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전이 되어버린, 로잘린드 크라우스 R. Krauss가 1979년 『옥토버』 봄호에 발표했던 에세이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 Sculpture in the Expanding Field」은 일종의 예언처럼 읽힌다. 그것도 꽤나 염세적인 차원에서 말이다. 이 글은 원래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비평이 다다른 한계, 즉 자기참조로 압축되는 예술 이론의 협소함을 비판하는 동시에, 새롭게 대두되는 다양한 작업의 경향을 새로운 예술의 범주로서 설명하게 위해 쓰였다. 계보학적으로 조각의 역사를 추적하며, 크라우스는 조각의 개념이 전혀 보편적이지 않으며, 되려 특수한 패러다임의 산물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애썼다.
그에 따르면 서양미술사에서 관습적으로 조각은 기념비와 불가분한 관계 속에 놓여 있었다. 스톤 헨지 같은 거석 문화(이것을 조각으로 부르기엔 애매하긴 하지만)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청동 기마상>, 베르니니의 <콘스탄틴 대제의 개심> 등의 조각은 풍경이나 건축에 부속되어 그 장소의 특별한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기념비였다. 하지만 로댕의 <지옥문>이나 <발자크상>의 예처럼, 19세기말부터 조각이 장소와 무관한 곳에 세워짐에 따라, 점차적으로 순수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복무하게 된다. 조각이 점점 풍경과 건축을 부정하면서, 풍경이 아닌 것과 건축이 아닌 것의 총합으로서 자율적이고 유일무이한 모더니즘 조각이 부상한다. 모더니즘 조각은 엄연히 물질적 실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론적으로 장소를 잃는다. 이것을 압축해서 조각의 무거처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960년대의 일련의 예술가들은 이 범주의 바깥을 탐구하고자 했다. 크라우스가 하고자 했던 일은 바로 이런 새로운 형태의 조각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크라우스는 조각의 역사적 조건, 즉 풍경과 건축의 대립쌍을 피아제 그룹의 기호 사각형 함수에 넣어서 의미론적으로 중층화하는 가운데, 모더니즘 조각 외 세 가지 범주를 추가로 도출해 낸다. 그것은 하나, 풍경과 건축의 복합체로서의 장소-건설 site-construction, 둘, 풍경과 비풍경의 복합체로서의 표시된 장소 marked sites, 셋, 건축과 비건축의 복합체로서의 공리적 구조 axiomatic structures다. 그녀는 장소-건설의 예로 로버트 스미드슨류의 대지미술을 들었으며, 표시된 장소의 경우 실제 장소에서의 표시 행위나 사진의 지표적 특성을 거론한다. 공리적 구조의 예로는 건축 공간에 개입하여 그 구조적 원리를 드러내는 브루스 나우만의 <회랑> 같은 작업이 제시된다.
70년대 후반, 크라우스는 이 같은 방법으로 모더니즘 조각의 근거를 해체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해체된 것은 그것이 거주했던 형이상학적 (비)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크라우스의 에세이가 공격 대상으로 삼는 ‘예술’이 모더니즘인 이상, 그 밖을 탐사하는 것 자체가 혁신이었을 테다. 다만 문제는 다시 그 바깥의 장소가 더욱 단단하게 ‘예술’로 화했다는 사실이다. 크라우스의 도식에서 예술, 혹은 아름다움은 새로운 거처를 찾는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장소를 잃어버린 아름다움이 그 다음으로 찾은 자리는 다름 아닌 경험적 현실, 조금 더 인식론적 감각으로 쓰자면 현상학적 장소다. 적어도 크라우스의 확장된 도식으로 미루어 봤을 때, 미적인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되려 몹시 ‘논리적’ 범주로서 실제 장소에 널리 편재되기 시작한다. 무척 놀라운 점은 이 새로운 장이, 이 글이 쓰였던 시공간과 한참 거리가 먼 서울의 구체적인 삶 속에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크라우스의 도식은 몹시 적확하게 서울에 적용될 수 있다. 서울은 자연 자체가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서 공히 건축적 장소이면서도 제2의 자연이 됐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풍경이기도 하다. 서울은 그러니까 거대한 장소-건설물, 대지미술이다. (물론 작게는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인공 정원 건설부터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 각 구청에서 알게 모르게 실시하고 있는 기능주의적 공공미술을 들 수도 있다.) 한편 위성으로부터 매핑되어 스마트폰으로 빨려들어온 서울-이미지는 앱 아이콘으로 단단하게 압축되어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에 휴대된다. 