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일 화요일

잠자는 자

<24/7>에 보면 산초 판사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처럼 잠을 자도록 태어난 자가 있고 자신의 주인처럼 경계하도록 태어난 자가 있다고. 잠들어 버린 자.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 빛을 보지 못한 자, 계몽되지 않은 자, 돈키호테 같은 시대착오적인 자. 우습게도 그들을 경계하는 주인.

강의록을 편집하다가 아나크로니즘, 즉 시대착오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우리의 세련된 미적 감수성으로 봤을 때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것, 생각할 겨를 없이 단숨에 무시해버리고 싶은, 여전히 종종 마주치기도 하는 그런 것.

하지만 그런 시대착오적인 것이 주는 촌스런 감동 또한 분명히 있겠지. 맹목적인, 순진무구한, 천진난만한,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지겨운, 멍청해 보이는, 심지어 내 놓기 부끄럽고 민망한, 더 심지어 옮을까봐 무서운 그런 것들. 내가 못하는 것의 이질적인 총체에서 오는 역쾌감을 느끼기도 하겠지. 노스텔지어. 그래 이런 시절도 있었지, 하는.

여기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퍽 행복하기도 하겠다. 진정으로 행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에 관심을 두는 자는 근본적으로 외로운 자다. 방법으로서 아나크로니즘을 추구한다는 건 현실에서 아무도 원치 않는 일을, 그 따가운 시선과 외면의 눈초리를 알면서도 행한다는 것이다. 돈키호테를 의도적으로 연기하는 일이다. 매우 분열적으로,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일이다. 꿈에서 깨어 있는 일. 현실에서 몽유병 환자가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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