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일 일요일

기술복제시대의 아우라

복제기술, 즉 사진을 위시하여...기타등등의 미디어는 벤야민의 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우라를 해체만 할까?

그렇진 않다. 분명히 복제 기술의 산물에도 아우라는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먼 미래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점을 과거로 뒤돌려보면 미래여행 비슷한 것을 할 수도 있다. 초기 사진시대의 사진가는 현대의 관점에선 아마추어다. 그 아마추어들은 덜 발달한 기술로 인해 무지막지한 장노출을 해야만 했고, 아마추어 모델은 의도되지 않은 수많은 표정과 몸짓을 카메라 앞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엔 어떤 의도되지 않은 어색함과 풋풋함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당시엔 발견 못하는, 현재의 관점에서만 파악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다.

이것이 벤야민이 일찍이 발견했고, 크림프와 크라우스가 지적한 사진의 아우라다. 오래된 미디어에는 그것이 복제 기술의 산물일지라도 아우라가 존재한다. 먼 미래인이 현대의 산물을 발굴한다면 그게 대량생산물이든 뭐든 간에 박물관에 갖다 놓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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