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3일 화요일

[인터뷰]굿, 삶과 죽음의 틈새를 대면케 하는 예술 – 미술가 박찬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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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삶과 죽음의 틈새를 대면케 하는 예술 – 미술가 박찬경 #2
By 송 현민 (Song, Hyun-min) on November 13, 2012


‘아시아 고딕’, 한국적인 것에 대한 상상력

『갈림길』 상영 이후 박찬경은 제작과정과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렉쳐를 가졌다. 박찬경은 현대미술가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의 작품을 빌려와 굿에서 느낀 종교적 숭고의 감정을 말했다(사진 10).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미학을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 19세기 서구 낭만주의의 시선과 개념을 빌려온 ‘한국적 낭만주의’, 이와 같은 선상에 있는 ‘아시아 고딕’ 등 개념적 조어(造語)을 설명하기도 했다. 중국의 감독 호금전(1931~1997)과 태국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1970~)이 만든 ‘오늘날의 영화’에 차용된 ‘전통적인 이미지’를 예로 들며, 전통의 현대화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각 국의 ‘전통활용법’을 논하기도 했다.
『그날』과 『갈림길』이라는 영화의 건축물을 지었던 설계도를 공개하면서도 박찬경은 본인 영화의 ‘심장’은 죽음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강조한다. 파주 적군묘지, 죽은 자 위에 또 죽은 자가 묻히고, 묻히면서 망각된 죽음과 역사는 결국 산자들의 삶을 위한 것이라며 렉쳐는 마무리되었다.

강연을 재밌게 보았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를 이끈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 등의 그림이 굿을 소재로 한 영화에 영감을 주고 활용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보통 이런 과정을 거쳐 구도를 잡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죠. 카메라 앵글을 잡을 때, 어떠한 그림이 떠오를 뿐이지 그림과 촬영 장면을 일대일로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신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게 됩니다. 가끔 의식적으로 그렇게 선정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사진 11과 12).”





보통은 ‘우리 것’을 보여주는 작품에 ‘우리 것’만 담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동서양의 구분 없이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숭고의 감정이라고 할 때, 이것은 동서양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인데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프리드리히와 진경산수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사진 13과 14).”





박찬경은 서양미술사의 한 축을 이룬 19세기 낭만주의와 진경산수화의 교차지점에서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감정은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적 낭만주의’라는 그만의 조어(造語)가 가능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외래의 개념과 용어를 우리 문화에 끌어오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저는 남의 것처럼 되어 있는 ‘우리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우리 것’보다 더 친숙한 서양의 용어와 개념을 가져와 우리의 전통문화를 바라보며 다가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괜찮다’는 대답에 내재된 위험성 같은 것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우리의 것을 그들의 시선으로 재단하는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문제도 걸릴 텐데요.
“위험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위험성을 너무 두려워하면 안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값싼 오리엔탈리즘들은 물론 문화를 저해시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담론의 비판이 두려워 저와 같은 시도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월드뮤직은 민족음악의 고유성, 그리고 그것의 보편화를 위해 전 지구적으로 음악의 유통을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시선과 구미에 맞췄다는 점에서 비판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의 이런 작업과 비교가 되지는 않겠지만 김수영 시인은 『거대한 뿌리』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과 비슷한 차원인거 같아요. 지금 전통은 너무 멀리 있기에 어떤 형태로든지의 접근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들이나 예술가들이 실제로 오리엔탈리즘담론 비판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예 전통문화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것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툴이라면 우리의 것이 아니어도 응용하여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창하는 ‘한국적 낭만주의’ ‘아시아 고딕’은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고딕’에서 ‘고딕’ 또한 18-19세기 서구에서 유행한 ‘네오-고딕’ 문학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고딕은 산업사회에 대한 좌절감,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감, 자연에 대한 깊은 감정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감정이 서양에만 있지는 않았잖아요. 동양과 서양의 구분을 떠나 어디에나, 어느 시대에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죠. 우리의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그런 툴을 가져다가 우리의 것을 더 잘 볼 수 있다면 못 쓸 이유가 뭐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악계에서 현대화라는 명목 하에 뿌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창작국악은 이제 상품으로 유통되기도 합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전통문화·민족문화를 응용·변용한 작품들은 사회참여적인 모습을 강하게 띠었다면, 현대화되는 오늘날의 전통문화는 이런 정신보다는 스타일과 상품화에 대한 추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상업화와 상품화는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상품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예술의 기능과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죠. 예술에서 산업의 색채를 벗겨내야 한다는 것은 편협한 사고인거 같습니다. 산업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그 안에서 좋은 예술을 할 수 있고, 싸움과 투쟁이 가능합니다. 아마 1970년대와 1980년대처럼 전퉁문화가 사회참여의 도구로 활용되는 시기가 또 올 것입니다. 정치적인 운동이나 사회의 변혁이 새로운 문화의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거니까요. 그럴 때 그런 정신이 생기고, 지속되다가 변화되는 시대에 맞춰 또 다른 변주를 만들 것입니다.”