크라우스가 사진을 일종의 표시된 장소로서 포스트모던 조각의 하나의 계기로 봤듯이, 예컨대 스마트폰의 증강 현실 지도는 심지어 실시간 피드백이 가능하단 점에서 보다 생생한 표시된 장소이기도 하다. 공리적 구조는 이미 있는 장소를 논리적으로 구조화한다는 의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 시스템을 비롯해 서울 관광 코스, 각종 지역 페스티벌, 쇼핑몰화된 동선, 커뮤니티 조성 사업 등을 광범위하게 포함하는데, 최소한 브루스 나우먼의 <회랑> 보다는 훨씬 복잡한 차원에서 설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감각에서는 전 모더니즘, 즉 기념비의 시대로 ‘롤백’했다는 음모론 역시 가능하다. 모더니즘 조각의 형태를 한 무엇이 이러저러한 커미션을 통해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지고 있는 상황은 징후적이다. 청계천 주변에 우뚝 솟은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이 그러하듯, 혹은 건축물장식법에 의거한 건물 앞 외로운 조각상이 그러하듯 이런 조각은 과거 모더니즘이 성취했던 자기참조성마저 망실한 채, 랜드마크 같은 장소 부속물이나 장식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크라우스가 도출해 낸 세 가지 다른 범주의 논리적 조각 역시 기념비화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든, 스마트폰 안의 서울-이미지든, 시스템적 인지 경험이든 이 모두는 (조각의 논리적 장 안에서) 미학적인 것이면서도 서울이란 특정한 장소의 의미를 그 자체로서 시연한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장소와 조각의 결합. 그렇다면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기념비 시대를 지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짧게 경험한 뒤, 다시 유구한 기념비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과장하자면 신과 인간, 건축과 미술, 종교와 과학이 잘 구분되지 않았던 그런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이런 ‘통합’의 현대적 작동 기제는 역시 디자인이다. 오늘날 제품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부터 건축, 프로그래밍, 산업 전략, 다양한 분야의 시스템 설계, 심지어 라이프스타일과 업무 프로세스까지 모두 디자인의 대상으로 사려된다. 그러니까 현대 디자인은 단지 산업 시대의 제품을 만드는 차원에서 훨씬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합체하는 접속 기계다. 아르누보와 바우하우스를 거친 오늘날의 토탈 디자인의 세계는 할 포스터의 지적처럼 산업시대의 제품의 정치경제학을 기호의 정치경제학으로 개편했다. 여기서 상품은 자신의 다른 인격, 이미지로 화하며, 다시 이미지는 인간 욕망의 화신, 자아의 미니미 mini-me가 된다. 더욱이 이런 물질의 기호화, 나아가 미학화는 컴퓨팅과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가상과 현실을 글로벌한 차원에서 통폐합시키며 유비쿼터스적으로 풀가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시 행정 시스템을 디자인 중심으로 개편하는 가운데 디자인을 통한 “르네상스”를 일으키고자 애썼다.
이때 뜬금없는 “르네상스”란 말이 주는 키치적 감정은 중세를 혁신했던 조르주 바자리의 개념, 디자인의 어원이기도 한, 디세뇨 disegno를 이끈다. 디세뇨는 건축과 회화, 조각 등 아름다움의 이념을 (일종의 과학적으로) 모방하는 인간 활동을 묶어 지칭하는 말로, 인간적으로 신을 표현했던 고전주의적 이상을 함축한다. 마찬가지로 디세뇨의 현대적 귀환은 신을 인간화(현실화)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의 신은 포스터의 주장처럼 물신화한 상품-이미지도 되지만, 더욱 고전주의적 감각에서 육화한 신, 기념비/아이콘일 법도 하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이런 감각에서 크라우스가 모더니즘을 탈신성화함으로써 도출했던 확장된 조각의 장, 현재 구체적인 생활에 펼쳐진 그것이 디세뇨의 이념으로 다시 한 번 신화 시대로 돌아간다. 그린버그가 그렇게 아방가르드의 키치화를 경계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의도치는 않았을지언정) 그것이 그의 제자가 깔아 놓은 판에 의해 실현됐다는 것은 몹시 애꿎은 일이다. 물론 크라우스의 도식에 따르면 형식적으로 그것은 엄연한 예술의 지위를 가지만. 그래서 일단은, 서울이 미학적 도시라는 것만 기억해도 좋다. 이런 견지를 따라 약간의 비약을 섞어 일종의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서울이 일종의 예술 작품이라는 가설 말이다. 이때 서울이 평편한 땅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 보면,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서울이란 추상회화. 이제 크라우스의 다른 글로 넘어가 볼 차례다.
