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31일 월요일

Gabrielle Jennings, Introduction, in Abstract Video (2015)

커크 버니도(Kirk Varnedoe)는 <무의 그림(Pictures of Nothing)>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모노리스를 존 매크래큰(John McCracken)의 "플랑크스Planks"와 연결시킨다. 그 조각은 프레젠스(presence)에 관한 것이었고 이런 맥락에서 무빙이미지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질문을 부과한다: 이미지--물체도 아니고 찰나의 언제나 움직이는--는 실제 오브젝트처럼 중력과 프레젠스를 가질 수 있을까? 버니도는 안드로이드의 experation이란 문맥에서 <블레이드 러너>를 참조하면서, 6번의 강의에서 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없을뿐더러 심장병을 불치병으로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버니도가 시간이 더 있었다면, 강의가 더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인데, 그가 새로운 추상 형식을 사려하길 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험필름, 비디오, 뉴미디어 실천. ...

... 그럼에도 불구하고 abstract nonrepresentational, nonfigurative, nonobjective, 쪼금 다르지만 유용한 용어 abstracted의 차이를 들여다 보는 것은 적절한 시작이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To be abstract는 "특정한 인스턴스로부터 동떨어진, [혹은] ... 그림적재현이나 서사적 내용에 관해 아예 시도하지 않거나 거의 없는 오직 내재적인 형식을 가지는"으로 되어 있다. To be nonrepresental하거나 nonobject하다는 말은 "자연적이거나 실제 오브젝트, 피겨, 씬을 재현하지 않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Abstract Video>가 이 정의를 확장시켰으면 좋겠다. 우리가 앞으로 보겠지만, 왜냐하면 앱스트랙트 비디오는 비재현하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무빙이미지 속 앱스트랙션은, 언제나, 예술적 전략 (혹은 결과)다. 무한한 목적을 향한 다양한 방법에서 사용된다. ...

1921년부터 시작한 한스 리히터의 클래식 아방가르드 필름 <리드무스 21>은 초기 무빙 이미지 앱스트랙션의 실험이다. 예술가의 페인팅과 그래픽 디자인 실천으로부터 도출된 이 작품은  지오매트릭 앱스트랙션을 통해 유도됐고 "앱솔루트 필름"이라고 불렸다. 검정 흰색 회색의 정사각형과 사각형이 다양한 컨피규레이션, 즉 확장하고 압축하고 변형되면서 사라졌다가 떠오른다. 리히터는 자신이 에디팅했던 <G: Material zur elementaren Gestaltung> 1호라는 매거진에서 이렇게 썼다: "필름을 조직하려고 했던 시도, 그러한 것이란 개별적 부분이 서로를 향한 그리고 전체를 향한 활성화된 긴장 속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체는 그 자신 안에서 지적인 모바일로 남게 된다." <앱스트랙 비디오>에서 보겠지만, 글쓴이는 일종의 "geistige Mobilitat"를 명확하게 하려 했다.

(셀률로이드나 전자테이프가 물리적 리얼리티를 가지기 때문에 그와 반대로) 무빙이미지가 이미 앱스트랙션인 사이버네틱, 디지털 시대로 우리가 넘어오면서, 앱스트랙트는 우리 주변 모든 것이다. 추상 페인팅은, 대부분, 핸드메이드다. 당신이 렌 라이, 스탠 브래키지, 제니퍼 웨스트 같은 구조주의, 익스페리먼털 실천자가 아닌 이상--필름과 비디오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무빙 이미지의 경우, 미디엄과의 물리적 관계성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 필름과 비디오는 이미 즉시적으로 가시적이거나 촉각적인 이미지를 부여 잡는 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앱스트랙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필름은 사진적 미디엄이므로 인화되어야만 하고, 비디오는 녹화해야지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폐쇄회로든 웹캠이 아닌 한, 비디오는 리플레이가 필요하며, 디지털의 경우 문자 그대로 붙들어 잡을 수 없다: 디지털 이미지를 만드는 데이터는, 보리스 그로이스가 썼듯, "인비저블"하다. 여기서 우리는 페인팅이나 조각의 프레젠스, 우리가 제스쳐를 가지고 물리적으로 아이덴티파이할 수 있는 장소에 있는 존재와, 전자적 빛과 움직임의 프레젠스에 있는 존재, 즉 극도의 엑설레이션이 있는 그 장소에 있는 존재 사이의 다른 점에 관해서 말을 뗄 수 있다--보통 무빙 이미지를 구축하는 스틸 프레임은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우리는 개별적으로 그것을 볼 수 없다. (더글라스 고든의 <24시간 사이코> 가튼 예외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비디오는 그래서 물체와 신체적으로(bodily) 관계맺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속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물론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에서 더욱 복잡해진다. 여기서 이따금씩 가장 비판적인 물체는 작업과 관련된 관람자의 신체다. 인지된 공간에서 움직이는 신체는 앉아서 보는 신체오 무척이나 다르다: 압도적인 숭고의 감각은, 예를들어, 로드코 같은 추상 페인팅에서와 비디오에서 몹시 다르게 성취된다. ...


