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조형섭은 상기한 세 차례 전시에서 간판을 전유했다. 그 간판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간판의 모양을 모방하는 가운데, 네온이나 자개무늬 등으로 장식했다. 새롭게 작업한 간판은 옛 간판의 흔적을 기록한 사진과 함께 전시됐다. 간판에는 부흥이나 만물, 근대화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이 단어는 실로 근대적 시기의 열망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부흥은 지연된 근대에 대한 회복을 의미한다. 만물은 새로운 상품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의미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가하던 최고의 가치이자, 미래 시점의 꿈 이야기다. 지독히도 배고프고 못사는 저개발 상태를 참아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집단 주문 같은 것이다. 상회도 마찬가지다. 문자 그대로는 상인의 조합이나 규모가 있는 회사를 뜻하지만, 대부분의 동네 구멍가게가 이런 과도한 명칭을 야심차게 달고 있었다. 무한한 번영의 꿈,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자명한 믿음을 안고서 말이다. 당시 세대가 모두 근대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것은 맹렬히 진보하는 근대적 시공간 속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근대적 사관에 기초한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허위로 드러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계발되고 생산 유통 소비 관계가 재편되면서, 이 시기의 꿈은 곧 바로 철지난 것이 되어 버렸다. 호기로운 명칭을 단 구멍가게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수퍼마켓에 그 임무를 넘겨주고 쇠락하거나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간판은 개보수도 되지 않은 채 늙고 할퀴어진 얼굴이 되었다. 조형섭은 이렇게 썼다.
얼마 전 시골의 한 작은 상점에서 받침 몇 개가 떨어져 나간 부흥간판을 본적이 있다. 2013년 어느 날의 그때, 나는 오지 않을 손님과 부흥을 기다리는 텅 빈 상점에서 80년의 모호한 감수성을 느꼈다. 그 80년의 감성은 내게 부흥이란 단어처럼 과도한 욕망이 낳은 파괴와 개발이라는 이중의 이미지로 스쳐 지나지만, 아직도 재개발이 한창인 곳에는 현재 진행의 상태로 과거의 모습이 흔적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부흥은 과거의 모습이면서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 . . 잘 사는 것에 한 의미는 뒤로 하고 잘 살겠다는 의지만 앞세우던 칼날 위, 결코 부흥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지점에서 다양한 의미를 생산해내는 부흥의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작가노트 중)
조형섭은 오래된 간판에서 발견되는 진보 서사의 폭력적인 얼굴과 그 말로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부흥”의 시기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감추지 않는다. 발광하는 네온과 영롱하게 반짝이는 자개는 (발터 벤야민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미 폐허가 된 소망상징wish symbol을 아름답게 덧칠한다. 이것은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자개농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정서다.
자개농
오래되고 낡아빠져 버려진 가구를 주워 리폼한 <1+1>, 버려진 자개농을 주워 해체한 후 남은 재료로 낡은 의자를 복제한 <A.M.+P.M>, 폐쇄회로 카메라를 자개 무늬의 망원경으로 장식한 <망원경을 돌려줘>, 그리고 모든 간판 작업에서 조형섭은 반복적으로 자개농을 재료로 사용했다. 조형섭은 자개농에 관해 특별히 이렇게 적고 있다.
얼마 전 우리 집 안방을 차지하던 자개농을 지금 있는 경남의 한 창작센터로 운반해 왔다. 시간을 박제해 놓은 것 같은 그 자개농은 수 십 년을 같은 자리에서 우리 가족사를 목격 했을 것이다. 처음 그 자개농을 집에 들여 놓았을 때 어머니는, 한 겨울 밤의 눈 내리는 말 그대로의 눈부시게 하얗고 아름다운 광경을 상상하셨을 테지만. 이제 크고 무거울 뿐인 자개농은 애물단지가 되었고, 나는 그것을 처분하며 두 세대가 만들어간 시간의 겹과 과거와 미래로 대변되는 시간의 두 지점을 동시에 보고 싶었다.(작가노트 중)
근대 시공간에서 수공예로 만들어진 자개농은 사치품과도 같았다. 화려하게 조개로 장식된 식물과 동물이 가장 내밀한 안방으로부터 영롱한 빛을 발한다. 자개농은 가족의 귀족적 취향과 권위를 보여주는 일종의 징표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파괴와 구축으로 점철된 시기에, 취미의 문제에서는 다수의 민중이 외려 전통 한국 귀족의 이미지를 뒤쫓고 있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말이다.
