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1일 토요일

an Interview with Stanly Carvel by Charles Stang (1997)

(source: http://apra01.tistory.com/m/post/3)

(이 인터뷰는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 중 발췌한 것인데 최근에 출간된 스탠리 카벨의 영화철학서인 '눈에 비치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올린다. '눈에 비치는 세계'를 읽기 전에 일독을 권한다.)


생에 대한 철학적 성찰

스탠리 카벨은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대체하려고 전념했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들을 자신의 작업의 주요 주제로 삼았다. 카벨은 비트겐슈타인이 전념한 일에서 해방의 의미를 찾으면서, 그를 철학의 거품을 빼 종말에 이르게 한 사상가라기보다는 새로운 대화를 펼친 매력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철학자로 읽는다. 카벨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의 유효성>에서 이러한 비트겐슈타인 독해의 윤곽을 그리는데 이 글은 그의 첫 번째 책인 <우리는 우리가 말한 것을 의미해야 하는가>에 실려 있으며, 그 논문은 더욱 발전되어 그의 주저인 <이성의 주장>의 첫째 장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철학과에서 카벨의 작업으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이다. 그것은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작업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그외에도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에서 해방의 의미를 인식하고 자신의 다른 철학적 관심 속에서 해방의 의미를 입증하려고도 한다. 그는 우리 자신의 철학적 요구에 주목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을 읽기 때문에 그 자신이 철학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에 개입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서전적 목소리와 광범위한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고 특징적인 문체로 글을 쓴다. 카벨은 특히 존 오스틴 같은 20세기의 저명한 철학자나 자신이 관심을 가진 것을 다루는 다른 사상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논쟁을 하려고 한다. 특히 <월든의 의미>과 <이 새롭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아메리카>는 소로와 에머슨과 싸워서 얻은 결과물이다. 카벨은 20세기 그리고 미합중국인으로서 그가 가진 관심과 공명하는 것으로서의 ‘일상’ 또는 ‘상식’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카벨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러한 것들과 대결해 그것들의 사유에 있어 ‘문학적’ 특징을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것으로 정의하려 하고, 그것들의 사유가 미합중국적인 특징을 가졌음을 밝히려고 한다. 카벨은 철학에 있어서 미합중국적인 것의 특징을 밝히려는 시도를, 북아메리카와 유럽 대륙의 전통에서 공유되고 있는 것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와 연결시킨다. 그가 하이데거를 힘주어 읽는 것도 이런 시도의 한 부분이다.

카벨은 부분적으로 우리의 문화에서 회의주의가 드러나는 방식을 규명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그의 초기 저작 이후로 그의 사유에서 자리를 잡아가는데, 이는 <우리는 우리가 말한 것을 의미해야 하는가?>의 에세이와 <인식하기와 인정하기>, <사랑을 피하기: 리어왕 독해>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에 대한 후기 저작에서도 표출된다. 그는 <이성의 요구>에서 타인의 정신에 관련된 회의주의가 어떻게 비극에 이르게 되는지 보여준다. 카벨은 그의 영화에 대한 저작인 <눈물 경쟁: 미지의 여인에 대한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에서 멜로드라마를 회의주의의 표현으로 해석하고, <행복의 추구: 재혼에 대한 할리우드 코미디>에서 초기 할리우드 코미디를 회의주의적 충동을 극복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 확장되는데 특히 그의 초기 저작인 <보여진 세계>에서 영화 존재론을 탐구한다.

카벨은 1925년에 태어나서 버클리대학에서 음악으로 학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버클리대학에서 6년을 가르쳤고, 하버드로 돌아와 미학과 일반가치론을 가르치는 월터 가보트직 교수가 되었다. 1997년에는 명예교수가 되었다.

