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잔혹사 #1
나는 다큐멘타리를 경멸한다.
몇몇의 다큐멘타리들은
주인공의 흥을 죽이고 관객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교회와 절에 간듯 엄숙하고 진지했다.
분명 그들에게도 일상의 흥이 있을 지은데 그들의 흥은 간데없고 상처와고통을 도라지게한다.
그들의 상처와 고통은 일상의 작은 흥으로 버티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애써 무시할 수 밖에 없다 .극장이나 영화제의 문턱은 진실로 영화를 봐야 할 가난한 자들을 내쫓고 있다는 걸
내 영화는 '가난'에 대한 영화다.
경제적 인 가난 뿐 아니라 자연속에서 인간의존재가 얼마나 가난하고 처량한지 하지만 하루 하루 즐거움이 가득하다 ..
그래서 '우리시대의 가난'을 다큐를 찍었다 .
역사앞에서 ,자연앞에서 그리고 먹고 사는 가난안에서 생존하는 영화를 찍었다 .
영화제에서 '영화적 약자' 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고
내 아이들은 매번 마다 관객의 수를 세고 있었다 .
비참 했다 .
내 영화의 문턱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내 영화를 놓고 돈을 받는가 ?
내가 돈을 원했는가 ?
난 내 영화와 우리 시대의 가난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닫혀 있었다.
숙소에는 영화제의 흔한 현수막 하나 걸려 있지 않은
유흥가 근처 창문도 없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
새벽에는 이상한 남녀의소리가 들려 잠을 깨게하는 호텔이라는 이름의 모텔이었다 .
영화제의 셔틀버스도 다니지 않는 메인라인과는 차로도 15분 거리였다 .
물어보니 7개방만 영화제관계자에 쓴다고한다 .
우리 가족은 이상한 공간에 유배된 것이었다 . 내 영화는
경쟁도 아니고 주목 할 영화도 아닌 탓에 어쩔 수 없이
멋진 숙소의 순번에서
밀린 것이겠지
하지만 차별과 멸시가 존재하는 어떤 씨쓰템도 저항하고 비판 할 자유는 있는 법이다 .
애초에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영화를 만든 감독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상상 부터 축제의분위기를 떠올렸었다 .
하지만 아이들은 트럭보다 더 어두운 공간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 숙소는 교회 나 절에 온듯 고요했다.
일일히 바쁜 스텝들이 9살 아이들의 복지를 생각할 겨를이 있었을까
우리는 가난하다 .
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 걱정 부터 앞섰다 .
숙소는 제공한다고 하지만 4박 5일의 식사비는 어떡하지 ?
하지만 아이들의 영화제라는 새로운 체험 때문에 기대에 들떴다.
우연히 3일째 외국인들은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지? 돈이 많은 사람들인가 ? 싶어 물어본 뒤에 감독에게는 조식 쿠폰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
-조식쿠폰을 받지 않았어요 ?
왜 우리만 빠뜨렸는지..이제사라도 좋아해야하는데
항상 가난한이들은 그렇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영화제 감독이나 게스트들이 묵고 있다는 mvl 호텔 ,지지향 게스트룸을 카메라로 찍으러 갔다 . 아 이렇게 멋진 곳에 우리가 몇일을 지냈다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부러움이 앞선다 .
몇년 만에 처음으로 가난해진다 .
42억이라는 풍요로운 예산으로 벌이는 영화제 에서
우리가 가난을 느껴야하다니 ..
내 살아 가야 할 길은 오래
전 부터 정해져 있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난 분 과 이야기나누다 오늘 저녁 감독분들을 모시고 ... 비공식 만찬 인가보다 ..하지만 가난한자는 삐딱하게 상상한다 .길에서 만나지못했다면 3시간 뒤 그 자리는 몰랐을 것 아닌가 ?
결국 나는 그 자리를 갈 엄두를 못내었다.
그게 머리좋은 가난한 자들의 보편적 태도 란 걸 알아야 한다.
애초부터 감독의 동의없이 공개된 시놉시스를 바꾸었을때에는 선의거니 생각했다
작품에 대한 흔한 코멘트도 사전에 없었고,보도자료에도 우리 작품은 없었다.
150편을 다 소개하지는 못하겠지.. 이해 할 만 하지만 당한 자는 가난해지게 마련이다.
소위 외국 거장들의 5년도 더 지난 낡은 작품보다 장점을 파악해내는 대우를 해주지 못할 바에야 어설픈 국내 작품들은 초청하기 보단 거장들 작품전이나 하는게 낫지 않을 까 .
안목있는 관객보다 작품을 추켜세워주지못하는 영화제란게 감독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보도자료는 기자가 취사선택하게 초청된 작품 고르게 해주어야한다 .
차별은 용납하지 말아야한다 . 어렵지 않을 것이다 .
돈이 없어 버스로 가면 어떡할 거냐는 가난한 사람의 질문에 끝내 답변 하지 않은 영화제측의 무시 혹은 바쁨 .
하지만 가난한 자는 시간이 지나도 기록하고 기억하게 마련이다.
어느 영화제의 5일동안 우울하고 진지했던 나의 다큐멘타리를 경멸한다.가난과 약자를 옹호 하는 영화들 속에 는 영화적 약자는
존재해서는 안된다.
2019년 9월 29일 일요일
가난한 이미지를 다시 변호하며
나는 히토 슈타이얼의 "가난한 이미지(poor images)"를 단순히 열화되고 변형된 정보로 지금까지 생각했다. 슈타이얼은 그 이미지에 프롤레타리아트, 혹은 프레카리아트의 위치를 부여했다. 도발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그리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지승 감독의 말을 보는 순간 광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페북에선 지우신 것 같아 여기에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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