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6일 화요일

조나단 크래리, 「시각의 현대화」를 읽고

시각을 둘러싼 기술 및 담론역사적으로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한 관심. 서구에서 시각에 대한 지배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시각에 관한 서양의 지배적 사유가 낳은 몇몇 단절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고 하며 글을 시작.

시각을 둘러싼 기술 및 담론은 다음과 같다. 19세기 사진과 영화의 출현이 서양에서 장시간에 걸친 테크놀로지, 이데올로기적 발전 과정의 실현으로 보는 방식. 다시 말해 카메라 옵스큐라로부터 카메라로 진화, 그리고 영화가 출현했다고 보는 방식. 모든 단계의 관찰자-세계 간의 관계가 동일한 가정 속에 묶여 있음. 연속성, 진보 중시. (p.66) 따라서 이것을 설명하는 데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음.
  1. "르네상스 원근법과 사진 두가지 모두 '자연스러운 시각'에 전적으로 상응하는 객관적 등가물을 추구해나가는 과정 중의 일부가 된다" (p.66)
  2. 카메라 옵스큐라와 영화 둘다 관찰자의 위치를 규정하고 통제함. 수세기에 걸쳐 다듬어져 내려온 영속적인 권력 기구라는 것.(pp.66-67)

그런데 그는 여기서 카메라 옵스큐라가 역사적으로 차지하는 특수성을 밝히고, 카메라 옵스큐라와 영화/사진 사이에 엄청난! 단절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어함. (뒤는 그 논거들.)

그에 따르면,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말까지 거의 200년동안 카메라옵스큐라의 광학적 원리가 곧 관찰자의 위상과 가능성을 규정하는 지배적 패러다임이 되었다는 논의가 있음. 진리를 규정해주는 수단. 관찰자가 관계들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설정해 줌. (p.69) 17.18세기에 걸쳐 로티, 로크, 데카르트 3총사는 '옵스큐라가 탈감각화된 관찰자의 시점에서 진리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순수한 인식을 대변해준다는 믿음'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한 대표주자. 덧붙여 옵스큐라는 "내면성의 형이상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음. 외부세계의 능동성에서 고립된다는 뜻. (이상 옵스큐라의 일반적 설명.)

하지만 그는 19세기 초 옵스큐라의 효력이 상실되었다고 주장. 기념비적인 저작은 괴테의 『색채론』(1810).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신체가 시각을 가능케 하는 토대로서 도입되고 그러한 신체의 생리학적 활동의 비중을 인정하는 주관적인 시각 모델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관찰자의 신체가 시각 경험을 산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p.74)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다. (어떻게 어떻게 세계가 구성되어 있다가 아니라.) 눈 앞에 현상하는 어떤 이미지. 시지각 현상 그 자체를 말하는 것. 극단적인예로 "태양을 직접 바라보는 경험"에 몰두했던 학자를 듦. (만화경과 입체경을 발명한 데이비드 브루스터, 시각의 지속성을 연구했던 조세프 플라토, 현대 계량 심리학의 창시자 중 하나인 구스타프 페히너) 또한 윌리엄 터너의 후기 회화도 좋은 예. (p.75) 그리곤 19세기 과학 중 생리학의 발전, 잔상 등의 탐구, 푸코의 시기 구분에 대해 이야기하며 논거를 듦. 19세기 새로운 과학에 있어서 신체는 "선험적으로 생산적인 신체다."(조르주 캉킬렘) 그러니까 신체는 끊임 없이 움직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p.77)

그리곤 본격적인 이론이야기. 그는 선행 연구를 먼저 살피는데, 생리학이 "감각의 분리"를 낳았다고 하며, 이것은 다시 제임슨에 의해 시선 및 고도의 '자율적인 시각의 특수화'와 '노동의 특수화'를 대비됨. 하지만 크래리는 이 견해가 19세기 초 시각이 얼마나 철저하게 바뀌었는지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하며, 뮐러 모델(특수 신경 에너지 이론)을 제시.

그에 따르면 뮐러 모델은 "서로 다른 감각의 신경들은 생리학적으로 구분된다."는 것임. 그러니까 혀로 치면 신맛, 단맛 등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따로 있다는 것임. (전기를 시신경에 적용하면 빛에 대한 경험, 피부에 적용하면 촉감을 산출) 또하나 중요한 것은 "일정한 감각 신경 내에서 여러 다양한 원인들이 동일한 감각을 산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함.(p.83) 그러니까 빛에 대한 감각이 현실적 빛과 아무런 필연적 관계가 없다는 결론. 여기서 옵스큐라 모델은 무너지게 된다. "빛에 대한 경험은 이제 어떤 고정된 준거점이나 혹은 어떤 원천 내지 근원--즉 그것을 중심으로 세계가 구성되고 파악될 수 있을 그런--으로 저근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p.84)

블라블라 그러니까 시각이론이 신체를 도입, 새로운 관찰자가 탄생하게 된다. 그것은 "관찰자는 인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극 및 정상화과정들의 대상이며, 그 같은 자극 및 정상화 과정들은 주체를 위해 경험을 산출할 수 있는 본질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pp.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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