실로 박정희 시대의 조국 근대화 관념은 자유로운 개인을 발견해 나가는 서구 부르주아의 발전 서사와 상이하게 전개됐다. 전쟁의 경험은 국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에 합의하도록 했고, 지연된 근대화는 공동체의 희생과 노력으로 달성될 수 있었다. 자신들로 인해 후손 세대가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서. 어쩌면 자개농은 그 세대가 상상할 수 있었던 지고의 행복한 미래였다. 집 한 채 가격의 사치스러운 혼수품이지만, 그 미래적 상징 가치를 집 안쪽에 두는 일은 실로 가치가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유행은 변한다. 더 이상 귀족적 취미는 자개농 같은 전통적 미의식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목소리 곱고 아름답던 귀족의 얼굴이 급작스런 노화를 겪는다. 이때 드러난 몰골은 상대적으로 더욱 그로테스크할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과거의 영광을 처분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가족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그것을 그냥 처분하지는 않는다. 자개농의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본질인 자개 무늬만은 구출해 냈던 것이다.
자개 무늬는 그 시절 소구했던 가족의 유토피아를 그 속에 품고 있다. 그는 그런 자개 무늬를 반복적으로 새롭게 조형해 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새로이 탄생한 자개-오브제는 구시대 유토피아의 어떤 측면을 복원하는가?
보수주의 충동
조형섭은 처음에 자개의 (혹은 그가 발견한 근대적 상징물의) 구슬픈 모습에 애잔함을 느끼다가, 이내 그것의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어떻게 해서든 복원시키고 싶어 한다. 자개는 그가 만들어내는 온갖 오브제의 표면에 장식으로 달라붙어 오색찬란한 빛깔을 발산한다. 이런 면모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반동적인 스펙터클로 보인다. 더욱 마르크스주의적 표현으로 바꾸자면 조형섭이 재탄생시키는 오브제는 물신적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다고 보인다. 사물의 본질(폐허)을 외양으로 감추고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제 스스로를 표명하며 인간을 미혹하는 그런 환영 말이다. 썼듯이, 자개농은 당시의 문화적 허위의식이었다. 몹시 고가의 혼수품을 하도록 신부측에 강요하는 문화였으며, 그 미감 또한 전통 부르주아의 미의식을 단순히 추종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것은 폐허가 될 운명이었고 폐허가 됨으로써 그 운명이 정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가? 조형섭은 굳이 자본주의의 사생아에게 심폐소생술을 행하고, 그것을 웰메이드 오브제로 재영속화한다. 재탄생한 자개농은 실로 상품의 신화를 다시 쓴다. 우리는 여전히 구식 자개농의 신화에 다시 종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것도 힘든 마당에?
거기다가 조형섭은 가족의 온정과 당시 조국 근대화에 반드시 필요했던, 가족부터 민족에 이르는 집단 의식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자개장에서 가족의 기억을 멜랑콜리하게 떠올리고 또 복원하고 싶어 하지만, 그 기억의 원형은 잘 봐줘야 집단적, 가족적 희생에서 오는 온정에 불과하다. 조형섭은 <삼선동행>에서 ‘함께’의 가치를 관객이 경험하도록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학생에게 슬리퍼 한짝을 나눠준 후, 다른 한 짝을 박스테이프로 만들어 짝꿍에게 선물하고 함께 걸어다녀 보기를 주문했던 이 작업에서, 하지만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은 ‘함께 해야만 한다’는 작가의 교조주의적 명령이다. 이것이 과연 근대적 가족주의와 크게 다른 것일까?
물론 작가가 소구하는 것은 일종의 ‘육남매’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없이 살지만 나눠쓰고 아껴쓰면서 보다 인간 다운 미래를 꿈꾸며 사는 삶이다. 조형섭에게 근대란 시공간은 개발과 파괴로 점철된 폐허임과 동시에 그런 공동체적 정서를 아직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창고로 포착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유토피아적 원형상이 장식이라는 보수주의적 테크놀로지와 만나자마자 그것은 기만적 이미지로 변하며, 또한 인간의 물신화된 욕망을 자극한다. 그가 했어야 하는 일이 정말 이런 방식로 과거를 보수하는 일이었을까?
부기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여기서는 조형섭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재생 이미지의 보수적인 측면을 사회 저변으로 확장해보려고 한다. 이 절은 일종의 예비적 고찰의 성격을 띤다.
