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더글라스가 1980년대 후반부터 생산한 필름 인스톨레이션은 최근 예술에서 시네마의 광범위한 재고찰의 일부다. 종종 더글라스 고든이나 피에르 위그 같은 작가들이 사용했던 미디엄은 실상 비디오다: 필름은 사후생, Nachleben으로 비디오 아트를 가진다. Nutka (1996)나 Suspiria (2003) 같은 작업이 비디오인 반면, 더글라스가 실제 셀룰로이드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극장의 필름 프로젝션이 디지털 프로젝션으로 대치되고 있는 지금, Inconsolable Memories 같은 작업에서 필름을 더글라스가 선택한 것은 반항적일만큼 시대착오적인 구석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더글라스는 "순수" 시네마의 종류, 디지털 시대나 비디오 전의 영광의 지위로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Overture은 1899년에서 1901년에 에디슨 컴퍼니에 의해 브리티쉬 컬럼비아의 기차로부터 푸티지 쇼트를 프루스트의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일어 났을 때 반의식 상태를 일깨우는)로부터 따온 인용을 포함하는 사운드 트랙과 결합한다. 그의 대다수 작업에서처럼, 더글라스는 알레고리적 역사가로 행동하며, 우연적이고--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질문 가능한 방식으로 다양한 소스를 결합한다. 과거를 이상화하며 순수성을 모색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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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시네마로의 회기 속에서, <오버추어>는 마르셀 브루타에스의 필름성 작업 몇몇과 비교될 수 있다--더글라스의 작업의 우아한 엄격함과 브루타에스의 슬랩스틱과 보드빌에서 하는 농짓거리 사이의 모든 차이에 관해서 말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주장했듯, 브루타에스는 초기 시네마의 요소를, 지배적인 헐리우드 영화에 맞서 초기 필름의 "행복의 약속"으로 돌아가는 효과를 주기 위해서 사용했다. 크라우스는 브루타에스를 "인스톨레이션과 인터미디어 작업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여기서 예술이 본질적으로 자본의 서비스에서 이미지의 글로벌화와 공모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할퀴기 위한 손톱으로서 브루타에스를 사용한다. 마르셀 브루타에스는 자주 "우리가 포스트 미디엄 시대에 거주한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하는 예술의 선구자중 하나로 표현되었지만, 크라우스에게 그는모더니즘의 매체 특정성 개념의 붕괴가 미디어의 재발명을, "차이 특정성(differential specificity)"에 기반을 둔 새로운 매체 개념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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