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8일 일요일

두 작가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두 작가가 황망하게 목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여기에 관해서는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도, 혹은 비평적으로도 할 말이 있지만, 아직 공식적인 발표가 나기 전이고 여기도 완전히 나만의 공간은 될 수 없는지라 쓰지 않겠다.

다만 두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몇 마디 적고 지나가고 싶다. 새벽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애도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들이 또 자신의 감정을 전시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홍콩 시민에 관한 뉴스를 불티나듯 공유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약한 연대감의 약한 발로.

하지만 이들의 기분이 전적으로 가짜라고 매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부고 소식에 무언가 느꼈을 것이다. 이 기분을 내가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혼자 생각하지 않고 소셜 네트워크에 표현했다. 나는 거기에 의구심을 가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미디어의 매개작용에 대한 불신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본질에서 멀어질 수록 무가치하다라는 플라톤의 유명한 시뮬라크룸에 대한 비판과 같은 견지의 생각을 나 역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리가 없다. 두 작가에 애도를 표출한 사람들은 모두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기로 했을까? 혹은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분명히 의식적인 차원이 여기엔 있다. 고인에 대한 어떤 충정심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이고, 공유 행위를 통해 이들의 죽음이 조금이나마 명예롭기를 바라는 바람이 그 행위를 하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타임라인을 채우는 그들의 언어가 가리키는 바다. 하지만 무의식적인 차원도 있을까? 언어에 미끄러져간 다른 차원.

나는 이 무의식이 그들이 얄팍한 애도의 글을 알면서도 전시할 수밖에 없었던 진정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 사람의 포스팅만 가지고는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다수가 타임라인을 채우기 시작하면 어떤 패턴이 보인다. 나는 여기에 모호하지만 그럼에도 뚜렷한 진영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 작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들은 서로서로 눈치를 보면서 공유와 애도글을 쓰고 이로써 자신의 진영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네트워크의 확인 프로시저가 여기서 작동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미술계에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것은 약한 연대라기보다는 매우 강력한 결속에 대한 열망일지도 모르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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