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3일 금요일

중용

도올이 중용을 dynamic equilibrium이라고 번역하면 된다고 했다. 더워 죽겠는데 뜨거운 녹차를 마시면 더 덥다. 추운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더 춥다. 너무 차갑다면 뜨거운 걸 섞어야 하고 뜨겁다면 차가운 걸 그렇게 해야한다.

김용태 “수사기관을 정권에 종속시키는 악법···‘검찰 해체 4법’ 철회해야” - 경향신문

2025년 4월 28일 월요일

손절

손절은 보통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듯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삶을 보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하는 내부적 몸짓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요즘 보면 특정한 사람과 연관된 사람들 다수에게 손절하라고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삶의 지속이란 측면에서 보면 손절은 안 하는 것보다 무조건 이익이다. 그러고보면 무엇을 손절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계속 고민하는 게 요즘의 삶인 것 같다.

2025년 4월 15일 화요일

공장미술제로부터 배우지 못한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전은 부산 젊은 작가를 모아 소개하는 전시다. 나도 2023년 이 전시를 담당한 적 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젊은 시각 전은 성곡미술관에서 열린다. 포트폴리오 리뷰를 제공한단다. 부산에서 서울로 데려가 전시를 하니 더 좋은가? 포트폴리오 리뷰 크리틱을 붙여주니 더 좋은 건가? 서진석은 <공장미술제>로부터 배운 것이 별로 없는듯 하다. 공장미술제의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작가를 작가 대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비작가, 신진작가, 젊은 작가는 '지원이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로 전제한다는 것. 미성숙 리스트에는 '부산작가'란 정체성도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젊은 시각…’전, 서울서 석 달간 개최

2025년 4월 10일 목요일

어른 김장하

뜬금없이 문형배 헌법재판관과 관련해 '어른'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한국 사람의 심급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연공서열 추구 심리. 다른 하나는 어른이 상징하는 규범적 기준의 결여. 한국 사회에서 둘은 사실 하나이고, 그것이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들고자 하는 심리적 이유인 것 같다. 

2025년 4월 9일 수요일

대통령 탄핵 결정문 노트

당시 생각했던 걸 기록 차원에서 노트한다. 청주 출장가는 길에 라디오로 탄핵 결정문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런 남의 일로 눈물이 난 게 10년도 더 됐나?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내 마음이 움직였던 건 탄핵되었다는 사실 자체 보다는 문형배 재판관이 읽어 내려가는 결정문 때문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지적했다시피) 가장 큰 이유는 그게 매우 쉬워서 귀에 쏙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감동적일 일인가? 나는 사실 헌재가 기가 막힌 법논리를 구사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여러 말도 안 되는 기각 사유들이 나돌고 있었고, 상식적인 근거는 전혀 힘을 쓸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논리는 뭔가 결함이 있어. 그래서 다른 더욱 정확하고 무결한 논리가 어딘가 있을 거야.

그런데 그냥 우리가 알던 그대로가 탄핵의 이유가 되었다. 여기에서 맥이 빠졌달까. 그래 내가, 우리가 알던 그 이유가 당연히 탄핵 사유가 맞아야 하는데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왜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바이든 날리면을 사는 시대를 너무 오래 살았다.

2025년 3월 13일 목요일

소진된 인간

[#밥친구] 사랑한다는 이유로 과잉보호하는 집착 아빠 #이창훈 |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54 회 - YouTube

이 영상을 보면서 우리나라 문화적 제도, 특히 진보 계열의 입안자를 떠올리게 된다--여기에는 아르코의 포괄적인 예술인 지원을 포함해, 예술인복지재단 등의 여러 사업부터 시작해 사루비아다방이나 신사옥 같은 미대생의 '대안적 지원'을 기획하는 작은 공간도 포함된다. 점점 더 생각이 정리되어가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에 정말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건 그런 후보군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능을 사회가 애초에 너무 빨리 소진해버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대충 요약된 내용만 들어봤지 원문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들뢰즈는 소진을 그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가 근본적으로 철저한 낙관론자, 가능성에 대한 맹신론자여서 그런 것 같다. 오늘 같은 시대에 낙관론자가 되는 것은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는(생명의 온/오프) 생각보다 하기 힘들다.

2025년 3월 11일 화요일

설 익은 음식 먹기

국내산 써야 하는 '백종원 된장' 알고보니…또 악재 터졌다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걸 보면 다 같은 패턴이다. 미술계에서 신진이 과도한 주목을 받고 그 대가로 온갖 결점까지 증폭되며 자리를 떠난다는 '공식'은 요식업계 스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듯하다. 아무리 맛있는 품종의 과일이라도 설 익으면 쓰다. 처음에는 쓴지도 모르고 맛있다고 베어 먹는다. 그러다 이내 쓰다고 뱉는다. 품종은 폐기된다. 백종원의 사업 확장 욕심은 오로지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백종원이 애초에 그렇게까지 주목 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좀 더 실력을 키울 시간을 벌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너무나 빨리 뜨고 너무나 빨리 소진된다. 모든 게 백종원 본인의 탓일까? 왜 우리나라는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 같은 정말 위대한 개인이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