「확장된 장」에 연이어 『옥토버』 여름호에, 크라우스는 「그리드 Grids」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앞의 글이 모더니즘 조각에 대한 공격이었다면, 「그리드」는 그것의 회화적 판본이었다. 글의 제목에서 알기 쉽게도, 크라우스는 모더니즘 회화의 구조적 특질, 즉 그리드의 신화를 판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리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양적, (모더니즘의 작업의 미디엄이 됐다는 점에서) 질적, 그리고 (모던의 엠블렘이 됐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 성공을 거둔 모더니즘의 지배적 구조다.
그리드는 예술을 극단적인 시각 체제로 보존하는 한편, 예술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떨어뜨리며 침묵을 강요하려 했다. 그리드는 모던 예술을 공간적인 차원에서 자율적—반자연적이고, 반모방적이며, 반실재적—인 것으로 표명하며 실재를 평평한 표면으로 전치한다. 시간적인 차원에서는 예술을 시대의 유일무이한 양식으로 영원히 현재와 함께 묶어버린다. 그리드가 도해하는 것은 페인팅의 표면 자체다. 반면 모더니스트는 정신성을 말한다. 여기서 정신과 물질은 분명하게도 동일한 평판에서 모순적으로 병존하지만, 크라우스가 보기에 한 번도 그들 사이의 관계가 의심된 적은 없었다.
크라우스는 「확장된 장」에서와 매한가지로 그리드의 신화를 분석하기 위해 그 기원으로 회귀한다. 먼저 19세기 시각 연구의 분파인 색채 심리학이 검토된다. 이런 과학은 빛을 인간이 지각하는 방식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 냈다. 창문이나 필터에 여과된 것처럼, 실제 색과 보여진 색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색의 지각 경험은 잔상 등 상황에 따라 (예컨대 보색대비나 병치혼합처럼) 상호작용에 연루되기 때문에 불확정적이다. 이런 입자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기 위해 당시 과학자는 그리드를 사용했다. 그리드는 시각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지식의 매트릭스였다. 점묘파를 주창했던 쇠라나 시낙 같은 신인상주의자가 여기에 매혹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럴 수록 이들의 예술이 추상성을 띄게 됐다는 사실은 몹시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로서 실제 세계로부터 시각의 창이 분리된다. 가장 과학적인 성과는 가장 반과학적 운동, 즉 상징주의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상징주의,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낭만주의에서 그리드는 기하학적 창문의 형태로 등장한다. 크라우스는 창문의 이중적 기능을 주목하는데,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창문은 빛, 그러니까 정신을 투명하게 투과해 어두운 방을 밝힌다. 하지만 유리가 반사하듯이 창문은 일종의 불투명한 거울로서 자아를 자폐적 세계 안에 가두기도 한다. 창문은 이런 이중 의미의 메트릭스이며, 창문의 막대, 즉 그리드는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크라우스에 의하면 그것들은 상징주의 예술의 상징 그 자체다. 그것은 신화적 존재를 암시적으로 형식화한다.
이런 분석의 배경에는 19세기 진화론 등 과학의 부상으로 인한 종교적 가치의 위기가 놓여 있다고 봐야한다. 종교적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은밀히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거쳐 그 마지막 피난처로 모더니즘 회화로 그 거처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모더니즘이 (그린버그의 매체특정성 개념 그러했듯이) 유물론을 근본 조건으로 하면서도 한편으로 신성이란 종교적 가치를 그 표면에 이중으로 포개 놓았다는 것이다. 몬드리안은 물감을 그리드 모양으로 칠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표면이 아니라 거기에 내포된, 신화적 (이데올로기적) 정신성이다. 감추면서 드러내기, 그 모순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그리드의 기능이다.
