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굿-즈 2015에 관한 고찰 포인트 몇 개

다음은 내가 굿-즈를 보고 생각해본 몇 가지 포인트다.

1. 굿-즈는 거대한 퍼포먼스인가, 아니면 페어의 일종인가
 - 퍼포먼스로 볼 경우 무엇이 작품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실제 운영진이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해석적 지평에서의 경계 허물기는 예술의 개념에 너무 많은 통행권을 부과함으로써 결론적으로 입장이 흐릿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한편으론 개별 작품의 창조성이 거대한 퍼포먼스의 회오리 안에서 '미디엄'화 되어버리는 불편한 상황을 맞게 된다. 제왕적 큐레이팅의 대명사 제만 이후 항상 지적되어왔던 문제이지만, 굿-즈를 퍼포먼스(그러니까 큐레이팅 차원을 넘어선 예술작업)로 볼 경우는 더욱 예술작품의 지위와 관련해 문제가 된다. 이건 사실 늦었지만 강정석씨의 <던전>에 질문하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참여 작가들은 작업이 이런 식으로 (일종의) 도구화되는 것이 괜찮은가? 만약 괜찮다면 궁금한 점은, 앞으로도 계속 그런 작업을 할 것인가? 그리고 기획자는 여기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 제각기 다른 성격을 가졌던 굿-즈 부스를 통칭해서 굿-즈를 평가하기 보단 굿-즈에 참여한 개별 작가들의 굿즈에 관해 접근하는 방식이 낫다. 같은 의미로 젊은 작가를 굿-즈 세대로 묶어서 기성세대와 편하게 비교하는 방식은 사실 말도 안되는 분석 방법이다. 굿-즈 참여자 정도로 순화하는 것이 옳겠다.

 - 예술작품 개념이 어디 놓여야할지에 관한 어려운 질문은 차치하고서라도, 굿-즈 그 자체의 흥미로운 지점은 분명히 있어 보인다. 마치 레디메이드가 예술 오브제와 프로덕트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듯이(헷갈리게 만들었듯이), 예술계와 예술시장계의 경계를 허무는 데 어느정도 성공한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이 마치 시장 밖에서 존재해왔던 것처럼 젠체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무척이나 리스펙트하면서도 한편으로 종종 의문부호를 붙이곤 하는 리슨투더시티의 몇몇 도덕주의적 행동주의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굿-즈의 지배적인 감수성에서 그들은 시장 밖을 전혀 상상하지 않으며, 오히려 작품 제작에 있어 시장과 거래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심지어 굿-즈는 시장을 무척 선망하거나 그것을 존재론적 조건으로 삼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예컨대 팔리지 않으면 전량 폐기하겠다는 작가를 비롯해 굿-즈란 한시적 시장 안에서만 통용되는 특수한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작업들이 이목을 끌었던 점이 그렇다. 예술계와 시장계 사이에 통로를 뚫는 일의 이득은 이런 것 같다. 경계선을 긋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상호 인정하는 이상한 공모관계를 철폐하는 대신, 실질적인 상호작용을 기대해볼 수 있다. 내 생각에 굿-즈는 역설적으로 예술이 처음부터 예술이길 포기하고 상품이 되길 자처한 최초의 어떤 생산물(-시장, 그리고 결국엔 예술)이다. 많은 미술계 사람들의 마음의 한켠에 굿-즈는 불편함을 선사할 것이다. 왜냐하면 굿-즈는 미술이 아니며, 굿-즈 그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보다 훨씬 강한 활력을 보여줬기 때문이고 결국엔 그 또한 미술계이기에 통용될 문법이기 때문이다.

 - 굿-즈에서 판매라는 행위는 퍼포먼스의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판매액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진 않다. 무슨말이냐, 여기에 나온 작가들이 만약 갤러리에서 전시했다면 절대로 그 가격대에 작업을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굿-즈의 퍼포머티브한 성격에 판매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가격을 무지막지하게 하향평준화시킴으로써 구매 포인트를 강제적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결과 본격 고퀄의 예술작품이 나온다기보단 한시적이고 파괴되어도 괜찮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입장에서 지갑을 열어서 호기심에 한 번쯤 사봐도 괜찮을(때때로 아트상품을 의태한) 무엇이 교묘한 적정선을 유지하며 등장한다. *** 팔아서 돈을 번다기보다 팔리는 상품(작품) 그 자체에 대한 강박.

 - 그렇다고 굿-즈가 레디메이드만큼 혁명적인 예술 프로젝트였냐고 묻는다면 오바라고 대답하겠다. 오히려 반대의 의미로 보수화될 가능성이 역력한데, 레디메이드가 상품도 의도에 따라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공시하며 예술계를 비평했다면(예술 개념을 확장했다면), 굿-즈는 예술 그 자체가 상품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예술의 활동 공간을 삭제한다(상품 개념을 확장한다). 미적 상품. 굿-즈는 현대 디자인의 물줄기에서 솟아나왔다.

