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목요일

카라마조프의 형제

"어떻게 자기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지 나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어. 내 생각으론 멀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모습이 감춰져야 해. 조금이라도 얼굴을 보이면 사랑은 사라져 버리거든.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식 사랑은 이 지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종의 기적이야. 사실 그는 신이었잖니. 하지만 우리는 신이 아니라고. 가령 내가 심하게 고통받는다 치더라도 타인은 절대로 내가 어느 정도까지 고통 받는지 알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는 내가 아니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타인을 고통 받는 자로 인정하는 일이 극히 드물거든. 왜 기꺼이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인즉 나한테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거나 내 얼굴이 멍청하게 생겼다거나 내가 언젠가 그의 발을 밟은 적이 있다거나 하기 때문일거야. 게다가 고통도 고통 나름이야. 내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면 어떤 은인은 그걸 인정해 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드높은 고통, 가령 이념으로 인한 고통이라면 인정해 주기 힘들텐데, 왜냐면 상대가 나를 바라보다가 내 얼굴이 자신이 환상 속으로 그려 본, 이념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의 얼굴과 전혀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는 즉시 나에게 베풀었던 선행을 철회할 거야. 이건 그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야. 거지들, 특히 '고상한' 거지들은 절대로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말 것이며, 구걸을 해도 신문을 통해서 해야 돼. 추상적으로라면, 그러니까 이따금씩 멀리 떨어져서라면 사랑할 수 있지만, 가까이 있을 때는 불가능하지. 만약 모든 거지들이 출연하긴 하되 비단 누더기를 걸치고 우아하게 춤을 추면서 구걸을 하는 발레 무대와 같다면 그렇다면 뭐 그들은 기꺼이 감상해 줄 수는 있을 거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