앞서 나는 크라우스가 조각의 논리적으로 확장된 범주를 통해 모더니즘 조각의 무거처성을 해체하긴 했지만 되려 그것이 일상의 미학화를 근거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때 확장된 범주의 조각은 현대 디자인과 결합하여 물질과 비물질 형태를 가리지 않고 삶을 구조화하는데, 이것이 고도로 상징적인 이미지 게임이며 이데올로기적이기까지 하지만 삶 자체가 되어버린 탓에 거의 의식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이것을 서울의 삶의 여러 예를 통해 이미 살펴본 바가 있으며, 나아가 서울의 이런 광범위한 미학화를 추상회화에 빗대었다. 모더니즘 시기 회화의 근본 구조가 그리드였다면, 오늘날 서울-추상회화의 근본 구조는 확장된 장으로서의 그리드다. (반쯤은 농담이지만 크라우스가 「확장된 장」에서 원용한 피아제 그룹의 기호 사각형은 정확히 그리드의 꼴을 하고 있다.) 크라우스 버전의 그리드는 물질과 비물질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다 악질적일지도 모른다.
살펴본 것처럼, 그리드는 허상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현시한다는 점에서 신화적이다. 쉽게도 한강에 오페라 극장을 짓는다고 해서 진정한 르네상스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의 미적 경험은 끊임 없이 그것이 가능하다고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며, 반대로 그 신화적 허상을 폭로하려고 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실천을 베일로 가려버린다. 이런 억압은 실로 트라우마적이며 무수한 반동을 낳는다. 그리고 더 강한 억압이 다시 무의식 속을 파고 든다. 그것의 순환으로 보인다.
한 가지 예를 들며 이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최근 총궐기 사태에서 경악을 했던 것은 무엇보다 버스 장벽, 혹은 대지미술(장소-구축)을 발견하고 나서부터였다. 사실 큐레이터로서, 경악보단 경이에 무척이나 가까웠다고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해야만 하겠다. 너무나 탄탄하고 아름다운 완성도랄까, 전국의 경찰서에서 올라 온듯한 버스는 촘촘하게 그물망처럼 짜여서 진로를 재구축, 혹은 제약하고 있고(공리적 구조), 조금 틈이라도 벌어졌다 하면 어김 없이 어린 의경이자 경찰이 귀신같이 배치되어 있었다. 가히 매시브한 미로였고 한 마디로 아트였다. 이때 경찰 기구는 물론, 표면적으로 민중에 지팡이일 테고, 이들이 이 곳에 출동한 이유는 과격 시위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상해를 입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럼에도 현장에서 경찰은 버스로 서울을 구획해 시민의 행로를 강압적으로 막았으며, 버스-구획을 해체하려는 일반 시민을 포함, 일반 시민을 (그 면상을) 또 물대포로 가격하고 있었다. 그 시민은 병원에 실려가서 사경을 헤맸다고 하는데(표시된 장소), 나는 그 뒤로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물론, 이 시대의 가장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가치를 지닌 기념비, 청와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이때 장소의 경험은 알기 쉽게도 디자인 서울이란 얼굴에 반하는 그리드의 폭력적 얼굴이다. 그리드는 미학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억압적이다. 억압은 다시 무수한 반동을 낳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또 다시 아트—라고 느꼈던 것은 엉뚱한 승전보를 접한 이후였다.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났다고 했으며, SNS에서는 과연 승전의 기쁨을 사람들이 공유했고, 그것이 평화 집회의 승리라느니 어쩌니 언론에서 야단을 떨었다. 불과 얼마 전에 물대포로 시민을 가격했던 정권은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 관용적인 정부를 목도하며, 또한 흡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두 번째 집회는 매우 '아름다운' 저항이었던 것이다. 신속하게 서울은 평화롭고 안온한 얼굴을 되찾았다.