2. 누가 정확히 주관했는가, 누가 정확히 관객인가 
 - 굿즈 기획 서문을 보면 참여 작가 일동 전원이 기획에 참여한 것처럼/동의한 것처럼 서명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을 그대로 믿는 것처럼 나이브한 일도 없을 것이다. 어디에도 여기에 관해 구체적인 말이 없기 때문에 적긴 애매한 구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적는 이유는 굿-즈는 굿-즈로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굿-즈란 행사엔 다른 색깔을 가진 하나로 통폐합될 수 없는 작가들이 많았다. 이들 중 몇몇은 분명히 굿-즈 (세대)로 일괄적으로 불리는 것에 불편할 것이다.

 - 누가 관객인가? 굿-즈 측에서 지표를 내 놓으면 더욱 쉽겠지만 눈치로 추측하자면 기획자, 참가자의 비슷한 또래, 그리고 지인 네트워크다. 굿즈의 관객은 별로 새로울 바 없는 관객으로 더욱 쉽게 이야기해서 나의 졸업 미전에 오는 사람들이다. 선생님, 친구들, (관심 있는) 또래 집단, (운 좋으면) 몇몇 갤러리 관계자, (더욱 운 좋으면) 기존 컬렉터. 굿-즈는 이런 사람들, 관객층을 (신종) 컬렉터로 바꾸어 놓길 원했고 일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성공했냐, 역시 지인 네트워크 수준에서 소비할 수 있는 낮은 가격대와 브랜드 마케팅이다. 어찌됐든 간에 만약 굿-즈의 관객/컬렉터가 동질 집단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나는 이것이 기존의 자폐적인 유통 소비 회로와 무엇이 크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예술을 '만만한' 상품으로 바꾸어놓긴 했으나, 즉 예술 일반과 시장을 겹쳐놓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시장이 결국 시장 일반은 아닌, 예술 특수의 시장이란 점에서, 성질상 특수한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대중 일반인이 이런 해체적 충동이 가득한 작품을 사겠는가? 그들은 굿-즈에 와서 되려 더욱 난해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굿-즈는 스스로가 공표하듯 새로운 미술품의 유통 방식을 고민했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을까? 오히려 생산-소비 루프를 동질집단, 공감의 커뮤니티 내에 단단하게 밀봉한 느낌 아닌가?

3. 소비의 의미
-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굿-즈의 매출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내 생각에 의하면 또래/준거 미술집단)가 굿즈를 구입했단 소리다. 왜 구입했을까? 상식적으로 기존의 통념상 이런 작품을 '컬렉팅'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컬렉팅에 있어선 '지금'이 아니라 먼 '미래'에 더욱 높아질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벤야민에 의하면 진정한 수집가란 사물의 유용성이 다한 시점에서 발하게 될 진귀한 가치를 애초부터 알아본다. 그것이 투자가치든 어쨌든 간에 이런 요소는 수집의 기본적인 충동을 구성한다. 그런데, 굿-즈 행사장 안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그런 형태를 취했던 굿-즈는 그런 수집의 가치를 기대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해당 작가의 라인 중 (어떤 식으로든) 소장가치를 발하게 되는 예술작품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또한 수집가는 어떤 자신만의 체계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수집한다. 단순히 흥미에 의해서 뭔가를 한 번 사본 것을 두고 수집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굿-즈를 구입한 사람은 수집, 즉 컬렉팅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왜?

나는 이것이 일종의 공감의 행위라고 본다. 트위터의 리트윗,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크게는 굿-즈란 행사에, 작게는 그 행사의 어떤 굿즈에 동의를 보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시적으로 같은 커뮤니티로 묶이는 그런 소속감, 쾌감을 느낀다. 어떠한 말 보다 소비를 통해, 그 물건을 그 자리에서 구입함으로써 손쉽게 그렇게 한다(굿즈에 대한 SNS 촌평을 보면 물론 매체 특성상 그런 것도 있겠지만 '좋다' 등의 단순한 감정 표현이 주를 이룬다. 이건 내가 SNS에서 자주 목격하는 현상으로 젊은 세대들이 좋은(?) 작업에 반응하는 일종의 패턴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신 그들은 어떤 언어를 경유하지 않고도 최대폭으로 공감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그것이 판매와 소비다.). 굿-즈가 끝난 뒤 그 굿즈는 뭐가 되어 있을까? 잘 돼봤자 집 안의 장식이고, 어디 가져다가 팔기도 참 애매한, 버리기도 애매한 채 상자 속에 보관되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굿즈를 소비한다는 건 이런 굿즈의 사후의 처리와 거의 상관이 없다. 바로 그 순간 돈을 태움으로써 '굿-즈'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는 것이, 다시 말해서 굿즈를 손에 듦으로써 그 믿음을 '눈'에 증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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