... 지평선은 언제나, 추상처럼, 닿을 수 없는 곳의 재현이다. 지평선은 언제나  일종의 너머의 보기, 보는 것과 시선을 돌리는 것을 동시에 행하는 것의 일종을 알려준다. 폴 파이퍼(Paul Pfeiffer)의 <폭우 이후의 아침>은 흔들리는 지평선을 비디오로 프로젝션했다. 작품에서는 일출, 케이프 코드의 대양 위 하늘의 이미지에 일몰을 반전시켜 두 개가 지평선에서 하나로 합쳤다. 그 효과는 일종의 무시간성, 우리가 과학적으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의 리터럴라이제이션과 앱스트랙션을 동시에 보여준다. ... 이 예술가의 더욱 근작은 협동적이고 조각적인 경향이 있으며, 그 안에 포함된 것은 문화적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감각이다. 영원성 혹은 무한성의 개념은 아날로그, 선형적 형식이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디지털에게 필수적이다. 비디오는 수평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될 수 있는 반면, 필름은 수직적인 미디엄으로, 최근까지도 아래로 내려가 필름 프로젝터를 통해 또아리를 틀며, 평행한 톱니바퀴 구멍에 의해 추진됐다. 디지털 시대에, 이 두 가지는 영원한-지금-현존을 형성하기 위해 합쳐지며, 거기서 위나 아래나 왼쪽이나 오른쪽  여기나 저기든 없다--물론 추상이다.

나선으로 들어가자: 라인은 태양, 최면적 어지러움,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다시 안으로 가는 움직임을 위해 재현성과 상징을 만들었다. 나선은 깊이와 퍼스펙티브를 함축해왔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움직임을 알린다. 이렇게 무의식을 위한 파도 타는 타겟, 고동치는 소용돌이, 돌아치는 기호는 1920년대 오스타 피칭어(Oskar Fischinger)와 마르셀 뒤샹의 작품에서의 필름적 아방가르드를 찾아오게 되며, 장 콕토의 <시인의 피>(1930)에서, 리히터의 <돈이 살 수 있는 꿈>에서, 이를 위해 뒤샹과 존 케이지는 유명한 <디스크스Discs>--더욱 전통적인 내러티브에 삽입된,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의 누구의 누구에 의해 제작된 7개의 초현실적 꿈 시퀀스 중 하나--의 시퀀스를 만들기 위해 협업했다. 이와 함께 이런 코르크스크류는 주류 헐리우드 필름에서 나선의 외관으로 출몰했는데, <오즈의 마법사>(1930)이나 <현기증>(1958)이 그렇다. 예술의 영역ㅇ에서는, 물론, <스파이럴 제티>(1970) 같은 전설적인 필름이 로버트 스미드슨에 의해 감독되고 쓰여졌고 스미드슨과 낸시 홀트에 의해 찍혔다. 게다가 제티 구축의 기록하며, 필름은 스미드슨의 철학적 아이디어를 녹화하는 의미 뿐만 아니라 예술가가 "우주적 파열"--변증법적 역사로부터 관람자를 자유롭게 하는 탈지향(disorientation) 상태--이라고 부른 것을 제공하였다.