Interview
by Charles Stang in 1997

질문자: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1996년에 선생님과 리 처드 모린 교수님은 선생님의 책인 <이성의 주장>을 함께 강의하셨습니다. 이는 그 책이 출판된 이후 그 책을 체계적이고 진지하게 다시 읽는 첫 번째 독해였습니 다. 그것은 선생님이 비트겐슈타인과의 만남을 정의하는 일에 복귀한 것이라고 표 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돌아간 이유는 무엇이고, 중요한 면은 무엇입니까?

카벨: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 책이 출판된 이후 제가 그 책에 대해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첫 번째 독해입니다. 그 이유에 대한 질문은 저에게도 흥미로운 것인데요. 저 역시 저 자신에게 물어봤기 때문입니다. 저는 즉각적이고 실제적인 답변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그러한 질문이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하버드대학 철학과에서 이 책으로 강의하기 위해 상당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누군가 어떤 학문 분과에서 중요한 책을 썼다면 그것을 매우 가르치고 싶어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체계적으로 가르칠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게 많은 것을 깨우쳐주는 말벗인 리처드 모런이라는 선생님의 존재가 없었다면 저에게 그런 기회는 없었을 겁니다. 저는 그에게 관심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나 자신의 반응에서 벗어나 이러한 인재의 젊고 색다른 음성을 듣는 것은 제가 바라던 일이었지요. 그것은 저에게 창조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동료인 리처드 모런에게 큰 빚을 진 것이죠.

저는 이 책이나 이 책의 일부분으로 강의를 하면서 제가 썼던 것을 가지고 강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느낌은 제가 써왔던 다른 책으로 강의할 때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과학도 아니고 논리도 아닙니다. 저는 누군가가 똑바로 했는지 못했는지 계도하는 경찰관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물론 맞는지 틀렸는지 여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저자 입장에서 보면 그 어떤 반응도 제게는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 생겼던 개별적 반응이 제가 이해하려고 했던 그 무엇일 수 있습니다. 조금은 낯선, 스스로의 말을 듣는 기회를 넘어 다른 두 가지 외부적인-정말 외부적인 것일까 싶지만-이유 때문에 저는 제 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1996년에 <이성의 주장>의 프랑스어 번역본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 번역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작업은 지난 10년에서 12년이 넘는 다양한 시간대에 걸쳐 진전됐다가 중단되고 연기되었습니다. 다른 언어로 옮겨진 이러한 구절들을 사유하는 것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며, 전혀 기뻐하지도 않을 때에 느껴지는 낯설음 같은 것의 또 다른 원천이었고, 텍스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또 다른 측면은 은퇴하기 전 저의 마지막 학기를 기념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르치는 일이라는 공적인 영역을 끝내는 것은 저에게 책을 쓰는 삶으로 모든 것을 되돌리라는 제안과 같습니다. <이성의 주장>은 저의 박사논문으로 깊숙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제가 가장 나중에 한 작업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하나의 텍스트만 해야 한다면 그 책을 할 겁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고요.


질문자: 선생님과 비트겐슈타인의 만남은 그의 <철학적 탐구>와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확 실성에 대하여>, <종교적 믿음에 관한 강의> 또는 <문화와 가치> 같은 다른 후기 저작들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그것들이 <철학적 탐구>보다 모자라 다고 생각하시나요?