오늘날 그리드는 어디서나 편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드는 부조리함을 매끄러운 표면으로 감추는 한편, 그 표면을 찢어서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는다. 정부와 경찰 기구는 시민의 삶을 지키면서도 위협한다. 대형 검색 엔진부터 포탈 사이트는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긁어 모으고 있으며, 인터넷 쇼핑은 편리를 제공해주는 것 같지만 획일화된 OS 시스템과 결제 소프트웨어의 사용을 강요한다. 미술관은 실험적인 미술 조차 지지하지만, 이따금씩은 검열의 선봉에 나서기도 한다. 일일히 열거하기엔 숨이 찰 지경이며, 이것이 한국이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민주주의적인 사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자유를 더욱 신장시키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획일화시키며, 또 통제하려고 애쓴다. 이런 이중성이야 말로 감추면서 드러내고 드러내면서 감추는 그리드의 본질이며, 바로 그 의미에서 서울의 경험은 그리드의 현상학 자체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16.1.19)
어떤 감각에서는 전 모더니즘, 즉 기념비의 시대로 ‘롤백’했다는 음모론 역시 가능하다. 모더니즘 조각의 형태를 한 무엇이 이러저러한 커미션을 통해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지고 있는 상황은 징후적이다. 청계천 주변에 우뚝 솟은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이 그러하듯, 혹은 건축물장식법에 의거한 건물 앞 외로운 조각상이 그러하듯 이런 조각은 과거 모더니즘이 성취했던 자기참조성마저 망실한 채, 랜드마크 같은 장소 부속물이나 장식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크라우스가 도출해 낸 세 가지 다른 범주의 논리적 조각 역시 기념비화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든, 스마트폰 안의 서울-이미지든, 시스템적 인지 경험이든 이 모두는 (조각의 논리적 장 안에서) 미학적인 것이면서도 서울이란 특정한 장소의 의미를 그 자체로서 시연한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장소와 조각의 결합. 그렇다면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기념비 시대를 지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짧게 경험한 뒤, 다시 유구한 기념비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과장하자면 신과 인간, 건축과 미술, 종교와 과학이 잘 구분되지 않았던 그런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이런 ‘통합’의 현대적 작동 기제는 역시 디자인이다. 오늘날 제품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부터 건축, 프로그래밍, 산업 전략, 다양한 분야의 시스템 설계, 심지어 라이프스타일과 업무 프로세스까지 모두 디자인의 대상으로 사려된다. 그러니까 현대 디자인은 단지 산업 시대의 제품을 만드는 차원에서 훨씬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합체하는 접속 기계다. 아르누보와 바우하우스를 거친 오늘날의 토탈 디자인의 세계는 할 포스터의 지적처럼 산업시대의 제품의 정치경제학을 기호의 정치경제학으로 개편했다. 여기서 상품은 자신의 다른 인격, 이미지로 화하며, 다시 이미지는 인간 욕망의 화신, 자아의 미니미 mini-me가 된다. 더욱이 이런 물질의 기호화, 나아가 미학화는 컴퓨팅과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가상과 현실을 글로벌한 차원에서 통폐합시키며 유비쿼터스적으로 풀가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시 행정 시스템을 디자인 중심으로 개편하는 가운데 디자인을 통한 “르네상스”를 일으키고자 애썼다.
디자인은 이제 기본입니다. 그것도 아주 절박한 기본이죠. 너무나 절박한 현실에 처해 있음에도 아무도 정책으로 채택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 갈증이 폭발했어요. 서울시가 지난해 5월 부시장급 디자인총괄본부를 만들어 서울시의 모든 행정을 디자인으로 통할해가고 있어요.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디자인과가 생겼어요. 올해부터 본격적인 디자인 행정이 시작됩니다. (<동아일보> 2008년 2월 25일)
이때 뜬금없는 “르네상스”란 말이 주는 키치적 감정은 중세를 혁신했던 조르주 바자리의 개념, 디자인의 어원이기도 한, 디세뇨 disegno를 이끈다. 디세뇨는 건축과 회화, 조각 등 아름다움의 이념을 (일종의 과학적으로) 모방하는 인간 활동을 묶어 지칭하는 말로, 인간적으로 신을 표현했던 고전주의적 이상을 함축한다. 마찬가지로 디세뇨의 현대적 귀환은 신을 인간화(현실화)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의 신은 포스터의 주장처럼 물신화한 상품-이미지도 되지만, 더욱 고전주의적 감각에서 육화한 신, 기념비/아이콘일 법도 하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이런 감각에서 크라우스가 모더니즘을 탈신성화함으로써 도출했던 확장된 조각의 장, 현재 구체적인 생활에 펼쳐진 그것이 디세뇨의 이념으로 다시 한 번 신화 시대로 돌아간다. 그린버그가 그렇게 아방가르드의 키치화를 경계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의도치는 않았을지언정) 그것이 그의 제자가 깔아 놓은 판에 의해 실현됐다는 것은 몹시 애꿎은 일이다. 물론 크라우스의 도식에 따르면 형식적으로 그것은 엄연한 예술의 지위를 가지만. 그래서 일단은, 서울이 미학적 도시라는 것만 기억해도 좋다. 이런 견지를 따라 약간의 비약을 섞어 일종의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서울이 일종의 예술 작품이라는 가설 말이다. 이때 서울이 평편한 땅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 보면,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서울이란 추상회화. 이제 크라우스의 다른 글로 넘어가 볼 차례다.
