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설은 특정한 필름 보디와 비디오 작업이 각각의 미디어를 규정하기 위해 추상이란 이슈를 탐구했다는 것이다. 보는 경험을 향한 인식론적 요청의 장소로서, 무빙이미지의 시간성과 이미지 그 자체의 물질적 기반을 선택함으로써 이것이 이뤄졌고, 따라서 관람자와 텍스트 사이의 인식론적 트랜잭션을 탐구했다. 이 논쟁을 향한 역사적 서브텍스트의 팩트는 미국, 아방가르드 시네마가 초현실주의나 플럭서스처럼, 작업의 시기와 몸통에 의해 규정된 미술사적 운동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아방가르드 필름과 플럭서스를 똑 같은 예술가나 같은 줄기에서 나온 예술가로 계속해서 보려고 한다고 할지라도, 이 장르들은 "아방가르드"로 기능하고 있지 않는다. 이 논의의 나아간 파트는 떠오르는 비디오 아트 담론에서 오리지널 아방가르드 충동의 지실험이 있어왔다는 것을 다룬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걸쳐 아방가르드 필름 논쟁이 불거져 나왔고 이 전자 미디엄의 다른 실천과 가능성안에서 재단장됐다. 특정한 관심과 리워드를 배양해 낸 이 논쟁은 추상 이슈 안에 있다. ...
스탠 브래키지의 <Anticipation of the Night>(1958)는 카메라를 막 흔들어가꼬 내러티브로부터 필름을 해방시킴. ... . 브래키지는 선형적인 내러티브 언어로부터, 빛과 색깔로부터 창조된 "시각에 관한 메타포"에 의해 매개된, 점진적으로 떠오르는 형식의 강밀하고 개인적 공간으로 카메라를 해방시키려고 했다. ... 카메라 렌즈는 리얼리티를 제련하고 왜곡시켜, 퍼스펙티브를 추상 2차원 판으로 붕괴시키며 그것을 일루전한 공간으로 열어젖힌다; 전경과 바탕이 끊임없이 변환되는 행위장으로 합쳐질 때 필름 프레임은 싱글 스페이스가 된다. ...
<밤의 기대>에 있는 미적 스탠스는 독립 필름에서의 이후 발전을 앞당겨 형상화한다. 에디팅, 심지어 필름 표면에 직접 스크래칭하는 것과 카메라의 움직임의 인터플레이에서, 브라키지는 인식 가능한 사진적 이미지와 필름 프레임의 추상 사이의 텐션을 조작했다. 그는 표면과 일루전의 바운더리를 지웠고 필름메이킹의 새로운 언어를 창조했다.
<밤의 기대>는 일루전한 공간과 드라마틱 내러티브로 구축되어 있는 시네마 로직을 돌파하려는 미학적 전략의 편리한 오버뷰를 제공한다. 브래키지는 <나방빛Mothlight>(1963)에서 그 퀘스트를 직접적으로 명시했다. 여기서 나방의 파편과 조각, 어두운 극장의 프로젝터의 빛의 빔에 매혹되는 창조물은 말 그대로 셀룰로이드 스트립에 포착된다. 이 필름은 필름프레임을 가로지르는 붓의 스트로크 가운데 이미지의 물질성을 인지하는 브래키지의 핸드패인팅 필름브래키지의 핸드패인팅 필름--<The Dante Quaret>(1987) <The Glaze of Cathexis>(1990)--처럼 <나방빛>은 필름에 직접 적용된 파편화된 나방 날개의 우연한 아상블라주를 통해 필름 프레임의 경꼐를 무시한다. <나방빛>에서 브래키지는 필름 프레임의 기반으로서의 필름과 카메라를 거부했다. 끊임없는 셀룰로이드 표면으로 물질을 우연히 적용시킴으로써 우리가 보는 것이 떠오르게 함으로써 말이다.
브래키지는, 모든필름메이커가 그렇듯이, 필름 네거티브의 래보래토리 프로세싱과 프린팅이 끝나기 전까지, 혹은 필름에 페인팅하고 긁고 콜리주했을 때는, 스크렌에 프로젝트되기 전까지 필름을 보지 않았다.
추상 이미지의 영역에 있어서 필름의 급진적 탐구를 통해, 브래키지는 셀룰로이드와 프로젝터로서의 시네마 아파라투스를 탐구하고 노출하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가지고 논다. 브래키지에게, 필름은 스틸이미지가 아니라 움직임이었고, 그래서 그의 필름의 마지막 재료는 관람자였다. 필름 경험을 완성시키는 눈을 가지고 있는 관람자 말이다. <밤의 기대>는 녹화된 이미지, 무빙카메라, 싱글과 멀티플 시퀀스의 에디팅을 통해 추상 이미지를 창조하는 전략의 엠블렘이다; <나방빛>의 필름 프레임의 붕괴는 셀룰로이드 스트립을 추상 이미지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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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메이킹에서 추상 이미지를 조사하는 데 있어 내가 선택한 예술가와 아트워크는 추상을 어떤 다른 일루전으로서 다루지 않거나, 내러티브를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에, 내 관심은 "구조 필름"이라고 70년대에 정의된 것을 예견하는 "과정" 혹은 컨셉츄어 워크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런 필름을 필름의 안티-일루저니스틱 트리트먼트를 최우선 목표로 가진 것으로 정의하고 싶다. 브래키지의 mythic, 추상 표현주의 패러다임에서 자라나온 예술가의 자아의 시적 이데올로기와는 다르게, 혹은 스크린 표면의 캔버스(프레임)의 한계에 관한 신조형주의와 그의 페인털리한 관심과 브리어(Breer)와의 제휴와는 다르게, 다른 7-80년대 예술가들은 셀룰로이드 메터리얼로 돌아섰다. Gehr가 썼듯이, "대다수 필름은 필름이 이미지고 레프레젠팅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필름은 진짜 물체며 진짜 물체로서 그것은 이미테이션이 아니다. ... 필름은다양한 빛의 강밀도, 내적 시간의 밸런스, 주어진 공간 안에서의 움직임이다."