카벨: 첫 질문에 대해선 답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성의 주장>에 대한 강의를 생각하지 못한 것은 저의 텍스트가 <철학적 탐구>에 나온 구절들에 대한 주석이라는 한계 때문이었고, 그것 때문에 저는 비트겐슈타인으로 되돌아갑니다. 어떤 점에서는 제가 비트겐슈타인의 글에서 정말 떠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항상 떠날 뻔하거나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후기 작업에 대해서는 왜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좋은 질문입니다만 그 질문은 왜 초기 저작들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입니다. 전 당신의 말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유보하는 것의 예외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저는 <문화와 가치>에 있는 저널 표제어에 대한 수필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두 번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쓴 글이 <카벨 독본>에 실린 “철학적 탐구 그 자체의 일상 미학”인데,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글을 써보려던 첫째 시기를 대표합니다. 그 글에서 저는 비트겐슈타인의 취향을 부분적으로는 독일 낭만주의와 직접적으로 관련시킵니다. 그러한 연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져서 사람들이 충격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제가 비트겐슈타인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나 그를 계속 다루지 않는 이유일 겁니다. 저는 작은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를 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봅니다. 또 누군가 때문에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면 저는 기꺼이 해봅니다. 또 누군가 비트겐슈타인이 신실용주의자라고 말하거나 그런 종류의 글을 쓰면 제가 실용주의 학회에서 발표했던 소논문에서 했던 것처럼 저는 그 부분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싶어집니다. 저는 제 자신을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철학적 탐구>의 매력이 제 삶을 바꾸어놓으며 엄습해왔던 시점 이전에 그가 철학적으로 할 수 있었던 일에 감탄만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다른 저작들 역시 흥미로웠고 저를 고무한 것은 확실하지만, 제가 <철학적 탐구>에서 좋아했던 어떤 것들을 <확실성에 대하여>에서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 책은 <철학적 탐구>에 비하면 빈약해 보이지만, 그 책을 왜 <철학적 탐구>와 비교해야 합니까? 저는 그 책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만 그 책을 비교하는데, 그러한 비교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저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사소한 차이나 사소한 장점을 지적하는 것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저에게는 믿을 만한 철학적 능력을 가진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이 저에게 이러한 텍스트들에 대해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억지로 흥미를 가지게 만들 수 없지만, 제가 읽지 않았고 사유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 자신이 동요되도록 놔둘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다시 빠른 속도로 관심이 생기고 있는데, 그 관심의 대부분은 비트겐슈타인에게 되돌아갈 것입니다.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제 자신을 그러한 방식으로 가도록 해본 겁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은 것에 대해 <문화와 가치>에서 비트겐슈타인이 분명하게 언급한 것이 없다는 점과의 연관성에 있어서, 저는 1996년에 세계 셰익스피어 학회에 초대받아 <우상 파괴로서의 회의주의>라는 논문을 써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는 <철학적 탐구>를 전체로서 보려고 기획하면서 의도치 않게 비트겐슈타인을 문화철학자로서 이해하게 되었는데-이는 <이 새롭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미합중국>에 실려 있습니다-이를 통해 제가 잘 안다고 생각하여 완전히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그 텍스트에 대한 관심이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극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로부터 그러한 측면으로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사유해왔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그러한 지적을 받는 주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유해오지 않았고 충분히 그렇게 사유한 것도 아니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사유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철학적 탐구>를 슈펭글러의 저작과 함께-어떤 점에서는 하이데거와도 비교했는데-사유해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저는 그 사유를 끝까지 밀어붙여보려 했던 겁니다. 그 때문에 저는 비트겐슈타인으로 돌아갔고, 그에 대한 작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의무감 없이, 열정 없이, 나는 완전했다고 말하는 일은 제게 일어나지 않았으며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양해를 구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대답했어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고 느낄 때뿐일 겁니다. 그것이 제 잘못이 아니라면, 보다 완전해지는 것은 상황의 균형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는 아닐 것입니다. 그게 제 잘못이라면 계속해야 할 까닭이 없을 겁니다.

질문자: 비트겐슈타인을 종교철학자로서 전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영역을 파악했다는 점에 만족하십니까?

