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실 큐레이터의 깊이없음은 한국에서 더욱 심각하다. 학계를 제외하고 현재 미술계에서 글(담론)을 생산하는 대부분은 큐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평론가가 제한된 지면을 대상으로 한다면, 큐레이터는 (카탈로그를 포함하는) 지면, 혹은 (전시를 포함하는) 지면과 유사한 무엇을 만들 수 있는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이들이 하는 일이란, 단지 어떤 종류의 유통인 것 같다. 특정한 의견도, 담론도 없이 여러 작가를 상대하고 순환시키고 짧은 서문을 써대고... 모든 것을 의미없게 만든다. 이미 있던 가치로운 것까지... 손을 대서 그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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