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만박을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의 지표라고 보고 만박 참여에 공을 들임
- 18세기 에도 시대에 자연물에 대한 연구 번성 :
= 왜? 한약재 중국 수입 탈의존으로 금은 해외 유출 방지
= 빈민구제 등
- 전국에 채약사를 파견하여 조사, 희귀식물 재배 연구 -> 본초학 발달 -> 일반 자연물 연구 발달 -> 약품회, 물산회 등 이름의 박람회가 전국에서 활발하게 일어남
- 물류품즐(1763) : 최초의 박람회 보고서
- 박람회를 통해 실증적 자연과학 연구 열기 고조 -> 서양 미술의 사실적 묘사법 관심 증대<- 왜?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 묘사가 필요해 과학서 삽화를 수용 -> 자연과학 연구와 결부되어 서양화법 수용 -> 18세기 중엽 <에도 양풍화>
1853년 페리호 사건
1868년 메이지 유신
2. 만국박람회 참가: 메이지 이후 일본은 각종 박람회 다 참가 <- 첨단기술 추세 배우기 위해
- 국내 식산흥업 정책의 핵심은 미술공예품
-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 일본 첫 전시장 마련 : 공예품, 우키요에, 찻집 등 -> 이때부터 자포니즘 유행 시작
- 1873년 메이지 정부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 공식 참가
= 참가 목적: 일본 소개, 신문물 학습
= 성과 : 유럽의 일본 미술품 수입 요청 -> 정부출자 무역회사 기립공상회사 설립: 외국인의 취향에 부합하는 물건을 만들어서 수출
= 미술이란 용어는 빈 만박 물품 구분을 위해 번역할 때 사용한 용어
= 아직 미술품이 아닌 공예품으로만 인정
-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미술관에 일본 코너 설치
= 화조산수화, 목조각을 공예품과 함께 전시하겠다고 신청
= 하지만 아직까지 유럽은 미술품의 위상이 아닌 공예품으로 이해
- 1990년 파리 만박에서 상황 변화
= 순수미술분야로 서양화 53점, 일본화 133점, 조소 71점 출품
= 오카쿠라 텐신이 프랑스어로 전시해설서 편찬 -> 비로소 서양 미술 개념의 전시를 따름
이중희, 일본근현대미술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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