카벨: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만족해야 할 것이 없는데요. 저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에 대한 2차 문헌에 관해 잘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기 참 멋쩍습니다만, 저는 일찍이 그 부분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제 세대는 이러한 관점을 고수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에서 <청갈색 책>에 대한 저의 리뷰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에 대한 수용에 있어서 상당히 때이른 것이었습니다. 제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의 가능성”에 대해 글을 쓴 것은 40년 전이었고, 철회할 수 없었던 무엇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박사논문에서 강력하게 제기한 노선이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을 통해 제가 취했던 노선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은 종교적인 본능, 소망, 신학적 소명으로 우리를 유인합니다. 그의 제자들도 그 점을 알고 있었고, 그러한 점을 그의 텍스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까다롭게 구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적 탐구>에서 그러한 경향을 느꼈고, 거기서 저는 스스로 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관심에 관해 그가 가졌을지도 모르는 것을 시험해봐야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종교적 문제에 대해 비교적 격식이 없었지만, 종교라는 주제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명백하기 때문에 저는 사람들이 그 문제에 반응하는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저는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성에 대해 한마디 하기 위해서 그의 주요 저작을 훑으며 그들의 방식대로 작업해야만 한다고 할 정도로 청교도식으로 엄격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 진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제가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는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어떤 필자가 힐러리 퍼트넘만큼 강력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저는 그것이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인지에 관한 것만큼이나 그가 말한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저 역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껏 이루어진 수많은 작업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제 나이에 당신이 저에 대해 정통해야 하는 것과 같은데, 누군가 제 손에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신학적 독해를 쥐어주면서, “여기, 이것은 당신이 생각하지 못한 거네요,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저는 기꺼이 그 성과물을 볼 것입니다.


질문자: 도덕적 완벽주의에 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저작에 지대한 관심을 가 지고 있는 스티븐 뮬홀은,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에머슨, 소로 같은 인물들의 완 벽주의적 사유는 종교적 사유로 서서히 변해가거나, 종교적 사유가 드리워지곤 한 다고 말합니다. 도덕적 완벽주의와 종교는 어디에서 만나며, 그렇게 만나게 될 때 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종교가 완벽주의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까, 완벽주의가 종 교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까?

카벨: 저는 에머슨적인 완벽주의 사상이 분명히 철학에 자극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단철학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요청했듯이 철학이 우리의 삶의 방식과 관계 맺기를 원했던 것뿐만이 아니라, 보다 더 엄격하게는 철학 그 자체가 삶의 방식이 되길 원했습니다. 에머슨은 매우 장구하고, 매혹적이며, 고결한 철학적 사유의 전통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의 대체물이었지만, 종교와 투쟁하는 철학의 한 부분이 되고, 인간 존재의 토대를 이루는 데에 있어서 종교와 투쟁하거나 경쟁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머슨은 결국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에 종교계를 떠났습니다. 그는 최후의 만찬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이후에는 예수라는 인격성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종교와의 결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텍스트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내부에 분명히 종교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을 권하는데, 적어도 저는 그러한 점에 매혹되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에머슨에게 몰입하거나 소로에 대한 작은 책을 쓰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그러나 몰입할 수 있는 저만의 방식을 발견하게 되자, 에머슨의 텍스트로 주기적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질 뿐 아니라, 되돌아갈 필요가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 두 사람의 글쓰기를 조명하면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에머슨에 대한 저의 관심은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에 대한 저의 관심과 동등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러나 에머슨을 통해 <존재와 시간>과 <철학적 탐구> 사이의 연관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연관성은 두 사람 모두 완벽주의적인 작품을 쓰고자 했던 것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런 일반적인 연관에서 완벽주의적인 것이 의미하는 것은 주로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 텍스트는 저자로서의 글쓴이 각자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들은 독자에게 대부분의 철학적 텍스트가 지우지 않는 특정한 요구를 지우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글쓰기에서 현저한 열정에 응답하라는 요구라 부릅니다. 그것은 독자로부터 드러날 것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둘째, 두 텍스트는 모두 인식론과 형이상학뿐 아니라 종교, 도덕, 미학과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를 철학의 전통적인 영역의 하나로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제가 ‘철학 자체’로 불렀던 그 무엇에 대해 각자가 쓰고 있다고 해서, 저는 그러한 것이 간명하거나 분별 있는 고양감을 표현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강단철학의 프로그램이 고무할 수 있거나 고무해야 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유할 가치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에머슨적 완벽주의에 종교적 측면, 함의, 저의, 함축이 들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제가 들었던 질문은 그러한 사유에 상반된 것입니다. 당신은 제가 처음부터 긍정이나 부정으로 대답하고 싶어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굉장히 중요한 것은 플라톤과 상반되는 점인데, 에머슨이 물질을 표상하는 데 있어서 혼의 여로에는 필연적이고 목적을 가진 상태가 없습니다. “모든 원 주변에는 다른 원을 그릴 수 있다”에서처럼, 그것은 에머슨에게 완전가능성이 없는 완벽주의인 것입니다. 완전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독특한 점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그가 특징으로 삼은 것입니다. 제가 이들 텍스트의 “요구”라고 부르던 것을 “치료”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철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학으로부터 치유를 받아야 한다는 이런 제안들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순수이성비판> 같은 텍스트가 분발하게 하는 점과 구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종교적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보아야만 한다고 할 수 있는 반면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계속해서 그 책이 도덕적이거나 신학적인 저작이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그러나 그가 수없이 부인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하이데거가 이 점에 대해 거듭 부인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즉 하이데거는 거듭해서 부인하지만 우리는 그 책에서 도덕적이거나 신학적인 열정이 존재한다는 점을 감지합니다. 제가 에머슨적 완벽주의라는 문제를 꺼내고, 그것이 제가 재혼 코미디라고 부른 영화장르에서 탐구되는 도덕적 삶의 영역임을 알게 된 것은-사후에나 의식적으로 이것을 깨닫고 놀란 점에 대해 과소평가하기보다는-바로 <후한 조건과 후하지 못한 조건>에서였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저는 그 영역을 <행복의 추구: 재혼에 대한 할리우드 코미디>에서 다루었습니다.


