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5일 토요일

백남준, 미디어의 기억 (1992), 에디트 데커 편, 말에서 크리스토 중에서

백남준은 이 글에서 복수의 언어를 구사하는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식민지 시기 학교를 다녔던 백남준은 약자의 입장에서 한국어를 금지당하고, 대신 일본어를 사용하길 강요당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미디어에 대한 모든 연구는 언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언어에 대한 내 기억은 마치 모자이크와 같다."(24쪽)

언어란 미디어를 통해, 인간은 세계와 조우한다. 그런데 이때 각 언어는 이종적이기 때문에 백남준의 언어에 대한 기억은 마치 모자이크 같다. 약자는 그렇게 여러가지 언어를 배워야 한다. 미국인은 영어만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한국인은 일본어도 해야하고 독일어도 해야한다. 하지만 그는 이것에 대해 크게 피해의식이 없다. 오히려 조이스나 존 레논 같이 소위 세계적 명사 또한 약점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평가한다.

"나 역시 지금 이 글을 영어로 쓰고 있다(물론 내 의지로). 조이스나 존 레논, 버나드 쇼, 와일드 혹은 베케트가 켈트어로 작품을 섰다면 세계 문화계는 꽤 고생하지 않았을까. 위의 천재들은 자신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국지적인 모국어보다는 독일어나 영어로 글을 쓰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모두 약점을 지닌 사람들이었다."(25쪽)

이런 '약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쥔다. 약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더욱 강자에게, 보편 사회에 그들이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야 했고, 이들은 국제적 감각, 언어, 미디어를 익혀야만 했다. 이때 정보의 과잉과 결핍을 가늠하는 백남준의 기준이 흥미롭다. 오늘날 정보사회보다 과거 다락방에서 봤던 책들을 가리키며 "정보로 넘친다"고 말했다.

"어느 날 대청소를 하려고 어머니를 따라 다락에 올라갔다가 나는 먼지 더미 속에서 엄청난 보물을 발견했다 ... 꽤 큼직하고 두툼한 책들이었다. 그 책들은 서구세계로 열린 나의 유일한 창이었다. ... 그것은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문화의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였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소위 '정보로 넘친다'라는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오늘날 전 세계 어느 대도시에서도 그 시절과 같은 정보의 포화 상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26쪽)

여기서 그는 상대적이며 상황적으로 정보의 밀도를 보고 있다. 오늘날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라면 모두 어느정도는 평등한 정보접근성을 가진다. 하지만 백남준의 기준에선 이런 상황은 정보로 넘치는 상황이 아니다. 왜냐면 나에게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약자'의 입장에서 뭔가를 습득해야만 하는 상황, 그럼으로써 어떤 새로움이 강하게(거의 반강제적으로) 그에게 어필하는 상황에서 정보는 넘치게 된다. 백남준이 다락방에서 맞닥뜨린 책더미는 그러한 의미에서 정보로 넘친다. 그것은 백남준으로 하여금 "뉴욕으로 가고 싶다는 욕구에 불을 지핀 셈이 됐다."(27쪽) 즉, 미디어는 약자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이동하게끔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