제니퍼 웨스트와 엘레인 스터트번트, 2명의 여성 미술가가 다시 만든 지난 세기 가장 신비적 남성 예술가 2명의 작업이 안 중요한 것은 아니다--시오나 윌슨이 4장에서 다루듯이 그것은 "차이를 가진 반복"을 가진다. 2013년에 제니퍼 웨스트는 제 고유의 스파이럴 제티 필름을 만들었다: <Spiral of Time Documentary Film>과 <Salt Crystals Spiral Jetty Dead Sea Five Year Film>. 그 필름은 순환해서 돌아와서 문학적으로, 텍스트적으로 개념적으로 그것 위에 레이어를 쌓으면서 이제는 유명해진 장소를 재방문한다. 역사와 물질성에 템포성을 향하고 그것으로부터 물러나는 시선을 가지고 레이어를 쌓는다. 스터트번트는 뒤샹의 <디스크스>를 다시 만들어 <Dreams Money Can Buy>(1967)라고 타이틀을 붙였다. 디지털 프로젝션으로, 이 작업은 스터트번트의 재재작 실천론에 기초해 있으며 뒤샹 룩을 따라 인스톨레이션으로 선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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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재현하지않기Nonrepresentation는 이 책이 시작하는 곳이다: "트랜스미션" 섹션은 무빙이미지 아트워크를 논의하는데 여기서 무빙이미지 아트워크는 한편으론 실험 필름 속의 추상으로부터 연유하고 다른 한편으론 텔레비전과 초기 비디오아트로부터 연원한다. 둘째 섹션 "인터페어런스"는 비디오와 미디어아트, 넷아트 사이를 포괄하며 어떻게 이 장르가 시작부터 추상을 포용했는지 보여준다. "인터페어런스"에 수록된 에세이는 세번째 섹션의 에세이를 가능하게 해준다. "리셉션"은 움직임, 시간, 공간, 소리, 내러티브, 컬러를 가진 디스임베디드 디지털 플레이의 안팎으로부터 비디오아트의 추상을 논한다.

트랜스미션



...  존 케네디 암살이 8미리 코다크롬 필름에 포착되어 세상에 트렌스미티드 된지 50년 지났다. <닥터 후>가 비비씨에서 방송된지도 50년 지났다. (첫번째 에피소드가 케네디 암살 소식을 커버리지로 다루느라 십분 딜레이 됐다는 전설이 돌고, 사실은 80초 늦어졌다.)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로켓 꼬리, 안개로 분산되는 구름으로 흩어지는 연기처럼 보임. 사운드트랙은 딱 스페이스카우보이, 흑백의 인터스텔라 사이키델릭 분위기임. 비디오 피드백 "하울-어라운드" 기술은 비비씨 전기 엔지니어 벤 팔머나 노만 테일러가 창조했고, 타이틀은 그래픽 디자이너 버나드 로지가 창조함. 예술가이자 미술사가인 루츠 베커(Luts Becker)가 말하길, 그는 팔머와 비쥬얼 이펙트를 계발하기 위해 협업했으며 그건 베커의 <호라이존>(1967)으로 나타났는데, 그건 원래 비비씨 다큐멘터리 시리즈 <Horizon: Will Art Last?>(1967)의 일부로 방영됐다. ... 이미지는 네온 같았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건 분명했다--전자적으로 생선ㅇ됐고, 정말로 비재현적이었다. 배커가 회상하길, "방송에만 사용된 음악은 첼리스트 조이 할에 의해 온전한 작품으로 연주되고 작곡된 것이다. 그건 꽤 실험적이었는데, 그녀가 첼로로 창조한 노이즈 이펙트의 혼합체와 하모니의 파편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필름은 "눈을 위한 음악" 같이 침묵을 프로젝션했을 것이다. 베커는 그의 "야심이 일종의 전자 음악의 시각적 등가물을 창조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비쥬얼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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