완전한 추상 이미지, 녹화된 이미지를 찢고 나와서 녹화된 이미지의 기반으로서의 그레인을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빛의 빔을 다루면서, 동시에 시네마 아파라투스를 노출하며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중성적인 요소가 아니라 활동적인 재료로 보여주는 그런 완전한 추상이미지. 폴 샤리츠의 인스톨레이션은 싱글프레임 필름 <터칭>과 <컬러 사운드 프레임>을 전시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다. <에피소딕 제너리에션>(1979)에서, 네개의 정렬된 루프 프로젝터는 갤러리 벽에 쏘아진 무빙 이미지의 계속된 시퀀스를 프레젠테이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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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예술가와 미디엄의 속성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추상 이미저리를 창조하는 필름의 어프로치를 주목하려했다. .... 이것들은 다시 말해지는 내러티브나 쉽게 재생산될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들은 반드시 경험되어야 하는 작업이며 프로젝션된 이미지와 기구(카메라, 셀룰로이드, 프로젝터, 스크린)의 일시성과 취약성 가운데 관람자와 연루되는 작업이다. 이런 예술가가 만지는 추상이미지는 다른 이미지 스쿨의 레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예술가의 리소스와 미디엄의 소스 밖에서 창조되는 것이다. ... 이런 작업을 하이라이트하면서 나는 어떻게 필름이 비디오와 다른지, 하지만, 얼마나, 추상으로의 연루를 통해, 그들이 특정한 원리를 공유하게 되는지 보여주고 싶다. 필름은 핸드메이드 예술 형식이며, 그것은 빛을 붇잡을 수 있고 매뉴얼리 에디팅되어야만 하는 필름 스트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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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포스텔은 관람자가 텔레비전 엔터테인먼트의 플로우를 스크린을 덮어버리고 그것을 추상적이고 파편적인 이미지로 만들게 함으로써 방해하도록 참여시켰다. 1960년대 초 플럭서스와 해프닝 이벤트, 예술가가 텔레비전 수상기를 그들의 예술제작에 처음으로 전유했을 때도 브라운관의 전자 패턴을 변조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백남준의 유명한 <자석 티비>(1965)는 비디오테이프나 방송 이미지를 채용하지 않지만, 텔레비전 수상기 표면 위에서 붙은 대형 자석에 의해 창조된 움직이는 추상 패턴을 보여준다. 여기서 백남준은 새로운 추상적인, 운동적인 이미지를 텔레비전 수상기의 독특한 능력으로부터 주조해낼 수 있었다.
1960년대 백남준은 전자적으로 방해를 받은 방송 수신 신호를 기반으로 비디오 몇개를 만들며 소리와 이미지를 녹화 이미지의 추상 변환(alteration)을 창조하기 위해 변화시켰다. <조니 카손 대 샬럿 무어먼에 관한 변주곡>(1966)은 대표젹인 예인데, 여기서 우리는 즉석 퍼포머스 가운데 조니 카슨 텔레비전 쇼에 나온 무어먼을 볼 수 있다. 그 즉석 퍼포먼스쇼를 백남준은 끊임없이 붕괴되는 비디오 이미지를 통해 찬스 이벤트로 변형시켰다. 이런 작업은 백남준 고유의 이미지 프로세싱과 컬러라이징 시스템인 백아베 신디사이저와, 1970년대 초반에 창조된 다양한 다른 이미지 조작과 신디사이징 툴을 예견하는 것이다.
... 필름의 경우에 내가 매체 그 자체, 전자 이미지의 질 그 자체를 탐구하는 예술가나 비디오 작업의 특별한 셀렉션에 주목할 때, 이미지 프로세싱과 포스트프로덕션 테크놀로지, 컴퓨터 그래픽, 예쑬가의 독자적 도구와, 더욱 프로세스되고 프로듀스된 추상 언어를 창조하곤 하는 커머셜하고 의사 커머셜한 리소스를 포용하지 않는다. 우연과 비영구적인 전자 이미지로부터 부상한 추상 이미저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런 작업은 보통의 코드와 프로덕션 프로세스를 방해한다. 비디오 이미징 시스템의 찬스 오퍼레이션 속의 코드화에 저항하는 챌린징하는 추상을 발견하기 위해서 말이다.
필름과 비디오 사이의 중요한 구분은 비디오 이미지는 즉시 레코드 되지마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는 브라운관 위에서 창조되며, 이미지가 보여지기 전에 프로세스되거나 프로젝트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예술가와 프로세스와 관람자 사이의 활성적인 변증법을 창조해낸다. 추상을 미디엄에게 유니크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인지적 관계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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