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0일 금요일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2025)

★★★★★

2025년도 영화의 모범답안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

이타도리의 영역


주술회전 마지막에 와서 이타도리는 제대로 익히지 못해 불완전한 영역전개를 스쿠나에게 시전한다. 영역전개라 함은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이 적용되는 비현실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여 공격하는 최고 등급의 주술이다. 이타도리의 영역전개는 스쿠나를 끌어들여 자신이 어린시절에 좋아했던 장소, 가족의 기억, 지금은 없어져버린, 갈수도 없어진 그런 장소를 방문한다. 그저 그뿐이다. 다른 영역과 다르게 이 공간에는 공격 기능이 없다. 제대로 익힌 게 아니라 급조해서 엉성하다고 하는데, 스쿠나는 싱거워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면서 이타도리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사상최강의 주령에게, 절체절명의 순간, 고작 고안했다는 게 '좋았던 옛날 이야기'라니. 그 전까지 현란한 수싸움과 잔인한 묘사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런 식의 '급감속'으로부터 나름의 마이너스적 충격을 먹는다. 한동안 주술의 (폭력적인) 세계에 푹 빠졌던 독자는 절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주술-외-세계, 즉 너무나 평범한 현실이 너무나 무신경하게 쉽게 그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것처럼 오는 충격이 바로 그것이다. 헤이안 시대라는 상상적 폭력의 공간. 그 모든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던 라이프. 그 유명한 앗시발꿈. 기억 여행을 하던 도중 스쿠나는 이타도리에게 급발진하면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느냐고 분노를 퍼붓는다. 이타도리는 지금까지 밀리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그렇다고 하며 자신은 스쿠나를 당장 죽일 수 있다고 하는데, 독자들이 의아한 부분이 여기다. 전력으로 계속 밀리던 이타도리가 무슨 자신감으로? 왜냐면 넌 이미 죽어있기 때문에. 이미 주술이 믿어지는 시대는 지나갔기 때문에. 이타도리의 영역은 그런 의미에서 스쿠나의 존재 부정에 관한 사상이다. 만약 주령의 존재가 있다는 걸 믿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면 이타도리의 영역전개는 주령에 있어서는 최강일지도 모른다.

2025년 9월 25일 목요일

글쓰기

 


어떤 이에게 글쓰기는 정대만의 3점슛인 것 같다. 젊었을 때 남들 다하는 자기계발이든 돈을 벌든 스펙을 쌓든 하지 않고 허송세월 보내다가 어쩌다 칭찬받은 것이 끄적인 글. 이들은 글로 관심 받는 것 외에는 할줄 아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면, 어떤 이유에서건, 붕괴되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만이 치열하게 글을 쓴다. 경계를 넘고 발작을 한다. 좋은 글이 아닐지도 모른다. 순 자기중심적인 좁은 세계관에 따른 감정의 발산 자위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런 글에는 영혼을 때리는 무언가가 있다. 영혼을 때리는 무언가...!  영혼을 때리는 무언가라는 것이 무언가 엄청난 무언가란 게 아니다. 글을 봤는데 내가 원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없이 반응하게 되는, 무시하고 싶은데 결국 무시 못하게 되는 짜증나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게 그래서 그런 글이 '단도직입적으로' 좋은 건가? 말을 달리 해서, 자신 말고 타인이 그 글을 곱씹어도 될 정도로 가치있는가? 가치가 생길 예정인가? 그건 당위적인 차원인가 아니면 정치(전략)적인 차원인가? 애휴.. 이렇게 질문하게 되는 이유는 그 3점슛이 들어가지 않아도, 그 슈터가 당장 위태로워보여도 나에게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위협적인가..! 돌고 도는 질문. 영혼을 때리기 때문인데 그것이 정말로 큰 위협이라기보단 약간의 성가심을 만들어내는, 그 성가심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그것이 쉽게 봉합되지 않는 간극을 벌리는 그런 종류의 성가심. 

2025년 9월 8일 월요일

관계미학과 하마구치의 영화 관련 테제 3

테제 1. 하마구치의 워크숍 영화는 관계미학의 실천을 영화 매체에 이식한 형태다.

테제 2. 바쟁식 리얼리즘과 부리오의 관계미학을 접목할 때, 영화는 더 이상 재현의 매체가 아니라 관계 생성의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테제 3. 클레어 비숍의 비판(관계미학의 탈정치성 관련)을 끌어올 때, 하마구치 영화가 드러내는 미시적 갈등·심리적 긴장은 관계미학의 정치적 빈곤을 보완한다.

2025년 9월 5일 금요일

서울을 붙이는 작명 sense

코시노 미치코 - Wikipedia

03화 미치코 런던의 그녀는 정말 런던에서 살고 있었을까?

<<엑시빗>>의 어떤 글을 읽다가 'IMF 서울'이란 공간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됨. '큐레이팅 스쿨 서울'도 있고 '웨스 서울' 등등. 뒤에 서울을 붙이는 센스가 마치 90년대 내가 중학교때 양아치 친구들이 많이 입었던 미치코 런던을 떠올리게 한다. (지방에서 어른들 옷을 흉내내서 입는 중삐리는 다 양아치.) 일본의 미치코상이 런던패션위크에서 선보이는 패션브랜드 같은 센스의 작명인데. 일본의 영국 선망은 유명하다. 그렇담 한국 인디 공간의 서울 커밍아웃은 국뽕인가? ㅎㅎ 그렇다기보다 서울은 재발견된 도시라는 해설이 더욱 그럴싸하다. 이들은 누런피부의 하얀가면을 쓴 사람들이고 그 맥락에서 서울은 가성비 좋은 '힙'일지도 모른다. 애매하게 국뽕도 가능하고...

뉴스공장

뉴스공장 김어준의 대체제는 정준희인 것 같다. 위기의 시절엔 김어준이 필요하다. 평화의 시절엔..? 글쎄. <논>에서 테스트 끝나고 나면 번갈아가면서라도 좀 나오게 해라.

2025년 9월 3일 수요일

인간의 강도

바케모노가타리였나 잘 모르겠다. 맞다면 아라라기 코요미가 하는 대사 중에서 이런 말이 있다. "친구는 필요 없어. 친구를 만들면 인간강도가 떨어지거든." 이 말이 요즘은 다 이해가 된다. 어떤 일을 할 때 함께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게 효율적이다. 특정 누군가와의 친분이 판단미스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차라리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아무것도 지킬 필요가 없는 상태가 편한 것 같다. 어설프게 가진 결과는 고통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