이, 돈도 없어서 뭘 제대로 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나. 다이렉트 시네마는 아니지만 그런 비슷한 정서가 영화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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