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와 단상
주로 미술에 관한 짧은 인용과 정리되지 않은 메모—와 일기.
2019년 6월 3일 월요일
시각과 후각
기생충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든 것은 비시각적인 감각이 역설적이게도 부르주아의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반지하의 냄새를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맡지 못한다. 그것을 감지하는 사람은 청결한 사람이다.
영화 마지막에 이선균이 냄새를 맡고 찡그리는 얼굴을 보고 송강호는 격분하고 칼을 이선균의 심장에 박아 넣는다. 송강호가 의존하는 감각은 여기서 시각이다. 여전히 시각은 부르주아의 담론인가? 아니면 시각은 빈자가 의존하는 최후의 감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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