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가 왜 아트페어 1억 작가에 매달리게 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면서, 내린 하나의 가설은 '차라리 시장이 공정하다'이다.
서울로 집중된 인프라, 네트워크, 기회로부터 이탈된 지방 출신이 그나마 '실제적인 것' 혹은 '현실적인 것'으로 느끼는 건 돈이 아닐까. 나머지는 뭔가 추상적이고, 미래적인, 투기적인, 하지만 내 것은 아닌 것 같은,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은... 서울러는 그런 추상적 가치, 상징적 가치를 뒤쫓는 것에 익숙하다. 그렇다고 이넘들이 추상화된 사고에 익숙한 좀 더 진화한 존재라는 이야긴 아니다. 그냥 주변에 후배 동료 선배 중에 그렇게 잘 된 사람들이 있어. 봤어. 다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고 인지하고 있어. 미술은 원래 그런거야. 니콜라 부리요가 그랬잖아. 현대미술가는 기호탐험가라고. 비엔날레를 주름잡는..
지방에서 부리요가 기호가 어땠어 그래봐. 저 ㅄ새끼 뭐라고 씨부리노 그럴 거야. 시장에서 회무침 파는 아지매한테 거시경제학을 설명해봐. 아지매가 바보일까 거시경제학 설명하려고 달려드는 놈이 바보일까. 요셉 보이스가 죽은 토끼에 현대미술을 설명하잖아. 안되잖아. 토끼를 탓하겠어? 설명하는 넘이 ㅄ인거지. 근데 이게 왜 그럴싸해 보이겠어. 요셉 보이스는 친구들이 있잖아. 다들 괴짜들이지만 다들 초엘리트에 초부르주아인 친구들. 아방가르드란 원래 그런 거란다.. 잡초들은 아방가르드가 될 수 없어.
지방러에게 더 현실적인 건, 실체적인 건 비엔날레보다 아트페어. 누가 비엔날레에 껴주냐? 지방 촌놈을? 그나마 갈 수 있는 최고 티어가 광역단체에서 하는 아트페어라고. 갤러리에만 잘 보이면 껴준다고. 거기서 작품이 완판되었느냐.. 작가적 가능성, 시장성을 판단 받아. 이해 가능하잖아?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보통 말 하잖아.. 여기는 말이 안 통해 언어가 달라. 그냥 몸빵하는 곳이야. 그래도 비엔날레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나는 대통령이 될꺼야 같은 수준의 담론 아니냐. 촌놈이 그런다고 해봐라 왕따 되지 않겠냐. 차라리 100만원짜리라도 팔리면 갤러리스트가 꺄르르 거리면서 선생님 하고 인간 대접 해주는데 어떤 게 '리얼'하겠냔 말이다.
손절은 보통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듯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삶을 보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하는 내부적 몸짓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요즘 보면 특정한 사람과 연관된 사람들 다수에게 손절하라고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삶의 지속이란 측면에서 보면 손절은 안 하는 것보다 무조건 이익이다. 그러고보면 무엇을 손절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계속 고민하는 게 요즘의 삶인 것 같다.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전은 부산 젊은 작가를 모아 소개하는 전시다. 나도 2023년 이 전시를 담당한 적 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젊은 시각 전은 성곡미술관에서 열린다. 포트폴리오 리뷰를 제공한단다. 부산에서 서울로 데려가 전시를 하니 더 좋은가? 포트폴리오 리뷰 크리틱을 붙여주니 더 좋은 건가? 서진석은 <공장미술제>로부터 배운 것이 별로 없는듯 하다. 공장미술제의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작가를 작가 대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비작가, 신진작가, 젊은 작가는 '지원이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로 전제한다는 것. 미성숙 리스트에는 '부산작가'란 정체성도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뜬금없이 문형배 헌법재판관과 관련해 '어른'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한국 사람의 심급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연공서열 추구 심리. 다른 하나는 어른이 상징하는 규범적 기준의 결여. 한국 사회에서 둘은 사실 하나이고, 그것이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들고자 하는 심리적 이유인 것 같다.
당시 생각했던 걸 기록 차원에서 노트한다. 청주 출장가는 길에 라디오로 탄핵 결정문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런 남의 일로 눈물이 난 게 10년도 더 됐나?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내 마음이 움직였던 건 탄핵되었다는 사실 자체 보다는 문형배 재판관이 읽어 내려가는 결정문 때문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지적했다시피) 가장 큰 이유는 그게 매우 쉬워서 귀에 쏙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감동적일 일인가? 나는 사실 헌재가 기가 막힌 법논리를 구사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여러 말도 안 되는 기각 사유들이 나돌고 있었고, 상식적인 근거는 전혀 힘을 쓸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논리는 뭔가 결함이 있어. 그래서 다른 더욱 정확하고 무결한 논리가 어딘가 있을 거야.
그런데 그냥 우리가 알던 그대로가 탄핵의 이유가 되었다. 여기에서 맥이 빠졌달까. 그래 내가, 우리가 알던 그 이유가 당연히 탄핵 사유가 맞아야 하는데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왜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바이든 날리면을 사는 시대를 너무 오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