라라 / L A R A d a – Life is LARA! / www.lara.kr
예술의 웰빙을 위하여
박찬경은 자신만의 작은 우주, 미술가(家)에 머물러 이미지의 집을 짓고, 다시 미술가(街)라는 길위에 올라 끊임없이 걷는다. 그 걸음은 미술과 세상, 미술과 삶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고 뚜렷한 길을 낸다. 이 땅의 미술가들의 보편적 행복을 위해 수많은 길과 교차로를 만들고, 보고 보이는 것을 빚어내는 이들을 그곳으로 불러 모은다. 2004년, 공사가 중단된 흉물스럽게 방치된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 퍼포먼스를 했던 것도, 『국제전시, 문화 세계화의 한국적 굴절과 전유』, 『한국미술의 ‘비판성’과 작가의 ‘관심’-민중미술과 현재』와 같은 미술담론에 관한 논문을 꾸준히 생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무엇보다 영화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표현에 있어 사진, 영화, 교육,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글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합니다.
“저의 작업은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향해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예쁘다’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풍부한 이미지입니다. 현상의 핵심을 찌르는 이미지를 얻고 싶은 욕망이 늘 있어요. 영화 한편 다 보고 난 뒤에 전체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장면을 기억하잖아요. 그렇게 기억에 맺히는 ‘그림’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겠죠.

만약 미술을 안 했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습니까.
“아마 영화를 일찍 더 만들었지 않았나 싶어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습니다. 주로 무엇을 가르칩니까.
“요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실기수업을 맡고 있습니다. 교육의 현장에서 난점을 많이 느낍니다.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매번 뿜어내는 총체적인 변화와 자유인데 무의식적으로 규범과 과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예술이 생기있게 나오는 경우가 드뭅니다. 단지 예술이 나 자신, 나의 삶과는 별개로 저기 있는데 어떻게 다가갈까를 주로 고민하는 것 같아요.”

작업의 대상이 되는 근현대의 시간층은 본인의 삶을 이루는 한 지반이면서도,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삶을 이루고 있는 지반이기도 합니다. 본인의 작품을 보는 학생들의 반응과 호응이 궁금합니다.
“학생들이 오히려 제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거 같습니다. 달리 생각해 본다면 제가 작품에서 제시하는 외래문화 수용의 문제는 미술(교육)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서양예술의 내용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과 박물관 제도와 경영방식, 시장, 비평과 저널 등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뼈대를 갖추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한국예술의 제도, 제도가 빚어낸 복합체를 믿지 말라고 해요. 그들은 몇백년 동안 쌓아온 전통 속에서 그것이 서로 맞물리면서 구축한 구조가 있는데 우리는 형태만 만들었을 뿐 실제로 그들의 구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걸 깨고 다른 것을 하자기보다는 그런 것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고, 학생들에게도 그런 불신의 자세를 갖도록 합니다.”

문화부장관이 된다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문화부 장관이 된다면’ 예술가들의 복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겠습니다. 지금 문화예술 관련 기금이 작업의 성향과 장르에 대한 고려 없이 배정됩니다. 전체예산의 1%에 해당되는 문화예술 예산 중 1% 안에서도 실제적인 창작에 대한 지원은 얼마 되지 안 됩니다. 어느 지자체나 정부나 문화예술을 존중한다고 하고, 문화도시를 표방하지 않는 지자체가 없는데 참 모순인거죠.”

본인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너무 어려운데요. 아름다움이란 유토피아와 관계된다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는 때로는 위험하기도 해요. 그 안에 내재된 정치적인 것들이 잘못 빚어지면 파시즘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그러나 상상을 정치와 자본에 빼앗긴 시대에 예술에서마저 그런 상상을 하지 않는다면 끔찍할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유토피아를 상상하기위한 도구라고도 볼 수 있겠죠.”

미술인으로써 국악인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미술작품이 있습니까. 혹은 관계된 그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박생광, 민정기, 오윤 등의 그림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사진 15, 16, 17). 또한 김지하 시인의 일관된 관심, 즉 아시아의 정체성이 어떻게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번쯤 짚어 봐야하는 중요한 사상가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최인훈, 김성동, 황석영 등의 작품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소재들과 민담 등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찬경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국악에 관한 직접적인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또한 그를 향한 질문에 ‘국악’이라는 단어를 얹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박찬경의 작품과 답변은 국악의 역사 속에 있는 명암의 ‘갈림길’을 떠올리게 했고, 이내 국악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가동시켰다. 본 인터뷰의 소실점은 여기에 맞춰지기를 바랄 뿐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살펴본 그의 작품들과 에서 발표한 『갈림길+아시아 고딕』을 통해 그의 이름은 필자에게 ‘찬·경(鏡)’ 즉, 차가운(찬) 거울처럼 느껴졌다. 그의 예술은 이 땅의 역사(史)에 익명으로 죽어간 것(死)을 비추는 거울이며 역으로 죽음(死)의 은유를 통해 산 자들의 역사(史)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언어유희에 담긴 은유를 고수하기로 했다.
그런 점에서 박찬경의 예술은 반성의 기술을 담고 있다. 그 반성의 기술이 근대화라는 다리를 건너온, 아니 아직 도착지점에 당도하지 못한 오늘날의 국악이 고개를 내밀어 취해야 할 요소라는 생각이 인터뷰를 정리하는 지금, 아득히 밀려온다.

편집자 주
오리엔탈리즘 원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타난 동방취미(東方趣味)의 경향을 나타냈던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박찬경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997년부터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1997), <세트>(2000), <파워통로>(2004), <비행>(2005), <신도안>(2008), <그날>(2011)과 <갈림길>(2012) 등을 발표했다. 1997년 금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쌈지아트스페이스, REDCAT, Atelier Hermes, PKM 갤러리, Akademie Schloss Solitude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04년 에르메스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2010)로 전주영화제 한국장편부문 대상을, <파란만장>(2011)으로 2011년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 도움을 준 FESTIVAL BOM의 성민경 팀장님, LIG ART HALL의 박은영 매니저님, 그리고 BOL PICTURE의 김민경 PD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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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터뷰]굿, 삶과 죽음의 틈새를 대면케 하는 예술 – 미술가 박찬경 #2|작성자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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