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가짜 뉴스화. 누구에겐 진짜 뉴스가 누구에겐 가짜 뉴스.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사람이 상상한 common ground의 미덕은 이미 상실.
트위터는 팔로잉하는 사람만 보임. 나에게, 너에게 커스터마이즈된 정보들.
불일치를 해소하지 않음. 그냥 리얼리티 티비처럼 관망함. 정보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기 보다는 축적accumulation함. (이것은 파워 페이스부커 친구 추가하기, 트위터 정보꾼 팔로잉 욕심 등을 생각해보면 된다.)
인지적 충돌congnitive conflict, 서로 다른 지식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태. 인지상의 정의cognitive justice. 앎의 네이티브적 방식을 억압한 근대 과학의 인지 방식을 교정하기 위한 개념. (쉽게 다른 지식을 기존의 지식 구조에 끼어 맞춰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정보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교육학 등에서 논의되는 개념.)
조슬릿이 보기에 증거의 진위를 가리는 능력의 접근이 점점 사유화되고 있음. 정보 독해 능력을 계발시키는 데 중요한 것이 교육. 교육은 공공 영역에 놔두어야 함. 그런데 교육의 사유화, 빛더미에 앉은 학생들, 정보의 상품화가 문제.
예술은 뭘 할 수 있나? 동시대예술은 엔터테인먼트와 리서치라는 양극단의 스펙트럼을 가짐. 조슬릿 자신은 이미 손을 떠나가버린 예술의 스펙터클한 형태를 거부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고 함. 별로 이런 식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신, 리서치의 한 형식으로서, "장소를 벗어난 정보" 즉 형식적 분과나 전문가성에 의해 절대로 흡수될 수 없는 종류의 정보를 예술은 수용할 수 있다. 예술은 말하자면 정치화되고 물질화된 정보 이론이 작동하는 리소스. 물론 이때 이런 이론은 인지상의 정의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종류의 것...
조슬릿이 생각하기에 물질matter과 형식form을 통해 이론화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기 십상이다. 특히 파시즘이 창궐하는 것 같은 시대에... 하지만 이건 실수인데, 인지상의 정의란 공공 발언을 삭제시키는 데 저항하는 것. 심지어 "크룩트 힐러리crooked Hillary"라는 이름 하에 한 사람이 쌓아온 커리어와 복잡한 정책이 거짓되게 특징화될 때에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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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정의란 말의 연원을 생각해보면 대략 이렇다. 인지란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독하고 가치판단하는 행위다. 고로, 이 말은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볼만한 여지를 제공함. 정보가 단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다양한 차원의 정보가 존재하며, 권력은 필요에 따라 정보를 억압하거나 사유화해서 강화한다는 것. 따라서 수용하는 쪽에선 정의, justice가 필요하다. 코그니티브 저스티스는 정보 수용에 있어 그런 정보 구조에 대한 정의 감수성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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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그니티브 저스티스란 말은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이란 분야에서 많이들 쓰나 봄.
http://openict4d.wikidot.com/from-ict4d-to-cognitive-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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