「확장된 장」에 연이어 『옥토버』 여름호에, 크라우스는 「그리드 Grids」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앞의 글이 모더니즘 조각에 대한 공격이었다면, 「그리드」는 그것의 회화적 판본이었다. 글의 제목에서 알기 쉽게도, 크라우스는 모더니즘 회화의 구조적 특질, 즉 그리드의 신화를 판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리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양적, (모더니즘의 작업의 미디엄이 됐다는 점에서) 질적, 그리고 (모던의 엠블렘이 됐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 성공을 거둔 모더니즘의 지배적 구조다.
그리드는 예술을 극단적인 시각 체제로 보존하는 한편, 예술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떨어뜨리며 침묵을 강요하려 했다. 그리드는 모던 예술을 공간적인 차원에서 자율적—반자연적이고, 반모방적이며, 반실재적—인 것으로 표명하며 실재를 평평한 표면으로 전치한다. 시간적인 차원에서는 예술을 시대의 유일무이한 양식으로 영원히 현재와 함께 묶어버린다. 그리드가 도해하는 것은 페인팅의 표면 자체다. 반면 모더니스트는 정신성을 말한다. 여기서 정신과 물질은 분명하게도 동일한 평판에서 모순적으로 병존하지만, 크라우스가 보기에 한 번도 그들 사이의 관계가 의심된 적은 없었다.
크라우스는 「확장된 장」에서와 매한가지로 그리드의 신화를 분석하기 위해 그 기원으로 회귀한다. 먼저 19세기 시각 연구의 분파인 색채 심리학이 검토된다. 이런 과학은 빛을 인간이 지각하는 방식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 냈다. 창문이나 필터에 여과된 것처럼, 실제 색과 보여진 색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색의 지각 경험은 잔상 등 상황에 따라 (예컨대 보색대비나 병치혼합처럼) 상호작용에 연루되기 때문에 불확정적이다. 이런 입자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기 위해 당시 과학자는 그리드를 사용했다. 그리드는 시각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지식의 매트릭스였다. 점묘파를 주창했던 쇠라나 시낙 같은 신인상주의자가 여기에 매혹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럴 수록 이들의 예술이 추상성을 띄게 됐다는 사실은 몹시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로서 실제 세계로부터 시각의 창이 분리된다. 가장 과학적인 성과는 가장 반과학적 운동, 즉 상징주의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상징주의,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낭만주의에서 그리드는 기하학적 창문의 형태로 등장한다. 크라우스는 창문의 이중적 기능을 주목하는데,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창문은 빛, 그러니까 정신을 투명하게 투과해 어두운 방을 밝힌다. 하지만 유리가 반사하듯이 창문은 일종의 불투명한 거울로서 자아를 자폐적 세계 안에 가두기도 한다. 창문은 이런 이중 의미의 메트릭스이며, 창문의 막대, 즉 그리드는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크라우스에 의하면 그것들은 상징주의 예술의 상징 그 자체다. 그것은 신화적 존재를 암시적으로 형식화한다.
이런 분석의 배경에는 19세기 진화론 등 과학의 부상으로 인한 종교적 가치의 위기가 놓여 있다고 봐야한다. 종교적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은밀히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거쳐 그 마지막 피난처로 모더니즘 회화로 그 거처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모더니즘이 (그린버그의 매체특정성 개념 그러했듯이) 유물론을 근본 조건으로 하면서도 한편으로 신성이란 종교적 가치를 그 표면에 이중으로 포개 놓았다는 것이다. 몬드리안은 물감을 그리드 모양으로 칠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표면이 아니라 거기에 내포된, 신화적 (이데올로기적) 정신성이다. 감추면서 드러내기, 그 모순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그리드의 기능이다.
