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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렬의 복학왕 담론을 깔고 쓴 자기고백이다. 최종렬에 대해선 어느정도 나올 수 있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지방러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최종렬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몇 가지 단상 메모.
1. 소재주의
지방미술이 소재주의에 천착한다고 하는데, 무슨말인지 직관적으로 알 것이다. 달항아리를 30년째 그리고 뭐 그러는 작가가 떠오른다. 여기서 소재주의는 포괄적인 의미로 필자가 썼듯, 어떤 경향성을 띈다는 거다. 근데 실은 모든 작업과 인간은 경향성을 띈다. 안띄는 게 거짓말.. 그게 없다면 미술 작가도 미술사도 없다. 우리가 소재주의라고 경멸하는 작업은 경향성을 가지되 그것이 동의할 수 없는 방향일 때다. 여기에는 사실 느낌만 있을 뿐인데, 비교 대상은 아무래도, 컨템퍼러리아트다. 컨템퍼러리아트와 비슷하지 않은 형태의 경향성은 소재주의다.
소재주의에 대한 영어식, 미술식 표현에서 내가 아는 건 medium specific이다. 따지고 보면 소재주의는 모던아트의 산물이자 정수였다. 하나만 딥따 수련해서 최고봉을 찍는 거다. 매체특정성의 레거시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 지방이라고 달리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퀄리티가 뭐냐? 왜 지방은 손맛을 아직까지 중요시하고, 형상 친화적이며, 미협 같은 커뮤니티 중심적일까? 그것은 망했다라고 성급하기 결단내리기보다 검토해봐야 할 문제. 그것이야말로 필자가 말한 다원주의 멀티버스 미술이 가능해질 수도 있는 지점
2. 반자기계발의지
최종렬이 말하는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 정보가 느리고 무언가 변화가 더디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그런 지방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한 가지 단서다. 나는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편인데, 그렇다면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에도 이유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아는 것이 별로 이 커뮤니티에서 필요가 없기 때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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