질문자: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면 하이데거의 사유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보입니다. 하이데거는 많은 철학자들에게 나치에 참여했다는 이유 때문에 터부시되는 인물입니다. 그의 정치학을 감안하면서 어떻게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셨는지 말씀해줄 수 있으신지요. 이 문제를 보다 확장된 문제와 연결 시켜, 철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저작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카벨: 그 전체 질문에 대해 제가 모두 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요? 제가 일부라도 대답할 수 있을지 봅시다. 제가 읽었던 하이데거의 텍스트들에 대해 지금처럼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 철학과 영어권 철학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저는 하이데거에 대해 무엇인가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럽에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예외적으로 부분적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조금 있지만, 유럽 철학자들 그 누구도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가장 매혹적인 예외라면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얀켈레비치가 될 수 있을 텐데, 대담하고 다재다능한 사상가이자 빼어난 작가이며 음악가인 그는, 나치즘이 대두되자 독일어로 쓰여 있던 그 무엇도 읽지 않았고 독일 음악도 듣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희생을 통해 40권의 책을 만들었지만, 어쨌든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많이 읽히지 못한 점도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 음악이라는 주제에 대한 그의 많은 저서 중 두 권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는 그 주제에 있어서 특출한 인물입니다.

하이데거의 과거를 알고 있거나, 그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해 알거나, 그의 과거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점이 고통을 야기한다 할지라도 하이데거를 읽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철학자의 삶과 그의 철학함이 관련된다는 점에 대해 일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요? 철학에 대한 어떤 사람의 개념에 대해서, 그리고 철학에 대한 그 사람의 야망에 대해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철학자들이 철학자의 저작과 삶 사이의 연관성들에 대해 개략적으로라도 알려줄 의무를 떠맡아야 한다거나 그 의무를 수행하는 버릇이 간단한 경우에도, 보편적으로 또는 보다 광범위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경우, 그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것조차 무엇인가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한 철학자가 악의적인 정치에 연루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이 악의적인 정치학으로 보였으며 그렇게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단적이고 선정적인 경우입니다. 하이데거의 언어가 정치-형이상학적 영향력을 아우르는 운명에 궁극적으로 전념했던 언어, 나치즘으로 묘사될 수 있는 언어에 근접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이데거에게는 그렇게 이용하기 쉬운 으스스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합중국인이자 유대인으로서 저는 하이데거의 니체 강의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 강의는 니체에 대한 해석의 기준을 제시했는데, 니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학자가 없었으니 유럽의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에 응답을 해야 했습니다. 하이데거가 특별하게 청년 니체를 추천한 강의들에 관심이 가는데, 청년 니체는 에머슨의 저작들에 아주 노골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36년 독일에서 하이데거는 언어 해석에 있어서 무한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는 에머슨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소로의 <월든>이 어떤 철학적 저작보다 하이데거의 특정 텍스트에 의해 보다 본질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점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건축함, 거주함, 사유함> 같은 에세이를 인용했지만 관련된 소논문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연관성이 미합중국인의 저작을 타락시키거나 독일인의 저작을 되찾아주는 역할을 하게 될까요? 