언젠가부터 과거나 전통에 대한 열광이 특정 문화 실천의 구호가 되었다. 문체부에서 연간 주최하고 있는 마을미술프로젝트부터 지자체 단위의 도심재생/재활성화 사업, 예술가나 건축가의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이 다양한 문화 실천은 (철거를 핵심으로 하는 재개발이 아닌) 이른바 리모델링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 역점을 두면서, 기존 낙후한 것을 복구, 보전하거나 재활용하려고 애쓴다. 이런 사업은 이젠 쇠락한 과거의 영광을 여전히 남겨둘 가치가 있는 ‘문화’로 인정한다. 그에 따라 달동네부터 전통시장, 전통마을, 심지어 국가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이르는 (이미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 하지만) 문화적 가치를 띤다고 믿어지는 산물이 그럴싸한 모습으로 문자 그대로 ‘복원’된다. 각기 계층의 관여자는 ‘진정한’ 문화의 미덕을 강조하고 한편으로 그것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자신의 프로젝트를 옹호하기에 나선다. 재개발과 재생의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재개발은 겉과 속이 같지만 재생은 겉과 속이 다르다. 이런 모순을 봉합하는 것으로 두 가지를 들고 싶다. 하나는 문화가 돈이 된다는 구호인데, 이는 한 때 나라 전체를 지배했던 창조경제와 문화콘텐츠진흥 사업 담론과 미래창조과학부 출범 배경이 여실히 증명하는 바다. (혹은 지역 곳곳에 있는 ‘음식문화거리’의 작명이 이런 욕망을 잘 반영한다.) 다른 하나는 전통 복원 그 자체가 입은 방탄 조끼에 기인한다. 이런 주장은 기존 재개발 담론의 안티 테제로 기능하는 것과 동시에, 문화의 역사적 의의를 비판적 관점에서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 재개발이 공간의 폭력적이고도 급격한 구조 재편과 전환을 일삼았다면 오늘날 문화재생은 은밀하게 마치 일종의 자연 현상처럼 치부,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공적 영역에서 시행하는 광범위한 전통 되살리기 프로젝트는 있지도 않은 과거에 환상을 부여하며 단일한 문화 정체성을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장소에 부여하려는 데서 보장된다. 이런 정책이 노리는 효과는 거주자의 실제 삶에 부합하는 환경을 구축하고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 자본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순환 속에서 인구가 유입되고 지역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지 아닌지가 이들의 관심사다. 긍정적인 마음을 품고 문화 재생을 통해 지역 경제가 성장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런 현상의 주역은 누구일까? 수혜자는 누구일까? 물론 최하층 노동계급에 가까워질 수록 그것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 가능하다. 최고의 이익은 장소의 주인, 즉 지주에게 돌아간다. 공적 담론이 이렇게 문화 및 역사와 접목하며 재개발에 다른 이름, 재생을 도입한다면, 사적 영역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언젠가부터 문화계에서 거론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런 현상의 대표적인 예다. 낙후한 지역을 문화적으로 개보수해서 쓰는 문화 생산자는 자신의 활동 때문에 치솟은 지대를 감당해야 하는 난국에 처하며 거주지 밖으로 추방 당한다. 이런 과정은 이윤의 추구와 사유 재산의 축적을 미덕으로 삼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의사-자연사적인 것처럼 진행된다. 여기서 추방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때로는 당사자가 자초한) 문제이거나 잘 봐줘야 개인간의 분란이다. 외려 계약을 위반한 임대인은 무법자란 칭호를 종종 달게 된다.
예술가는 문화의 자본화를 가속하는 대리인에 불과할까? 문화 활동은 결국엔 장소에 금박 장식을 덧입히는 결과일까? 급진적인 문화까지 제 양식으로 빠르게 삼아버리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문화란 종국의 실패와 보수화를 그 자체에 아로새긴 것에 불과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가는 지역 정책 결정에 제제를 가하고 추방자를 보호하자는 운동을 전개할 수도 있다. 자본가를 위협하는 집단 데모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제안하는 건 다른 쪽이다. 이 모든 활동이 문화화 과정과 자본화 과정에서 분리한다면 설령 의도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문화의 자본화 과정에 ‘문화적으로’ 찬동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분명하다. 문화는 자본화 과정에 더욱 개입해야 한다. 그래서 자본화 과정 아래에 있는 문화의 양면성의 실체를 폭로해야 한다. 예술가들에게 이때 문화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젠트리파이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미래를 앞 당겨 논쟁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나는 이쪽을 지지한다.
2016년 12월
안대웅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큐레이터 / 유능사 일원
오픈스페이스 배 개인전 <부흥상회> http://www.spacebae.com/w3c/board.php?board=Past&command=body&no=91
오픈스페이스 배 개인전 <부흥상회> http://www.spacebae.com/w3c/board.php?board=Past&command=body&no=91
부산비엔날레 참가작 <근대화 슈퍼> http://www.busanbiennale.org/sub01/03_view_fix.php?no=351
경기문화재단 기성작가지원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에 기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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