앞서 나는 크라우스가 조각의 논리적으로 확장된 범주를 통해 모더니즘 조각의 무거처성을 해체하긴 했지만 되려 그것이 일상의 미학화를 근거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때 확장된 범주의 조각은 현대 디자인과 결합하여 물질과 비물질 형태를 가리지 않고 삶을 구조화하는데, 이것이 고도로 상징적인 이미지 게임이며 이데올로기적이기까지 하지만 삶 자체가 되어버린 탓에 거의 의식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이것을 서울의 삶의 여러 예를 통해 이미 살펴본 바가 있으며, 나아가 서울의 이런 광범위한 미학화를 추상회화에 빗대었다. 모더니즘 시기 회화의 근본 구조가 그리드였다면, 오늘날 서울-추상회화의 근본 구조는 확장된 장으로서의 그리드다. (반쯤은 농담이지만 크라우스가 「확장된 장」에서 원용한 피아제 그룹의 기호 사각형은 정확히 그리드의 꼴을 하고 있다.) 크라우스 버전의 그리드는 물질과 비물질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다 악질적일지도 모른다.
살펴본 것처럼, 그리드는 허상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현시한다는 점에서 신화적이다. 쉽게도 한강에 오페라 극장을 짓는다고 해서 진정한 르네상스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의 미적 경험은 끊임 없이 그것이 가능하다고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며, 반대로 그 신화적 허상을 폭로하려고 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실천을 베일로 가려버린다. 이런 억압은 실로 트라우마적이며 무수한 반동을 낳는다. 그리고 더 강한 억압이 다시 무의식 속을 파고 든다. 그것의 순환으로 보인다.
한 가지 예를 들며 이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최근 총궐기 사태에서 경악을 했던 것은 무엇보다 버스 장벽, 혹은 대지미술(장소-구축)을 발견하고 나서부터였다. 사실 큐레이터로서, 경악보단 경이에 무척이나 가까웠다고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해야만 하겠다. 너무나 탄탄하고 아름다운 완성도랄까, 전국의 경찰서에서 올라 온듯한 버스는 촘촘하게 그물망처럼 짜여서 진로를 재구축, 혹은 제약하고 있고(공리적 구조), 조금 틈이라도 벌어졌다 하면 어김 없이 어린 의경이자 경찰이 귀신같이 배치되어 있었다. 가히 매시브한 미로였고 한 마디로 아트였다. 이때 경찰 기구는 물론, 표면적으로 민중에 지팡이일 테고, 이들이 이 곳에 출동한 이유는 과격 시위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상해를 입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럼에도 현장에서 경찰은 버스로 서울을 구획해 시민의 행로를 강압적으로 막았으며, 버스-구획을 해체하려는 일반 시민을 포함, 일반 시민을 (그 면상을) 또 물대포로 가격하고 있었다. 그 시민은 병원에 실려가서 사경을 헤맸다고 하는데(표시된 장소), 나는 그 뒤로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물론, 이 시대의 가장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가치를 지닌 기념비, 청와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이때 장소의 경험은 알기 쉽게도 디자인 서울이란 얼굴에 반하는 그리드의 폭력적 얼굴이다. 그리드는 미학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억압적이다. 억압은 다시 무수한 반동을 낳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또 다시 아트—라고 느꼈던 것은 엉뚱한 승전보를 접한 이후였다.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났다고 했으며, SNS에서는 과연 승전의 기쁨을 사람들이 공유했고, 그것이 평화 집회의 승리라느니 어쩌니 언론에서 야단을 떨었다. 불과 얼마 전에 물대포로 시민을 가격했던 정권은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 관용적인 정부를 목도하며, 또한 흡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두 번째 집회는 매우 '아름다운' 저항이었던 것이다. 신속하게 서울은 평화롭고 안온한 얼굴을 되찾았다.
오늘날 그리드는 어디서나 편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드는 부조리함을 매끄러운 표면으로 감추는 한편, 그 표면을 찢어서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는다. 정부와 경찰 기구는 시민의 삶을 지키면서도 위협한다. 대형 검색 엔진부터 포탈 사이트는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긁어 모으고 있으며, 인터넷 쇼핑은 편리를 제공해주는 것 같지만 획일화된 OS 시스템과 결제 소프트웨어의 사용을 강요한다. 미술관은 실험적인 미술 조차 지지하지만, 이따금씩은 검열의 선봉에 나서기도 한다. 일일히 열거하기엔 숨이 찰 지경이며, 이것이 한국이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민주주의적인 사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자유를 더욱 신장시키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획일화시키며, 또 통제하려고 애쓴다. 이런 이중성이야 말로 감추면서 드러내고 드러내면서 감추는 그리드의 본질이며, 바로 그 의미에서 서울의 경험은 그리드의 현상학 자체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16.1.19)
*<보안수첩>에 기고됐음. <수평이동>(우정국, 2016) 전시서문을 고쳐 썼음을 밝힙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