하이데거의 저주받은 운명이 관련되어 있는 한, 전체주의 운동이 환기될 때나 그것이 연상될 때마다 그에 대한 비난은 살아날 것이고, 철학은 그 자체로 하이데거의 몰락에 의해 의문시될 것입니다. 하이데거가 철학을 상속받은 유일한 방식이어서가 아니라 서양 철학의 주요한 부분을 진정으로 상속받았다는 점에서, 철학은 전제정에 굴복했던 것입니다.


질문자: 영화는 1970년대 초반 이후로 선생님의 주 관심사였는데, <철학의 정점>이나 가르치시는 수업들을 보면 오페라로 관심이 바뀌신 것 같습니다. 오페라의 어떤 면에 철학적으로 관심을 가지시는 건가요? 그것과 영화에 대한 관심은 어떤 관계가 있는 지요?

카벨: 오페라와 영화는 모두 호소하는 감정의 수준이나 관객의 범위에서 그것들이 창조된 시간과 장소를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내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이전에 이야기했습니다. 영화는 철학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영화는 철학이 현상과 실재에 대해, 행위와 인물들에 대해, 회의주의와 독단주의에 대해, 존재와 부재에 대해 말해왔던 것을 다르게 조명하거나 조명할 점을 이동시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페라가 철학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페라가 이전보다 더 철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페라는 주요하게는 니체와 키르케고르 같은 철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데카르트 이전 세대가 일상 언어의 의미를, 세계와 우리의 관계를 잘못 조작하는 것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비극들이 출현한 10년 동안에 오페라가 생겨난 것은 인간의 목소리에 대한 찬양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이 철학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추방된 경로를 밟아가면서 제가 철학에 대해 가지게 된 의미와 오페라가 관계된다고 생각했던 점입니다. 저는 당신의 첫 번째 질문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서, 근래 제가 어떻게 오페라에 대해 지적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음악에 다시 지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오페라에 대한 강의를 해오면서 미합중국의 뮤지컬 코미디에 새롭게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 직접적인 결실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물 속에 있어 보이지 않는 돌을 밟고 건너야 하는 것과 같이,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에 이르게 된 겁니다. 어떠한 재능이, 어떤 문화가 스스로를 그러한 방식으로 표현할까? 어떠한 사람들이 오페라를 상연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까? 누가 오페라를 쓸까? 그것은 대중예술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급예술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페라는 미합중국이 창조할 수 있는 높은 대중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급한 대중예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뮤지컬 코미디, 재즈, 영화 같은 것에 대해 저에게 묻는 것은 미합중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같으며, 그런 물음은 저의 현재 저작 전반에 관한 물음인 것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철학에 전념한 것은 어느 정도는 제가 항상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저의 고민을 쓰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저작, 특히 영어권의 분석철학의 시야 내에 머물러 있는 저작을 쓰기 위해 분석철학의 시야 내에서나, 그 시야에서 철학을 매체로서 이용하는 것은 제가 결코 이용하지 않을 삐뚤어진 방법일 것입니다. 저의 고민을 쓰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는 것은 저에게 다양한 이유와 다양한 방식에서 저를 분발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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