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7일 화요일

문화정치

반쯤은 자조 섞인 말이지만 한국에서 문화적 저항이란 말은 앞으로 쓸 수 없겠다. 정치적 문화, 급진적 문화라는 말 자체가 문화 먹물의 사치스런 상상계 속 무엇 아닌가 한다. 아무리 저항적 문화 형식을 실천한답시고 현장에서 나뒹굴어봤자 문화에 대한 인식 일반이 너무나 저급해서 무용하다. 최소한 문화 독해력이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야 문화로 저항하기니 뭐니도 될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 한 아무리, 심지어 급진적 현장에 놓여진 급진적 예술일지언정 꽃병풍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쩌면 문화의 급진성이 현장, 혹은 사회적 문맥과 함께 가야한다면, 분리될 수가 없는 거라면, 그렇다면 먹물이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있는 급진적 문화의 실제 버전은 그 먹물이 하급으로 치는 어떤 문화 형식일지도 모른다. 또 반쯤은 자조 섞인 토로이지만, 내 생각으론 한국에선 1차원적 "리얼리즘"이 가장 정치적 힘을 가진다. 보고 바로 이해되는 직독직해가 가능한 어떤 상징, 이미지와 기호가 명실공히 본드처럼 달라 붙어 있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이런 방식의 정치성, 혹은 영향력은 다름 아닌 '소통의 힘'정도 될 것이다. 아니면 공감이란 말로 바꿔도 될 것이다.

반면 그런 관례화된 커뮤니케이션을 깨는 문화형식은 대국민적 반감을 사게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실로 진정한 문화의 힘, 다른 말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몹시 피곤해질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반감도 반감 나름이지 90퍼센트 이상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걸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좀 슬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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